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422자)

꼬장은 빼고요

동물원 원숭이가 진짜 근두운을 얻었다 · 길담이

수요일 새벽의 해오름 동물원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원숭이 산 꼭대기에 원숭이 한 마리가 다리를 질질 끌며 장대 밑을 맴도는 모습이 보였다⁠. 꼬장은 밤새 다리를 주물렀다⁠. 주무를 때마다 종아리 속에서 개미 떼가 지나갔다⁠. 펴지지 않던 무릎은 새벽녘에야 겨우 펴졌는데⁠, 편 무릎이 꼬장의 말을 잘 듣지 않았다⁠.

근두운이 내려왔다⁠. 석봉은 구름에서 내리지 않았다⁠. 구름 가장자리에 서서 꼬장의 다리부터 보았다⁠.

“⁠다섯 길 하고 두 자⁠.⁠” 석봉이 말했다⁠. “⁠어젯밤 처음으로 산 그림자가 구름 층 밑으로 비쳤다⁠. 땅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던 사람이 있었다면 구름 속에 시커먼 무언가가 떠 있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석봉이 손짓했다⁠. “⁠올라오너라⁠. 오늘은 아무 재주 없이 그냥 선다⁠. 구름이 가장 높이 오를 때까지⁠.⁠”

꼬장은 구름에 올랐다⁠. 오르는 데만 두 번 미끄러졌다⁠. 대걸레 자루를 가로로 들고 무릎을 굽혔다⁠. 굽힌 무릎이 저 혼자 덜덜 떨었다⁠.

구름이 떠올랐다⁠. 원숭이 산이 작아지고 동물원이 작아지고 과천이 작아졌다⁠. 아파트 단지들이 성냥갑만 해졌을 때 꼬장의 왼쪽 무릎이 먼저 꺾였다⁠. 오른쪽 무릎으로 버티는 동안 손가락이 오므라들었다⁠. 대걸레 자루를 쥔 손이 아니라 비어 있던 왼손이었다⁠. 왼손이 구름을 짚었다⁠.

짚은 자리가 흩어졌고⁠, 꼬장은 떨어졌다⁠.

떨어지는 꼬장을 구름이 쫓아 내려왔다⁠. 구름은 꼬장보다 빨랐다⁠. 해자 물 바로 위에서 구름이 꼬장 밑으로 미끄러져 들어가 받았다⁠. 받은 구름이 출렁하더니 꼬장을 해자에 살며시 떨궜다⁠. 높이는 장대 끝보다 낮았다⁠. 첨벙 소리는 공중제비 실수 때보다도 작았다⁠.

석봉이 위에서 천천히 내려왔다⁠. 오백 년 만에 처음으로 시합에 이긴 얼굴이 아니었다⁠.

“⁠말해라⁠. 구름에게 산에 있으라고⁠.⁠”

꼬장은 해자에서 기어 나와 바위에 앉았다⁠. 물이 머리띠에서 뚝뚝 떨어졌다⁠. 구름이 꼬장 앞에 내려와 꼬장의 무릎에 몸을 비볐다⁠. 꼬장은 구름을 오래 보았다⁠.

“⁠오늘은 산에 가 있어⁠.⁠”

구름이 웅웅 울지 않았다⁠. 대신 꼬장의 머리 위로 올라가 꼬장한테만 비를 뿌렸다⁠. 굵지도 가늘지도 않은 비가 꼬장의 머리 위에 딱 한 뼘 넓이로 떨어졌다⁠. 꼬장이 옆으로 비키자 비도 옆으로 비켰다⁠. 다시 비키자 다시 따라왔다⁠. 한참 그렇게 꼬장을 적시던 구름은 꼬장이 한 번 더 산에 가 있으라고 말하자 마지못해 하늘로 올라갔다⁠.

“⁠아저씨는 안 가요⁠?⁠”

“⁠나는 남는다⁠.⁠” 석봉이 바위 끝에 앉았다⁠. “⁠들려주기로 한 말이 있다⁠. 그 전에 네가 볼 것이 있다⁠. 오늘 낮에 사람들이 너를 보러 온다⁠.⁠”

*

꼬장이 졌다는 소식은 해가 뜨기 전에 펭귄 사에 닿았다⁠. 늙은 펭귄 둘이 한 문장을 둘로 나눠 소리쳤다⁠.

