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138자) · 이오 · 1월 6일

남는 장사

겨울 정거장의 편지 · 서지오

새해 첫 주, 박두칠 씨는 매일 오후 두 시에 경로당에 갔다. 가서 막걸리 대신 편지를 꺼냈다. 다섯 해 뒤의 자기가 보낸 편지를 돋보기를 걸치고 소리 내어 읽었다. 간 수치 대목에서 한 번 웃기고 경운기 대목에서 두 번 웃기더니, 어음 대목에서는 방 안을 조용하게 만들었다. 은주와 두리 대목은 매번 건너뛰었다. 그 대목은 제 것이라고 했다.

나도 한 번 그 자리에 있었다. 경로당 아랫목에 할머니 여섯, 할아버지 셋이 무릎을 붙이고 앉아 있었고, 박두칠 씨는 텔레비전 앞에 서서 돋보기를 코끝까지 내리고 편지를 읽었다. 경운기가 논두렁에 처박힌다는 대목에서 봉례 할머니가 “다리는 안 부러진다잖아, 걱정 마” 하고 추임새를 넣었고, 방 안이 한 번 뒤집어졌다. 어음 대목에서는 아무도 웃지 않았다. 윗골 명씨 할아버지가 조용히 일어나 경로당 벽에 붙은 달력을 넘겨 3월을 찾아보았다.

1월 6일 아침, 배달 가방을 메고 윗골 고갯길을 오르는데 이장이 경운기를 세우고 내 앞을 막았다. 체인 감은 바퀴가 언 길을 물고 부르르 떨었다.

“니가 두칠이 편지 퍼뜨렸냐?”

“박두칠 씨가 직접 읽고 다니십니다.”

“어음이라고? 리조트가 삼 년 만에 넘어간다고? 그 소리 듣고 동의서 물러 달라는 집이 넷이야. 넷.”

이장은 손가락 네 개를 펴서 내 코앞에 들이밀었다. 목장갑 손가락 끝이 다 해져서 굵은 손톱이 비어져 나와 있었다. 나는 가방끈을 고쳐 쥐었다.

“편지는 제가 쓴 게 아닙니다. 전해 드렸을 뿐입니다.”

“전해 준 게 문제야. 너 우체국 사람이지? 우체국 사람이 받은 걸 동네방네 읽고 다니게 둬?”

“받은 사람 편지는 받은 사람 겁니다. 제가 막을 수 없습니다.”

이장은 뭐라고 더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대신 경운기 엔진을 한 번 크게 공회전시켰다. 검은 연기가 내 다리 사이로 지나갔다.

“너 우리 동네 지붕 몇 채 새는지 알아? 열한 채야. 읍내 병원 버스는 하루 두 번이고. 봉례 형님 무릎 수술 날짜 잡아 놓고 버스 놓쳐서 두 번 미뤘어. 편지가 그 버스 태워 줘?”

“못 태워 드립니다.”

“그럼 잠자코 있어.”

그는 경운기 기어를 넣다가 말고 한 마디를 더 했다.

“곤돌라 오면 너 같은 놈이 제일 먼저 좋아할 거다. 우편물이 늘 테니까.”

경운기가 비탈을 내려갔다. 나는 그 뒷모습을 보면서 이장이 틀린 말을 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관광객이 오면 우편물이 는다. 설운리에 편지가 는다. 다만 그 편지들은 3번 함에 오지 않는다.

그날 아침 대합실 명패는 서른하나였다. 동의서를 물러 달라고 한 네 집 가운데 세 집이 밤사이 역에 올라와 함을 걸고 갔다. 하나는 김장독 뚜껑을 엎어 못을 박았고, 하나는 딸기 스티로폼 상자에 청테이프를 감았다. 세 번째 집은 아이 책가방을 걸었다. 초등학교가 닫힌 해에 마지막으로 멘 가방이라고 명패 대신 가방 이름표에 이름을 새로 적어 넣었다.

*

검은 SUV가 승강장 앞에 선 것은 오후 세 시였다. 눈은 오지 않았고 하늘이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뒷좌석 문을 도재혁이 열었고, 거기서 회색 코트를 입은 남자가 내렸다. 예순쯤, 머리가 하얗게 셌는데 등이 곧았다. 그는 승강장에 서서 녹슨 선로를 오래 봤다. 산모퉁이까지 두 줄로 누운 레일을 끝에서 끝까지 눈으로 따라가는 얼굴이었다.

