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630자)

사막 귀족

동물원 원숭이가 진짜 근두운을 얻었다 · 길담이

월요일 밤 열 시⁠, 불 꺼진 해오름 동물원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우리마다 눈이 하나씩 반짝였다⁠. 짐승들이 저마다 울타리 앞으로 나와 원숭이 산을 향해 목을 빼고 있었다⁠. 우리와 우리 사이가 멀어서 서로 소리를 질러야 했고⁠, 소리를 지르다 보니 동물원 전체가 한꺼번에 우는 시장 바닥이 되었다⁠. 경비실 늙은 경비원은 라디오 소리를 키웠다⁠.

꼬장은 장대 끝에 서서 회의를 열었다⁠. 회의라고 해 봐야 다들 제 말만 했다⁠.

“⁠다음은 나다⁠!⁠” 낙타가 외쳤다⁠. “⁠나는 사막 귀족 집안이다⁠! 우리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는 비단 짐을 지고 사막을 건넜다⁠!⁠”

“⁠귀족이 왜 짐을 져⁠?⁠” 사슴 마당에서 누가 물었다⁠.

“⁠귀족은 비단 짐만 진다⁠!⁠”

늙은 펭귄 둘이 펭귄 사 바위에서 한 문장을 두 토막으로 나눠 보탰다⁠. “⁠바다는⁠.⁠” “⁠차갑다⁠.⁠” 물새장의 원앙이 귀가 없어진다는 소문이 진짜냐고 물었고⁠, 너구리가 토종 짐승 우리에서 찢어진 귀를 철망에 대고 보여 주며 개한테 물린 것이라고 소리쳤다⁠. 소리친 너구리는 덧붙였다⁠.

“⁠숲에 가려면 개구리 잡는 법부터 배워⁠! 냄새로는 배 안 불러⁠!⁠”

곰 사 바위 굴에서는 늙은 불곰이 굴 밖으로 몸을 반쯤 내밀었다⁠. 회의가 시작되고 처음으로 굴 밖에 나온 것이었다⁠.

“⁠나는⁠… 눈 냄새 나는 데로⁠… 가고 싶다⁠…⁠.⁠” 불곰이 느릿느릿 말했다⁠. “⁠서커스 천막 밖에⁠… 눈이 오면⁠… 냄새가 들어왔다⁠… 외발자전거를 타면서⁠… 맡았다⁠…⁠.⁠”

하품이 붙었고⁠, 불곰은 굴 입구에 몸을 반쯤 내민 채로 잠이 들었다⁠. 회의는 낙타가 혼자 이겼다⁠. 낙타가 가장 크게 소리를 질렀고⁠, 아무도 낙타 침을 맞고 싶어 하지 않았다⁠.

*

새벽 다섯 시 오십 분⁠, 근두운이 원숭이 산에 내려앉았다⁠. 석봉이 내려서기도 전에 말했다⁠.

“⁠두 길 하고 석 자⁠. 물 커튼 동굴 앞 폭포의 물줄기가 한 뼘 휘었다⁠.⁠” 석봉은 원숭이 산 위를 한 바퀴 둘러보았다⁠. “⁠오늘은 서서 듣는다⁠. 둘이 서서 서로 약을 올린다⁠. 먼저 발을 떼는 자가 진다⁠.⁠”

둘은 구름에 마주 보고 섰다⁠. 구름이 떠올랐다⁠. 석봉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애들 머리띠⁠.⁠”

꼬장은 움직이지 않았다⁠.

“⁠반 바퀴 원숭이⁠. 해자 단골⁠. 철창 원숭이⁠. 손오공이 누군지도 모르고 손오공 소리에 엉덩이를 흔드는 원숭이⁠.⁠”

꼬장의 귀가 빨개졌다⁠. 발은 움직이지 않았다⁠. 이번에는 꼬장의 차례였다⁠.

“⁠복숭아 창고⁠.⁠”

석봉의 콧구멍이 벌름했다⁠.

“⁠배가 먼저 오는 원숭이⁠. 해자에 세 번 빠진 대장⁠. 간지럼 타는 대장⁠.⁠” 꼬장은 숨을 한 번 고르고 마지막 말을 꺼냈다⁠. “⁠오랑우탄⁠.⁠”

“⁠오랑우탄이 아니라고 했지⁠!⁠”

석봉의 발이 구름을 내리찍었다⁠. 찍은 발이 구름 속으로 무릎까지 빠졌다⁠. 석봉은 빠진 다리를 내려다보았다⁠. 다리를 빼려고 버둥거리자 구름이 웅웅 울며 석봉의 다리를 천천히 뱉어 냈다⁠. 뱉어 낸 자리에 석봉의 발 모양 구멍이 남았다가 메워졌다⁠.

