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103자) · 이오 · 1월 15일
함봉례
겨울 정거장의 편지 · 서지오
1월 15일 아침, 마을회관 게시판과 대합실 문에 같은 종이가 한 장씩 붙었다. 설운역 부지 철거에 관한 주민 동의 현황. 주민 백열두 명 가운데 여든한 명 동의, 과반 충족. 정선군은 이에 따라 3월 31일 행정대집행을 확정한다. 종이 아래에 도재혁의 이름과 설운리조트 직인이 찍혀 있었다.
대합실 문에 붙은 종이는 테이프 네 귀가 반듯했다. 붙인 사람이 수평을 재고 붙였다. 나는 그것을 떼지 않았다. 떼어 봐야 또 붙을 것이었고, 무엇보다 숫자가 마음에 걸렸다.
명패 걸린 함은 서른하나였고, 함을 건 사람은 동의를 물린 것으로 친다고 이장이 방송까지 했다. 옛 놋쇠 명패 주인과 나를 빼도 스무 명이 넘게 빠졌는데 여든한 명이 남는다. 나는 그 셈이 맞는지 손가락으로 다시 해 보다가 그만두었다. 손가락으로 할 셈이 아니었다.
오후에는 군청에 전화를 걸었다. 승강장 끝에서 안테나 한 칸을 붙잡고, 관광개발팀 연지석 주무관에게 동의자 명단을 볼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잠깐 말이 없다가 정보공개 청구를 하면 이름만 가린 사본은 줄 수 있다고 했다.
“이름을 가리면 소용이 없습니다.”
“이름을 보여 드리면 개인정보라서요.”
“그럼 제가 집집마다 여쭤보겠습니다. 그건 괜찮습니까?”
“그건 제가 말릴 권한이 없습니다.”
그가 전화를 끊기 직전에 한 마디를 덧붙였다.
“동의서에 날짜가 이상한 게 있으면 그것도 여쭤보세요. 저희는 서류만 봅니다.”
*
집배원은 마을의 모든 대문을 안다. 어느 집 개가 짖고 어느 집 개가 꼬리를 흔드는지, 어느 집 우편함 뚜껑이 떨어져 있고 어느 집은 편지를 장독대 위에 올려 두라고 하는지. 나는 오후 배달을 돌면서 함을 걸지 않은 스물아홉 집에 차례로 들렀다. 묻는 말은 하나였다. 동의서에 도장을 직접 찍으셨습니까?
윗골 명씨 할아버지는 제 손으로 찍었다고 했다. 곤돌라 오면 아들이 내려와서 거기 취직한다고 했다고. 나는 고개를 숙이고 나왔다. 아랫골 두 집도 직접 찍었다고 했다. 한 집은 찍은 날짜까지 달력에 동그라미를 쳐 두었다.
솔골 끝 집에서는 누렁이가 나를 보고 꼬리를 흔들다가 동의서라는 말이 나오자 짖기 시작했다. 주인아저씨가 개 머리를 쥐어박으며 웃었다. 저놈은 곤돌라 반대라고, 산에 쇠줄 걸리면 멧돼지가 안 내려와서 심심해진다고. 아저씨는 도장을 찍었는지 안 찍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이장이 서류 뭉치를 들고 와서 여기, 여기 하고 짚었는데 그게 노인 일자리 서류였는지 동의서였는지 모르겠다고. 나는 그 집을 모른다 칸에 넣었다.
그런데 전씨 할아버지 집은 비어 있었다. 아흔하나인 할아버지는 시월부터 읍내 요양병원에 있었다. 요양병원에 전화를 걸어 보니 할아버지는 석 달째 침대에서 못 일어나고 있었다. 동의서가 들어간 날짜는 12월이었다.
솔골 김씨 할머니는 11월에 돌아가셨다. 내가 부고 우편을 돌렸으니 틀릴 리 없다. 할머니 댁 며느리는 동의서라는 말을 처음 듣는다고 했다.
그리고 봉례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볕 드는 마루에 앉아 흰 운동화 끈을 풀었다 매었다 하고 있었다. 요즘 역에 올라올 때마다 그 운동화를 신는다. 내가 동의서 얘기를 꺼내자 할머니는 끈을 쥔 채로 한참 나를 봤다.
“나는 도장 찍은 적 없다.”
“도장은 어디 두셨습니까?”
“이장이 가져갔지. 작년 가을에 노인 일자리 서류 쓴다고 동네 늙은이들 도장을 다 걷어 갔어. 편하게 해 준다고. 우리가 글을 모르니까.”
