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121자) · 이오 · 1월 30일
장독
겨울 정거장의 편지 · 서지오
이장 집은 윗골 맨 끝, 뒷산이 마당까지 내려온 자리에 있다. 2019년 여름 이후로 뒤꼍에는 사람 키 세 배쯤 되는 콘크리트 옹벽이 섰고, 옹벽 위로는 깎인 산허리가 붉은 흙을 드러낸 채 눈을 이고 있다. 그 옹벽은 군에서 쌓았다. 산을 깎은 쪽은 한 번도 와 보지 않았다고 마을 사람들은 말한다.
1월 30일 아침, 영감님과 나는 그 집 대문 앞에 섰다. 영감님은 역 제복을 입고 있었다. 폐선 때 반납하지 않은 남색 겨울 제복이었는데, 어깨가 헐렁했고 소매 끝이 닳아 반들거렸다. 나는 그런 옷이 영감님 집에 아직 있는 줄 몰랐다.
“왜 그걸 입으셨습니까?”
“역에서 한 일이니까.”
영감님은 대문을 두드리지 않고 밀었다. 대문이 삐걱 열렸다. 이장이 마당에서 도끼로 장작을 패고 있었다. 도끼날이 통나무에 박히는 소리가 옹벽에 부딪혀 두 번 울렸다. 이장은 우리를 보고 도끼를 통나무에 박아 둔 채 허리를 폈다.
“아침부터 둘이 웬일이야? 함 또 늘었다고 자랑하러 왔나?”
영감님은 마당 한가운데까지 걸어 들어가서 섰다. 이장과 두 걸음 떨어진 자리였다.
“경수.”
“왜요, 형님.”
“내가 여덟 해 동안 역 함에 온 편지를 반석환한테 넘겼어.”
이장은 처음에 웃으려고 했다. 입꼬리가 올라가다 멈췄다. 영감님이 계속 말했다. 재우의 병원비, 신문지에 싼 편지 뭉치, 매표 창구 서랍, 아침 일곱 시의 검은 차. 목소리가 한 번도 높아지지 않았고 한 번도 끊기지 않았다. 밤새 몇 번이고 되뇌어 둔 말처럼 차례가 반듯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영감님은 칠월 삼일을 말했다. 한여름 눈, 여섯 시 이십 분 차, 14번 함, 한 통.
“뒷산 밑 집 편지는 다 달라고 했어. 그래서 그것도 줬어. 안 읽고.”
이장이 움직인 것은 그 말이 끝나고 숨 한 번 쉴 사이였다.
그는 두 걸음을 한 걸음에 건넜다. 영감님의 남색 제복 멱살을 두 손으로 틀어쥐고 장독대 쪽으로 밀어붙였다. 영감님의 등이 장독 뚜껑에 부딪혀 옹기 울리는 소리가 났다. 이장의 얼굴이 영감님 얼굴 한 뼘 앞에 있었다. 이마의 핏줄이 지렁이처럼 불거졌다.
“칠월 삼일.”
“칠월 삼일.”
“열이틀에 무너졌어. 열이틀에.”
“알아.”
“아흐레야, 형님. 아흐레. 그 편지 순례 손에 들어갔으면 그 여자가 아흐레 동안 집에 있었겠어? 친정에라도 갔겠지. 나한테 전화라도 했겠지.”
영감님은 멱살을 잡힌 채로 대답하지 않았다. 팔을 들어 막지도 않았다. 붕대 감은 왼손이 장독 뚜껑 가장자리를 짚고 있었다.
나는 이장의 팔을 잡았다. 잡는 순간 이장의 팔꿈치가 내 명치로 들어왔다. 숨이 빠져나가면서 나는 마당 눈 위에 무릎을 꿇었다. 이장이 나를 내려다봤다.
“너는? 너는 알았냐?”
“일주일 전에 알았습니다.”
“일주일 전에 알고 그 쇠통을 지켰어? 그 함에 이름 걸라고 동네를 돌아?”
“함은 잘못한 게 없습니다.”
“함이 없었으면 훔칠 것도 없었어!”
이장의 목소리가 옹벽에 부딪혀 마당으로 도로 떨어졌다. 그는 멱살을 놓았다. 영감님이 장독대에서 미끄러져 주저앉았다. 이장은 우리 둘 사이에 서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입김이 하얗게 연달아 터졌다.
“그 편지 지금 어딨어?”
“반석환이 가져갔습니다. 아직 갖고 있는지는 모릅니다.”
“그 새끼 어디 있어?”
