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5,528자)

금테

동물원 원숭이가 진짜 근두운을 얻었다 · 길담이

화요일 아침⁠, 해오름 동물원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정문에서 과천역까지 사람이 이어져 있었다⁠. 마흔세 해 동안 동물원에 이만한 사람이 온 날은 없었다⁠. 사람들은 손에 휴대전화를 들었고 몇몇은 종이를 들었다⁠. 종이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꼬장 가지 마⁠」 「⁠구름 원숭이 고마워⁠」라고 적혀 있었다⁠. 정문 안쪽 주차장에는 트럭 세 대가 엉덩이를 맞대고 있었다⁠. 남쪽 시립 동물원의 커다란 냉난방 트럭⁠, 강원도 곰 보호 시설의 철창 트럭⁠, 그리고 옆구리에 「⁠쑥쑥 실내 동물 체험관⁠」을 그린 작은 승합차⁠.

청계산 위의 산은 어제보다 높았다⁠. 아래쪽 절반이 구름 층에 들어가 있었고⁠, 기운 벼랑에서 쏟아지던 폭포는 보이지 않았다⁠. 해가 뜨면서 물 커튼 동굴 앞 벼랑 틈에 박혀 있던 구름 한 덩이가 빠져나왔다⁠. 빠져나온 자리에는 밤새 화과산 원숭이 삼천이 꼰 칡넝쿨이 대신 틀어막혀 있었다⁠. 하루는 버틸 넝쿨이었다⁠. 아침 뉴스는 산이 사흘째 조금씩 오르고 있다고 전하며⁠, 이번에도 무엇인지는 말하지 못했다⁠.

근두운이 원숭이 산에 내려앉았다⁠. 꼬장이 내렸다⁠. 석봉도 내렸다⁠. 석봉은 해자를 뛰어넘어 난간 위에 앉았다⁠. 하루를 지키러 따라온 길이었다⁠. 난간 밖의 아이 하나가 석봉을 보고 소리쳤다⁠.

“⁠엄마⁠, 오랑우탄이다⁠!⁠”

석봉은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이빨을 드러내지 않았다⁠. 손을 들어 아이에게 흔들었다⁠. 아이가 좋아서 펄쩍 뛰었다⁠. 석봉은 흔들던 손으로 제 배를 쓰다듬었다⁠.

“⁠오늘 하루는 오랑우탄이어도 좋다⁠.⁠”

두식이 곰 사에서 원숭이 산으로 걸어오다가 난간 위의 석봉을 보았다⁠. 두식은 걸음을 멈추고 앞치마 주머니를 뒤졌다⁠. 곶감 봉지에 남은 것은 둘이었다⁠. 두식은 하나를 꺼내 석봉에게 내밀었다⁠.

“⁠너도 오늘 가냐⁠? 너는 어디서 왔는지 끝내 모르겠다⁠. 먹어라⁠.⁠”

석봉은 곶감을 받았다⁠. 받아서 냄새를 맡고⁠, 한 입 베어 물었다⁠. 사람 말을 다 알아듣는 짐승은 동물원에 석봉 하나였다⁠. 석봉은 곶감을 씹으며 두식에게 고개를 한 번 숙였다⁠. 화과산에서는 대장이 고개를 숙이는 일이 없었다⁠. 두식의 눈에는 큰 원숭이가 곶감이 맛있어서 꾸벅 조는 것으로 보였다⁠.

“⁠맛있지⁠? 땅의 감이다⁠. 말려도 달아⁠.⁠”

석봉은 대답 대신 반쯤 남은 곶감을 볼주머니에 넣었다⁠. 볼 한쪽이 불룩해졌다⁠.

*

토종 짐승 우리는 어제 비었다⁠. 생태 공원에서 온 차가 너구리를 실어 갔다⁠. 사람이 먹이를 주되 울타리가 넓고 진짜 흙이 깔린 곳이라고 했다⁠. 떠나기 전에 너구리는 철망에 코를 대고 원숭이 산을 향해 마지막으로 소리쳤다⁠. 거기 가서 개구리 잡는 법부터 배우겠다고⁠, 배우고 나서 숲을 보겠다고⁠. 꼬장은 너구리의 찢어진 귀가 차에 실리는 것을 장대 끝에서 보았다⁠.

*

원숭이 산 앞마당에는 상자 서른 개가 줄을 맞춰 놓여 있었다⁠. 문이 다 열려 있었다⁠. 무리는 실내 우리 문간에 모여 상자를 보았다⁠. 우두머리가 맨 앞에 앉았다⁠.