“돌려받으셨습니까?”
할머니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다 무언가를 알아챈 얼굴이 되었다. 운동화 끈을 쥔 손가락이 천천히 풀렸다.
“그 도장이 거기 찍혔냐?”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대답을 못 하는 것이 대답이었다. 할머니는 마당 쪽을 봤다. 눈이 덮인 장독대 위로 까치 한 마리가 내려앉았다가 금방 날아갔다.
“내 이름을 내가 못 쓰는 거는 알았는데, 남이 쓰는 줄은 몰랐다.”
저녁까지 스물아홉 집, 쉰네 명의 이름을 다 물었다. 직접 찍었다는 사람이 스물여덟, 모른다는 사람이 열둘, 도장을 이장에게 맡겼다는 사람이 열둘이었다. 요양병원의 전씨 할아버지와 돌아가신 김씨 할머니까지 넣으면 제 손으로 찍었다고 말하지 못한 이름이 스물여섯이었다. 여든하나에서 스물여섯을 빼면 쉰다섯이 남는다. 백열두 명의 과반은 쉰일곱이다.
*
그날 밤 마을회관에서 주민 설명회가 한 번 더 열렸다. 도재혁이 대집행 일정을 알리러 왔고, 연지석 주무관이 군 공문을 들고 왔다. 석유난로 두 대가 방을 데웠는데 사람들 입김이 그보다 먼저 방을 데웠다. 지난번보다 사람이 두 배로 왔다. 벽 쪽에 반하람이 서 있었다. 이번에는 조감도를 들고 있지 않았다.
도재혁이 일정을 읽기 시작했을 때 나는 손을 들지 않고 일어섰다.
“동의서에 이름이 올라간 분 가운데 요양병원에 석 달째 누워 계신 분이 있습니다. 11월에 돌아가신 분이 12월에 찍은 도장도 있습니다.”
방 안이 조용해졌다. 도재혁은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대리인이 찍은 겁니다. 합법이에요.”
“누가 대리했습니까?”
“이장님이 위임받으셨죠.”
모든 얼굴이 맨 앞줄을 봤다. 이장 목경수가 천천히 일어섰다. 목덜미가 붉게 올라와 있었다.
“나는 도장을 맡아 둔 거지 찍으라고 준 적 없어.”
“이장님이 저한테 주셨잖아요. 확인하라고.”
“확인하라고 줬지. 찍으라고 줬냐고.”
“확인이 날인이죠. 도장을 받았으니까.”
이장의 손이 탁자 모서리를 쥐었다. 손가락 마디가 하얘졌다. 처음으로 이장과 도재혁이 서로를 마주 봤다. 그 사이에 연지석 주무관이 공문을 내려놓고 물었다.
“본부장님, 위임장 있습니까? 서명한 분 본인이 대리를 맡긴다는 서류요.”
“제출하겠습니다.”
“대집행 공고 전에 받았어야 하는 서류입니다.”
“절차는 저희가 맞추겠습니다.”
도재혁은 그 말을 하고 처음으로 나를 봤다. 화가 난 얼굴이 아니라 계산하는 얼굴이었다. 무엇을 얼마에 바꾸면 이 자리를 넘길 수 있는지 재는 얼굴이었다.
“집배원님, 남의 집 문 두드리고 다니면서 동의 여부를 캐묻는 것도 개인정보 침해예요. 우체국에 정식으로 민원 넣을 겁니다.”
“넣으십시오. 국장님이 제 서류 옆에 각 맞춰 세워 두실 겁니다.”
뒤쪽에서 박두칠 씨가 웃음을 참다가 사레가 들려 한참 기침을 했다. 도재혁은 서류를 챙겨 먼저 나갔고, 이장은 앉지도 서지도 못한 채 한참 탁자를 쥐고 있었다. 그러다 아무 말 없이 회관을 나갔다. 방 안이 벌집 쑤신 것처럼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반하람은 벽에 기대 선 채 휴대폰에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그녀가 입 모양으로 스물여섯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 숫자를 그녀에게 말한 적이 없다.
회관을 나와 언 길을 몇 걸음 내려갔을 때 뒤에서 그녀가 따라왔다. 패딩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 넣고, 입김을 길게 뿜으며 내 옆에 섰다.
“본사 서류함에 동의서 원본이 있어요. 지난주에 설계 근거 서류 찾다가 봤어요. 스물여섯 장이 글씨체가 같아요. 이름 쓰는 손이 하나예요. 저 글씨 보는 사람이잖아요.”
“그걸 연 주무관님께 말씀하실 수 있습니까?”
