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787자)
벼락 맞은 원숭이 산
동물원 원숭이가 진짜 근두운을 얻었다 · 길담이
과천 청계산 기슭의 해오름 동물원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정문 기둥 사이에 매단 현수막부터 눈에 들어왔다. 「마흔세 해 동안 고마웠습니다. 해오름 동물원은 4월 30일 문을 닫습니다.」 매표소 셔터는 반쯤 내려와 있었고, 코끼리 열차 두 칸은 바퀴에 바람이 빠진 채 주차장 끝에 주저앉아 있었다. 2027년 4월 9일 금요일 오후 네 시, 관람객은 넷이었고 넷 다 원숭이 산 앞에 모여 있었다.
원숭이 산은 해자로 빙 두른 시멘트 바위 언덕이었다. 지붕이 없었고 꼭대기에 쇠 장대가 하나 박혀 있었다. 장대 끝에서 일본원숭이 한 마리가 한 발로 버티고 있었다. 얼굴은 잘 익은 자두처럼 붉었고, 머리에는 금색 칠이 반쯤 벗겨진 아이용 플라스틱 머리띠를 썼으며, 오른손에는 부러진 대걸레 자루를 쥐었다. 꼬장이었다.
꼬장은 대걸레 자루를 머리 위에서 두 바퀴 돌리고, 왼손을 눈썹에 붙여 먼 데를 바라보았다. 먼 데라고 해 봐야 매점 지붕이었다.
“엄마, 손오공이다!”
유모차 옆의 아이가 소리쳤다. 꼬장은 이 말을 알았다. 동물원 짐승들은 짐승끼리 말이 통했지만, 사람 귀에는 짐승의 말이 끽끽 꽥꽥 하는 울음으로만 들렸다. 짐승들도 사람 말은 거의 몰랐고, 날마다 수천 번 듣는 몇 마디만 알았다. 밥, 안 돼, 제 이름, 그리고 손오공. 손오공이 누구인지 꼬장은 몰랐다. 아이들이 저를 보고 가장 크게 외치는 말이니 원숭이에게 붙이는 가장 높은 칭찬이라고 여겼다.
칭찬을 들으면 꼬장은 앞뒤를 안 봤다. 장대 끝을 차고 공중제비를 넘었다. 한 바퀴 반을 돌 작정이었는데 연습한 것은 한 바퀴뿐이어서, 나머지 반 바퀴는 해자 물속에서 마저 돌았다.
아이가 손뼉을 쳤다. 아이 엄마가 과자 봉지를 던지려 하자 해자 건너에서 고함이 날아왔다.
“던지지 마세요! 이 웬수 이빨 다 썩어요!”
정수리가 반들반들한 사육사가 고무장화를 철벅거리며 난간으로 달려왔다. 원숭이 사를 이십 년 맡아 온 염두식이었다. 두식은 물에 빠진 꼬장을 내려다보며 혀를 찼다.
“꼬장아, 반 바퀴는 연습하고 돌라고 했지? 몇 번을 말해?”
꼬장은 물을 뚝뚝 흘리며 바위로 기어올라 머리띠부터 고쳐 썼다. 두식의 말 가운데 알아들은 낱말은 ‘꼬장’ 하나였다. 두식이 젖병을 물려 키운 여덟 해 동안, 꼬장은 제 이름이 불리면 한 번도 빠짐없이 칭찬으로 들었다.
*
바위 아래 그늘에서는 무리 서른 마리가 서로 털을 고르며 꼬장을 구경하고 있었다. 털이 듬성듬성 빠진 늙은 우두머리가 콧김을 뿜었다.
“또 빠졌다. 무리 망신이다. 끙.”
“관객이 넷이나 왔어요, 대장.” 꼬장이 몸을 털며 말했다. “어제는 둘이었어요. 날마다 배로 늘면 다음 주엔 여덟, 다다음 주엔 열여섯—”
“다다음 주엔 동물원이 없다.”
