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390자)

돌 의자

동물원 원숭이가 진짜 근두운을 얻었다 · 길담이

일요일 아침⁠, 해오름 동물원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눈은 처음으로 동물원보다 위에 있는 것을 먼저 보아야 했다⁠. 청계산 꼭대기 바로 위에 산 하나가 비스듬히 떠 있었다⁠. 산 밑바닥에는 거꾸로 솟은 바위 뿌리가 빽빽했고⁠, 기운 벼랑에서 폭포 물이 하얗게 쏟아져 청계산 등성이를 적셨다⁠. 산 둘레를 헬리콥터 세 대가 파리처럼 돌았다⁠.

과천시는 새벽에 청계산 등산로를 막았다⁠. 기상청은 구름이 아니라고 했고⁠, 군은 비행 물체가 아니라고 했다⁠. 아홉 시 뉴스 진행자는 무엇이 아닌지만 줄줄이 읽다가 끝내 「⁠하늘의 산⁠」이라고만 불렀다⁠. 정문 앞 줄은 과천역까지 이어졌다⁠. 원장은 매표소를 닫았다가 다시 열었다⁠. 경찰이 동물원 둘레에 노란 띠를 둘렀고⁠, 사람들은 띠 바깥에서 하늘을 찍었다⁠.

곰 사 바위 굴 안에서는 두식이 곰 옆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밤새 곰의 어깨에 약을 바르고⁠, 찢어진 귀를 소독하고⁠, 곰이 물을 마실 때마다 그릇을 받쳐 주었다⁠. 곰은 두식의 무릎에 턱을 얹고 잤다⁠. 무거운 턱이었다⁠. 두식은 다리가 저려도 움직이지 않았다⁠.

*

여덟 시에 원장이 곰 사 철문을 열고 들어왔다⁠. 등 뒤에 경비원 둘이 따라왔다⁠.

“⁠주임님⁠. 출입증 반납하셨잖아요⁠. 무단 침입입니다⁠, 현실적으로⁠.⁠”

“⁠곰 다쳤습니다⁠. 봐 주세요⁠.⁠”

“⁠곰은 원래 어제 재우기로 한⁠—⁠”

두식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두식은 원장의 말을 손바닥으로 막고 전화를 받았다⁠. 전화기 너머에서 낯선 목소리가 한참 말했다⁠. 두식의 얼굴이 천천히 펴졌다⁠.

“⁠네⁠. 네⁠, 그 곰 맞습니다⁠. 구름 타고 온 곰⁠. 서른두 살이요⁠. 네⁠. 다음 주 화요일이요⁠? 네⁠. 네⁠!⁠”

두식이 전화를 끊고 원장을 보았다⁠. “⁠강원도 곰 보호 시설입니다⁠. 뉴스 보고 연락했답니다⁠. 화요일에 데리러 온답니다⁠.⁠”

원장은 철문 밖을 돌아보았다⁠. 띠 바깥에 카메라 수십 대가 동물원 안을 향해 목을 빼고 있었다⁠. 원장은 한숨을 쉬었다⁠.

“⁠지금 곰 재우면 뉴스 첫머리에 나오겠네요⁠.⁠” 원장이 경비원들에게 손짓했다⁠. “⁠주임님 곰 사에 계시게 두세요⁠. 화요일까지만⁠. 원숭이 산엔 들어가지 마시고요⁠. 체험관 계약 아직 살아 있습니다⁠.⁠”

원장이 나가자 전화가 또 울렸다⁠. 남쪽 시립 동물원이었다⁠. 두식은 받자마자 숨을 들이마셨다⁠.

“⁠꼬장이요⁠. 그 녀석도 이번에 같이⁠— 네⁠? 아니요⁠, 탈출은 이제 안 할 겁니다⁠, 아마⁠. 네⁠? 아⁠, 네⁠.⁠” 두식이 한참 듣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 끝이 갈라졌다⁠. “⁠네⁠, 맞는 말씀이에요⁠. 구름 타는 원숭이를 무슨 수로 가둡니까⁠. 네⁠. 알겠습니다⁠. 서른 마리만⁠.⁠”

곰이 두식의 무릎에서 고개를 들었다⁠. 두식은 곰의 턱을 쓰다듬었다⁠.

*

원숭이 산 그물 틈에 엎드린 구름 위에서 꼬장은 하늘의 산을 올려다보았다⁠. 산 가장자리에서 칡넝쿨 하나가 길게 내려왔다⁠. 넝쿨 끝에 석봉이 매달려 있었다⁠.

