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5,375자)

쥐지 않는 손

동물원 원숭이가 진짜 근두운을 얻었다 · 길담이

월요일 새벽 해오름 동물원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청계산 위에 뜬 산이 어제보다 조금 높아져 있었다⁠. 한 뼘이었다⁠. 땅에서 올려다보는 사람들 가운데 알아챈 사람은 곰 사 지붕 위에 올라간 두식 하나였다⁠. 두식은 어제 저녁 산 꼭대기의 기운 바위와 청계산 꼭대기의 송전탑 사이에 손가락 다섯 개를 대 보았고⁠, 오늘 새벽 다시 대 보니 손가락 여섯 개가 들어갔다⁠.

두식은 손가락을 접고 원숭이 산을 내려다보았다⁠. 장대 끝이 비어 있었다⁠. 어젯밤에도 비어 있었다⁠. 꼬장이 장대를 비운 밤은 여덟 해 동안 처음이었다⁠.

원숭이 산 실내 우리 문간에서는 우두머리가 혼자 앉아 하늘의 산을 보고 있었다⁠. 무리는 우두머리 등 뒤에서 잤다⁠. 우두머리는 상자를 세지 않았다⁠. 산을 보았다⁠. 사람들이 하늘을 볼 때 좋은 일 난 적 없다던 늙은 원숭이가⁠, 사람들보다 더 오래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따금 콧김을 뿜었는데 끙 소리는 나지 않았다⁠.

*

꼬장은 화과산 돌 의자가 있는 굴 바닥에서 밤을 보냈다⁠. 의자에는 앉지 않았다⁠. 의자 앞 닳은 바닥에 웅크리고 잤다⁠. 근두운은 밤새 산 밑으로 내려가지 않고 굴 입구에 엎드려 웅웅거렸다⁠. 고른 자가 산 위에 있으니 구름은 산을 떠나지 않았고⁠, 구름이 떠나지 않은 밤에 산이 한 뼘 올랐다⁠.

해가 뜨기 전⁠, 석봉의 막내 손자가 꼬장을 깨웠다⁠.

“⁠할아버지가 폭포 앞으로 오래⁠. 다들 기다려⁠.⁠”

물 커튼 앞 바위 언덕마다 원숭이 삼천이 앉아 있었다⁠. 찢어진 폭포 물이 굉음을 내며 산 밖으로 쏟아졌고⁠, 물보라가 언덕을 하얗게 덮었다⁠. 석봉이 폭포 바로 앞 바위에 서 있었다⁠. 금빛 잿빛 털이 물보라에 젖어 몸에 달라붙었다⁠.

“⁠해가 뜬다⁠.⁠” 석봉이 말했다⁠. “⁠옛 법대로 선다⁠. 손을 짚거나 구름 밖으로 떨어지는 자가 진다⁠.⁠”

“⁠아저씨가 이기면 나는 땅으로 가고⁠, 내가 이기면 의자요⁠.⁠”

“⁠그렇다⁠.⁠”

꼬장은 구름에 올랐다⁠. 석봉도 올랐다⁠. 둘은 구름 위에서 마주 섰다⁠. 구름이 떠올라 물 커튼 앞 허공으로 나아갔다⁠. 발밑은 산이 아니었다⁠. 산 밖으로 쏟아지는 폭포 물이 까마득히 아래 청계산 숲까지 떨어지고 있었다⁠.

*

물보라가 구름을 때렸다⁠. 근두운은 안개를 좋아했다⁠. 폭포의 물보라는 안개 중에서도 가장 굵은 안개였다⁠. 구름이 기쁨에 몸을 부풀리며 날뛰기 시작했다⁠. 앞으로 고꾸라졌다가 뒤로 젖혀지고⁠, 옆으로 눕다가 팽이처럼 돌았다⁠. 두식이 원숭이 산에서 분무기를 돌리던 날보다 열 배는 사나웠다⁠.

석봉은 다리를 벌리고 버텼다⁠. 오백 년 동안 이 폭포 앞 벼랑에서 바람을 맞아 온 몸이었다⁠. 구름이 기울면 석봉의 다리가 버텼다⁠. 꼬장은 눈을 감고 발바닥으로 들었다⁠. 곰한테 배운 대로 무릎은 발바닥이 시키는 대로만 하고⁠, 머리는 하늘에서 내려온 줄에 묶였다고 여겼다⁠. 대걸레 자루는 가로로 들기만 했다⁠. 구름이 기울기 전에 꼬장의 무게가 먼저 움직였다⁠.

