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514자)

그물 위의 비

동물원 원숭이가 진짜 근두운을 얻었다 · 길담이

목요일 새벽 네 시⁠, 해오름 동물원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원숭이 산 위에 사다리차 한 대가 팔을 길게 뻗고 있었다⁠. 사다리 끝에서 두식이 초록색 그물을 펼쳤다⁠. 그물은 운동장 하나를 덮을 만큼 넓었고⁠, 인부 둘이 해자 가장자리의 쇠기둥마다 그물 끝을 동여맸다⁠. 원장이 밤사이 들여온 그물이었다⁠.

원장은 어제 저녁 퇴근하면서 두식에게 말했다⁠. 체험관에 넘길 원숭이가 또 날아가 버리면 계약금을 물어 줘야 한다고⁠, 방송국이 날마다 찍는데 짐승이 하나 더 없어지면 동물원 이름이 끝장난다고⁠, 그러니 내일 해 뜨기 전에 원숭이 산을 덮으라고⁠. 두식은 알겠다고 했다⁠. 알겠다고 하고 나서 밤새 생각했다⁠. 생각해 보니 원장의 말이 아니어도 그물은 덮어야 했다⁠. 원숭이가 구름에서 떨어지면 죽는다⁠. 지하 체험관이라도 살아 있어야 다시 볼 수 있다⁠.

두식은 장대 끝에 그물 가운데를 걸어 묶었다⁠. 원숭이 산이 초록색 천막을 뒤집어쓴 꼴이 되었다⁠.

장대 밑에서 꼬장이 그물을 올려다보았다⁠. 꼬장은 장대를 타고 올라가 그물을 이빨로 물었다⁠. 질긴 나일론이었다⁠. 이빨이 미끄러졌다⁠. 꼬장은 그물을 두 손으로 붙잡고 흔들었다⁠. 그물이 출렁하고 끝이었다⁠. 그물 너머 사다리 끝에 두식의 얼굴이 있었다⁠. 꼬장은 이빨을 드러내고 소리를 질렀다⁠. 여덟 해 동안 두식에게 이빨을 보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래⁠, 화내라⁠.⁠” 두식이 매듭을 하나 더 지었다⁠. “⁠화내도 돼⁠. 너 떨어지면 끝이야⁠. 땅 밑이라도 살아 있어야지⁠. 살아 있으면 내가 가 볼 수 있어⁠. 하늘에서 떨어지면 내가 뭘 보러 가냐⁠?⁠”

두식이 앞치마 주머니에서 곶감 하나를 꺼내 그물 틈으로 밀어 넣었다⁠. 꼬장은 곶감을 낚아채서 사다리를 향해 던졌다⁠. 곶감은 두식의 이마에 맞고 해자로 떨어졌다⁠. 두식은 이마를 문지르며 웃으려다 말았다⁠.

*

그물 안에는 원숭이 서른한 마리 말고 하나가 더 갇혔다⁠. 어젯밤 원숭이 산에 남은 석봉이었다⁠. 석봉은 해자를 뛰어넘으려다 그물에 부딪혀 엉덩방아를 찧었다⁠.

“⁠이것이 무엇이냐⁠! 철창에 그물까지 덮느냐⁠!⁠”

“⁠아저씨도 이제 철창 원숭이네요⁠.⁠”

석봉은 대답 대신 그물을 손가락으로 튕겼다⁠. 그물이 웅 울렸다⁠.

해가 뜨자 구름 층이 열리고 근두운이 혼자 내려왔다⁠. 구름은 원숭이 산 꼭대기를 향해 곧장 내려오다가 그물에 부딪혀 통 튀어 올랐다⁠. 다시 내려와 그물에 몸을 비볐다⁠. 그물 틈으로 구름 한 가닥이 국수처럼 빠져 들어왔다가 다시 빠져나갔다⁠. 구름은 그물 위에 엎드렸다⁠. 그물 위에서 웅웅 울다가⁠, 울음을 그치고 꼬장의 머리 바로 위에서 하얗게 부풀었다⁠.

비가 내렸다⁠.

원숭이 산 위에만 내렸다⁠. 해자 바깥 난간에는 한 방울도 떨어지지 않았다⁠. 옆의 낙타 우리는 바싹 말라 있었고 펭귄 사 바위에는 햇볕이 쨍쨍했다⁠. 원숭이 산 하나만 그물째 소나기를 맞았다⁠. 무리는 실내 우리로 뛰어 들어갔고⁠, 우두머리가 맨 먼저 들어갔다⁠.