꼬장은 우두머리 옆에 앉았다⁠. 실내 우리 벽의 안내판을 올려다보았다⁠. 눈 덮인 산골짜기⁠, 김이 오르는 온천물⁠, 머리에 눈을 얹은 붉은 얼굴들⁠.

“⁠대장⁠. 저기 가 볼래요⁠? 오늘 하루면 가요⁠. 구름 타면 금방이에요⁠. 눈도 맞고 따뜻한 물에도 들어가고⁠.⁠”

우두머리는 안내판을 오래 보았다⁠. 사진 속 원숭이들의 얼굴이 무리의 얼굴과 똑같이 붉었다⁠.

“⁠저 원숭이들은 저 물이 제 거다⁠.⁠” 우두머리가 말했다⁠. “⁠우리가 가면 우리는 남의 물에 들어가는 거다⁠. 저 산 원숭이들이 우리를 안 받는다⁠. 받아도 우리가 못 버틴다⁠. 너구리 봤잖냐⁠. 끙⁠.⁠”

“⁠그래도 한 번은⁠—⁠”

“⁠한 번 보고 오는 데가 아니다⁠. 거기는 사는 데다⁠.⁠” 우두머리가 일어섰다⁠. “⁠우리는 상자 탄다⁠. 남쪽에도 물이 있다더라⁠. 따뜻하지는 않아도⁠. 끙⁠.⁠”

우두머리는 꼬장의 어깨 털을 한 줌 쥐고 서툴게 골랐다⁠. 이번에는 짧았다⁠. 털을 놓고 우두머리는 맨 앞의 상자로 걸어갔다⁠. 상자 앞에서 한 번 돌아보았다⁠.

“⁠세어 봤다⁠. 서른이다⁠. 딱 맞다⁠.⁠”

우두머리가 상자에 들어갔다⁠. 무리가 하나씩 뒤를 따랐다⁠. 꼬장이 털을 골라 주던 늙은 암컷이 들어가기 전에 꼬장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었다⁠. 어린것 하나는 상자 문턱에서 손을 등 뒤로 감추고 외쳤다⁠. “⁠구름 탄다⁠! 손 안 쓴다⁠!⁠” 그리고 상자 안으로 굴러 들어갔다⁠.

두식은 상자마다 무릎을 꿇고 들여다보며 말했다⁠. 물 잘 먹어라⁠, 남쪽은 덥다더라⁠, 싸우지 마라⁠, 대장 말 들어라⁠. 원숭이들은 낱말을 알아듣지 못했지만 상자마다 두식의 목소리가 한 번씩 들어갔다 나왔다⁠. 두식은 서른 번째 상자의 문을 닫고 오래 일어나지 않았다⁠.

*

곰 사에서는 강원도에서 온 사람들이 철창 트럭의 문을 열었다⁠. 늙은 불곰은 두식이 앞에서 걷자 두식의 뒤를 느릿느릿 따라 나왔다⁠. 어깨에 바른 약이 아직 번들거렸다⁠. 곰은 트럭에 오르기 전에 원숭이 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꼬장이 장대 밑에서 보고 있었다⁠.

곰이 뒷다리로 일어섰다⁠. 앞발 하나를 배에 대고 허리를 숙였다⁠. 서커스 천막의 인사였다⁠. 정문 밖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서른두 해 만에 박수 칠 사람이 있는 인사였다⁠. 곰은 박수 소리를 들으며 트럭에 올랐고⁠, 오르자마자 하품을 했다⁠.

펭귄 사에서는 늙은 펭귄 둘이 바닷가 도시의 수족관에서 온 상자 앞에 줄을 섰다⁠. 둘은 상자에 들어가며 마지막 소문을 퍼뜨렸다⁠.

“⁠꼬장이⁠.⁠” “⁠하늘에⁠.⁠” “⁠산다⁠.⁠”

이번 소문은 한 글자도 부풀지 않았다⁠.

*

열 시 정각⁠, 체험관 승합차의 문이 열리고 사장이 내렸다⁠. 한 손에 작은 상자를⁠, 한 손에 포획망을 들고 있었다⁠. 원장이 사장 옆에 붙어 원숭이 산으로 왔다⁠.

“⁠머리띠 씌워 놨죠⁠? 머리띠 없으면 손님들이 손오공인 줄 몰라요⁠.⁠”

두식이 사장의 손에서 작은 상자를 받았다⁠.