반 시간이 지났다⁠. 언덕의 삼천은 숨소리도 내지 않았다⁠. 숨소리 대신 복숭아 굴러가는 소리가 났다⁠. 늙은 원숭이들이 언덕 뒤편에서 몰래 복숭아를 걸고 내기를 하고 있었다⁠. 대장에게 건 복숭아가 한 무더기⁠, 땅 원숭이에게 건 복숭아가 한 무더기였다⁠. 땅 원숭이 무더기가 조금 작았는데⁠, 석봉의 막내 손자가 제 몫의 복숭아 셋을 땅 원숭이 무더기에 올려놓는 바람에 두 무더기 높이가 같아졌다⁠. 석봉이 구름 위에서 내기판을 보고 눈을 부라렸다⁠. 막내 손자는 할아버지에게 혀를 내밀었다⁠. 한 시간이 지났다⁠. 석봉의 이마에서 땀과 물보라가 섞여 흘렀다⁠. 꼬장의 종아리가 떨렸지만 발바닥은 떨리지 않았다⁠.

“⁠곰한테 배운 것이 많구나⁠.⁠” 석봉이 숨을 고르며 말했다⁠.

“⁠아저씨한테도 배웠어요⁠. 배치기요⁠.⁠”

석봉이 웃었다⁠. 웃으면 진다는 것을 오백 년 묵은 대장은 첫날 배웠다⁠. 석봉은 웃음을 삼켰다⁠.

구름이 폭포의 찢어진 자리로 미끄러졌다⁠. 벼랑 틈에서 물이 옆으로 세차게 터져 나오는 자리였다⁠. 물줄기가 구름 옆구리를 정통으로 때렸다⁠. 구름이 크게 기울었다⁠. 석봉이 서 있던 가장자리가 아래로 꺼졌다⁠. 석봉의 다리가 버텼고⁠, 버티는 다리 밑에서 젖은 구름 거죽이 미끄러졌다⁠.

석봉이 구름 밖으로 떨어졌다⁠.

꼬장의 손이 저절로 움직였다⁠. 여덟 해 동안⁠, 아니 원숭이로 난 날부터 꼬장의 손은 무언가를 쥐라고 생긴 손이었다⁠. 구름 위에 선 뒤로 꼬장은 날마다 쥐고 싶은 손을 참았다⁠. 쥐면 떨어지니까⁠. 지금 꼬장의 손은 참지 않았다⁠. 손은 구름을 쥐지 않았다⁠. 떨어지는 석봉의 손목을 쥐었다⁠.

석봉의 몸이 허공에서 멈추었다⁠. 아래는 까마득한 폭포였다⁠. 석봉의 무게가 꼬장의 팔을 잡아당겼다⁠. 꼬장의 몸이 구름 가장자리로 끌려갔다⁠. 발이 미끄러졌다⁠. 꼬장은 눈을 감았다⁠. 발바닥으로 들었다⁠. 손이 무언가를 쥐고 있으니 나머지 몸이 버틸 만했다⁠. 첫날 대걸레 자루를 쥐고 버텼을 때처럼⁠. 지금 꼬장이 쥔 것은 오백 살 원숭이의 손목이었다⁠.

구름이 꼬장의 발밑에서 단단해졌다⁠. 꼬장의 발은 구름을 쥐지 않았다⁠. 손만 쥐었다⁠.

꼬장은 무릎을 굽히고⁠, 석봉을 끌어 올렸다⁠. 한 뼘⁠. 두 뼘⁠. 석봉의 다른 손이 구름 가장자리에 닿았다⁠. 석봉은 구름을 짚지 않으려고 손을 허공에 든 채로⁠, 꼬장의 팔에 매달려 기어올랐다⁠. 둘은 구름 한가운데 털썩 주저앉았다⁠. 둘 다 숨을 헐떡였다⁠.

언덕의 삼천이 그제야 숨을 내쉬었다⁠. 내쉬는 소리가 폭포 소리를 덮었다⁠.

*

구름이 폭포 앞 바위로 돌아와 내려앉았다⁠. 석봉이 먼저 내렸다⁠. 구름 밖으로 떨어진 자는 석봉이었다⁠. 법대로라면 꼬장이 이겼다⁠. 늙은 원숭이들이 하나둘 엎드리기 시작했다⁠. 꼬장이 소리를 질렀다⁠.