*

열 시에 문이 열리자 사람들이 원숭이 산 앞으로 몰려들었다⁠. 방송국 카메라가 원숭이 산을 찍었다가 하늘을 찍었다가 다시 원숭이 산을 찍었다⁠. 기자 하나가 난간 앞에서 우산을 쓰고 말했다⁠. 우산 반쪽만 젖고 있었다⁠.

“⁠지금 보시는 것처럼 해오름 동물원 원숭이 산 위에만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기상청은 국지적인 현상이라고만⁠…⁠.⁠”

기자의 뒤로 아이들이 비 오는 자리와 안 오는 자리를 폴짝폴짝 넘나들었다⁠. 비 오는 자리에 손을 넣었다가 빼고⁠, 넣었다가 빼고⁠. 원장은 매점 앞에 우산을 쌓아 놓고 「⁠구름 원숭이 우산 15⁠,000원⁠」을 붙였다⁠. 비가 원숭이 산 위에만 오는데도 우산은 잘 팔렸다⁠.

*

실내 우리 안은 원숭이 서른한 마리와 오백 살 원숭이 하나가 들어가기에는 좁았다⁠. 젖은 털 냄새가 천장까지 찼다⁠. 석봉이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자 무리가 석봉에게서 한 뼘씩 떨어져 앉았고⁠, 한 뼘씩 떨어진 자리가 모자라 어린것들은 결국 석봉의 배 위로 기어올랐다⁠. 석봉은 처음에는 쫓아냈다⁠. 두 번째에도 쫓아냈다⁠. 세 번째에 쫓아내기를 그만두었고⁠, 오 분 뒤에는 어린것 넷을 배에 얹은 채 코를 골았다⁠. 배가 오르내릴 때마다 어린것들이 배 위에서 출렁출렁 균형을 잡았다⁠. 어린것 하나가 손을 등 뒤로 감추고 외쳤다⁠.

“⁠나 구름 탄다⁠! 손 안 쓴다⁠!⁠”

우두머리가 꼬장 옆으로 왔다⁠. 어제 이후로 처음이었다⁠. 우두머리는 한참을 아무 말 없이 꼬장 옆에 앉아 있다가 꼬장의 어깨 털을 한 줌 쥐고 고르기 시작했다⁠. 손놀림이 서툴렀다⁠. 으뜸 수컷은 남의 털을 골라 주는 일이 드물었다⁠.

“⁠털 골라 준다⁠. 끙⁠.⁠”

“⁠아파요⁠.⁠”

“⁠참아라⁠. 오랜만이라 그렇다⁠.⁠” 우두머리가 꼬장의 털에서 마른 솔잎 하나를 집어냈다⁠. 고비의 모래도 한 알 나왔다⁠. 남아프리카 바닷가의 소금 알갱이도 나왔다⁠. 우두머리는 꼬장의 털에서 나온 것들을 손바닥에 늘어놓고 들여다보았다⁠. 원숭이 산 밖의 것들이었다⁠. “⁠멀리도 갔다 왔구나⁠.⁠”

“⁠대장도 가 볼래요⁠?⁠”

“⁠나는 상자 탄다⁠.⁠” 우두머리가 꼬장의 등을 툭 쳤다⁠. “⁠서른 개다⁠. 끙⁠.⁠”

무리 몇이 슬금슬금 다가와 꼬장의 팔과 다리 털을 하나씩 맡아 골랐다⁠. 꼬장이 털을 골라 주던 늙은 암컷도 왔다⁠. 꼬장은 눈을 감았다⁠. 남이 골라 주는 털은 제가 고르는 털보다 서너 배 시원했다⁠.

*

그물 안에서 석봉이 꼬장을 다그쳤다⁠. 둘은 실내 우리 처마 밑에 나란히 앉아 비를 피하고 있었다⁠.

“⁠구름을 올려 보내라⁠. 저렇게 그물 위에 엎드려 있어도 내 산은 내려앉는다⁠. 가까이 있으니 조금씩이지만⁠, 조금씩도 쌓인다⁠.⁠”

“⁠시합 없잖아요⁠. 오늘은 아무 날도 아니에요⁠.⁠”

“⁠그러니 네가 말해라⁠. 산에 가 있으라고⁠.⁠”

꼬장은 그물 위의 구름을 올려다보았다⁠. 구름은 꼬장의 눈길을 느꼈는지 비를 조금 굵게 뿌렸다⁠.

