8화(5,458자)

외발자전거

동물원 원숭이가 진짜 근두운을 얻었다 · 길담이

금요일 새벽 다섯 시⁠, 해오름 동물원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불이 켜진 곳이 셋이었다⁠. 경비실⁠, 곰 사 앞에 멈춘 하얀 승합차의 실내등⁠, 그리고 관리동에서 곰 사로 내려가는 길을 바쁘게 흔들리며 가는 손전등 하나⁠. 손전등을 든 사람은 원장이었다⁠. 골프 점퍼 지퍼를 턱까지 올리고 있었다⁠.

승합차 옆에서 수의사가 가방을 열었다⁠. 가방 안에 주사기와 약병이 가지런했다⁠. 수의사는 철망 너머 바위 굴 입구에 앉은 늙은 불곰을 한 번 보고⁠, 장갑을 끼다가 손을 멈췄다⁠.

“⁠원장님⁠, 진짜 하시는 겁니까⁠? 아직 이빨도 성하고 밥도 잘 먹는다면서요⁠.⁠”

“⁠현실적으로 받아 줄 데가 없어요⁠. 서른두 살 곰을 누가 받습니까⁠?⁠” 원장이 손전등을 곰에게 비췄다⁠. “⁠다음 주면 땅을 넘겨야 하고요⁠.⁠”

뒤에서 장화 소리가 철벅철벅 다가왔다⁠. 두식이었다⁠. 밤새 원숭이 산 난간에서 졸다가 승합차 문소리에 깨어 뛰어온 참이었다⁠. 두식의 정수리에 그물 자국이 빨갛게 찍혀 있었다⁠.

“⁠하루만요⁠, 원장님⁠. 하루만 주세요⁠. 강원도에 곰 보호 시설이 새로 생긴다고 들었습니다⁠. 오늘 아침에 다시 전화해 보겠습니다⁠.⁠”

“⁠주임님⁠, 그 전화 벌써 몇 통 하셨어요⁠?⁠”

“⁠스물두 통이요⁠.⁠”

“⁠스물두 통 해서 안 된 게 스물세 번째에 됩니까⁠?⁠” 원장이 손목시계를 보았다⁠. “⁠그리고 곰은 주임님 담당이 아니잖아요⁠. 주임님 담당은 원숭이예요⁠. 원숭이 산에 그물 잘 덮였는지나 보세요⁠. 체험관 계약금이 걸려 있습니다⁠.⁠”

수의사가 약병 하나를 꺼내 불빛에 비췄다⁠. 곰은 굴 입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하품도 하지 않았다⁠.

두식은 곰을 보았다⁠. 곰 너머로⁠, 해자와 담 너머로⁠, 초록색 그물을 뒤집어쓴 원숭이 산이 어스름 속에 웅크리고 있었다⁠. 두식은 원장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돌아섰다⁠. 창고로 뛰어가 선반에서 전지가위를 꺼냈다⁠. 나뭇가지 치는 가위였다⁠. 창고 문을 걷어차고 나와 원숭이 산 관리용 쪽문을 열었다⁠.

“⁠주임님⁠! 뭐 하시는 겁니까⁠!⁠”

원장이 뒤따라 뛰어왔다⁠. 두식은 대답 없이 장대를 타고 올라갔다⁠. 쉰여섯 살의 무릎이 장대를 두 번 미끄러졌다가 세 번째에 붙었다⁠. 장대 끝에서 두식은 어제 제 손으로 지은 매듭에 가위를 댔다⁠. 나일론이 질겼다⁠. 두식은 이를 악물고 가위 손잡이를 두 손으로 눌렀다⁠. 툭⁠. 다음 매듭⁠. 툭⁠. 그물 가운데가 장대에서 풀려 축 처졌다⁠. 두식은 처진 그물을 장대 끝에서 해자 쪽으로 길게 갈랐다⁠. 사람 하나가 지나갈 만한 틈이 벌어졌다⁠.

“⁠그거 얼마짜린지 알아요⁠? 감시 카메라에 다 찍혀요⁠, 주임님⁠!⁠”

“⁠찍으세요⁠.⁠”

두식은 장대에 매달린 채 숨을 몰아쉬었다⁠. 장대 밑에서 꼬장이 두식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

해가 청계산 마루에 닿자마자 근두운이 내려왔다⁠. 구름은 그물 틈을 보더니 웅 하고 한 번 울고⁠, 틈으로 쏙 빠져 들어와 꼬장 앞에 엎드렸다⁠. 꼬장이 구름에 올라섰다⁠. 그물 밑에서 하룻밤을 더 잔 석봉이 구름 가장자리로 뛰어올랐다⁠.