“⁠올라오너라⁠.⁠” 석봉이 외쳤다⁠. 목소리가 넝쿨을 타고 흔들렸다⁠. “⁠구름을 데리고⁠. 네 눈으로 보아야 할 것이 있다⁠.⁠”

구름이 떠올랐다⁠. 원숭이 산이 작아지고 동물원이 작아졌다⁠. 청계산 숲이 발밑으로 지나갔다⁠. 폭포 물이 옆에서 쏟아졌고 물보라가 꼬장의 얼굴을 때렸다⁠. 구름은 산 밑의 바위 뿌리 사이를 빠져 올라가 산 가장자리를 넘었다⁠.

화과산이었다⁠.

산 위는 복숭아 숲이었다⁠. 나무마다 가지가 휘도록 복숭아가 달렸고⁠, 절반쯤의 나무는 한쪽으로 기울어 뿌리가 드러났다⁠. 숲 사이로 바위 언덕이 굽이굽이 솟았고⁠, 언덕마다 원숭이들이 빽빽했다⁠. 나무 위에도⁠, 바위 위에도⁠, 바위 틈에도 원숭이였다⁠. 금빛 도는 털⁠, 잿빛 털⁠, 바위 같은 얼굴들⁠. 해자도 철망도 없었다⁠. 산 끝은 그대로 하늘이었다⁠.

원숭이 삼천이 일제히 꼬장을 보았다⁠. 아무도 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러다 바위 위의 어린것 하나가 외쳤다⁠.

“⁠땅 원숭이다⁠!⁠”

삼천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꼬장의 머리띠를 만져 보고⁠, 대걸레 자루를 냄새 맡고⁠, 붉은 얼굴을 손가락으로 찔렀다⁠. 일본원숭이의 짧은 꼬리를 보고 다들 배를 잡고 웃었다⁠. 화과산 원숭이들의 꼬리는 꼬장의 키만 했다⁠.

“⁠꼬리 어디 갔어⁠?⁠”

“⁠원래 이래요⁠!⁠”

“⁠땅에 두고 왔어⁠?⁠”

어린것 하나가 꼬장의 대걸레 자루를 빼앗아 머리 위로 돌리고⁠, 왼손을 눈썹에 붙여 먼 데를 보았다⁠. 꼬장이 장대 끝에서 만 번은 한 자세였다⁠. 다른 어린것들이 따라 했다⁠. 백 마리가 한꺼번에 눈썹에 손을 붙였다⁠. 꼬장은 입을 벌렸다⁠.

“⁠그거 어떻게 알아요⁠?⁠”

“⁠다 알아⁠. 대왕 흉내야⁠.⁠” 어린것이 자루를 돌려주었다⁠. “⁠할아버지들이 가르쳐 줬어⁠. 옛날 대왕이 먼 데 볼 때 이렇게 했대⁠.⁠”

어린것이 기운 나무에서 복숭아 하나를 따 꼬장에게 내밀었다⁠. 주먹 두 개만 한 복숭아였다⁠. 꼬장은 한 입 베어 물었다⁠. 단물이 턱으로 흘렀다⁠. 두 입째에 꼬장의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고⁠, 세 입째에 웃음이 터졌다⁠. 웃을 일이 하나도 없는데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꼬장은 바위에 주저앉아 배를 잡고 웃었다⁠. 웃다가 바위에서 데굴데굴 굴렀다⁠. 화과산 원숭이들이 꼬장을 둘러싸고 같이 웃었다⁠. 삼천이 웃는 소리가 하늘의 산을 흔들었다⁠.

“⁠사흘 간대⁠!⁠” 어린것이 깔깔댔다⁠. “⁠땅 원숭이는 처음 먹으니까 나흘 갈지도 몰라⁠!⁠”

꼬장은 웃느라 눈물이 났다⁠. 눈물을 닦으려고 손을 들었다가 또 웃었다⁠. 웃음은 다행히 사흘까지 가지 않았다⁠. 반 시간쯤 지나 딸꾹질로 바뀌었다⁠.

석봉이 숲에서 걸어 나왔다⁠. 어린것 하나가 석봉의 어깨에 매달려 있었다⁠. 석봉의 막내 손자였다⁠. 첫 비행 날 저녁⁠, 구름 층 틈으로 꼬장에게 손을 흔들던 얼굴이었다⁠.