“⁠꼬장이⁠.⁠” “⁠졌다⁠.⁠”

물새장에서는 꼬장이 구름을 영영 잃었다는 이야기가 되었고⁠, 사슴 마당에서는 구름이 꼬장을 버리고 오랑우탄을 골랐다는 이야기가 되었다⁠. 오랑우탄이라는 말이 원숭이 산에 돌아오자 석봉이 바위를 주먹으로 쳤다⁠. 곰 사 바위 굴 앞에서는 늙은 불곰이 앉은 채로 원숭이 산을 바라보다가 굴 안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굴 안이 굴 밖보다 어두웠다⁠.

*

정오가 조금 지나 원장이 낯선 사내 하나를 데리고 원숭이 산 앞에 나타났다⁠. 사내는 배가 앞으로 쑥 나왔고⁠, 목에 금 목걸이를 걸고⁠, 등에 「⁠쑥쑥 실내 동물 체험관⁠」이라는 글씨가 박힌 조끼를 입었다⁠. 체험관 사장이었다⁠. 두식이 두 사람 뒤를 따라왔다⁠. 두식의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았다⁠.

“⁠이놈이에요⁠? 그 구름 원숭이⁠?⁠” 사장이 난간에 배를 걸치고 꼬장을 손가락질했다⁠. “⁠영상 조회수가 오백만이에요⁠, 오백만⁠. 머리띠까지 쓰고 있네⁠. 이건 대박이에요⁠.⁠”

“⁠손오공 흉내를 잘 냅니다⁠.⁠” 원장이 말했다⁠. “⁠관객 앞에서 꼭 해요⁠.⁠”

석봉은 바위 끝에 앉은 채 귀를 세웠다⁠. 사람 말을 다 알아듣는 짐승은 원숭이 산에 석봉 하나였다⁠. 꼬장은 사람 셋이 저를 가리키는 것을 보고 벌떡 일어났다⁠. 난간 앞에 관람객도 스무 남짓 몰려 있었다⁠. 아이 하나가 외쳤다⁠.

“⁠손오공이다⁠!⁠”

꼬장의 다리가 저절로 장대를 탔다⁠. 아직 다 낫지 않은 무릎이 뻐근했지만 박수 소리가 나면 꼬장은 앞뒤를 안 봤다⁠. 장대 끝에서 한 발로 서고⁠, 대걸레 자루를 두 바퀴 돌리고⁠, 왼손을 눈썹에 붙여 먼 데를 보았다⁠. 먼 데에는 체험관 사장의 금 목걸이가 반짝였다⁠. 꼬장은 사장을 향해 엉덩이를 흔들고 공중제비를 넘었다⁠. 이번에도 한 바퀴 반은 실패했지만⁠, 실패한 반 바퀴를 해자 대신 바위 위에서 데굴데굴 굴러 마무리했다⁠. 관람객들이 손뼉을 쳤다⁠.

“⁠봐요⁠, 봐요⁠!⁠” 사장도 손뼉을 쳤다⁠. “⁠손님 앞에서 저렇게 해 주잖아⁠. 백화점 지하에 손오공 무대를 따로 만들 거예요⁠. 하루 세 번⁠. 구름 원숭이 직접 보기⁠. 애들 줄 서요⁠, 이거⁠.⁠”

“⁠유명해졌으니 값을 다시 얘기하셔야죠⁠.⁠” 원장이 웃었다⁠. “⁠계약서 쓸 때는 영상이 없었잖아요⁠.⁠”

“⁠얼마나 더요⁠?⁠”

“⁠두 배요⁠. 현실적으로⁠.⁠”

사장이 입맛을 다셨다⁠. 두식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체험관에 가면 하늘은 보입니까⁠?⁠”

“⁠지하라 하늘은 없죠⁠.⁠” 사장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대신 조명이 좋아요⁠. 하늘색 조명도 있어요⁠.⁠”

“⁠남쪽 동물원은 왜 이놈을 안 데려간대요⁠?⁠” 사장이 원장에게 물었다⁠.

“⁠열한 번 탈출했대요⁠. 남쪽은 섬처럼 물로 둘러싼 우리라 이놈은 못 가둔다고⁠. 서른 마리 받는 조건이 이놈 빼는 거였어요⁠.⁠” 원장이 두식을 돌아보았다⁠. “⁠주임님이 서명하셨고요⁠. 체험관 넘기는 서류도⁠.⁠”

두식은 대답하지 않았다⁠. 장대 끝에서 다시 한 발로 선 꼬장을 보고 있었다⁠. 꼬장은 두식이 저를 보는 것을 알고 대걸레 자루를 한 바퀴 더 돌려 보였다⁠. 두식이 늘 웃어 주던 동작이었다⁠. 두식은 오늘 웃지 않았다⁠.