우두머리가 실내 우리 뒤로 턱짓을 했다. 시멘트 벽 너머에 나무 상자가 층층이 쌓여 있었다. 지난주에 기린 형님이 저런 상자에 들어가 트럭에 실려 나갔고, 정문 밖으로 나간 짐승은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다.
“상자가 오면 끝이다. 우리 상자도 왔다. 끙.”
꼬장은 상자 얘기가 싫었다. 대답 대신 실내 우리 벽의 안내판을 올려다보았다. 글자는 못 읽어도 사진은 알았다. 눈 덮인 산골짜기, 김이 오르는 온천물, 머리에 눈을 얹은 채 물에 몸을 담근 붉은 얼굴의 원숭이들. 두식은 안내판을 닦을 때마다 사진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무어라 길게 말했다. 사진 속 원숭이들이 어디 사는지 꼬장은 몰랐다. 저 물이 따뜻하다는 것만은 김을 보고 알았다.
*
해가 질 무렵 관리동 이층 원장실에서는 창가 새장의 구관조가 문이 열릴 때마다 “어서 오세요!”를 외쳤다. 원장은 골프 바지 차림으로 책상에 서류 두 묶음을 나란히 놓았다.
“염 주임님, 현실적으로 이게 최선입니다. 남쪽 시립 동물원이 서른 마리를 받는대요. 처음엔 스무 마리라더니, 대체 전화를 몇 통이나 하신 겁니까?”
“백열한 통이요.”
전화기가 울렸고 두식이 받았다. 남쪽 동물원이었다.
“네, 서른. 서른으로 확정이요. …네, 압니다. 그 녀석은 빼고요. 네.”
창가의 구관조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두식의 목소리를 그대로 흉내 냈다.
“빼고요! 빼고요!”
원장이 웃었다. “저놈은 아무 말이나 따라 해요.”
두식은 웃지 않았다. 첫 묶음 맨 위에 「일본원숭이 30두 이송 동의서」라는 글씨가 박혀 있었다. 원숭이 산의 무리는 서른한 마리였다. 두식은 숫자를 세 번 읽고 서명했다. 두 번째 묶음에는 제목을 읽지 않고 서명했다.
“곰은요?” 원장이 서류를 추리며 물었다. “곰도 정해야 합니다. 서른두 살짜리 받아 줄 데 없으면 수의사 불러서 재우는 거고요.”
“곰은 제 담당이 아닙니다.”
“그럼 누가 담당입니까? 다 그만뒀어요, 주임님 빼고.”
구관조가 다시 외쳤다. “빼고요!”
*
밤 열한 시, 사육사 휴게실 라디오가 수도권 전역에 낙뢰 주의보가 내렸다고 알리다가 지직거리며 끊겼다. 청계산 위에서 하늘이 갈라졌다. 번개가 송전탑을 한 번 핥고 지나간 다음, 검은 구름 배 속에서 하얀 덩이 하나가 떨어져 나왔다. 하얀 덩이는 빗줄기를 뚫고 똑바로 내려와 원숭이 산 꼭대기, 쇠 장대 바로 옆 바위에 철퍽 내려앉았다.
무리는 비명을 지르며 실내 우리로 몰려 들어갔다. 우두머리가 맨 먼저 들어갔다. 꼬장만 남았다. 상자 생각에 잠이 안 와 장대 밑에서 비를 맞고 있던 참이었다.
하얀 덩이는 평상만 했다. 빗속에서 김을 피웠고, 가까이 가니 웅웅 하는 소리가 났다. 고양이가 목을 울리는 소리를 열 배로 키운 소리였다. 꼬장은 손가락으로 찔러 보았다. 따뜻했다. 김 오른 찐빵이었다.
한 움큼 쥐어 보았다. 쥔 자리가 손바닥 밑에서 흩어졌고 손에는 축축한 바람만 남았다. 이번에는 두 손 두 발로 덥석 끌어안고 올라탔다. 몸이 안개 속으로 빠지듯 쑥 꺼지더니 엉덩이가 바위에 닿았다. 꼬장이 엉덩이를 문지르며 노려보자 구름이 웅웅 울었다. 놀리는 소리였다.