*

석봉은 꼬장을 산 위쪽으로 데려갔다⁠. 기운 복숭아 숲을 지나자 폭포가 나왔다⁠. 폭포 물은 바위 벼랑에서 커튼처럼 떨어졌고⁠, 커튼 뒤에 굴이 하나 있었다⁠. 물 커튼 동굴이었다⁠. 지금 커튼 한가운데가 찢어져 있었다⁠. 어젯밤 금 간 벼랑으로 물이 옆으로 터져 나가 굴 입구의 절반이 드러났다⁠. 터진 물이 산 밖으로 쏟아졌다⁠. 땅에서 보이던 폭포였다⁠.

“⁠산의 물은 저 폭포 하나다⁠. 반이 산 밖으로 샌다⁠. 이대로 한 달이면 복숭아 숲이 마른다⁠.⁠” 석봉이 말했다⁠. “⁠밤을 비운 대가다⁠.⁠”

꼬장은 아무 말도 못 했다⁠. 석봉은 꼬장을 굴 안으로 데려갔다⁠. 굴 안 깊은 곳⁠, 물소리가 둥글게 울리는 자리에 바위를 깎은 의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의자에 이끼가 두껍게 앉았다⁠. 의자 앞 바위 바닥이 반들반들 닳아 있었다⁠. 원숭이들이 오백 년 동안 의자 앞에 와서 앉았다 간 자국이었다⁠.

구름이 꼬장의 발밑에서 웅 하고 울었다⁠. 꼬장이 내리기도 전에 구름은 꼬장을 태운 채 미끄러져 돌 의자 위로 갔다⁠. 구름이 의자 위에서 흩어지듯 내려앉았고⁠, 꼬장의 엉덩이가 이끼에 닿았다⁠. 꼬장은 돌 의자에 앉아 있었다⁠.

굴 입구에 따라 들어와 있던 늙은 원숭이들이 숨을 들이켰다⁠. 하나가 엎드렸다⁠. 둘이 엎드렸다⁠. 굴 밖에서 소문이 번졌다⁠. 화과산 원숭이들도 소문은 펭귄만큼 빨랐다⁠. 굴 밖 바위 언덕에서 삼천이 한꺼번에 엎드리는 소리가 파도처럼 굴 안까지 밀려왔다⁠.

엎드리지 않은 원숭이는 석봉 하나였다⁠.

“⁠일어나요⁠! 다들 왜 이래요⁠!⁠” 꼬장이 의자에서 뛰어내렸다⁠. “⁠아저씨⁠, 이거 뭐예요⁠?⁠”

“⁠화과산의 법이다⁠.⁠” 석봉이 의자를 보았다⁠. “⁠근두운은 대왕의 구름이다⁠. 대왕이 산을 떠난 지 오백 년이다⁠. 대왕이 떠나며 남긴 법은 하나였다⁠. 구름이 고른 자를 돌 의자에 앉혀라⁠. 그 자가 산의 왕이다⁠.⁠”

“⁠대왕이 누군데요⁠?⁠”

석봉이 꼬장의 머리띠를 보았다⁠. 오래 보았다⁠.

“⁠땅의 아이들이 너를 보고 외치는 이름이 있지⁠. 날마다⁠.⁠”

꼬장의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손오공⁠.⁠” 석봉이 말했다⁠. “⁠칭찬하는 소리가 아니다⁠. 이 산 대왕의 이름이다⁠. 돌에서 나서 이 산의 왕이 되고⁠, 구름을 타고 하늘 끝까지 갔다가⁠, 먼 서쪽으로 길을 떠나 돌아오지 않았다⁠. 땅의 사람들은 대왕 이야기를 책으로 읽는다더라⁠. 아이들은 붉은 얼굴의 원숭이가 장대 위에서 먼 데를 보면 대왕이 떠오르는 모양이다⁠.⁠”

꼬장은 손에 든 대걸레 자루를 내려다보았다⁠. 부러진 자루였다⁠. 머리띠를 만졌다⁠. 금칠이 손톱 밑에 묻어났다⁠.

“⁠그럼 나는⁠… 여덟 해 동안 남의 이름에 엉덩이를 흔든 거예요⁠?⁠”

“⁠그렇다⁠.⁠”

“⁠바보 같았겠네요⁠.⁠”

“⁠그렇다⁠.⁠” 석봉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구름은 너를 골랐다⁠.⁠”

*

석봉은 돌 의자 앞 닳은 바닥에 앉았다⁠. 오백 년 동안 수많은 원숭이가 앉았다 간 자리였다⁠. 석봉도 거기 앉아 본 적이 많았다⁠.

