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465자)

펭귄은 원래 서서 다닌다

동물원 원숭이가 진짜 근두운을 얻었다 · 길담이

월요일은 해오름 동물원이 쉬는 날이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주차장은 텅 비었는데 정문 앞에만 방송국 차 두 대가 머리를 맞대고 있었고⁠, 카메라를 멘 사람들이 셔터 앞에서 하늘을 찍었다⁠. 찍히는 하늘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새벽 네 시 반이었다⁠.

원숭이 산 해자 난간에는 두식이 보온병을 끼고 앉아 있었다⁠. 손에는 어제 해자에 빠뜨린 것 대신 새로 산 손전등이 들려 있었다⁠. 두식은 밤새 집에 가지 않았다⁠. 집에 가서 자고 일어나면 어제 본 것이 꿈이 되고⁠, 꿈이 되면 원장에게도 저 자신에게도 할 말이 없었다⁠. 보온병 뚜껑에 따른 보리차는 벌써 세 번째였다⁠.

“⁠나 미친 거 아니다⁠. 나 멀쩡하다⁠. 쉰여섯에 멀쩡하다⁠.⁠” 두식은 장대 밑에 웅크린 꼬장에게 말했다⁠. “⁠너 어제 구름에서 내렸지⁠? 내렸잖아⁠. 내가 봤어⁠.⁠”

꼬장은 두식의 목소리만 들었다⁠. 낱말은 하나도 못 알아들었다⁠. 다만 두식이 같은 말을 되풀이할 때는 겁이 날 때라는 것을 알았다⁠. 젖병을 물던 시절부터 두식은 겁이 나면 같은 말을 세 번씩 했다⁠.

*

동쪽 하늘이 밝아 오자 구름 층이 열리고 근두운이 내려왔다⁠. 석봉이 구름 위에 버티고 있었다⁠. 두식의 손에서 보온병 뚜껑이 떨어졌고⁠, 보리차가 장화 위로 쏟아졌다⁠.

“⁠석 자 하고 한 치⁠.⁠” 석봉이 내려서며 말했다⁠. “⁠어제 사십 분에 산이 석 자 한 치 내려앉았다⁠. 복숭아 숲 가장자리의 나무 두 그루가 뿌리째 기울었다⁠.⁠” 석봉이 난간의 두식을 흘끗 보았다⁠. “⁠사람이 보고 있구나⁠.⁠”

“⁠우리 아저씨예요⁠. 괜찮아요⁠.⁠”

“⁠괜찮은 사람이 저렇게 입을 벌리고 있지는 않는다⁠.⁠”

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석봉이 하늘을 올려다보고 씩 웃었다⁠.

“⁠오늘은 빗속에서 선다⁠. 젖은 구름은 미끄럽다⁠. 네 발바닥이 얼마나 버티나 보자⁠.⁠”

둘은 구름에 올랐다⁠. 구름이 떠오르자 빗물이 구름 거죽에 얇게 고였고⁠, 발을 옮길 때마다 발바닥 밑에서 찰박찰박 소리가 났다⁠. 꼬장은 첫 출렁임에 한 발이 미끄러져 대걸레 자루로 몸을 받쳤다⁠. 석봉은 발가락을 부채처럼 펴서 고인 빗물을 밀어내며 버텼다⁠. 화과산 벼랑에는 일 년의 절반 넘게 비가 왔다⁠.

구름이 기울었다⁠. 꼬장이 또 미끄러졌고 석봉이 웃었다⁠.

난간에서 두식이 벌떡 일어났다⁠. 두식의 눈에는 원숭이 두 마리가 구름 위에서 서로 밀고 당기며 비명을 지르는 것으로 보였다⁠. 이십 년 사육사의 몸이 머리보다 먼저 움직였다⁠. 원숭이들이 싸우면 물을 뿌린다⁠. 두식은 해자 가장자리의 분무기로 달려가 손잡이를 끝까지 돌렸다⁠.

물안개가 원숭이 산 위로 하얗게 피어올랐다⁠. 안개를 맞은 구름의 웅웅 소리가 냉장고 소리에서 경운기 소리로 커졌다⁠. 구름은 좋아서 몸을 부풀렸는데⁠, 안개가 닿은 곳이 하필 석봉의 발밑이었다⁠. 석봉의 발밑만 한 뼘⁠, 두 뼘 솟아오르며 말랑해졌고⁠, 석봉의 몸이 통통 튀었다⁠. 한 번 튀고 두 번 튀더니 세 번째에 석봉은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해자 물이 이번에는 펭귄 사 지붕을 넘어갔다⁠.