“⁠곰 태우게 해 주면요⁠.⁠”

석봉의 눈썹이 올라갔다⁠.

“⁠내일 새벽에 시합 없이 곰 태우게 해 주면 지금 올려 보낼게요⁠. 곰은 모레 새벽이라던 게 이제 내일 새벽이에요⁠. 금요일이 내일이에요⁠.⁠”

“⁠곰이 얼마나 무거운지 아느냐⁠?⁠” 석봉이 목소리를 낮췄다⁠. “⁠곰 하나를 싣고 곰이 살 만한 눈 덮인 숲까지 가려면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 날아야 한다⁠. 하루를 다 비우면 내 산은 열 길은 내려앉는다⁠. 열 길이면 넝쿨이 전부 구름 바다에 잠긴다⁠. 넝쿨에 매달린 아이들이 전부 손을 놓아야 한다⁠.⁠”

“⁠그럼 곰은요⁠?⁠”

“⁠곰은 서른두 해를 살았다⁠.⁠”

“⁠아저씨는 오백 년 살았잖아요⁠!⁠”

석봉의 입이 다물어졌다⁠. 둘은 한동안 아무 말 없이 빗소리만 들었다⁠. 그물을 때리는 빗소리가 북처럼 일정했다⁠.

“⁠해가 지면⁠.⁠” 석봉이 천천히 말했다⁠. “⁠구름은 원래 저 혼자 산으로 올라간다⁠. 그런데 오늘은 안 올라갈 것이다⁠. 네가 그물 안에 있으니⁠. 고른 자를 그물 안에 두고는 떠나지 않는다⁠. 네가 말하지 않으면 구름은 밤새 저기 엎드려 있을 것이고⁠, 밤을 비우면 산이 떨어진다⁠.⁠” 석봉이 꼬장을 보았다⁠. “⁠너는 지금 내 산 삼천을 손에 쥐고 있다⁠.⁠”

꼬장은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원숭이의 손이었다⁠. 뭐든 쥐라고 생긴 손⁠.

*

해가 청계산에 닿았다⁠. 구름은 그물 위에 엎드린 채 움직이지 않았다⁠. 비는 그쳤고 구름은 꼬장의 머리 위에서 조용히 웅웅거리기만 했다⁠. 석봉은 처마 밑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말을 하지 않았다⁠. 발바닥을 손으로 문지르고 또 문질렀다⁠.

꼬장은 석봉의 발을 보았다⁠. 갈라지고 굳은 발바닥이었다⁠. 어제 석봉은 이 발이 무섭다고 했다⁠.

꼬장은 장대를 타고 올라갔다⁠. 그물 바로 밑에서 그물 너머 구름에 이마를 댔다⁠. 구름이 따뜻했다⁠.

“⁠산에 가⁠.⁠”

구름이 웅 하고 울었다⁠.

“⁠가⁠. 내일 와⁠. 내일 꼭 와⁠.⁠”

구름이 그물에서 몸을 떼었다⁠. 한참 머뭇거리다가 저녁 하늘로 천천히 올라갔다⁠. 꼬장은 구름이 구름 층에 들어갈 때까지 장대 끝에서 눈썹에 손을 붙이고 보았다⁠. 장대를 내려오자 석봉이 처마 밑에서 꼬장을 보고 있었다⁠.

“⁠곰은 어쩌고⁠.⁠”

“⁠몰라요⁠.⁠” 꼬장이 젖은 머리띠를 고쳐 썼다⁠. “⁠아저씨네 막내 손자가 무릎까지 잠겼다면서요⁠.⁠”

석봉은 오래 꼬장을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석봉은 그물 안에 갇혀 산으로 올라가지 못했다⁠. 원숭이 산에서 하룻밤을 더 자야 했다⁠.

*

밤 열한 시⁠, 두식이 소주 한 병과 곶감 봉지를 들고 원숭이 산 난간에 왔다⁠. 동물원에는 경비실 불만 켜져 있었다⁠. 두식은 난간에 등을 기대고 앉아 병뚜껑을 땄다⁠. 그물 너머 장대 밑에서 꼬장이 웅크리고 있었다⁠.

