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125자) · 이오 · 1월 23일

칠월에 눈

겨울 정거장의 편지 · 서지오

1월 22일 밤에 올겨울 들어 제일 큰 눈이 왔다. 저녁 여섯 시 이십 분 차가 서고 간 뒤에도 눈은 그치지 않았고, 아홉 시가 넘자 대합실 난로가 기침을 시작했다. 연통 이음매마다 매운 연기가 새어 나왔고 불꽃이 자꾸 아래로 눌렸다. 연통 속에 그을음이 쌓였다는 신호였다.

영감님은 붕대 감은 왼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난로를 노려봤다. 한 손으로 연통을 뜯을 수는 없었다.

“제가 하겠습니다. 솔이 어디 있습니까?”

영감님은 한참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다 오른손으로 목에 건 열쇠 꾸러미를 풀었다. 쇠 열쇠 다섯 개 가운데 제일 작은 것을 골라 내게 내밀었다.

“매표 창구 서랍. 맨 아래 칸.”

이 년 동안 한 번도 열린 적 없는 서랍이었다. 나는 열쇠를 받아 들고 매표 창구 안쪽으로 들어갔다. 창구 안은 바깥보다 한 뼘 좁고 두 뼘 어두웠다. 옛날 역무원이 앉던 둥근 의자가 먼지를 쓴 채 그대로 있었고, 벽에는 2012년 3월에 멈춘 달력이 붙어 있었다. 서랍 자물쇠에 열쇠를 넣고 돌리자 녹슨 쇠가 이를 가는 소리를 냈다.

맨 아래 칸에 연통 솔이 있었다. 철사 자루에 돼지털이 박힌 오래된 솔이었다. 그 솔 밑에 흰 봉투가 한 뭉치 깔려 있었다.

봉투는 전부 같은 모양이었다. 모서리에 설운리조트라고 찍혀 있고, 안은 비어 있었다. 겉면에 연필로 날짜와 숫자가 적혀 있었다. 2013년 1월 9일, 넷. 2013년 2월 17일, 둘. 2014년 12월 3일, 여섯. 글씨는 영감님 글씨였다. 대합실 난로 옆 벽에 장작 들인 날을 적어 두는 그 글씨. 봉투 사이사이에 병원 영수증이 끼어 있었다. 강릉 어느 병원, 환자 이름 심재우. 재활 치료비, 간병비, 욕창 처치비.

나는 봉투를 넘겼다. 2015년, 2016년, 2017년. 봉투는 2020년 1월에서 끝났다. 마지막 봉투에는 날짜만 있고 숫자가 없었다.

그중 한 장에서 손이 멈췄다. 2019년 7월 3일, 하나. 그 옆에 연필로 작게, 칠월에 눈이라는 한 줄이 더 있었다.

*

솔을 들고 나왔다. 봉투 뭉치도 같이 들고 나왔다. 영감님은 난로 앞 의자에 앉아서 그것을 봤다. 놀란 얼굴이 아니었다. 기다리던 것이 드디어 왔다는 얼굴이었다.

나는 먼저 연통을 뜯었다. 뜯지 않으면 대합실에 연기가 차서 둘 다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이음매를 비틀자 까만 그을음이 눈처럼 쏟아졌고, 솔을 연통 안에 넣어 위아래로 훑을 때마다 쇳소리와 함께 탄내 섞인 가루가 소매 속으로 파고들었다. 이십 분 걸렸다. 연통을 다시 끼우고 불을 살리자 불꽃이 비로소 위로 섰다. 나는 손을 씻지 않고 영감님 앞에 앉았다. 봉투 뭉치를 우리 사이 바닥에 놓았다.

“이게 뭡니까?”

“자네가 본 대로지.”

“제가 보고 싶지 않은 대로입니다. 영감님 입으로 들어야겠습니다.”

영감님이 오른손을 무릎에 올렸다. 그 손이 무릎을 두 번 쓸었다.

“폐선하던 해 삼월에 재우가 철거 일을 나갔어. 승강장 지붕 걷어 내는 일. 하청의 하청이었지. 눈 녹은 지붕에서 미끄러졌어. 허리 아래를 못 썼어.”

난로 속 장작이 하나 쓰러졌다. 영감님은 그걸 보지 않았다.

“병원비를 반가가 댔어. 철거 원청이 그 사람 회사였거든. 산재 처리 해 줄 테니 소송은 걸지 말라고. 나는 안 걸었어. 반년 지나서 그 사람이 여기 왔어. 이 함 얘기를 어디서 들었는지. 눈 오는 날 편지 오면 먼저 좀 보여 달라고. 땅 얘기만 보겠다고. 다른 건 안 본다고.”