“⁠엎드리지 마요⁠! 다들 일어나요⁠!⁠”

삼천이 엎드리다 말고 엉거주춤 멈췄다⁠. 꼬장은 구름에서 내려 석봉 앞으로 갔다⁠.

“⁠의자 필요 없어요⁠. 대장 하세요⁠. 아저씨가 오백 년 했잖아요⁠.⁠”

“⁠법은 구름이 고른 자를 의자에 앉히라고 했다⁠.⁠”

“⁠어제 앉았잖아요⁠. 구름이 앉혔잖아요⁠.⁠” 꼬장이 대걸레 자루로 굴을 가리켰다⁠. “⁠앉으라고만 했지 계속 앉아 있으라고는 안 했잖아요⁠.⁠”

석봉이 꼬장을 오래 보았다⁠. 그러다 콧방귀를 뀌었다⁠. 콧방귀 끝에 웃음이 섞였다⁠.

“⁠법을 그렇게 읽는 놈은 오백 년 만에 처음이다⁠.⁠”

“⁠대신 올라올게요⁠.⁠” 꼬장이 말했다⁠. “⁠구름은 내가 있는 데로 오잖아요⁠. 내가 여기 있으면 구름도 여기 있고⁠, 산도 안 떨어지고요⁠. 왕 말고 그냥⁠, 구름 타는 원숭이로요⁠.⁠”

꼬장은 폭포의 찢어진 자리를 보았다⁠. 물이 옆으로 터져 나가는 틈이었다⁠. 꼬장은 구름에게 손짓했다⁠. 구름이 웅 하고 떠올라 벼랑 틈으로 날아가더니 터진 자리에 몸을 꾹 밀어 넣었다⁠. 옆으로 새던 물줄기가 구름에 막혀 꺾였다⁠. 꺾인 물이 원래 자리로 돌아가 다시 커튼처럼 떨어지기 시작했다⁠. 찢어졌던 물 커튼이 한 장으로 이어졌다⁠. 구름은 틈에 박힌 채로 웅웅거렸다⁠. 물보라를 실컷 맞으니 좋은 모양이었다⁠.

삼천이 환호했다⁠. 어린것들이 바위 위에서 대왕 흉내를 냈다⁠. 석봉의 막내 손자가 꼬장의 꼬리를 찾다가 없으니 대신 머리띠를 잡아당겼다⁠.

석봉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땅 원숭이를 산에 들인 적은 오백 년 동안 한 번도 없었다⁠. 철창 원숭이라고 부르던 원숭이였다⁠. 석봉은 젖은 털을 쥐어짜며 말했다⁠.

“⁠무엇을 원하느냐⁠. 공짜로 올라올 리가 없다⁠.⁠”

“⁠하루요⁠.⁠” 꼬장이 말했다⁠. “⁠내일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 땅에 내려가서 인사하고 올게요⁠. 내일 상자들이 떠나요⁠. 두식 아저씨도요⁠.⁠”

석봉은 하늘을 보았다⁠. 첫날 해자에서 젖은 털을 쥐어짜던 때와 같은 얼굴이었다⁠.

“⁠하루다⁠.⁠”

꼬장이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머뭇거렸다⁠. 발가락으로 바위를 긁었다⁠.

“⁠우리 무리도요⁠. 서른 마리⁠. 같이 올라오면 안 돼요⁠? 복숭아도 많고⁠, 해자도 없고⁠.⁠”

“⁠철창 원숭이 서른을⁠?⁠” 석봉이 고개를 저었다⁠. “⁠여기 벼랑은 사람 손 탄 원숭이가 오를 벼랑이 아니다⁠. 겨울 바람은 지붕 없는 데서 처음 맞는 놈을 날려 버린다⁠. 삼천이 서른을 반기지도 않을 것이다⁠. 한 철도 못 산다⁠.⁠” 석봉이 꼬장을 내려다보았다⁠. “⁠너구리 일을 잊었느냐⁠?⁠”

꼬장은 잊지 않았다⁠. 찢어진 귀와 갈비뼈와⁠, 그릇 바닥이 혀에 긁히는 소리를 잊지 않았다⁠. 꼬장은 발가락을 멈췄다⁠.