“⁠곰은요⁠?⁠” 사장이 지나가는 말로 물었다⁠. “⁠곰도 쓸 만하면⁠.⁠”

“⁠곰은 서른두 살이에요⁠. 금요일 새벽에 수의사 와요⁠.⁠”

석봉은 바위 끝에서 고개를 돌렸다⁠. 장대 끝의 꼬장이 박수 소리에 맞춰 엉덩이를 흔들고 있었다⁠. 석봉은 오래 보지 않았다⁠.

*

사람들이 돌아가자 꼬장은 장대에서 내려와 석봉 옆에 털썩 앉았다⁠. 숨이 찼고 얼굴이 평소보다 붉었다⁠.

“⁠봤어요⁠? 박수 스무 번⁠. 저 목걸이 아저씨는 두 번 쳤어요⁠. 내일 또 온대요⁠?⁠”

석봉은 대답 대신 하늘을 보았다⁠. 구름이 올라간 자리에 잿빛 구름 층만 두껍게 덮여 있었다⁠. 한참 뒤에 석봉이 물었다⁠.

“⁠구름 위에서 무엇이 제일 무서우냐⁠?⁠”

“⁠손이요⁠.⁠” 꼬장은 생각하지도 않고 말했다⁠. “⁠손이 자꾸 뭘 쥐고 싶어 해요⁠. 쥐면 떨어지는데⁠. 아저씨는 안 무서워요⁠?⁠”

“⁠나는 발이 무섭다⁠.⁠” 석봉이 제 발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발바닥이 갈라지고 굳은살이 바위처럼 박여 있었다⁠. “⁠산 밑 칡넝쿨에 매달려 노는 아이들을 보면⁠, 아이들 발이 구름 바다에 닿을 때마다 내 발바닥이 저리다⁠. 막내 손자 놈은 넝쿨 끝까지 내려가서 구름 바다를 발가락으로 찍어 보는 것을 제일 좋아한다⁠. 어제는 발가락 하나가 아니라 무릎까지 잠겼다⁠.⁠”

꼬장이 입을 다물었다⁠. 석봉은 발바닥을 손으로 문질렀다⁠.

“⁠근두운은 원래 아무도 안 태운다⁠. 오백 년 동안 아무도 안 태웠다⁠.⁠” 석봉이 말했다⁠. “⁠네가 운이 좋은 것이다⁠. 운이 좋은 놈은 제 운이 어디서 왔는지 모르고 쓴다⁠.⁠”

“⁠아저씨는요⁠? 아저씨도 날마다 타잖아요⁠.⁠”

석봉은 대답하지 않았다⁠. 일어나서 엉덩이를 털고 바위 끝으로 돌아가 앉았다⁠. 등이 오늘따라 둥글었다⁠.

*

오후 다섯 시⁠, 사람들이 다 빠지고 두식이 혼자 원숭이 산에 들어왔다⁠. 앞치마 주머니에서 곶감 봉지를 꺼냈다⁠. 꼬장은 곶감 냄새에 장대에서 미끄러져 내려와 두식의 무릎에 기어올랐다⁠. 젖먹이 때부터 하던 짓이었다⁠. 두식은 곶감을 하나 꺼내 꼬장의 손에 쥐여 주었다⁠.

꼬장은 곶감을 받아 들고 한 입 베어 물었다⁠. 두식은 꼬장을 무릎에 앉힌 채 오래 일어나지 않았다⁠. 꼬장의 머리띠를 바로 씌워 주고⁠, 귀 뒤의 털을 골라 주고⁠, 다리를 쓰다듬었다⁠. 두식의 손이 꼬장의 무릎에서 멈추었다⁠. 꼬장의 무릎은 아직 떨리고 있었다⁠.

“⁠이 웬수야⁠. 다리가 왜 이래⁠?⁠”

꼬장은 곶감을 씹었다⁠. 두식이 꼬장의 이름을 불렀다⁠. 한 번⁠, 두 번⁠, 세 번⁠. 두식은 겁이 날 때 같은 말을 세 번씩 했다⁠. 꼬장은 곶감을 씹다 말고 두식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두식이 웃었다⁠. 오늘 처음 웃는 얼굴이었다⁠.