“그래서 드렸습니까?”

“드렸지.”

“어떻게 드렸습니까?”

영감님은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리고 처음부터 차례대로 말했다. 여섯 시 이십 분 차가 가고 나면 대합실 불을 끈다. 어두운 데서 함을 하나씩 연다. 봉투를 꺼내서 신문지에 싼다. 신문지 뭉치를 매표 창구 서랍 맨 아래 칸에 넣고 잠근다. 다음 날 아침 일곱 시에 검은 차가 승강장 앞에 선다. 운전하는 젊은 사람이 들어와서 서랍 열쇠를 받아 가고 신문지 뭉치를 꺼낸다. 그 자리에 빈 봉투 하나를 넣고 열쇠를 돌려준다. 빈 봉투 안에는 그달 병원비가 들어 있다. 영감님은 그 봉투에서 돈을 꺼내고 빈 봉투 겉에 날짜와 편지 수를 적는다.

“왜 적으셨습니까?”

“몰라. 역무원 버릇이지. 들고 난 건 적어야 해.”

“여덟 해 동안.”

“여덟 해 동안.”

“읽으셨습니까?”

“안 읽었어. 한 통도.”

그는 그 말을 아주 빨리 했다. 너무 빨리 해서 거짓말처럼 들렸는데, 나는 그것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읽었으면 저 봉투에 숫자만 적지 않았을 것이다.

“받을 사람은요?”

영감님이 입을 다물었다.

“그 편지 받을 사람은 어떻게 됐습니까? 돌려주셨습니까?”

“그 사람이 가져갔지.”

나는 일어섰다. 일어서지 않으면 무슨 말을 할지 몰라서 일어섰다. 우편함 마흔 개가 난로 불빛 속에 줄지어 있었다. 저 함들 가운데 몇 개에 여덟 해 동안 편지가 왔고, 그 편지는 받을 사람 손에 가지 않고 정선읍 어느 사무실로 갔다. 윗골 누구네 밭이 도로에 들어간다는 것을 그 밭 주인보다 반석환이 먼저 알았다. 아랫골 누구네 아들이 망해서 내려온다는 것을 그 어머니보다 반석환이 먼저 알았다.

“저는 이 년 동안 이 함 앞에 서서 수신인 말고는 못 연다고 했습니다. 도재혁한테도, 하람 씨한테도, 회장한테도.”

“알아.”

“영감님은 그 옆에 앉아 계셨습니다.”

“알아.”

“아시면서 제가 그 말 하는 걸 들으셨습니까?”

영감님이 고개를 숙였다. 붕대 감은 왼손이 주머니 밖으로 나와서 오른손 위에 겹쳐졌다. 손 두 개가 무릎 위에서 서로를 붙잡았다.

“듣기 좋았어. 누가 그 말을 해 주니까.”

*

얼마나 그렇게 서 있었는지 모른다. 창밖 눈은 여전히 굵었고, 승강장 가로등 없는 어둠 속으로 눈송이가 끝도 없이 내려앉았다. 나는 안주머니에 손을 넣어 3번 함 봉투를 만졌다. 삼 년 뒤에서 온 내 편지. 여덟 해 전에 이 함들에 온 편지도 이렇게 누군가의 안주머니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 사람들은 제 앞날이 한 번 왔다 갔다는 것도 모른 채 여덟 해를 살았다.

나는 다시 앉았다. 봉투 뭉치에서 2019년 7월 3일 것을 꺼내 영감님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칠월에 눈이 왔습니까?”

영감님은 봉투를 봤다. 연필 글씨를 손가락으로 한 번 쓸었다.

“왔어. 한여름에. 새벽에 우박 섞여서 오다가 저녁에 진짜 눈이 됐지. 이 골짜기에서 사십 년 살면서 칠월 눈은 그날 처음 봤어. 여섯 시 이십 분에 차가 섰어. 한여름에.”

“그날 편지는 한 통이었습니다.”

“한 통.”

영감님이 그 두 글자를 되뇌며 봉투 모서리를 엄지로 눌렀다.

“몇 번 함입니까?”

영감님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눈이 벽으로 갔다. 우편함 줄을 따라 천천히 가던 눈이 14번 함에서 멈췄다. 명패 자리에 나사 구멍 두 개만 남은 함. 반석환이 숨 두 번 쉴 동안 쳐다보던 그 네모난 자국.