“⁠스무 마리라더라⁠.⁠” 두식이 소주를 한 모금 마셨다⁠. “⁠처음에 남쪽이 그랬어⁠. 스무 마리만 받겠다고⁠. 그럼 열하나가 남잖아⁠. 남는 열하나는 어디 가냐⁠? 받아 줄 데가 없으면 곰처럼 재우는 거야⁠. 그래서 전화를 했지⁠. 백열한 통⁠. 사정하고⁠, 빌고⁠, 울고⁠. 원장 몰래 내 돈으로 먹이 값 보태 주겠다고도 했다⁠.⁠”

두식이 곶감을 하나 꺼내 씹었다⁠.

“⁠서른까지 됐어⁠. 열 마리가 살았어⁠. 조건이 하나 붙었어⁠. 너는 빼라고⁠. 열한 번 탈출한 원숭이는 물로 두른 섬 우리에 못 둔대⁠. 너는 그 섬을 하루 만에 건널 놈이래⁠. 맞는 말이지⁠. 너는 건너⁠. 이 웬수는 건너⁠.⁠” 두식이 웃었다⁠. 웃음 끝이 이상하게 갈라졌다⁠. “⁠그래서 서명했다⁠. 너 하나 내주고 열 살렸다⁠. 체험관 아니면 너도 재우는 데로 가니까 체험관 서류에도 했다⁠. 땅 밑이라도⁠. 하늘색 불이라도⁠.⁠”

두식은 병을 들어 하늘에 비춰 보았다⁠. 소주가 반쯤 남아 있었다⁠.

“⁠미안하다⁠, 꼬장아⁠. 미안하다⁠. 미안하다⁠.⁠”

세 번이었다⁠. 두식은 겁이 날 때 같은 말을 세 번 했다⁠.

꼬장이 알아들은 낱말은 제 이름 하나였다⁠. 두식은 곶감 하나를 그물 틈에 끼워 두고⁠, 난간에 기댄 채 고개를 떨구었다⁠. 이내 코 고는 소리가 났다⁠.

실내 우리 지붕 위에서 석봉이 내려왔다⁠. 석봉은 처음부터 거기 엎드려 있었다⁠. 석봉은 장대 밑 꼬장 옆에 앉았다⁠.

“⁠네 사육사가 한 말을 옮겨 주랴⁠?⁠”

꼬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석봉은 두식의 말을 하나도 빼지 않고 옮겼다⁠. 스무 마리⁠, 백열한 통⁠, 열하나⁠, 섬 우리⁠, 서른⁠, 열 마리⁠. 다 옮기고 나서 석봉이 한 문장을 덧붙였다⁠. 두식의 말이 아니라 석봉의 말이었다⁠.

“⁠네 사육사는 너 하나를 내주고 열을 샀다⁠.⁠”

꼬장은 그물 틈에 끼워진 곶감을 보았다⁠. 오래 보다가 손을 뻗어 곶감을 빼냈다⁠. 한 입 베어 물었다⁠. 단맛이 혀에 오래 붙었다⁠. 그물 너머에서 두식이 코를 골다가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

자정이 조금 넘어⁠, 하얀 승합차 한 대가 동물원 뒷문으로 들어왔다⁠. 승합차 옆구리에 「⁠동물병원⁠」이라는 글씨가 박혀 있었다⁠. 승합차는 곰 사 앞에서 멈췄다⁠. 운전석에서 내린 사람이 곰 사 철문을 한 번 흔들어 보고 다시 차에 탔다⁠. 시동이 꺼졌다⁠.

펭귄 사 바위에서 늙은 펭귄 둘이 고개를 돌렸다⁠. 늙은 둘의 목소리가 불 꺼진 동물원을 가로질러 원숭이 산까지 날아왔다⁠.

“⁠곰 영감⁠.⁠” “⁠새벽에⁠.⁠”

곰 사 바위 굴 입구에 늙은 불곰이 앉아 있었다⁠. 불곰은 승합차를 오래 보다가 하품을 하지 않았다⁠. 처음으로 하품을 하지 않았다⁠.

불곰은 굴 앞 바위에서 뒷다리로 천천히 일어섰다⁠. 서른두 살 먹은 무릎이 우두둑 소리를 냈다⁠. 불곰은 한 발을 들고⁠, 남은 한 발로 바위 위에서 빙그르르 한 바퀴를 돌았다⁠. 서커스 천막의 조명 아래서 외발자전거를 타던 시절의 몸이 늙은 뼈마디 속에 아직 남아 있었다⁠. 한 바퀴를 다 돌고 나서도 불곰은 들어 올린 발을 한참 내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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