“경수야.” 영감님이 장독에 기댄 채로 말했다. “내가 경찰서에 가서 다 말하겠어. 그 사람 앞에서도 말하겠어. 네가 가서 치면 너만 잡혀가.”
“여덟 해 지난 걸 누가 믿어? 형님 말 하나 가지고? 편지도 없는데?”
이장은 도끼 쪽으로 돌아섰다. 나는 무릎을 꿇은 채로 그 손을 봤다. 손은 도끼 자루를 지나쳐서 통나무 위에 짚였다. 한참 그렇게 짚고 있었다.
“가. 둘 다.”
우리는 대문을 나왔다. 영감님은 장독에 부딪힌 등을 펴지 못하고 조금 구부정하게 걸었고, 나는 명치가 욱신거려서 숨을 반씩 쉬었다. 둘 다 말이 없었다. 윗골 비탈을 반쯤 내려왔을 때 영감님이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이장 집 굴뚝에서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도끼 소리는 다시 나지 않았다.
“재우가 떨어진 날, 나는 반가 멱살을 못 잡았어. 병원비 얘기가 먼저 나와서.”
영감님은 그 말만 하고 다시 걸었다. 제복 등판에 장독 뚜껑 자국이 동그랗게 찍혀 있었다. 나는 그 자국을 손으로 털어 주려다가 그만두었다. 눈이 아니라 옹기 먼지였고, 털어도 남을 것 같았다.
*
그날 오후 두 시, 마을 방송이 한 번 울렸다. 이장의 목소리였는데 평소보다 낮았다.
“역에 이름 건 집들. 그 함에 여덟 해 동안 온 편지를 누가 빼돌렸는지 알고 싶으면 심만석 씨한테 물어보세요. 그 함이 순례를 죽였어요. 이상.”
세 시에 대합실 문이 열렸다. 이장의 사촌 목경태 씨가 들어왔다. 그는 우리를 보지 않고 벽으로 가서 제 이름이 적힌 라면 상자를 떼어 냈다. 못이 빠지면서 벽의 합판 조각이 같이 떨어졌다. 그 뒤로 다섯 사람이 더 왔다. 전부 목씨 집안이거나 이장에게 도장을 맡겼던 집이었다. 한 사람은 떼면서 영감님을 봤고, 한 사람은 떼면서 바닥에 침을 뱉었고, 한 사람은 떼면서 나한테 미안하다고 했다.
영감님은 난로 앞에 앉아서 그것을 다 봤다. 붕대 감은 손을 무릎에 올리고, 사람이 하나 들어올 때마다 고개를 들었다가 내렸다.
나는 막지 않았다. 목경태 씨가 첫 상자를 뗄 때 한 걸음 나섰다가 멈췄다. 그 함에는 목경태 씨 이름이 걸려 있었다. 제 이름을 제가 떼는 것을 내가 막을 수는 없었다.
네 번째 사람이 상자를 떼고 있을 때 박두칠 씨가 들어왔다. 그는 문간에서 벽의 못 자국을 보고, 떼어 내는 손을 보고, 난롯가의 영감님을 봤다. 방송은 그도 들었을 것이다. 그는 영감님 쪽으로 가지 않고 상자를 떼던 사람 앞으로 갔다. 아랫골 목씨네 둘째였다.
“야, 니 그거 떼면 니 편지는 어디로 가냐?”
“안 받아요. 안 받으면 되잖아요.”
“안 받으면 누가 받는데? 우체국이 반송해 주냐? 다섯 해 뒤의 니가 니한테 막걸리 줄이라고 쓴 편지를 누가 받아?”
“형님은 막걸리 줄였어요?”
박두칠 씨는 입을 다물었다가, 패딩 주머니에서 빈손을 꺼내 보였다. 병이 없었다.
“줄였다. 보름째다. 간 수치 백이십 되면 두리를 못 안아.”
목씨네 둘째는 상자를 떼던 손을 멈추고 한참 서 있었다. 그러다 결국 상자를 떼어 옆구리에 끼고 나갔다. 나가면서 문을 세게 닫지는 않았다. 박두칠 씨가 그 뒤통수에 대고 소리쳤다.
“떼어 간 거 버리지는 마라! 마음 바뀌면 도로 걸어!”
해 질 무렵 벽에는 못 자국이 열두 개 늘었다. 명패 걸린 함이 마흔넷에서 서른여덟이 되었다. 떨어진 합판 조각을 주워 모으니 손바닥 두 개만큼이었다. 나는 그것을 버리지 않고 매표 창구 안쪽에 쌓아 두었다. 저녁에 3번 함 봉투를 불빛에 비춰 보니 발신일의 마지막 숫자가 다시 연필 자국으로 돌아가 있었다.