난롯가에서 부지깽이 소리가 끊겼다. 영감님이 의자에서 일어섰다. 이 년 동안 누가 와도 앉아서 맞던 사람이었다.

남자가 대합실에 들어왔다. 코트 자락에서 차가운 바깥 공기와 가죽 시트 냄새가 같이 들어왔다. 그는 우편함 줄을 한 번 훑었다. 놋쇠 함, 라면 상자, 비료 포대 명패, 사과 상자까지 천천히. 그러다 14번 함 앞에서 눈이 멈췄다. 14번 함은 명패 없는 함인데, 명패 자리에 나사 구멍 두 개만 남아 있고 그 둘레가 네모나게 덜 바랬다. 누가 거기 걸려 있던 명패를 떼어 간 자리다. 이 년 동안 나는 그 자국을 여러 번 봤지만 누구 것이었는지 물어본 적이 없었다. 반석환은 그 네모난 자국을 숨 두 번 쉴 동안 보고 나서야 영감님 쪽으로 몸을 돌렸다.

“심 형, 오랜만이오.”

영감님은 대답하지 않았다. 남자는 개의치 않고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반석환이오. 우리 하람이가 신세를 졌다지.”

나는 그 손을 잡았다. 손바닥이 마르고 따뜻했다. 악수가 길지도 짧지도 않았다.

“앉아도 되겠소?”

그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난로 앞 의자에 앉았다. 영감님이 늘 앉는 의자였다. 영감님은 선 채로 벽에 등을 댔다. 도재혁은 문간에 서서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척했다. 여기서는 안테나가 안 뜬다는 것을 그도 알 터였다.

“단도직입으로 하지. 자네 국장한테 들었네. 정규직 심사 서류를 안 냈다고.”

“네.”

“내가 강원우정청에 아는 사람이 좀 있어. 마감이 1월 말이지? 지금 내도 늦지 않네. 추천서는 국장이 쓰고,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하지.”

“감사합니다. 안 내겠습니다.”

“이유를 물어도 되겠나?”

“서류를 내면 폐역에서 손을 떼야 합니다.”

“떼면 되지. 쇠통 몇 개하고 자네 평생 일자리하고 바꾸는 걸세. 누가 봐도 남는 장사야.”

“누가 봐도 남는 장사라서 안 내겠습니다.”

반석환이 나를 한참 봤다. 문간의 도재혁이 휴대폰에서 눈을 들었다가 다시 내렸다.

반석환이 웃었다. 소리 없이 입꼬리만 올라가는 웃음이었다.

“그럼 다른 걸 하지. 이 함에 온 편지들. 내가 사겠네. 한 통에 얼마를 부르든.”

“편지는 파는 게 아닙니다.”

“팔아 본 적이 없으니 그런 말을 하지.”

그는 그 말을 하면서 영감님 쪽으로 고개를 조금 돌렸다. 영감님은 벽에 댄 등을 떼지 않았다. 반석환이 다시 나를 봤다.

“이 함은 내가 자네보다 오래 알았네. 여덟 해 동안 여기서 온 편지를 읽었어. 윗골 누구네 밭이 이 년 뒤에 도로에 들어가는지, 아랫골 누구네 아들이 서울에서 망해서 내려오는지. 편지에 다 있더군. 사람들은 제 앞날을 제가 제일 모르지. 나는 그걸 읽고 땅을 샀네. 이 골짜기에서 내가 한 일 가운데 제일 잘한 일이야. 그렇지, 심 형?”

영감님의 턱이 한 번 움직였다.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등 뒤 우편함 서른하나의 무게를 느꼈다. 여덟 해 동안 누군가 이 함을 열어 남의 앞날을 저 사람 손에 쥐여 주었다.

“누가 그 편지를 회장님께 드렸습니까?”

“그건 중요하지 않네. 중요한 건 이거야. 나는 이 골짜기에 버스를 다시 서게 할 사람이오. 역이 닫히고 학교가 닫힐 때 나는 여기 있었어. 자네는 없었지. 이 골짜기가 비는 걸 스무 해 본 사람이 곤돌라를 놓겠다는데, 그 앞을 쇠통 열여섯 개가 막고 있네.”

“서른한 개입니다.”

반석환이 우편함 쪽을 돌아봤다. 처음으로 그의 얼굴에서 웃음이 빠졌다. 그는 함을 하나씩 셌다. 입술이 조금씩 움직였다. 다 세고 나서 그는 코트 주머니에서 장갑을 꺼내 꼈다.

