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539자)

구 분

동물원 원숭이가 진짜 근두운을 얻었다 · 길담이

토요일 아침 해오름 동물원을 위에서 내려다보면⁠, 밤사이 동물원 전체가 한 덩어리로 술렁인 흔적이 보였다⁠. 펭귄 사의 소문은 동이 트기 전에 물새 우리를 넘었고⁠, 아침 먹이 시간에는 낙타 우리와 사슴 마당을 지나 곰 사 바위 굴 안까지 들어갔다⁠. 소문이 한 우리를 넘을 때마다 말이 한 겹씩 불었다⁠. 곰 사에 닿았을 때는 원숭이가 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복숭아를 따 왔고 원장 머리에는 이미 두 번 똥을 쌌다는 이야기가 되어 있었다⁠.

원숭이 산 꼭대기에서 꼬장은 구름에 올라 너구리 우리로 날아갔다⁠. 담 아래 토종 짐승 우리는 철망이 낮았고 지붕이 없었다⁠. 너구리는 담벼락에 코를 붙인 채 꼬리만 흔들었다⁠.

“⁠진짜 왔네⁠. 펭귄들이 거짓말하는 줄 알았어⁠.⁠”

“⁠펭귄은 거짓말을 안 해요⁠. 부풀릴 뿐이지⁠.⁠” 꼬장이 구름을 철망 위에 낮게 붙였다⁠. “⁠타요⁠. 저기⁠, 저 산 냄새 나는 데까지 데려다줄게요⁠.⁠”

너구리는 칠 년 동안 이 담벼락에 코를 대고 살았다⁠. 담 너머에서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솔잎과 젖은 흙과 도토리 껍질 냄새가 들어왔고⁠, 너구리는 바람에 실려 오는 냄새로 계절을 셌다⁠. 철망을 넘어 구름에 올라탄 너구리는 네 발로 구름을 꽉 움켜쥐었다⁠. 발톱 박힌 자리가 흩어지면서 앞발 하나가 구름 속으로 쑥 빠졌다⁠.

“⁠발톱⁠! 발톱 집어넣어요⁠!⁠”

“⁠어떻게 집어넣어⁠? 고양이도 아니고⁠!⁠”

“⁠그럼 힘을 빼요⁠! 발바닥만 대요⁠! 발바닥으로 그냥 서 있어요⁠!⁠”

너구리가 낑낑대며 발가락을 폈다⁠. 빠졌던 앞발이 다시 위로 떠올랐다⁠. 꼬장은 대걸레 자루를 가로로 들고 무릎을 굽혔다⁠. 구름이 담을 넘었다⁠.

*

청계산 위를 나는 동안 꼬장의 몸은 내내 싸움을 했다⁠. 손이 무언가를 쥐고 싶어 근질거렸다⁠. 원숭이의 손은 나뭇가지든 철망이든 어미의 털이든 쥐라고 생긴 손이었다⁠. 구름이 바람에 출렁일 때마다 손가락이 저절로 오므라들었고⁠, 꼬장은 오므라드는 손가락으로 대걸레 자루를 더 세게 쥐어 참았다⁠. 자루는 쥐어도 되는 것이었다⁠. 손이 하나라도 쥘 것을 갖고 있으니 나머지 몸은 버틸 만했다⁠.

발밑으로 참나무 숲이 연둣빛 새순을 뒤집어쓰고 지나갔다⁠. 골짜기 바닥에서 물소리가 올라왔다⁠. 너구리가 코를 벌름거렸다⁠.

“⁠여기⁠. 여기다⁠. 내려 줘⁠.⁠”

구름이 개울가 바위 옆에 내려앉았다⁠. 너구리는 구름에서 굴러떨어지듯 내려 낙엽 더미에 등을 비볐다⁠. 네 발을 하늘로 쳐들고 몸을 뒤틀었다⁠. 젖은 흙을 파서 코를 처박았다가 고개를 들었다⁠. 콧등에 흙이 묻어 있었다⁠.

“⁠냄새⁠! 이거 진짜 냄새야⁠. 담에 걸러지지 않은 냄새⁠!⁠”

꼬장도 웃었다⁠. 웃는 사이 무릎이 후들거렸다⁠. 버티던 다리가 이제 그만하자고 떨고 있었다⁠. 꼬장은 너구리에게 손을 흔들고 구름을 돌렸다⁠. 돌아오는 길에 두 번이나 손이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대걸레 자루로 막았다⁠. 원숭이 산 꼭대기에 닿자마자 꼬장은 구름에서 미끄러져 바위에 엎어졌다⁠. 해자에 빠지지 않은 것만 해도 잘한 일이었다⁠.