“⁠대장은 상자 탈 거예요⁠. 세어 놨대요⁠. 서른 개⁠.⁠”

“⁠현명한 놈이구나⁠.⁠”

“⁠털을 너무 세게 골라요⁠. 아파요⁠.⁠”

석봉이 처음으로 소리 내어 웃었다⁠. 웃어도 이번에는 떨어질 구름이 발밑에 없었다⁠.

*

같은 시각 관리동 이층 원장실에서는 두식이 원장 책상 앞에 서 있었다⁠. 출입증 없이 들어온 두식을 경비원이 막지 않았다⁠. 방송국 카메라가 정문에 수십 대였다⁠.

두식이 책상 위에 봉투 하나를 내려놓았다⁠.

“⁠퇴직금입니다⁠. 이십 년 치요⁠. 꼬장이 체험관 계약을 제가 사겠습니다⁠.⁠”

원장은 봉투를 열어 보지도 않았다⁠. 손가락으로 봉투를 두식 쪽으로 밀었다⁠.

“⁠주임님⁠, 체험관이 어제 값을 세 배로 불렀어요⁠. 하늘에 산이 뜨고 나서요⁠. 주임님 이십 년이 그 값에 반도 안 됩니다⁠. 현실적으로⁠.⁠”

“⁠원장님⁠.⁠”

“⁠그리고 남쪽에서 연락 왔습니다⁠. 주임님 데려가고 싶답니다⁠. 원숭이들 새 우리에 적응할 때까지 같이 와 달라고⁠. 계약직이고⁠, 일 년이요⁠.⁠” 원장이 의자에 기댔다⁠. “⁠잘됐잖아요⁠. 서른 마리랑 같이 가시면 되죠⁠. 하나는 빼고요⁠.⁠”

창가 새장의 구관조가 고개를 갸웃했다⁠.

“⁠빼고요⁠!⁠”

두식은 봉투를 집어 앞치마 주머니에 넣었다⁠. 원장실 문을 열다 말고 돌아섰다⁠.

“⁠내일 꼬장이는 제가 상자에 넣겠습니다⁠. 다른 사람 손은 안 탑니다⁠. 그것만 해 주세요⁠.⁠”

원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식이 나간 뒤 원장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체험관 사장이었다⁠. 사장의 목소리가 수화기 밖까지 새어 나왔다⁠.

“⁠내일 열 시에 상자 들고 갑니다⁠. 머리띠 꼭 씌워 놔요⁠. 머리띠 없으면 손님들이 손오공인 줄 몰라요⁠.⁠”

“⁠씌워 놓겠습니다⁠.⁠”

전화를 끊고도 원장은 오래 창밖을 보았다⁠. 창밖 청계산 위에 산이 있었다⁠. 원장은 휴대전화를 꺼내 산을 한 장 찍었다⁠. 찍고 나서 왜 찍었는지 몰라 사진을 지우지 않고 두었다⁠.

*

해가 지고 밤이 왔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눈이 동물원과 산 사이 어디쯤에 떠 있다면⁠, 두 곳이 한꺼번에 보였다⁠.

아래에는 해오름 동물원이 있었다⁠. 원숭이 산 앞마당에 상자 서른 개가 줄을 맞춰 놓였고⁠, 상자마다 내일 아침 탈 원숭이의 몸무게가 매직으로 적혀 있었다⁠. 곰 사에서는 두식이 곰 옆에 누워 천장을 보았다⁠. 두식은 트로트 한 소절을 흥얼거리다 말고 곰에게 말했다⁠. 내일 너도 간다고⁠, 강원도 산골이라고⁠, 거기는 눈이 많이 온다더라고⁠. 곰은 낱말을 하나도 못 알아들었지만 두식의 목소리가 끝날 때마다 하품을 했다⁠. 하품이 끝나면 두식은 다음 말을 했다⁠. 펭귄 사의 늙은 둘은 하늘의 산을 향해 나란히 섰다⁠.

위에는 화과산이 있었다⁠. 물 커튼 뒤 굴 안에서 꼬장이 돌 의자 앞 바닥에 누워 있었다⁠. 의자는 석봉이 다시 차지하고 앉아 코를 골았다⁠. 꼬장은 손을 들어 들여다보았다⁠. 원숭이의 손이었다⁠. 오늘 이 손이 쥔 것은 구름이 아니었다⁠.

산이 밤새 또 한 뼘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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