그녀는 대답하지 않고 한참 걸었다. 발밑에서 언 눈이 뽀드득 소리를 냈다.
“아버지 회사예요. 본부장님은 아버지 사람이고요. 제가 그 서류를 들고 군청에 가면 그건 아버지를 들고 가는 거예요.”
“압니다.”
“아는데 물어요?”
“물어야 하람 씨가 정할 수 있어서요.”
그녀는 갈림길에서 제 차 쪽으로 꺾었다. 꺾기 전에 한 번 멈췄지만 돌아보지는 않았다.
*
다음 날 아침, 봉례 할머니가 역에 올라왔다. 흰 운동화를 신고, 손에 종이 한 장을 들고 있었다. 동의 철회서였다. 연지석 주무관이 군청 양식을 우편으로 보내왔고, 내가 어제 저녁 할머니 댁 장독대 위에 올려 두었다. 서명란은 비어 있었다.
“도장 없이도 되냐?”
“서명하시면 됩니다.”
“서명이 뭐냐. 이름 쓰는 거지?”
“네.”
“가르쳐 봐라.”
나는 난로 옆 선반을 치우고 할머니를 앉혔다. 달력 한 장을 뜯어 뒷면을 펴고, 집배용 굵은 매직을 할머니 손에 쥐여 드렸다. 할머니 손은 매직을 연필처럼 쥐지 않고 호미처럼 쥐었다. 나는 그 손 위에 내 손을 얹었다.
함 자를 먼저 썼다. ㅎ의 꼭지를 찍고, 가로를 긋고, 동그라미를 굴리는 데서 할머니 손이 멈췄다. 동그라미가 자꾸 찌그러졌다. 세 번째에 조금 둥글어졌다. 봉 자는 받침 ㅇ이 또 찌그러졌다. 례 자는 획이 많아서 할머니가 한숨을 쉬었다. 영감님이 난로 너머에서 헛기침을 했다.
“례는 원래 어려워. 나도 못 써.”
“거짓말 마라, 심가.”
“진짜요. 내 마누라 이름에도 례가 있었는데 제사 지방 쓸 때마다 틀렸어.”
할머니가 웃었다. 웃느라 획이 삐끗했다. 나는 달력 두 장을 더 뜯었다. 스무 번쯤 썼을 때 내 손을 떼었다. 할머니가 혼자 함봉례라고 썼다. 세 글자가 크기가 다 달랐고 례 자가 제일 컸다.
할머니는 그 세 글자를 한참 내려다봤다. 매직 뚜껑을 닫는 것도 잊었다. 그러다 철회서를 끌어당겨 서명란에 다시 썼다. 이번에는 례 자가 조금 작아졌다.
“됐냐?”
“됐습니다.”
할머니는 철회서를 나한테 건네지 않았다. 먼저 9번 함 앞으로 걸어갔다. 놋쇠 명패에는 옛날 누가 새긴 함봉례 세 글자가 반듯하게 박혀 있었다. 할머니는 달력 뒷면에 마지막으로 쓴 제 이름을 손톱으로 오려서 놋쇠 명패 아래 틈에 꽂았다. 반듯한 이름 아래 삐뚤삐뚤한 이름이 하나 더 걸렸다.
“이게 내 거다. 저건 남이 파 준 거고.”
그날 하루 동안 대합실 벽에 함이 아홉 개 더 걸렸다. 전날 밤 회관에서 도장을 이장에게 맡겼다고 말한 집들이었다. 명패 걸린 함이 마흔이 됐다.
해 질 무렵 이장의 경운기 소리가 역 아래 길에서 들렸다. 소리는 승강장 앞까지 올라와서 멈췄다. 엔진이 한참 공회전했다. 나는 창 너머로 이장을 봤다. 이장은 경운기 운전석에 앉은 채 대합실 유리창 너머 벽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놋쇠 함, 라면 상자, 김장독 뚜껑, 책가방, 그 사이에 오늘 걸린 아홉 개. 그 아홉 가운데 여섯이 이장에게 도장을 맡긴 집이었다. 이장은 들어오지 않았다. 경운기가 방향을 틀어 내려갔고, 배기구 연기가 한참 승강장 위에 떠 있다가 흩어졌다. 영감님은 그날 저녁 새로 걸린 함 아홉 개의 나사를 하나씩 손으로 조여 보았다. 붕대 감은 왼손은 주머니에 넣은 채였다. 나는 저녁에 3번 함 봉투를 불빛에 비춰 봤다. 발신일의 마지막 숫자가 볼펜 자국만큼 진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