세 번째에는 아무것도 쥐지 않았다. 장대 끝에 오를 때처럼 발바닥만 대고 일어섰다. 무릎을 살짝 굽히고 대걸레 자루를 가로로 들었다. 구름이 발밑에서 출렁하다가 단단해졌다.
구름이 떠올랐다.
원숭이 산이 발밑으로 작아졌다. 해자의 물이 번개 빛에 은박지처럼 번쩍였고, 펭귄 사의 둥근 지붕과 곰 사의 바위 굴, 텅 빈 기린 마당과 낙타 우리의 모래 바닥이 차례로 발밑을 지나갔다. 담 너머로는 청계산의 젖은 숲이 시커멓게 누워 있었고, 솔잎 냄새가 빗물에 섞여 올라왔다. 여덟 해 동안 꼬장이 가 본 가장 높은 곳은 장대 끝이었다.
구름이 더 높이 올랐다. 꼬장은 겁이 나서 쭈그려 앉았고, 쭈그려 앉으면서 손으로 구름을 짚었다. 짚은 자리가 흩어졌다. 꼬장은 비명과 함께 떨어져 해자에 처박혔다. 오늘 두 번째였다.
물 위로 고개를 내밀자 구름이 낮게 내려와 꼬장의 머리를 콧등으로 문질렀다. 강아지가 하는 짓이었다.
*
새벽 네 시 반, 비가 그치고 동쪽이 허옇게 밝아 올 무렵 하늘에서 커다란 것이 울부짖으며 떨어졌다. 해자 물이 펭귄 사 지붕까지 튀어 올랐다.
물에서 기어 나온 것은 원숭이였다. 꼬장보다 두 배는 컸고, 금빛 도는 잿빛 털이 온몸에 젖어 달라붙어 있었다. 배는 복숭아 한 바구니를 삼킨 듯 불룩했고, 얼굴은 비바람에 닳은 바위였다. 한 손에는 끊어진 칡넝쿨 한 토막을 쥐고 있었다. 큰 원숭이는 바위에 올라 몸을 한 번 털고는 넝쿨 토막으로 구름을 가리켰다.
“그 구름, 내놓으렷다.”
꼬장은 구름 앞을 막아서며 대걸레 자루를 비스듬히 들었다. “누구세요?”
“하늘 화과산의 석봉이니라. 오백 년 동안 화과산 원숭이들을 거느려 왔다. 저것은 근두운이고, 화과산 밑을 받치는 구름이다. 어젯밤 벼락에 떨어져 나왔다.” 석봉이 손가락으로 위를 찔렀다. 낮게 깔린 잿빛 하늘뿐이었다. “근두운이 빠지면 화과산이 땅으로 떨어진다. 산에는 원숭이가 삼천이 산다.”
“삼천이요?”
“삼천.”
꼬장은 삼천이 얼마인지 몰랐다. 무리 서른한 마리를 몇 번이나 모아야 하는지 손가락으로 세다가 손가락이 모자라 그만두었다.
석봉은 꼬장을 밀치고 두 팔로 구름을 끌어안았다. 끌어안은 자리가 흩어졌고, 커다란 몸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구름은 슬쩍 비켜나 꼬장 뒤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철창 원숭이 뒤에 숨다니. 이 배은망덕한 솜뭉치가.”
“철창 아니에요. 해자예요.”
“그게 그거다!”
석봉은 일어나 두 번, 세 번 더 구름을 잡으려 했다. 잡을 때마다 구름은 흩어졌다가 꼬장 뒤에서 다시 뭉쳤다. 석봉은 숨을 몰아쉬며 꼬장을 내려다보았다. 오백 년 묵은 눈이 금칠 벗겨진 머리띠에 오래 머물렀다.
“좋다. 구름이 너를 따른다면 구름 위에서 가리자. 해 뜰 때 둘이 함께 근두운에 올라선다. 손을 짚거나 떨어지는 자가 진다. 마지막까지 서 있는 자가 그날 하루를 가진다.”
“내가 이기면요?”