물속에서 솟은 석봉이 분무기 앞의 두식을 손가락질하며 외쳤다⁠.

“⁠사람까지 편을 드느냐⁠!⁠”

두식의 귀에는 크앙⁠, 하는 소리로만 들렸다⁠. 두식은 분무기 손잡이를 쥔 채 해자에 빠진 큰 원숭이와 구름 위에서 한 발로 버티는 꼬장을 번갈아 보았다⁠. 자기가 누구를 도왔는지 알지 못했다⁠.

*

두식은 관리용 쪽문을 열고 원숭이 산으로 들어갔다⁠. 창고에서 꺼내 온 긴 자루 포획망을 들고 있었다⁠. 원숭이가 다치거나 아플 때 한 번씩 쓰는 그물이었고⁠, 꼬장은 포획망을 볼 때마다 실내 우리 가장 깊은 구석으로 숨었다⁠.

오늘 꼬장은 숨지 않았다⁠. 구름 위에 서서 두식을 내려다보았다⁠.

“⁠내려와⁠.⁠” 두식이 포획망을 치켜들었다⁠. “⁠내려와⁠, 꼬장아⁠. 너 거기서 떨어지면 죽어⁠. 너 공중제비도 반 바퀴밖에 못 돌잖아⁠.⁠”

꼬장은 ‘⁠꼬장⁠’만 알아들었다⁠. 포획망이 머리 위로 올라오자 구름이 반 길쯤 떠올랐고⁠, 포획망 끝이 구름 밑바닥을 훑었다⁠. 두식은 발끝을 세우고 한 번 더 휘둘렀다⁠. 구름이 또 반 길 올랐다⁠. 그물이 허공을 갈랐고⁠, 휘감긴 것은 두식 자신의 머리였다⁠. 두식은 그물을 뒤집어쓴 채 바위 위에서 비틀거렸다⁠.

그물 속에서 두식이 마지막 남은 말을 꺼냈다⁠. 꼬장이 젖먹이였을 때부터 수천 번 들은 말이었다⁠.

“⁠안 돼⁠!⁠”

꼬장은 이 말을 알았다⁠. 장대에서 뛰어내리려 할 때⁠, 해자에 손을 넣으려 할 때⁠, 관람객이 던진 과자를 주우려 할 때마다 들은 말이었다⁠. 이 말이 들리면 꼬장은 언제나 멈췄다⁠. 여덟 해 동안 한 번도 안 멈춘 적이 없었다⁠.

꼬장은 대걸레 자루를 고쳐 쥐었다⁠. 구름이 높이 떠올랐다⁠. 그물을 뒤집어쓴 두식이 점점 작아졌다⁠. 그물 사이로 두식의 얼굴이 보였다⁠. 젖병을 들고 있던 얼굴이었다⁠. 꼬장은 얼굴을 오래 보지 않았다⁠. 오래 보면 무릎이 굳었다⁠.

*

펭귄 사의 둥근 바위에는 일곱 마리가 키 순서대로 서 있었다⁠. 밤새 한숨도 안 잔 얼굴들이었다⁠. 구름이 수영장 위에 내려앉자 맨 앞의 펭귄이 고개를 쳐들었다⁠.

“⁠우리를⁠.⁠” “⁠안 태우면⁠.⁠” “⁠원장 방⁠.⁠” “⁠구관조한테⁠.⁠” “⁠너⁠.⁠” “⁠구름 탄 거⁠.⁠” “⁠다 이른다⁠.⁠”

“⁠구관조는 사람 말 흉내만 내요⁠. 뜻은 몰라요⁠.⁠”

“⁠그래도⁠.⁠” “⁠이른다⁠.⁠”

꼬장은 웃음을 참으며 구름을 낮추었다⁠. 펭귄들은 뒤뚱뒤뚱 한 줄로 구름에 올랐다⁠. 일곱 다 발바닥을 구름에 척 붙이고 꼿꼿이 섰다⁠. 단 한 마리도 흔들리지 않았다⁠. 쥘 손이 처음부터 없으니 쥐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원숭이는⁠.⁠” “⁠손을⁠.⁠” “⁠너무 써⁠.⁠” 펭귄들이 꼬장의 대걸레 자루를 보며 혀를 찼다⁠. “⁠펭귄은⁠.⁠” “⁠원래⁠.⁠” “⁠서서 다닌다⁠.⁠”

해자에서 기어 나온 석봉이 털을 짜며 펭귄 사까지 따라왔다⁠. 구름 가장자리에 올라서며 석봉이 말했다⁠.