담을 넘어갔다 오는 데 구 분이 걸렸다⁠. 꼬장이 구름 위에서 버틸 수 있는 것이 구 분이었다⁠.

*

꼬장이 엎어져 숨을 고르는 동안 바위 그늘에서는 석봉이 무리를 모아 놓고 있었다⁠. 토요일이라 관람객이 서른 남짓 왔고⁠, 관람객 절반이 해자 난간에 붙어 낯선 금빛 원숭이를 손가락질했다⁠.

“⁠오랑우탄이다⁠! 엄마⁠, 오랑우탄⁠!⁠”

석봉의 귀가 홱 돌아갔다⁠. 사람 말을 다 알아듣는 짐승은 동물원 안에서 석봉 하나였다⁠.

“⁠나는 오랑우탄이 아니다⁠, 이 털 없는 것들아⁠! 화과산의 석봉이다⁠!⁠”

사람들 귀에는 큰 원숭이가 이빨을 드러내고 크앙 소리를 지르는 것으로만 들렸다⁠. 아이들이 좋아서 펄쩍 뛰었다⁠. 석봉은 씩씩대며 무리 쪽으로 돌아앉았다⁠.

“⁠잘 들어라⁠. 저 어린것이 구름을 놀잇감 삼아 담 밖을 들락거리는 동안⁠, 하늘에서는 내 산이 내려앉는다⁠. 오늘 구 분이었지⁠. 내일은 얼마겠느냐⁠? 모레는⁠?⁠”

무리는 털 고르던 손을 멈추었다⁠. 우두머리가 꼬장을 내려다보았다⁠.

“⁠담 밖에 나갔다 왔냐⁠. 끙⁠.⁠”

꼬장은 엎어진 채 고개만 들었다⁠. “⁠너구리 데려다줬어요⁠. 칠 년 동안 담에 코 박고 살았잖아요⁠.⁠”

“⁠그러다 사람들이 알면⁠.⁠” 우두머리가 실내 우리 뒤의 상자를 가리켰다⁠. “⁠남쪽 동물원이 시끄러운 무리는 안 받는다⁠. 소란 나면 상자 못 탄다⁠. 그럼 어디로 가는지 아냐⁠?⁠”

“⁠어디로 가는데요⁠?⁠”

우두머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을 몰랐다⁠. 모르는 것이 대답보다 무서웠다⁠.

석봉이 일어서서 꼬장 앞으로 걸어왔다⁠. 그림자가 꼬장의 몸을 덮었다⁠.

“⁠너구리가 저 숲에서 무엇을 먹을지 생각해 봤느냐⁠? 칠 년 동안 사람이 주는 사료를 먹던 입이다⁠. 숲이 너구리를 알아보더냐⁠?⁠”

“⁠숲이 냄새로 알아보겠죠⁠.⁠”

“⁠냄새로는 배가 안 부른다⁠.⁠”

“⁠그럼 아저씨네 산은요⁠? 아저씨네 원숭이들은 뭐 먹고 살아요⁠?⁠”

“⁠복숭아⁠.⁠” 석봉이 배를 쓰다듬었다⁠. “⁠오백 년 묵은 복숭아 숲이 있다⁠. 너 같은 것은 한 입 베어 물면 사흘을 웃는다⁠.⁠”

“⁠그럼 너구리도 거기 데려가요⁠.⁠”

석봉이 어이없어 입을 벌렸다가 다물었다⁠. 난간 너머 아이들이 또 소리쳤다⁠.

“⁠손오공⁠! 손오공 또 나왔다⁠!⁠”

꼬장은 반사처럼 벌떡 일어나 대걸레 자루를 머리 위로 돌렸다⁠. 다리가 풀려 반 바퀴만 돌고 주저앉았다⁠. 아이들이 박수를 쳤다⁠. 석봉은 손오공이라는 소리에 이맛살을 찌푸리고 아이들과 꼬장을 번갈아 보았다⁠.