“⁠시합이다⁠.⁠”

“⁠곰 먼저요⁠. 수의사가 와 있어요⁠.⁠”

“⁠그러니 시합이다⁠. 곰을 태우면 내 산이 하루를 비운다⁠.⁠”

구름이 떠올랐다⁠. 둘이 구름 위에서 마주 보는 사이 구름은 고른 자의 마음을 따라 그물 틈을 빠져나가 곰 사로 날아갔다⁠. 곰 사 위에 이르자 수의사가 마취총을 든 채 입을 벌렸고 원장의 손전등이 바닥에 떨어졌다⁠. 구름은 곰 사 바위 위로 낮게 내려앉았다⁠.

늙은 불곰이 굴 입구에서 일어섰다⁠. 천천히 바위를 걸어 나와 구름 앞에 섰다⁠. 곰은 꼬장을 보고⁠, 석봉을 보았다⁠.

“⁠원숭이 대장⁠.⁠” 곰이 느릿느릿 말했다⁠. “⁠시합한다고⁠… 했나⁠?⁠”

“⁠했다⁠.⁠”

“⁠내가 하지⁠.⁠” 곰이 구름에 앞발 하나를 올렸다⁠. “⁠나랑⁠… 서 보자⁠.⁠”

석봉의 눈썹이 올라갔다⁠. 곰은 이미 구름에 올라와 있었다⁠. 넓적한 발바닥이 구름을 누를 뿐 발톱 하나 세우지 않았다⁠. 꼬장은 구름 가장자리로 비켜났다⁠. 구름이 떠올랐다⁠. 곰 사 위로⁠, 동물원 위로⁠.

곰이 뒷다리로 일어섰다⁠. 무릎에서 마른 장작 꺾이는 소리가 났다⁠. 곰은 한 발을 들었다⁠. 남은 한 발로 구름 위에 섰다⁠. 석봉도 한 발을 들었다⁠. 석봉은 바위처럼 섰고 곰은 버드나무처럼 섰다⁠. 구름이 기울면 석봉은 버텼고⁠, 곰은 같이 기울었다가 돌아왔다⁠.

구름이 돌기 시작했다⁠. 팽이처럼⁠, 점점 빨리⁠. 석봉의 다리 근육이 불끈 솟았다⁠. 곰은 구름이 도는 쪽으로 몸을 같이 돌렸다⁠. 들어 올린 발이 허공에서 원을 그렸다⁠. 곰은 도는 구름 위에서 구름보다 반 박자 늦게 돌았다⁠.

“⁠바퀴는⁠.⁠” 곰이 돌면서 말했다⁠. “⁠돌 때⁠… 서 있는 거다⁠. 멈추면⁠… 넘어진다⁠.⁠”

석봉은 돌지 않으려고 버텼다⁠. 버틸수록 구름은 석봉의 발밑에서 빠져나가려 했다⁠. 열 바퀴째에 석봉의 들어 올린 발이 내려왔다⁠. 열두 바퀴째에 석봉은 엉덩이부터 구름 밖으로 미끄러졌다⁠. 석봉이 떨어진 곳은 곰 사 물웅덩이였다⁠. 해자보다 얕아서 첨벙 소리 대신 철퍽 소리가 났다⁠.

곰은 한 발로 계속 돌다가 구름이 멈추자 같이 멈췄다⁠. 들어 올린 발을 천천히 내려놓고⁠, 앞발 하나를 배에 대고 허리를 숙였다⁠. 서커스 천막에서 박수를 받을 때 하던 인사였다⁠. 정문 밖 방송국 카메라가 담 위로 길게 목을 뺐다⁠.

웅덩이에서 석봉이 일어났다⁠. 진흙이 털에서 뚝뚝 떨어졌다⁠.

“⁠곰이 하는 시합은 시합이 아니다⁠!⁠”

곰 사 철망 밖에서는 수의사가 마취총을 내려놓고 가방을 닫았다⁠. 원장은 떨어뜨린 손전등을 줍지도 않고 휴대전화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체험관 사장에게 거는 전화였다가⁠, 경찰에 거는 전화였다가⁠, 다시 체험관에 거는 전화가 되었다⁠. 수의사는 가방을 승합차에 싣고 운전석 문을 열다 말고 원장을 돌아보았다⁠.