“⁠제가 넣겠습니다⁠. 다른 손은 안 탑니다⁠.⁠”

두식은 상자를 들고 관리용 쪽문으로 원숭이 산에 들어갔다⁠. 꼬장은 장대 밑에 앉아 있었다⁠. 두식은 상자를 바위에 내려놓고 문을 열었다⁠. 꼬장을 보았다⁠. 꼬장도 두식을 보았다⁠. 정문 밖 수천 명이 숨을 죽였다⁠.

꼬장이 장대를 탔다⁠.

장대 끝에서 꼬장은 한 발로 섰다⁠. 대걸레 자루를 머리 위에서 두 바퀴 돌렸다⁠. 왼손을 눈썹에 붙이고 먼 데를 보았다⁠. 먼 데에 청계산이 있었고⁠, 청계산 위에 산이 있었다⁠. 처음으로 먼 데에 볼 것이 있었다⁠.

“⁠손오공이다⁠!⁠”

어느 아이가 외쳤다⁠. 수천 명이 따라 외쳤다⁠. 꼬장은 이제 손오공이라는 이름의 주인을 알았다⁠. 꼬장은 엉덩이를 흔들지 않았다⁠. 대신 장대 끝을 찼다⁠.

한 바퀴⁠. 꼬장의 몸이 하늘에서 한 바퀴를 돌았다⁠. 연습한 것은 한 바퀴뿐이었다⁠. 나머지 반 바퀴를 돌기 시작했을 때 꼬장의 몸은 이미 해자를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여덟 해 동안 나머지 반 바퀴는 언제나 해자 물속에서 끝났다⁠.

해자 물 바로 위에서 구름이 꼬장 밑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꼬장은 구름 위에서 나머지 반 바퀴를 마저 돌았다⁠. 돌고 나서 한 발로 내려섰다⁠. 손은 어디에도 짚지 않았다⁠.

정문 밖이 터졌다⁠. 박수 소리가 동물원 담을 넘어 청계산까지 울렸다⁠. 실내 우리 앞마당의 상자 서른 개 안에서 원숭이들이 일제히 소리를 질렀다⁠. 난간 위의 석봉이 무릎을 쳤다⁠.

*

꼬장은 구름을 낮춰 바위로 내려왔다⁠. 두식 앞에 섰다⁠. 두식이 쪼그려 앉았다⁠. 둘의 얼굴 높이가 같아졌다⁠. 열린 상자가 둘 사이 바위 위에 놓여 있었다⁠.

꼬장은 머리띠를 벗었다⁠.

금칠이 반쯤 벗겨진 아이용 플라스틱 머리띠였다⁠. 다섯 해 전 어느 아이가 난간 너머로 떨어뜨린 것을 꼬장이 주워서 주운 날부터 하루도 벗지 않았다⁠. 꼬장은 머리띠를 두 손으로 들어 두식의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두식의 손바닥이 머리띠를 받았다⁠. 두식의 손가락이 머리띠를 쥐었다⁠.

두식은 머리띠를 오래 보았다⁠. 그리고 앞치마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곶감 봉지가 나왔다⁠. 마지막 하나였다⁠. 두식은 곶감을 꼬장의 손에 쥐여 주었다⁠. 미안할 때 주던 곶감이었다⁠.

꼬장은 곶감을 받았다⁠. 받아서 한 입 베어 물었다⁠. 단맛이 혀에 오래 붙었다⁠.

“⁠꼬장아⁠.⁠”

두식이 이름을 불렀다⁠. 한 번이었다⁠. 두 번 부르지 않았다⁠. 세 번 부르지 않았다⁠. 두식은 겁이 날 때 같은 말을 세 번 했다⁠. 오늘은 한 번만 불렀다⁠.

두식이 일어섰다⁠. 열린 상자를 발로 밀어 바위 뒤로 치웠다⁠. 한 걸음 물러섰다⁠.

“⁠주임님⁠! 뭐 하세요⁠! 상자에 넣으셔야죠⁠!⁠”

체험관 사장이 포획망을 들고 해자 난간으로 뛰어왔다⁠. 원장이 뒤따랐다⁠. 사장은 난간 너머로 포획망을 힘껏 휘둘렀다⁠. 그물은 꼬장에게 닿지 않았다⁠. 휘감긴 것은 따라오던 원장의 머리였다⁠. 원장이 그물을 뒤집어쓴 채 외쳤다⁠.

