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109자) · 이오 · 12월 17일

사과 상자

겨울 정거장의 편지 · 서지오

박두칠 씨가 사과 상자를 들고 역에 올라온 것은 12월 15일 정오였다. 쉰아홉, 윗골에서 고추 농사를 짓고, 겨울에는 막걸리로 농사를 대신하는 사람이다. 그날도 입김에서 누룩 냄새가 났는데 눈만은 이상하게 맑았다.

“나도 편지 받자.”

그는 사과 상자를 대합실 바닥에 내려놓고 난로 앞에 쪼그려 앉았다. 상자 옆구리에 문경 사과 특품이라고 찍힌 글씨가 반쯤 벗겨져 있었다.

“설명회에서 코웃음 치셨잖습니까?”

“그러니까 받아 보고 비웃을라고. 안 받아 보고 비웃는 건 무식한 거고.”

“편지가 안 올 수도 있습니다. 누가 보내야 옵니다.”

“누가 보내겠지. 나 같은 놈한테도 누구 하나는.”

그는 그 말을 하고 나서 난로 쪽으로 손을 뻗었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굵고 손톱 밑에 고춧대 물이 까맣게 배어 있었다. 윗골 사람들은 그 집 딸이 스무 살에 대문을 박차고 나가서 십 년째 소식이 없다는 것을 다 안다. 대문을 박찬 것이 딸이 아니라 아버지였다는 것도 다 안다. 아무도 그 얘기를 그의 앞에서 하지 않는다.

영감님이 부지깽이 끝으로 벽을 가리켰다. 명패 없는 함이 다섯 개 있었다. 7번, 10번, 13번, 14번, 16번. 박두칠 씨는 그 다섯을 차례로 두드려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쇠통은 싫어. 남이 쓰던 거잖아. 내 거는 내가 만들어.”

그는 주머니에서 못 한 줌과 망치를 꺼냈다. 사과 상자 칸막이를 뜯어 앞판에 경첩 대신 철사를 꼬아 달고, 뚜껑 가운데를 드라이버로 파서 편지 넣는 구멍을 냈다. 손이 떨려서 못이 두 번 휘었는데, 세 번째 못은 한 번에 들어갔다. 다 만들고 나서 그는 매직을 달라고 했다. 나는 가방에서 집배용 굵은 매직을 꺼내 주었다.

앞판에 그가 박두칠이라고 제 이름을 썼다. 칠 자의 마지막 획이 판자 끝까지 삐져나갔다.

“어디 걸어?”

나는 우편함 줄 맨 끝, 16번 함 옆 벽에 못 두 개를 박아 주었다. 사과 상자가 놋쇠 함들 옆에 삐딱하게 걸렸다. 영감님이 그것을 한참 보다가 말했다.

“그 함은 역방향이구먼.”

“뭐가 역방향이오?”

“그냥 그렇게 생겼다고.”

*

박두칠 씨가 사과 상자를 건 이야기는 그날 저녁에 윗골을 다 돌았다. 다음 날 아침 대합실 명패 없는 함 다섯에는 매직으로 쓴 이름이 셋 붙어 있었다. 종이테이프에 쓴 이름, 비료 포대를 오려 쓴 이름, 담뱃갑 은박지 뒷면에 쓴 이름. 그 옆 벽에는 라면 상자로 만든 함이 둘 더 걸렸다. 사흘 사이에 명패 걸린 함이 열하나에서 열아홉이 됐다. 나는 아침마다 대합실 문을 열자마자 그 수부터 셌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손가락이 먼저 함을 짚어 나갔고, 셈이 하나 늘어난 날에는 난로에 장작을 하나 더 넣었다.

그 소식은 이장 댁에도 갔다. 이장은 마을 방송으로 딱 한 마디를 했다. 스피커가 쇳소리를 내며 골짜기에 퍼졌다.

“역에 이름 거는 집은 보상금 동의 안 한 걸로 칩니다. 이상.”

그 방송이 나간 오후에 라면 상자 하나가 도로 떼어졌다. 떼어 간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못 자국 둘만 벽에 남았다. 나는 그 못 자국 앞에 한참 서 있다가 거기 다시 못을 박지 않았다.

저녁에 이장 댁 대문을 두드렸다. 이장은 마당에서 경운기 바퀴에 체인을 감고 있었고, 나를 보고도 손을 멈추지 않았다.

“방송 들었습니다. 이름 거는 거랑 동의서는 상관이 없습니다.”

“상관이 왜 없어? 한쪽은 역을 살리자는 거고 한쪽은 역을 헐자는 거야. 두 쪽에 다 발 걸치면 그게 사람이야?”

“편지를 받고 싶은 것뿐입니다.”

“받고 싶으면 받아. 대신 천이백은 두고 가.”

이장이 체인 고리를 망치로 내리쳤다. 쇠끼리 부딪는 소리가 마당 담벼락을 두 번 쳤다.

“나는 공평하게 하는 거야. 곤돌라 오면 그 돈으로 지붕 고칠 집이 있고, 편지 받고 싶은 집이 있어. 둘 다 가지겠다는 건 도둑놈 심보고. 골라.”

나는 대꾸할 말이 없어서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이장의 말은 이번에도 틀리지 않았다. 함 하나를 거는 값이 천이백만 원이 됐다.

*

같은 날 오후, 여량우체국 국장실로 불려 갔다. 허만길 국장님은 쉰일곱이고, 삼십 년을 여량에서만 근무했고, 규정집을 책상 오른쪽 모서리에 각 맞춰 세워 두는 사람이다. 책상 위에 서류가 두 장 놓여 있었다. 한 장은 설운리조트가 넣은 민원이었다. 여량우체국 소속 집배원이 근무 시간에 폐역에 상주하며 군의 공무를 방해하고 있다.