“⁠나도 탄다⁠. 졌으니 구름은 너에게 주었다만⁠, 해 질 때까지 네가 돌아오는지는 내 눈으로 보아야겠다⁠.⁠”

“⁠아저씨 무거워요⁠.⁠”

“⁠무거운 것은 복숭아다⁠. 내가 아니다⁠.⁠”

*

구름은 남쪽으로 날았다⁠. 서해 바다를 건너고 구름 바다를 뚫고 적도의 뜨거운 바다를 지났다⁠. 근두운은 바람보다 빨랐다⁠. 다만 태운 자가 버티는 만큼만 날았다⁠. 꼬장은 무릎을 물렁하게 두고 발바닥 전체로 구름을 눌렀다⁠. 어제보다 손이 덜 근질거렸다⁠. 대신 다른 것이 꼬장을 밀어붙였다⁠. 석봉의 배였다⁠.

바다 한가운데서 석봉이 슬그머니 옆으로 붙더니 불룩한 배로 꼬장을 툭 밀었다⁠. 손은 쓰지 않았다⁠. 꼬장이 비틀거리며 구름 가장자리까지 밀려났다⁠.

“⁠뭐 하는 거예요⁠!⁠”

“⁠손은 안 썼다⁠. 배는 쓰지 말라는 약속이 없었다⁠.⁠”

꼬장은 대걸레 자루를 석봉의 배에 대고 버텼다⁠. 석봉이 배로 밀면 꼬장은 자루로 받았다⁠. 자루가 배에 쑥 파묻혔다가 튕겨 나왔다⁠. 펭귄 일곱이 두 패로 갈라져 응원을 했다⁠.

“⁠배다⁠.⁠” “⁠배가 민다⁠.⁠” “⁠자루다⁠.⁠” “⁠자루가 막는다⁠.⁠” “⁠배가⁠.⁠” “⁠이긴다⁠.⁠” “⁠아니다⁠, 자루다⁠.⁠”

석봉이 엉덩이로 꼬장을 밀었다⁠. 꼬장은 머리로 석봉의 옆구리를 받았다⁠. 둘 다 손을 쓰지 않으려고 두 팔을 등 뒤로 감춘 채 몸통끼리 부딪혔다⁠. 하늘에서 보면 원숭이 두 마리가 뒷짐을 지고 배치기 씨름을 하는 꼴이었다⁠.

“⁠왜 이렇게까지 해요⁠?⁠” 꼬장이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어차피 해 지면 구름 가져가잖아요⁠.⁠”

“⁠지금 이 순간에도 내 산이 내려앉고 있다⁠.⁠” 석봉이 배를 거두었다⁠. 목소리가 낮아졌다⁠. “⁠산 밑에 칡넝쿨이 있다⁠. 아이들이 넝쿨에 매달려 그네를 탄다⁠. 산이 한 자 내려앉으면 넝쿨 끝이 구름 바다에 잠긴다⁠. 잠긴 넝쿨에 매달린 아이는 구름 바다 밑으로 떨어진다⁠. 어제 하나가 떨어질 뻔했다⁠.⁠”

꼬장은 대답하지 못했다⁠. 눈 아래로 파도가 끝없이 밀려왔다가 부서졌다⁠.

“⁠상자 타면⁠.⁠” 한참 뒤에 꼬장이 말했다⁠. “⁠상자 타고 간 동무들은 아무도 안 돌아와요⁠. 기린 형님도요⁠. 펭귄들은 바다를 한 번도 못 봤어요⁠. 상자 타기 전에 바다를 한 번이라도⁠—⁠”

“⁠한 번 본 바다가 펭귄을 먹여 살리느냐⁠?⁠”

맨 앞의 펭귄이 대신 대답했다⁠. “⁠모른다⁠.⁠” 두 번째가 이었다⁠. “⁠그러니까⁠.⁠” 세 번째가 맺었다⁠. “⁠가 본다⁠.⁠”

*

남아프리카공화국 남쪽 끝⁠, 펭귄 수천 마리가 모래밭에 굴을 파고 사는 바닷가에 구름이 내려앉았을 때 해는 아직 높았다⁠. 바위 사이로 파도가 하얗게 부서졌고⁠, 모래밭에는 야생 펭귄들이 빽빽했다⁠. 나무 다리 위에서 관광객들이 한꺼번에 소리를 지르며 휴대전화를 들었다⁠. 하늘에서 구름이 내려와 펭귄 일곱을 쏟아 놓는 장면이었다⁠.