“14번 함 명패는 누구 거였습니까?”

“순례 씨.”

“순례 씨가 누굽니까?”

“이장 마누라.”

나는 설운리에 온 첫해에 그 이름을 들었다. 이장 댁 부엌에 아직 여자 앞치마가 걸려 있는 이유를, 경로당 할머니들이 목소리를 낮춰 알려 주었다. 2019년 여름, 장마 끝물에 뒷산이 무너졌다. 이장 집 뒤로 리조트 진입로를 낸다고 산허리를 깎아 놓은 자리였다. 그날 밤 이장은 읍내 간담회에 가 있었고 집에는 순례 씨 혼자였다.

“그날이 며칠이었습니까?”

영감님의 입술이 움직였는데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두 번째에 나왔다.

“칠월 열이틀.”

칠월 삼일에 편지가 왔다. 칠월 열이틀에 산이 무너졌다. 그 사이 아흐레.

“그 사람이 뒷산 밑 집들 편지는 다 달라고 했어. 도로 낸 데라고. 땅값 때문인 줄 알았어. 그래서 그 한 통도 줬어. 읽지도 않고.”

영감님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져나가는 것이 보였다. 이마부터 하얘졌고, 그다음에 입술이 하얘졌다. 그는 봉투를 무릎 위에 놓은 채로 앉아 있었다. 손이 떨리지도 않았다. 그게 더 나빴다.

“영감님은 그걸 몰랐습니까?”

“몰랐어. 몰랐어.”

그는 같은 말을 두 번 했다. 두 번째 말은 나한테 하는 말이 아니었다.

*

그 뒤로 영감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도 하지 않았다. 난로 불이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영감님은 장작을 넣지 않았다. 이 년 동안 저 난로가 꺼지는 것을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영감님은 장작더미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자정이 지나자 불꽃이 숯이 되었고, 숯이 재가 되었다. 대합실에 냉기가 들어차기 시작했다. 창의 성에가 가장자리부터 다시 자랐고, 입김이 하얗게 보이기 시작했고, 바닥에서 올라온 추위가 발목을 지나 무릎을 감쌌다. 영감님은 외투 단추도 채우지 않은 채로 앉아 있었다. 붕대 감은 손 위로 입김이 떨어졌다가 흩어졌다.

나는 가지 않았다. 가면 영감님이 여기서 이대로 아침을 맞을 것 같았다. 두 시쯤 영감님이 한 번 몸을 떨었다. 이가 부딪치는 소리가 작게 났다가 멎었다. 그래도 영감님은 장작 쪽으로 손을 뻗지 않았다. 나도 뻗지 않았다. 그 불은 영감님이 꺼뜨린 불이라서, 영감님이 다시 켜기 전에는 내가 켜면 안 될 것 같았다. 나는 내 패딩을 벗어 영감님 어깨에 덮었다. 영감님은 그것을 치우지 않았다.

새벽 다섯 시쯤 영감님이 처음 입을 열었다. 목이 쉬어 있었다.

“자네 그 편지, 뜯지 마.”

“왜 그렇습니까?”

“남의 앞날을 여덟 해 판 늙은이가 할 소리는 아닌데. 제 앞날은 제가 가서 받는 거야. 먼저 뜯으면 누가 뺏어 간 거하고 똑같아.”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영감님이 먼저 켜기를 기다리는 것은 거기까지 하기로 했다. 일어나서 난로 문을 열었다. 재를 긁어내고 신문지를 구겨 넣었다. 잔가지를 얹고, 그 위에 장작 두 개를 엇갈려 세웠다. 성냥을 그었다. 불이 신문지를 먹고 잔가지로 옮겨 갔다. 타닥거리는 소리가 대합실 천장까지 올라갔다. 그게 내 평소였다.

영감님이 그 불을 오래 봤다.

“이장한테 내가 말하겠네.”

“같이 가겠습니다.”

“자네는 왜?”

“집배원이 없으면 받을 사람이 안 받습니다.”

영감님이 웃었다. 웃는다기보다 입가가 한 번 무너졌다가 도로 섰다. 창밖이 희뿌옇게 밝아지고 있었다. 밤새 쌓인 눈 위로 첫 발자국이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박두칠 씨였다. 그는 대합실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추워 죽겠다고 소리쳤고, 우리 둘을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들고 온 라면 상자 네 개를 벽에 기대 놓았다. 윗골에서 밤새 만든 거라고 했다. 명패 걸린 함이 마흔넷이 되었다.

7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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