“⁠계약금⁠! 현실적으로 계약금은⁠!⁠”

꼬장은 곶감을 입에 문 채 구름에 올랐다⁠. 무릎을 굽히고 발바닥으로 들었다⁠. 손에는 아무것도 들지 않았다⁠. 대걸레 자루는 바위 위에 두고 왔다⁠. 쥐고 싶은 손이 근질거리지 않았다⁠.

석봉이 난간에서 뛰어올라 구름 가장자리에 섰다⁠. 볼 한쪽이 아직 곶감으로 불룩했다⁠. 구름이 떠올랐다⁠. 원숭이 산이 작아졌다⁠. 상자 서른 개가 실린 트럭이 작아졌다⁠. 곰을 태운 트럭과⁠, 그물을 뒤집어쓴 원장과⁠, 빈 상자를 든 체험관 사장이 작아졌다⁠. 정문 밖 수천 개의 휴대전화가 하늘을 향해 반짝였다⁠.

바위 위에 서 있는 두식만은 끝까지 작아지지 않았다⁠. 꼬장은 오래 보았다⁠. 오래 보면 무릎이 굳는다는 것을 알았다⁠. 오늘은 무릎이 굳지 않았다⁠.

“⁠내려다보지 마라⁠.⁠” 석봉이 말했다⁠. “⁠땅을 오래 보면 발바닥이 땅으로 간다⁠.⁠”

“⁠안 가요⁠.⁠” 꼬장이 말했다⁠. “⁠발바닥은 구름에 있어요⁠.⁠”

석봉은 꼬장의 발을 내려다보았다⁠. 짧은 꼬리⁠, 붉은 얼굴⁠, 금칠 묻은 손톱⁠, 구름을 누르기만 할 뿐 아무것도 쥐지 않는 발가락⁠. 석봉은 볼주머니의 곶감을 꺼내 반으로 갈라 하나를 꼬장에게 내밀었다⁠. 꼬장의 입에는 두식의 곶감이 아직 물려 있었다⁠. 꼬장은 석봉의 반쪽을 받아 볼주머니에 넣었다⁠. 꼬장의 볼 한쪽도 불룩해졌다⁠.

*

점심 무렵 원숭이 산은 비어 있었다⁠. 원장이 그물을 머리에서 겨우 떼어 내고 바위 위로 올라왔다⁠. 체험관 사장은 빈 상자를 승합차에 싣고 계약금 얘기를 하러 관리동으로 먼저 올라갔다⁠. 원장은 장대 밑에서 부러진 대걸레 자루 하나를 주웠다⁠. 자루를 이리저리 돌려 보다가 머리 위에서 한 바퀴 돌려 보았다⁠. 자루가 손에서 빠져 해자로 떨어졌다⁠. 원장은 해자 물속의 자루를 오래 내려다보았다⁠. 그러고는 휴대전화를 꺼내 어제 찍은 산 사진을 다시 보았다⁠. 지우지 않았다⁠.

*

오후 세 시⁠, 남쪽 시립 동물원의 트럭이 정문을 빠져나갔다⁠. 두식은 운전석 옆 발판에 올라서 있었다⁠. 원숭이들이 새 우리에 적응할 때까지 같이 가는 계약이었다⁠. 정문 밖 사람들이 트럭에 손을 흔들었고⁠, 두식은 손을 흔드는 대신 앞치마 주머니에서 머리띠를 꺼냈다⁠.

두식은 머리띠를 반들반들한 정수리에 끼웠다⁠. 아이용이라 꽉 끼었다⁠. 관자놀이가 눌렸다⁠. 금칠 벗겨진 플라스틱이 두식의 머리를 조였다⁠. 두식은 머리띠를 벗지 않고 고개를 들었다⁠.

청계산 위에서 산 하나가 천천히 구름 층 속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산 밑의 바위 뿌리가 하나씩 구름에 잠겼다⁠. 맨 마지막 뿌리 옆⁠, 구름 한 덩이 가장자리에 붉은 얼굴의 원숭이 하나가 한 발로 서서 왼손을 눈썹에 붙이고 있었다⁠. 먼 데를 보는 자세였다⁠. 먼 데에 트럭 한 대가 있었다⁠.

트럭이 큰길로 꺾었다⁠. 두식의 정수리에서 금테가 오후 햇볕을 받아 한 번 번쩍였다⁠.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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