“⁠오백 년 동안 구름은 아무도 고르지 않았다⁠. 나도 고르지 않았다⁠. 나는 대왕의 곁을 지키던 마지막 원숭이다⁠. 구름 위에 서는 법은 산에서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도 구름은 나를 의자로 데려간 적이 없다⁠.⁠” 석봉이 손바닥을 펴 보였다⁠. 손바닥에 굵은 굳은살이 줄줄이 박혀 있었다⁠. “⁠구름은 고른 자가 없으면 떠돈다⁠. 떠돌면 산이 떨어진다⁠. 그래서 오백 년 동안 밤마다 칡넝쿨로 구름을 산 밑에 묶었다⁠. 해마다 넝쿨을 새로 꼬았다⁠. 벼락 치던 밤 넝쿨이 끊어졌고⁠, 구름은 장대 끝에서 대왕 흉내를 내는 원숭이 하나를 보고 내려갔다⁠.⁠”

“⁠그럼 아저씨가 나를 미워한 건⁠—⁠”

“⁠산 때문이다⁠.⁠” 석봉이 말했다⁠. “⁠그리고 의자 때문이다⁠. 둘 다다⁠. 오백 년을 지킨 자리를 해자에서 공중제비도 반 바퀴밖에 못 도는 원숭이에게 내주기 싫었다⁠. 그것도 사실이다⁠.⁠”

굴 밖에서 원숭이 삼천이 엎드린 채 숨죽이고 있었다⁠. 물 커튼이 찢어진 자리로 바람이 들어와 굴 안이 서늘했다⁠.

“⁠구름은 고른 자를 따라간다⁠. 네가 땅에 살면 구름은 날마다 땅으로 내려가고⁠, 산은 날마다 내려앉는다⁠. 네가 여기 살면 구름은 산 밑에 머물고⁠, 산은 다시 오른다⁠.⁠” 석봉이 일어섰다⁠. “⁠길은 둘이다⁠. 네가 올라와서 의자에 앉는다⁠. 아니면 너는 땅으로 내려가 다시는 구름을 부르지 않고⁠, 우리는 새 넝쿨로 구름을 묶는다⁠. 넝쿨은 사흘 밤 동안 삼천이 꼬았다⁠. 다음 벼락이 칠 때까지는 버틸 것이다⁠.⁠”

“⁠다음 벼락은요⁠?⁠”

“⁠모른다⁠.⁠”

꼬장은 굴 밖을 보았다⁠. 엎드린 원숭이들 사이로 석봉의 막내 손자가 고개를 빼꼼 들고 있었다⁠. 꼬장은 굴 아래를 보았다⁠. 찢어진 물 커튼 사이로 청계산이 보였고⁠, 청계산 너머로 해오름 동물원이 손바닥만 하게 보였다⁠. 원숭이 산의 초록 그물이 보였다⁠. 앞마당의 상자 더미가 보였다⁠. 곰 사 지붕이 보였다⁠.

“⁠나는 화요일에 땅 밑으로 가요⁠. 하늘색 불빛 있는 데로⁠.⁠”

“⁠안다⁠.⁠”

“⁠왕은 싫어요⁠. 남의 이름 흉내도 이제 싫어요⁠.⁠” 꼬장이 대걸레 자루를 쥔 손을 폈다 쥐었다⁠. “⁠땅에도 못 있고 여기도 싫으면⁠, 나는 어디 있어요⁠?⁠”

석봉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굴 밖으로 걸어 나가 엎드린 삼천 앞에 섰다⁠. 목소리가 굴 안까지 울렸다⁠.

“⁠내일 해 뜰 때⁠, 무너진 물 커튼 앞에서 근두운에 올라 가린다⁠. 옛 법대로 구름 위에서⁠. 내가 이기면 저 땅 원숭이는 땅으로 내려가 다시는 구름을 부르지 않는다⁠. 구름은 넝쿨로 묶는다⁠. 저 원숭이가 이기면⁠.⁠”

석봉이 굴 안의 꼬장을 돌아보았다⁠.

“⁠돌 의자는 저 원숭이의 것이다⁠.⁠”

삼천이 고개를 들었다⁠. 꼬장은 이끼 앉은 돌 의자 옆에 서서 머리띠를 벗었다가⁠, 다시 썼다⁠.

10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

돌 의자 · 동물원 원숭이가 진짜 근두운을 얻었다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