“⁠네 날이다⁠.⁠” 석봉이 이를 갈았다⁠. “⁠그 말은 다시 하지 마라⁠.⁠”

“⁠아저씨도 반 바퀴 원숭이라고 하지 마요⁠.⁠”

“⁠반 바퀴는 사실이다⁠.⁠”

“⁠오랑우탄도⁠—⁠”

“⁠사실이 아니다⁠!⁠”

*

낙타는 구름 위에서 네 발을 넓게 벌리고 섰다⁠. 쥘 손도 발톱도 없는 넓적한 발이라 구름을 누르기만 할 뿐 움켜쥐지 않았다⁠. 구름이 떠오르자 낙타는 고개를 꼿꼿이 쳐들고 혹 두 개를 흔들었다⁠.

“⁠봐라⁠. 귀족은 흔들리지 않는다⁠.⁠”

구름이 첫 바람을 맞아 출렁했다⁠. 낙타는 흔들렸고⁠, 흔들리자마자 침을 뱉었다⁠. 침은 바람을 타고 되돌아와 꼬장의 얼굴에 붙었다⁠. 꼬장은 손을 쓰면 안 되니 어깨로 얼굴을 닦았다⁠.

“⁠왜 뱉어요⁠!⁠”

“⁠귀족은 놀라면 뱉는다⁠. 집안 전통이다⁠.⁠”

구름은 서쪽으로⁠, 다시 북쪽으로 날았다⁠. 서해를 건너고 넓은 땅을 지났다⁠. 논이 사라지고 밭이 사라지고⁠, 누런 땅에 바위산이 드문드문 솟았다⁠. 땅이 점점 비어 갔다⁠. 꼬장의 다리가 떨리기 시작한 것은 두 시간째였다⁠. 세 시간째에는 무릎이 저절로 꺾이려 했다⁠. 꼬장은 펭귄들이 하던 대로 발바닥 전체를 구름에 붙이고⁠, 쥐고 싶은 손가락을 대걸레 자루 하나에 몰아 주었다⁠. 네 시간째에 낙타가 고개를 숙여 꼬장의 머리에 턱을 얹었다⁠.

“⁠기대라⁠. 귀족은 남이 기대도 흔들리지 않는다⁠.⁠”

낙타의 턱은 무겁고 따뜻했고 풀 냄새가 났다⁠. 꼬장은 쥐지 않고 기대기만 했다⁠. 기대는 것은 쥐는 것과 달라서 구름이 흩어지지 않았다⁠.

*

같은 시각 해오름 동물원 펭귄 사에는 경찰관 둘과 원장과 두식이 서 있었다⁠. 경찰관 하나가 감시 카메라 화면을 휴대전화로 돌려 보았다⁠. 어제 오전 펭귄 사 화면에는 하얀 안개 한 덩이가 수영장 위로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가는 것만 찍혀 있었다⁠. 안개가 올라간 다음에는 펭귄이 둘이었다⁠.

“⁠안개가 펭귄을 가져갔다는 겁니까⁠?⁠”

“⁠구름입니다⁠.⁠” 두식이 말했다⁠. “⁠안개 말고 구름이요⁠. 원숭이 산에 사는 구름이요⁠.⁠”

젊은 경찰관이 수첩에 무언가 적다가 펜을 멈추었다⁠. 나이 든 경찰관이 휴대전화를 꺼내 아침 방송 영상을 틀었다⁠. 남아프리카의 한 바닷가에서 관광객이 찍었다는 영상이었다⁠. 하늘에서 구름이 내려와 펭귄을 쏟아 놓고 있었고⁠, 구름 위에는 원숭이 한 마리가 대걸레 자루를 들고 서 있었다⁠.

“⁠이게 여기 펭귄이라고요⁠? 하루 만에 남아프리카까지⁠?⁠”

“⁠네⁠.⁠”

경찰관 둘이 서로 얼굴을 보았다⁠. 원장이 끼어들었다⁠.

“⁠현실적으로 보시면 됩니다⁠. 영상은 합성이고⁠, 펭귄은 누가 빼돌린 겁니다⁠. 폐원 앞둔 동물원에서 짐승 사라지면 누구 짓인지 다들 압니다⁠.⁠” 원장의 눈이 두식에게 머물렀다⁠. “⁠직원 퇴근 가방 검사를 오늘부터 하고 있습니다⁠.⁠”

“⁠펭귄 다섯을 가방에 넣어 갑니까⁠?⁠” 두식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원장님⁠, 제가 이십 년 동안⁠—⁠”

“⁠이십 년 하셨으니까 하는 말씀입니다⁠. 짐승 어디 내다 팔면 얼마 받는지 제일 잘 아시잖아요⁠.⁠”

두식의 주먹이 앞치마 주머니 속에서 곶감 봉지를 구겼다⁠.