“⁠저 사람들이 너를 무어라 부르는지 아느냐⁠?⁠”

“⁠칭찬이요⁠. 제일 좋은 칭찬⁠.⁠”

석봉은 한참 말이 없다가 콧방귀를 뀌었다⁠. “⁠모르는 편이 낫겠구나⁠.⁠”

석봉이 콧방귀를 뀌고 돌아앉자 무리의 젊은 수컷들이 슬금슬금 바위 꼭대기로 올라갔다⁠. 구름은 장대 옆에 낮게 엎드려 웅웅 울고 있었다⁠. 맨 앞의 수컷이 구름 가장자리를 덥석 쥐었다⁠. 쥔 자리가 흩어지면서 수컷은 손에 아무것도 없는 얼굴로 바위에 떨어졌다⁠. 두 번째는 쥐지 않으려고 두 손을 등 뒤로 감추고 올라섰는데⁠, 발가락이 저절로 오므라들어 구름을 움켜쥐는 바람에 발부터 빠졌다⁠. 세 번째는 꼬리로 균형을 잡겠다며 꼬리를 쳐들었다⁠. 일본원숭이의 꼬리는 손가락 두 마디만 했다⁠. 세 번째도 떨어졌다⁠.

다들 떨어지고 나서 바위가 조용해지자⁠, 우두머리가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혼자 구름에 발 하나를 올려 보았다⁠. 발이 쑥 빠졌다⁠. 우두머리는 빠진 발을 얼른 빼고⁠, 처음부터 구름 냄새를 맡으러 왔던 것처럼 코를 킁킁거렸다⁠.

“⁠솜 냄새다⁠. 끙⁠.⁠”

정오에 두식이 원숭이 산에 물안개를 뿌렸다⁠. 날이 더워지면 늘 하는 일이었다⁠. 해자 가장자리의 분무기에서 안개가 피어오르자 구름이 벌떡 일어나 안개 쪽으로 미끄러져 갔다⁠. 안개 속에서 구름은 한 뼘쯤 부풀었고⁠, 웅웅 소리가 고양이 소리에서 냉장고 소리만큼 커졌다⁠. 두식은 분무기 손잡이를 쥔 채 고개를 갸웃했다⁠. 오늘따라 안개가 한 덩어리로 뭉쳐 보였다⁠. 두식은 안경을 벗어 앞치마에 닦고 다시 썼다⁠. 안개는 그냥 안개였다⁠.

*

점심 무렵 원숭이 산 해자 건너에는 짐승들이 줄을 섰다⁠. 줄이라고 해도 저마다 제 우리 안에서 목을 길게 빼고 원숭이 산을 향해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는데⁠, 사람들 귀에는 동물원 전체가 한꺼번에 우는 소리로 들렸다⁠.

낙타는 우리 울타리에 앞가슴을 붙이고 외쳤다⁠. “⁠나는 사막 귀족 집안이다⁠! 다음은 나다⁠!⁠” 다음이 자기가 아니라는 대꾸가 들리자 낙타는 침을 뱉었다⁠. 침은 옆 우리의 사슴에게 떨어졌다⁠. 하마는 물 밖으로 나오기 싫다며 줄에 끼지 않았다⁠. 펭귄 일곱은 펭귄 사 바위에 나란히 서서 한 문장을 일곱 토막으로 나눠 외쳤다⁠.

“⁠우리는⁠.⁠” “⁠바다를⁠.⁠” “⁠본 적이⁠.⁠” “⁠없다⁠.⁠” “⁠그러니⁠.⁠” “⁠다음은⁠.⁠” “⁠우리다⁠.⁠”

곰 사 바위 굴에서는 늙은 불곰이 콧등만 내밀고 느릿느릿 말했다⁠.

“⁠나는⁠… 줄 서는 거⁠… 잘한다⁠… 서커스에서⁠… 늘 섰다⁠…⁠.⁠”

말끝에 하품이 붙었고⁠, 하품이 끝나기 전에 불곰은 잠이 들었다⁠.

같은 시각 원숭이 산 난간에서 초등학생 하나가 휴대전화를 들어 올리고 있었다⁠. 오전에 찍은 영상을 엄마에게 보여 주는 중이었다⁠. 화면 속에서는 원숭이 한 마리가 낮게 깔린 구름 위에 한 발로 서서 담을 넘어가고 있었다⁠. 엄마는 드론이겠지 하고 넘겼다⁠. 아이는 넘기지 않고 영상을 반 친구들 단체방에 올렸다⁠.

*

저녁 여섯 시⁠, 두식은 손전등을 들고 동물원을 한 바퀴 돌며 머릿수를 셌다⁠. 날마다 하는 일이었고⁠, 이십 년 동안 한 번도 숫자가 틀린 적이 없었다⁠. 토종 짐승 우리 앞에서 숫자가 틀렸다⁠. 너구리 우리가 비어 있었다⁠. 철망은 멀쩡했고 땅에 판 구멍도 없었다⁠.