“⁠원장님⁠, 저는 오늘 곰을 못 봤습니다⁠. 곰이 없는데 무얼 재웁니까⁠?⁠”

수의사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차에 올랐다⁠. 승합차가 뒷문으로 빠져나가는 동안 원장은 하늘을 향해 휴대전화를 흔들었다⁠. 하늘에서는 곰 한 마리가 구름 가장자리에 서서 꾸벅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아저씨가 하자고 했잖아요⁠.⁠”

석봉은 진흙을 뱉고 구름에 뛰어올랐다⁠. “⁠따라간다⁠. 오늘 하루 내 산이 얼마나 우는지 내 눈으로 봐야겠다⁠.⁠”

*

구름은 동쪽으로 날았다⁠. 동해를 건너자 끝없는 바다가 나왔고⁠, 바다 위에서 시간이 길게 늘어났다⁠. 구름이 곰의 무게로 반 뼘쯤 가라앉아 날았다⁠. 꼬장의 다리가 떨리기 시작한 것은 세 시간째였다⁠. 고비에 가던 날보다 한 시간 빨랐다⁠. 어제 하루를 그물 밑에서 쉬지 않았다면 더 빨랐을 것이다⁠.

곰이 꼬장을 내려다보았다⁠.

“⁠무릎이⁠… 뻣뻣하다⁠.⁠”

“⁠알아요⁠. 물렁하게 하고 있어요⁠.⁠”

“⁠물렁한 게 아니다⁠… 뻣뻣한 걸 참는 거다⁠.⁠” 곰이 제 발을 들어 보였다⁠. “⁠발바닥으로⁠… 들어⁠. 구름이 어디로 기울지⁠… 발바닥이 먼저 안다⁠. 무릎은⁠… 발바닥이 시키는 대로만 해⁠.⁠” 곰은 하품을 했다⁠. “⁠그리고 머리는⁠… 하늘에서 내려온 줄에⁠… 묶였다고 생각해⁠. 서커스에서⁠… 조련사가 그렇게 가르쳤다⁠. 그 사람 채찍은⁠… 싫었는데⁠… 그 말은 맞았다⁠.⁠”

꼬장은 눈을 감고 발바닥으로 들었다⁠. 구름 거죽이 발바닥 밑에서 아주 조금씩 기울었다가 돌아왔다⁠. 기울기 전에 발바닥이 먼저 간지러웠다⁠. 꼬장은 간지러운 쪽으로 무게를 조금 옮겼다⁠. 구름이 기울었을 때 꼬장의 무게는 이미 기운 자리에 가 있었다⁠. 무릎이 떨리지 않았다⁠.

다섯 시간째에 꼬장은 곰의 배에 등을 기댔다⁠. 곰의 배는 넓고 따뜻했다⁠. 기대는 것은 쥐는 것과 달라서 구름이 흩어지지 않았다⁠. 석봉은 구름 반대편 가장자리에 앉아 둘을 보았다⁠.

“⁠너는 어디서 왔느냐⁠.⁠” 석봉이 곰에게 물었다⁠.

“⁠눈 오는 데서⁠… 왔다⁠. 새끼 때⁠… 그물에 싸여서⁠. 그다음은⁠… 천막⁠. 천막 다음은⁠… 여기⁠.⁠” 곰이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천막 밖에 눈이 오면⁠… 냄새가 들어왔다⁠. 외발자전거를 타면서⁠… 그 냄새를 맡았다⁠. 박수 소리보다⁠… 냄새가 좋았다⁠.⁠”

석봉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화과산 이야기를 했다⁠. 산에도 겨울이면 눈이 온다고⁠, 복숭아 가지에 눈이 쌓이면 원숭이 삼천이 다 같이 가지를 흔들어 눈을 떤다고⁠. 곰이 눈을 감고 들었다⁠.

*

러시아 동쪽 끝⁠, 화산이 줄지어 솟은 반도 캄차카에 구름이 내려앉았을 때 해는 서쪽으로 많이 기울어 있었다⁠. 눈 덮인 화산 꼭대기에서 흰 연기가 가늘게 올랐다⁠. 골짜기마다 눈이 무릎까지 쌓였고⁠, 눈 사이로 김 오르는 개울이 구불구불 흘렀다⁠. 땅속에서 데워진 물이었다⁠.