“자네 앞으로도 한 통 왔다지. 삼 년 뒤에서.”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안주머니의 봉투가 가슴에 닿아 있었다.

“3월 31일에 이 건물은 없어지네. 그러면 그 뒤 날짜 편지는 전부 백지가 돼. 자네 것도. 알고 있지? 글씨가 도망가는 거.”

“알고 있습니다.”

“그럼 뜯어서 읽어 두게. 백지가 되기 전에. 그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충고야.”

“하나만 부탁하지. 하람이는 이 일에서 빼 주게. 그 애는 역을 짓고 싶어서 건축을 한 애야. 이 쇠통들 때문에 첫 설계를 망치게 두고 싶지 않네.”

“하람 씨 일은 하람 씨가 정합니다.”

“그 애가 여기서 이브를 보냈다더군.”

“고구마를 태웠습니다.”

반석환이 처음으로 소리 내어 웃었다. 짧게 한 번이었다. 그러고는 일어섰다. 영감님의 의자를 제자리로 밀어 놓고, 문간의 도재혁에게 턱짓을 했다. 나가기 전에 그는 영감님 앞에 잠깐 섰다.

“재우 기일은 챙기시오? 올해가 일곱 해지.”

영감님이 고개를 들었다. 반석환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나갔다. SUV가 눈 없는 길을 미끄러지듯 내려갔다.

*

나는 한참 문을 보고 서 있었다. 대합실이 다시 조용해졌다. 난로 속 장작이 타들어 가는 소리와 창틀이 바람에 떠는 소리만 남았다. 그러다 등 뒤에서 치익 하는 소리가 났다.

돌아보니 영감님이 난로 뚜껑에 손바닥을 짚고 서 있었다.

무쇠 뚜껑은 반나절 달궈져 있었다. 영감님은 손을 떼지 않았다. 떼지 않고, 뚜껑 가운데 둥근 손잡이 옆에 손바닥을 판판하게 펴서 대고 있었다. 살이 쇠에 눌리는 소리가 작게 났고, 기름 탄 냄새 같은 것이 코끝을 스쳤다. 영감님의 얼굴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게 더 무서웠다.

“영감님.”

나는 달려가서 영감님 손목을 잡아 뗐다. 손바닥 가운데가 하얗게 일어나 있었고 가장자리가 빨갛게 번지고 있었다. 영감님은 제 손을 처음 보는 사람처럼 내려다봤다.

나는 문을 열고 승강장에 쌓인 눈을 목장갑에 한 움큼 담아 왔다. 영감님 손바닥에 눈을 올리고 그 위를 장갑째 감쌌다. 눈이 녹아 손목을 타고 흘렀다. 영감님은 가만히 있었다. 손끝만 조금 떨렸다.

“나이 먹으니 뜨거운 걸 모르겠네.”

“아시면서 짚으셨습니다.”

영감님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른 손으로 부지깽이를 찾더니 그걸 쥐지 않고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나는 속으로 셈을 해 봤다. 폐선이 2012년이다. 여덟 해를 더하면 2020년이다. 올해가 일곱 해라면 재우라는 사람이 죽은 것도 2020년 이월이다. 여덟 해가 끝난 해와 아들이 간 해가 같았다. 매표 창구 안쪽, 영감님이 늘 열쇠를 채워 두는 나무 서랍이 난로 불빛 너머로 눈에 들어왔다. 이 년 동안 그 서랍이 열린 것을 본 적이 없다.

“재우가 누굽니까?”

“아들.”

“기일이 언제입니까?”

“이월.”

나는 목장갑 속의 눈을 새로 갈았다. 두 번, 세 번. 녹은 물이 영감님 바짓단을 적셨다. 영감님은 그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창밖 선로를 보고 있었다. 반석환이 끝에서 끝까지 눈으로 따라가던 그 선로였다.

“여덟 해 동안 누가 회장님께 편지를 드렸습니까?”

영감님은 한참 있다가 말했다.

“이오 씨.”

이 년 동안 영감님이 나를 이름으로 부른 것은 처음이었다.

“오늘은 그냥 가. 난로는 내가 끄고 갈 테니.”

나는 가지 않았다. 영감님이 난로를 끄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영감님도 끄지 않았다. 우리는 불이 저절로 사그라들 때까지 둘 다 앉아 있었다. 대합실이 조금씩 식어 가는 동안 우편함 서른하나의 명패가 하나씩 어둠에 잠겼고, 영감님의 손바닥을 감싼 목장갑만 녹은 눈물이 번져 점점 검어졌다.

5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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