*
반하람이 온 것은 일곱 시였다. 눈은 오지 않았다. 그녀는 대합실 문을 열고 벽의 못 자국들부터 봤다. 레이저 측정기가 패딩 주머니에서 반쯤 비어져 나와 있었는데 꺼내지 않았다.
“마을에 들어오다가 방송 녹음을 들었어요. 경로당 앞에서 할머니들이 틀어 놓고 계시더라고요.”
나는 그녀에게 칠월 삼일과 칠월 열이틀을 말했다. 그녀는 서서 들었다. 다 듣고 나서 그녀는 영감님이 비워 둔 의자에 앉았다. 영감님은 아까 먼저 내려갔다. 가면서 난로에 장작을 가득 채워 두고, 나한테 불 꺼지면 넣으라고 했다. 이 년 만에 처음 듣는 부탁이었다.
“뒷산 깎은 거, 우리 회사예요.”
“압니다.”
“진입로 공사. 2018년 가을이었어요. 허가가 안 나서 먼저 깎고 나중에 받으려고 했대요. 저 그때 대학원생이었어요. 아버지가 저녁 먹으면서 자랑했어요. 허가 기다리면 해 넘어간다고, 먼저 하는 놈이 이긴다고.”
그녀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또렷했는데 손이 무릎 위에서 서로를 꽉 쥐고 있었다. 손가락 마디가 하얬다.
“그 산이 무너지고 나서 군청이 옹벽 쌓았잖아요. 우리 회사는 한 푼도 안 냈어요. 절토면 안정성 보고서가 있었는데, 그거 제가 나중에 설계 참고 자료로 봤어요. 위험 등급 삼. 우기 전에 보강 요망. 날짜가 2019년 5월이었어요.”
“그걸 누가 받았습니까?”
“아버지요.”
난로 속 장작이 소리를 내며 무너졌다. 그녀는 그 소리에 어깨를 움츠렸다.
“아버지가 그 편지를 금고에 넣었다면, 아버지는 알았던 거예요. 편지 받기 전에도 알았고, 받고 나서도 알았고. 산이 위험한 것도, 거기 사람이 산다는 것도.”
그녀는 그 말을 하고 나서 한참 입을 다물었다. 나는 장작을 하나 넣었다. 그녀가 그 불을 봤다.
“금고 비밀번호 알아요. 제 생일이에요. 아버지는 모든 비밀번호를 제 생일로 해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정해야 할 일이었다. 그녀가 아버지 금고를 여는 것과 내가 3번 함 봉투를 뜯는 것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무거운지, 나는 잴 수가 없었다. 둘 다 누군가의 앞날을 먼저 열어 보는 일이었다. 그녀는 일어나서 벽의 못 자국 하나에 손가락을 댔다가 떼었다. 문을 나서면서 그녀가 말했다.
“오늘은 아니에요. 오늘은 못 해요.”
*
그날 밤 열두 시, 나는 윗골 고개를 넘어 여량으로 내려가는 길에 이장 집 앞을 지났다. 하늘이 개어 별이 많았고 기온은 영하 14도까지 내려가 있었다. 대문이 열려 있었고 마당에 불이 켜져 있었다.
이장이 장독대 앞에 서 있었다. 한 손에 싸리비를 들고, 장독 뚜껑 위에 쌓인 눈을 쓸고 있었다. 큰 독 셋, 작은 독 넷. 뚜껑 하나에 쌓인 눈을 다 쓸면 옆 뚜껑으로 옮겨 가고, 그 뚜껑을 다 쓸면 처음 것으로 돌아왔다. 처음 것에는 새로 쌓인 눈이 없었다. 그래도 그는 다시 쓸었다. 싸리비가 옹기 뚜껑을 스치는 소리가 사락사락, 자정의 마당에 쉬지 않고 났다. 오늘 아침 영감님의 등이 부딪혔던 독이 맨 앞의 큰 독이었다.
나는 여량 숙소로 내려가던 걸음을 멈추고 대문 밖 어둠에 선 채 그것을 봤지만,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발끝이 시려서 발가락을 신발 안에서 여러 번 오므렸다 폈다.
이장이 싸리비를 멈췄다. 대문 쪽을 보지 않고 말했다.
“순례가 2019년 봄에 담근 된장이야. 저 큰 독.”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한 번도 못 퍼 먹었어. 뚜껑을 열면 순례가 담근 게 줄어드니까.”
그는 다시 싸리비질을 시작했다. 나는 소리 나지 않게 대문을 지나쳤다. 고개를 다 넘을 때까지 사락거리는 소리가 등 뒤에서 따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