“해 질 때까지 구름을 빌려 주마. 해가 지면 구름은 어차피 산 밑으로 올라가야 한다.”
“아저씨가 이기면요?”
“네 입으로 구름에게 산에 머물라고 말해라. 저 솜뭉치가 지금은 네 말만 듣는 모양이니.”
꼬장은 대답하기 전에 원숭이 산 너머를 둘러보았다. 펭귄 사 바위에 일곱 마리가 줄지어 서서 이편을 보고 있었다. 담 아래 토종 짐승 우리에서는 너구리 한 마리가 담벼락에 코를 대고 청계산 냄새를 맡고 있었다. 곰 사 바위 굴 입구로 늙은 불곰의 콧등이 나와 있었다. 실내 우리 뒤에는 상자가 쌓여 있었다.
“좋아요.”
*
해가 청계산 어깨 위로 머리를 내밀자 둘은 구름에 올랐다.
석봉은 바위처럼 섰다. 발을 어깨너비로 벌리고 무릎을 굽힌 채 두 팔을 늘어뜨렸다. 오백 년 동안 벼랑 끝에서 바람을 맞아 온 몸이었다. 꼬장은 대걸레 자루를 가로로 들고 한 발로 섰다. 장대 끝에서 하던 대로였다.
구름이 솟구쳤다. 원숭이 산 위로 열 길, 스무 길을 오르더니 고개 숙이는 말처럼 앞으로 기울었다가 꼬리 털듯 옆으로 흔들렸고, 이윽고 팽이처럼 돌았다. 대걸레 자루 끝이 하늘과 땅을 번갈아 가리킬 때마다 꼬장은 비명을 질렀다. 석봉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철창 원숭이가 제법 버티는구나.”
“해자라니까요!”
구름이 한 번 더 돌았다. 꼬장의 무릎이 꺾였고 손이 아래로 내려갔다. 짚기 직전에 대걸레 자루가 먼저 구름에 닿았다. 자루는 손이 아니어서 구름은 흩어지지 않았다. 꼬장은 자루를 지팡이 삼아 몸을 다시 세웠다.
“잔꾀를 부리는구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석봉의 발밑에서 구름이 잘게 일렁였다. 깃털로 발바닥 한가운데를 쓰는 듯한 일렁임이었다. 석봉의 입꼬리가 씰룩했고 배가 떨렸다. 오백 년 묵은 대장은 참고 또 참다가 끝내 웃음을 터뜨렸다. 불룩한 배가 출렁이면서 무게가 한쪽으로 쏠렸다.
석봉은 웃으면서 떨어졌다. 해자 물이 다시 펭귄 사 지붕까지 튀었다.
꼬장은 한 발로 서서 숨을 헐떡였다. 물속에서 석봉의 머리가 솟았다.
“구름이 편을 들었다! 간지럼은 반칙이다!”
“구름이 한 거예요.”
석봉은 물을 뱉고 한참 꼬장을 노려보다가 바위로 기어올라 앉았다.
“약속은 약속이다. 해 질 때까지다. 하루다.” 석봉이 넝쿨 토막으로 하늘을 찔렀다. “네가 구름을 부리는 동안 내 산은 내려앉는다. 오래 부릴수록, 멀리 갈수록 더. 해 질 녘에 얼마나 내려앉았는지 일러 주마.”
꼬장은 구름 위에서 동물원을 내려다보았다. 펭귄 사 바위에서 펭귄들이 차례로 옆 펭귄의 귀에 부리를 대고 있었다. 첫 번째 펭귄이 ‘구름’이라고 속삭인 말은 일곱 번째 펭귄에게 닿았을 때 ‘원숭이가 구름 타고 원장 머리에 똥 쌌대’가 되어 있었다.
담 아래 너구리는 아직도 담벼락에 코를 붙이고 있었다. 꼬장은 대걸레 자루 끝으로 너구리를 가리켰다.
“누구부터 태울까요?”
석봉이 젖은 털을 쥐어짜며 대답했다. 털에서 짜낸 물이 바위 틈으로 흘러들었다.
“누구를 태우든, 태운 만큼 산이 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