야생 펭귄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려 꽥꽥 울었다⁠. 낯선 놈들이 왔다는 소리였다⁠. 동물원 펭귄 일곱은 줄을 맞춰 바닷가로 걸어갔다⁠. 첫 파도가 발등을 덮자 맨 뒤의 펭귄이 비명을 질렀다⁠.

“⁠차갑다⁠!⁠” “⁠수영장보다⁠.⁠” “⁠차갑다⁠!⁠”

젊은 다섯이 먼저 물로 뛰어들었다⁠. 동물원 수영장에서는 사육사가 던져 준 냉동 고등어를 받아먹기만 했는데⁠, 바다에서는 고등어가 헤엄쳐 도망을 갔다⁠. 다섯은 고등어를 쫓다가 놓치고⁠, 또 쫓다가 놓쳤다⁠. 야생 펭귄 한 무리가 다섯 옆을 쏜살같이 지나가며 정어리 떼를 몰았다⁠. 다섯은 야생 펭귄들의 꽁무니를 따라 헤엄쳐 갔다⁠. 따라가다 보니 정어리 한 마리가 입에 들어왔다⁠.

맨 앞에서 헤엄치던 펭귄이 물 위로 고개를 내밀고 외쳤다⁠. “⁠잡았다⁠!⁠” 나머지 넷이 이었다⁠. “⁠잡았다⁠!⁠” “⁠잡았다⁠!⁠” “⁠우리도⁠!⁠” “⁠잡았다⁠!⁠”

늙은 두 마리는 물가에 서 있었다⁠. 파도가 발등을 덮었다가 빠져나갈 때마다 늙은 펭귄의 발이 조금씩 모래에 묻혔다⁠. 한참을 그렇게 서 있던 늙은 둘이 돌아서서 구름 쪽으로 뒤뚱뒤뚱 걸어왔다⁠.

“⁠우리는⁠.⁠” 한 마리가 말했다⁠. “⁠냉동 고등어⁠.⁠” 다른 한 마리가 이었다⁠. “⁠집안이야⁠.⁠”

꼬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구름을 낮추었다⁠. 늙은 둘은 구름에 올라 바다를 등지고 섰다⁠. 석봉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바닷가에서 젊은 다섯이 야생 펭귄들 사이에 섞여 점점 구별이 안 되어 갔다⁠.

*

해가 청계산 마루에 닿기 직전⁠, 구름은 펭귄 사에 늙은 둘을 내려놓았다⁠. 꼬장의 다리는 원숭이 산까지 버티지 못했다⁠. 원숭이 산 해자 앞에서 구름에서 미끄러져 내린 꼬장은 바위까지 기어서 올라갔다⁠. 세 시간이었다⁠.

석봉이 구름 위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날아간 시간을 따졌다⁠.

“⁠세 시간⁠, 그것도 바다 건너 끝까지⁠. 오늘은 두 길은 내려앉았을 것이다⁠.⁠” 석봉이 꼬장을 내려다보았다⁠. “⁠사십 분에 석 자였다⁠. 세 시간에 두 길이다⁠. 내일 반나절을 날면 몇 길이겠느냐⁠?⁠”

꼬장은 바위에 엎드린 채 손가락을 꼽았다⁠. 손가락이 모자랐다⁠.

구름이 저녁 하늘로 올라갔다⁠. 그물을 걷어 낸 두식이 펭귄 사 앞에 서 있었다⁠. 수영장 바위 위에 늙은 펭귄 둘뿐이었다⁠. 두식은 손전등을 켰다 껐다 하며 수영장 물속까지 비췄다⁠. 물속은 비어 있었다⁠.

휴원일인데도 방송 인터뷰를 하러 나온 원장이 정장 차림으로 펭귄 사에 들어섰다⁠. 원장은 수영장을 한 번 보고⁠, 두식을 한 번 보고⁠, 다시 수영장을 보았다⁠.

“⁠주임님⁠. 펭귄이 일곱 아니었습니까⁠?⁠”

“⁠일곱이었습니다⁠.⁠”

“⁠다섯은 어디 갔습니까⁠?⁠”

두식은 저녁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청계산 위로 구름 한 덩이가 높이 올라가고 있었다⁠.

“⁠구름이요⁠.⁠”

원장이 두식을 오래 쳐다보았다⁠. 휴대전화를 꺼내 번호를 눌렀다⁠.

“⁠내일 아침 아홉 시에 경찰 옵니다⁠, 주임님⁠. 구름 얘기는 경찰한테 하세요⁠.⁠”

4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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