두식은 원장실로 뛰어올라갔다⁠. 원장은 휴대전화로 무언가를 보고 있다가 두식이 숨을 몰아쉬며 들어오자 화면을 엎어 놓았다⁠.

“⁠너구리가 없어졌습니다⁠. 철망도 그대로고 구멍도 없어요⁠.⁠”

“⁠주임님⁠.⁠” 원장이 의자에 몸을 기댔다⁠. “⁠현실적으로 너구리 한 마리를 누가 훔쳐 갑니까⁠? 밖에서 온 사람은 아니에요⁠. 안에 있는 사람이지⁠. 지금 안에 남은 사람이 몇입니까⁠?⁠”

“⁠…원장님이 저를 의심하시는 겁니까⁠?⁠”

“⁠의심은 아니고요⁠. 폐원 앞두고 짐승 빼돌려 파는 사육사 얘기⁠, 업계에 한둘이 아니에요⁠. 다음 주부터 정문에 경비 하나 더 세우겠습니다⁠. 주임님 퇴근할 때 가방도 좀 보고요⁠.⁠”

두식의 귀가 빨개졌다⁠. 창가 새장에서 구관조가 두식의 숨소리를 흉내 냈다⁠. 헉헉⁠, 헉헉⁠.

“⁠원장님⁠, 지금 휴대전화로 보신 게 뭡니까⁠?⁠”

원장은 엎어 둔 휴대전화를 다시 뒤집지 않았다⁠. “⁠애들 장난 영상이요⁠. 원숭이 산 위에 드론 띄운 거⁠. 그것도 알아봐야겠네요⁠.⁠”

*

원숭이 산으로 돌아온 두식은 저녁 먹이를 뿌리며 꼬장을 불렀다⁠. 꼬장은 장대 밑에 앉아 있다가 느릿느릿 내려왔다⁠. 다리가 아직 후들거렸다⁠. 두식은 늘 하던 대로 꼬장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손을 멈추었다⁠. 정수리 털 사이에 마른 솔잎 하나가 끼어 있었다⁠. 원숭이 산에는 소나무가 없었다⁠.

두식은 솔잎을 손가락으로 집어 냄새를 맡았다⁠. 꼬장의 얼굴을 보았다⁠. 꼬장은 먹이 그릇에 고개를 처박고 사과 조각을 와삭와삭 씹었다⁠.

“⁠너 어디 갔다 왔어⁠?⁠”

꼬장은 ‘⁠너⁠’도 ‘⁠어디⁠’도 몰랐다⁠. 사과만 씹었다⁠.

두식은 솔잎을 앞치마 주머니에 넣고 담을 올려다보았다⁠. 원숭이 산에서 청계산 숲까지는 해자 하나와 담 둘⁠, 그리고 사람 키 세 배쯤 되는 허공이었다⁠. 원숭이가 넘을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바람에 날려 온 솔잎일 것이다⁠. 두식은 그렇게 정하고 빈 그릇을 챙겼다⁠. 돌아서는 등 뒤에서 꼬장이 사과 꼭지를 뱉으며 트림을 했다⁠.

*

해가 청계산 뒤로 넘어가자 원숭이 산 꼭대기의 구름이 혼자서 떠올랐다⁠. 석봉은 무리 사이에서 일어나 구름에 훌쩍 올라탔다⁠. 다리를 벌리고 버티는 품이 바위였다⁠.

“⁠구 분이었다⁠. 오늘 산은 한 자쯤 내려앉았을 것이다⁠. 내일 새벽에 정확히 일러 주마⁠.⁠”

“⁠내일은 사십 분 날 거예요⁠.⁠”

“⁠그럼 산은 석 자다⁠.⁠”

“⁠그럼 모레는 한 시간⁠.⁠”

석봉은 대꾸하지 않았다⁠. 구름이 점점 높이 올라갔다⁠. 꼬장은 장대 끝에 올라 눈썹에 손을 대고 구름을 따라 올려다보았다⁠. 구름은 낮게 깔린 저녁 구름 층에 머리부터 들어갔다⁠.

들어가기 직전⁠, 구름 층이 한 번 찢어졌다⁠. 찢어진 틈으로 무언가 거대한 것의 밑바닥이 보였다⁠. 거꾸로 매달린 바위 뿌리들⁠, 뿌리 사이로 늘어진 칡넝쿨⁠, 넝쿨 끝에 대롱대롱 매달린 작은 얼굴 서넛⁠. 얼굴들이 일제히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꼬장과 눈이 마주친 얼굴 하나가 손을 흔들었다⁠.

구름 층이 다시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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