열 시에 문을 열자 정문 앞에는 어제보다 긴 줄이 있었다⁠. 남아프리카 영상이 아침 방송을 탄 덕이었다⁠. 원장은 매표소 유리창에 붙은 「⁠어른 8⁠,000원⁠」 위에 종이를 한 장 덧붙였다⁠. 「⁠구름 원숭이 특별 관람 12⁠,000원⁠」 매표소 직원이 구름 원숭이는 지금 동물원에 없다고 하자 원장은 손을 저었다⁠.

“⁠없으니까 특별 관람이죠⁠. 기다리는 값이에요⁠.⁠”

사람들은 원숭이 산 난간에 몰려 빈 장대를 찍었다⁠. 장대 밑에서 털 빠진 우두머리가 사람들을 노려보았고⁠, 사람들은 우두머리를 찍었다⁠. 우두머리는 생전 처음 받아 보는 사진기 불빛에 눈을 끔뻑이다가⁠, 엉덩이를 돌려 앉았다⁠. 사람들은 엉덩이도 찍었다⁠.

*

경찰이 돌아간 뒤 두식은 원숭이 산 해자 난간에 앉아 구겨진 곶감 봉지를 폈다⁠. 바위 위에서 석봉이 무리에게 복숭아 얘기를 하다 말고 두식을 내려다보았다⁠. 무리는 우두머리 곁에 모여 있었고 꼬장은 하늘에 있었다⁠. 석봉은 해자를 한 번에 뛰어넘어 난간 위에 앉았다⁠. 두식과 한 팔 거리였다⁠.

두식은 놀라지 않았다⁠. 이틀 동안 너무 많이 놀라서 놀랄 힘이 없었다⁠.

“⁠너는 어디서 왔냐⁠. 너도 갈 데 없냐⁠?⁠” 두식이 곶감 하나를 내밀었다⁠. “⁠먹어라⁠. 미안해서 주는 거다⁠. 누구한테 미안한지는 묻지 마라⁠.⁠”

석봉은 곶감을 받아 냄새를 맡았다⁠. 땅의 감을 말린 것이었다⁠. 한 입 베어 물자 화과산 복숭아와는 다른 단맛이 혀에 오래 붙었다⁠. 석봉은 눈을 감았다⁠. 두식이 혼잣말을 이어 갔다⁠.

“⁠꼬장이 저 웬수가 구름을 타⁠. 나 미친 거 아니다⁠. 구름을 타고 펭귄을 바다에 갖다 버려⁠. 펭귄이 바다에서 뭘 먹고 살아⁠? 너구리 봐라⁠. 귀 찢어져서 왔어⁠. 숲에 놓아준다고 다 숲 짐승 되는 거 아니야⁠. 그거 하나 알려고 나는 이십 년 걸렸다⁠.⁠” 두식이 곶감을 하나 더 꺼내 제 입에 넣었다⁠. “⁠그리고 저 웬수는 갈 데가⁠…⁠.⁠”

두식은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었다⁠. 이번에는 길게 이었다⁠. 남쪽 동물원 이야기⁠, 전화 백열한 통 이야기⁠, 서명한 서류 두 묶음 이야기였다⁠. 사람 귀에는 늙은 사육사가 원숭이에게 신세 한탄을 하는 소리였다⁠. 석봉은 사람 말을 다 알아듣는 짐승이었다⁠.

곶감을 씹던 석봉의 턱이 멈추었다⁠. 석봉은 두식의 얼굴을 오래 보았다⁠. 그러고는 반쯤 남은 곶감을 손바닥에 쥔 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꼬장이 날아간 서쪽 하늘이었다⁠.

*

고비의 바람은 4월에도 칼날이었다⁠. 구름이 누런 땅에 내려앉자 모래 섞인 바람이 낙타의 혹을 때렸다⁠. 땅에는 녹다 만 눈이 군데군데 하얗게 남아 있었다⁠. 낙타는 구름에서 내리자마자 다리를 덜덜 떨었다⁠.