곰은 구름에서 내리자마자 눈에 코를 처박았다⁠. 코를 처박은 채 오래 숨을 들이마셨다⁠. 고개를 들자 콧등에 눈이 하얗게 묻어 있었다⁠.

“⁠이 냄새다⁠.⁠”

곰은 눈밭에 등을 대고 누워 네 발을 하늘로 쳐들었다⁠. 몸을 이리저리 비볐다⁠. 서른두 살 먹은 곰이 새끼처럼 굴렀다⁠. 꼬장도 웃었다⁠. 웃다가 눈밭을 둘러보았다⁠. 개울은 김만 오를 뿐 물고기 그림자 하나 없었다⁠. 나무에 열매도 없었다⁠. 눈 위에 찍힌 발자국은 곰의 것뿐이었다⁠.

“⁠사월이다⁠.⁠” 석봉이 구름 위에서 말했다⁠. “⁠이 땅의 곰들은 이제 막 굴에서 나온다⁠. 연어는 여름에 강을 거슬러 온다⁠. 지금은 먹을 것이 없다⁠.⁠” 석봉은 곰을 보지 않고 말했다⁠. “⁠곰은 사흘 못 간다⁠.⁠”

꼬장이 곰을 돌아보았다⁠. 곰은 누운 채로 하늘을 보고 있었다⁠.

“⁠사흘이면⁠.⁠” 곰이 느릿느릿 말했다⁠. “⁠나는⁠… 사흘 산 거다⁠.⁠”

꼬장은 구름에서 내려 곰 옆으로 갔다⁠. 곰의 배에 손을 얹었다가 얼른 뗐다⁠. 쥐는 버릇이 손바닥에서 근질거렸다⁠.

“⁠같이 돌아가요⁠. 두식 아저씨가 강원도에 전화한대요⁠. 곰 받아 주는 데가 생길지도 몰라요⁠.⁠”

“⁠천막에서도⁠… 다음 해엔 좋은 데 간다고⁠… 했다⁠. 여기서도⁠… 다음 주엔⁠… 했다⁠.⁠” 곰이 고개를 돌려 꼬장을 보았다⁠. “⁠가라⁠. 해 진다⁠. 원숭이 대장 산이⁠… 운다⁠.⁠”

석봉이 구름 위에서 꼬장을 불렀다⁠. 꼬장은 곰을 한 번 더 보고 구름에 올랐다⁠. 구름이 떠오르는 동안 곰은 눈밭에 누워 앞발 하나를 배에 대고 고개만 숙였다⁠. 서커스 천막의 인사였다⁠. 박수 칠 사람이 없었다⁠. 꼬장은 대걸레 자루를 머리 위로 들어 흔들었다⁠.

*

해가 청계산 뒤로 떨어지는 순간 구름은 원숭이 산 그물 틈으로 내려앉았다⁠. 꼬장은 구름에서 미끄러졌지만 엎어지지 않았다⁠. 무릎을 짚고 섰다⁠.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였다⁠. 발바닥이 구름 모양으로 저렸는데⁠, 저린 발바닥이 이번에는 꼬장의 말을 들었다⁠.

석봉은 구름에서 내리지 않았다⁠. 저녁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 층 아래쪽이 어둑하게 부풀어 있었다⁠. 해 질 녘 빛에 비친 구름 층 한가운데에 산 모양의 시커먼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원숭이 산 난간의 관람객 몇이 하늘을 가리키며 웅성거렸다⁠.

“⁠열 길은 넘었다⁠.⁠” 석봉이 말했다⁠.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내일은 사람들 눈에도 보이겠구나⁠.⁠”

구름이 올라갔다⁠. 꼬장은 장대를 타고 올라가 그물 틈에서 동물원을 내려다보았다⁠. 곰 사는 비어 있었다⁠. 승합차는 떠나고 없었다⁠. 정문 앞 셔터는 반쯤 내려와 있었다⁠.

셔터 밖 연석에 두식이 앉아 있었다⁠. 두식은 종이 상자 하나를 무릎에 끼고 있었다⁠. 상자 위로 보온병 주둥이와 고무장화 한 짝이 삐죽 나와 있었다⁠. 목에 늘 걸고 다니던 출입증 줄이 없었다⁠. 두식은 상자 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 오래 보았다⁠. 꼬장이 있는 데서는 사진이 보이지 않았다⁠. 두식이 사진을 들여다보는 동안 정문 셔터가 끝까지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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