*

해가 청계산에 닿을 무렵⁠, 석봉은 원숭이 산 바위 한가운데로 걸어 나가 무리를 불러 모았다⁠. 무리 서른 마리가 우두머리를 앞세워 둥그렇게 앉았다⁠. 꼬장은 장대 밑에서 곶감 꼭지를 씹고 있었다⁠. 석봉이 꼬장을 불렀다⁠.

“⁠이리 와 앉아라⁠. 내 말을 들어라⁠. 너희도 다 들어라⁠.⁠”

꼬장이 무리 한가운데로 걸어왔다⁠. 석봉은 꼬장을 내려다보았다⁠.

“⁠원장 방 창가에 사람 말을 흉내 내는 새가 있지⁠. 그 새가 날마다 외치는 말을 너희도 들었을 것이다⁠. 빼고요⁠. 무엇을 빼는지 아느냐⁠?⁠”

무리가 웅성거렸다⁠. 아무도 몰랐다⁠.

“⁠사람들은 너희를 남쪽 동물원으로 보낸다⁠. 다음 주 화요일에 트럭이 온다⁠. 남쪽 동물원은 서른만 받는다⁠. 너희는 서른하나다⁠.⁠” 석봉이 꼬장에게 손가락을 겨누었다⁠. “⁠빠지는 하나가 너다⁠. 네 사육사가 서명했다⁠.⁠”

꼬장은 곶감 꼭지를 입에 문 채 석봉을 보았다⁠.

“⁠너는 같은 날 저 배 나온 사람의 체험관으로 간다⁠. 땅 밑이다⁠. 하늘이 없다⁠. 하늘색 불빛이 있다고 하더라⁠. 거기서 너는 하루에 세 번 머리띠를 쓰고 손오공 흉내를 낸다⁠. 네가 구름을 타서 유명해졌으니 네 값이 두 배로 뛰었다⁠. 오늘 저 사람들이 그렇게 말했다⁠.⁠” 석봉이 숨을 한 번 쉬었다⁠. “⁠그리고 곰은 모레 새벽에 잠재운다⁠.⁠”

“⁠거짓말⁠.⁠”

꼬장이 곶감 꼭지를 뱉었다⁠.

“⁠거짓말이에요⁠. 아저씨는 구름 가져가려고 그런 말 하는 거예요⁠. 두식 아저씨는 아까 곶감 줬어요⁠. 웃었어요⁠. 무릎 쓰다듬었어요⁠.⁠”

“⁠미안할 때 곶감을 준다더라⁠. 네 사육사가 어제 내게 직접 그렇게 말했다⁠.⁠”

꼬장은 고개를 돌려 우두머리를 보았다⁠. 우두머리는 무리 맨 앞에 앉아 꼬장의 눈을 피했다⁠. 한참 동안 털 빠진 늙은 원숭이는 제 발가락만 내려다보았다⁠.

“⁠대장⁠.⁠”

“⁠상자가 서른 개다⁠.⁠” 우두머리가 말했다⁠. “⁠끙⁠.⁠”

무리가 조용해졌다⁠.

“⁠세어 봤다⁠. 상자가 앞마당에 온 날 셌다⁠. 두 번 셌다⁠. 두 번 다 서른이었다⁠.⁠” 우두머리가 발가락을 오므렸다⁠. “⁠말 안 했다⁠. 말하면 네가 또 소란 피울까 봐⁠. 소란 나면 나머지 서른도 못 탈까 봐⁠.⁠”

꼬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리 서른 마리가 꼬장을 보았고⁠, 꼬장은 무리를 보았다⁠. 해자 건너 난간에서 두식이 빈 곶감 봉지를 접어 앞치마에 넣고 있었다⁠. 두식은 원숭이 산 위에서 무슨 말이 오갔는지 몰랐다⁠. 퇴근길에 꼬장을 향해 손을 한 번 흔들었다⁠.

꼬장은 손을 흔들지 않았다⁠. 머리띠를 벗었다⁠. 금칠 벗겨진 플라스틱 머리띠가 꼬장의 손안에서 휘었다⁠. 꼬장은 머리띠를 쥔 손을 펴지 않았다⁠.

“⁠내일은⁠.⁠” 꼬장이 석봉을 보지 않고 말했다⁠. “⁠내일은 곰 태울 거예요⁠. 금요일 전에⁠.⁠”

석봉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 층 사이로 시커먼 무언가의 그림자가 아주 잠깐 비쳤다가 사라졌다⁠.

“⁠내일 새벽에 내가 또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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