“⁠추⁠, 추⁠, 춥다⁠.⁠”

“⁠사막이라면서요⁠. 사막은 뜨겁잖아요⁠.⁠”

“⁠동물원 사막은 뜨거웠다⁠. 모래 밑에 열선이 깔려 있었다⁠.⁠” 낙타가 이를 딱딱 부딪쳤다⁠. “⁠여기 사막은 우리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사막이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는 대단하셨구나⁠.⁠”

멀리 둥근 천막 하나가 보였다⁠. 천막 옆에 쌍봉낙타 열댓 마리가 바람을 등지고 모여 있었고⁠, 털옷을 입은 늙은 목동이 낙타들 사이를 걸으며 물통을 채웠다⁠. 동물원 낙타는 한참을 바라보다가 천막 쪽으로 한 걸음 걸어갔다⁠. 다시 한 걸음⁠. 목동의 낙타들이 고개를 돌려 낯선 낙타를 보았다⁠.

꼬장이 소리쳤다⁠. “⁠저기 사람 있어요⁠! 사람 짐 지는 낙타들이에요⁠!⁠”

“⁠안다⁠.⁠” 낙타는 돌아보지 않았다⁠. “⁠우리 집안은 원래 사람 짐 지는 집안이다⁠. 비단이든 물통이든⁠. 귀족 소리는 내가 지어낸 거다⁠. 동물원에서 짐 안 지고 서른 해를 살았더니 등이 근질거렸다⁠.⁠”

“⁠그럼 왜 왔어요⁠? 동물원에서도 사람 있잖아요⁠.⁠”

“⁠하늘이 넓은 데서 지고 싶었다⁠.⁠”

목동이 물통을 내려놓고 동물원 낙타를 보았다⁠. 목동은 오래 보다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손바닥에 올리고 내밀었다⁠. 낙타는 다가가 목동의 손바닥을 핥았다⁠. 소금이었다⁠. 목동의 손주쯤 되어 보이는 청년이 천막에서 뛰어나와 하늘에 뜬 구름에 휴대전화를 들이댔다⁠.

동물원 낙타가 마지막으로 고개를 돌렸다⁠. 꼬장이 손을 흔들었다⁠. 낙타는 입을 오물거리더니⁠, 작별 인사로 침을 뱉었다⁠. 침은 바람을 타고 꼬장의 얼굴에 정확히 붙었다⁠.

*

해가 청계산 뒤로 떨어질 때 구름은 원숭이 산에 내려앉았다⁠. 꼬장은 구름에서 굴러떨어졌다⁠. 다리가 제 다리 같지 않았다⁠. 여섯 시간이었다⁠. 발바닥이 구름 모양으로 저렸고⁠, 무릎은 접히기만 하고 펴지지 않았다⁠. 꼬장은 바위에 얼굴을 대고 엎드려 숨을 쉬었다⁠.

구름에 오르기 전에 석봉이 꼬장 곁에 쪼그려 앉았다⁠. 손바닥에는 반쯤 남은 곶감이 말라붙어 있었다⁠.

“⁠여섯 시간이면 다섯 길은 내려앉았을 것이다⁠.⁠” 석봉의 목소리가 이상하게 낮았다⁠. “⁠내일 새벽 시합은 내가 이긴다⁠. 네 다리를 보니 알겠다⁠.⁠”

“⁠두고 봐요⁠.⁠”

“⁠그리고⁠.⁠” 석봉이 곶감을 입에 넣고 오래 씹었다⁠. “⁠내일 새벽에 너에게 들려줄 말이 있다⁠. 네 사육사가 한 말이다⁠.⁠”

꼬장이 고개를 들었다⁠. 석봉은 벌써 구름에 올라 있었다⁠. 구름이 떠오르는 동안 석봉은 꼬장을 내려다보지 않았다⁠. 청계산 너머만 보았다⁠.

*

밤 아홉 시⁠, 관리동 이층 원장실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원장이 전화를 끊고 서류철을 덮었다⁠. 창가 새장에서 구관조가 낮에 들은 말을 하나씩 꺼내 연습하고 있었다⁠.

“⁠현실적으로⁠! 현실적으로⁠!⁠”

원장이 불을 끄고 나갔다⁠. 어둠 속에서 구관조는 방금 들은 말을 원장 목소리 그대로 따라 했다⁠.

“⁠금요일에 수의사⁠! 곰은 금요일에 수의사⁠!⁠”

곰 사 바위 굴에서는 늙은 불곰이 굴 밖에 나와 앉아 원숭이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장대 끝은 비어 있었다⁠. 꼬장은 장대 밑에서 저린 다리를 끌어안고 잠들어 있었다⁠. 불곰은 하품을 하고 나직이 혼잣말을 했다⁠.

“⁠나는⁠… 줄 서는 거⁠… 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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