다른 한 장은 내 이름이 적힌 정규직 전환 심사 신청서였다. 마감은 1월 말, 심사는 3월이었다.

“앉아.”

나는 앉았다. 국장실 라디에이터가 딸깍 소리를 내며 돌았고, 창밖으로 우체국 오토바이 세 대가 눈을 뒤집어쓴 채 서 있었다.

“이 년 동안 너 사고 한 번 안 쳤어. 등기 분실 없고, 민원 없고. 내가 추천서 써 주려고 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할 거 없고. 폐역에서 손 떼. 그럼 써 준다.”

국장님은 신청서를 내 쪽으로 밀었다. 볼펜도 같이 밀었다. 나는 볼펜을 보다가, 신청서의 내 이름 석 자를 보다가, 국장님의 손을 봤다. 손등에 동상 자국이 두 군데 있었다. 삼십 년 동안 겨울 배달을 한 손이었다.

“그 함들 우체국 비품 아니다. 너 일 아니야. 거기서 버티다가 리조트랑 소송 붙으면 우체국이 네 편 못 들어 준다.”

“압니다.”

“계약직 이 년 끝나면 너 갈 데 없는 것도 알지?”

“압니다.”

“그럼 뭘 몰라서 그래?”

나는 신청서를 들었다. 가볍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쥐니 종이 한 장이 손바닥에 착 붙었다. 3번 함 봉투를 처음 쥐었을 때와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그것을 반으로 접지 않고 그대로 국장님 책상에 도로 내려놓았다.

“안 내겠습니다.”

국장님은 오래 나를 봤다. 화를 내지는 않았다. 신청서를 집어 규정집 옆에 각 맞춰 세워 두었다.

“나도 계약직으로 시작했다. 그때 우리 국장이 나한테 똑같은 소리를 했어. 나는 냈지.”

“잘하셨습니다.”

“잘한 건지는 모르겠고.”

국장님은 책상 서랍을 열어 무언가를 꺼냈다가 다시 넣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보지 못했다.

“하나만 묻자. 그 함에 네 앞으로 온 것도 있냐?”

“한 통 있습니다.”

“뜯었냐?”

“아직 안 뜯었습니다.”

국장님은 코로 짧게 웃었다. 비웃는 소리는 아니었다.

“남의 건 이 년 동안 잘도 날라 주더니.”

국장님은 그 말을 하고 창밖을 봤다. 나는 인사를 하고 나왔다. 오토바이에 앉아 시동을 걸기 전에 장갑을 끼는데, 손가락이 장갑 구멍을 두 번 비껴갔다.

*

12월 17일, 저녁 다섯 시부터 눈이 굵어졌다. 박두칠 씨는 여섯 시 전에 역에 올라와서 사과 상자 앞에 의자를 끌어다 놓고 앉았다. 막걸리는 안 가져왔다고 했는데 패딩 주머니가 불룩했다.

기다리는 동안 그는 가만히 있지 못했다. 사과 상자의 철사 경첩을 한 번 더 꼬았고, 삐져나간 칠 자 획을 손톱으로 긁어 보았고, 창에 낀 성에를 소매로 닦아 선로 쪽을 내다보았다. 대합실 안은 장작 타는 소리와 그의 무릎이 의자 다리를 치는 소리뿐이었다. 창밖에서는 눈송이가 가로등 없는 승강장 위로 소리 없이 쌓였고, 녹슨 레일 두 줄이 조금씩 하얗게 지워져 갔다.

“안 오면 어떡해?”

“그럼 다음 눈 오는 날 또 기다리시면 됩니다.”

“니는 몇 번 기다렸는데?”

“스물여섯 해 기다렸습니다.”

그는 나를 돌아보고 뭐라고 하려다가 말았다. 나도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 몰랐다.

여섯 시 이십 분, 선로가 밝아지고 한 칸짜리 차가 섰다. 우편함 줄에서 서걱거리는 소리가 여러 번 났다. 놋쇠 함에서 나는 소리는 맑았고, 라면 상자에서 나는 소리는 조금 둔했다. 사과 상자에서는 마른 나뭇잎을 밟는 소리가 났다.

박두칠 씨가 벌떡 일어나 철사 경첩을 풀었다. 봉투가 하나 들어 있었다. 수신 박두칠, 발신일 2031년 12월 17일. 뒷면 발신인 자리에도 박두칠이라고 적혀 있었다. 칠 자의 마지막 획이 봉투 끝까지 삐져나가 있었다.

“내가 나한테 보냈네.”

그는 봉투를 뜯고 편지를 꺼내 난로 불빛에 대 보았다. 멀리 떼어 보고 가까이 대 보더니, 결국 나한테 내밀었다.

“돋보기를 두고 왔다. 읽어 봐.”

두칠아, 나다. 다섯 해 뒤의 너다. 막걸리 줄여라. 간 수치가 백이십이다. 의사가 너 같은 사람은 처음 본다고 했다. 그리고 경운기 브레이크 좀 고쳐라. 내년 봄에 그거 때문에 논두렁에 처박힌다. 다리는 안 부러지는데 망신은 크다.

박두칠 씨가 “이 새끼가” 하고 중얼거렸다. 영감님이 박수를 딱 한 번 쳤다. 그 소리에 박두칠 씨가 난롯가를 노려봤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거. 보상금 동의서에 도장 찍지 마라. 그 돈 현금 아니다. 두 해짜리 어음이다. 삼 년째 봄에 리조트가 넘어가고 그 종이는 휴지가 된다. 윗골에서 그거 믿은 집이 스물이 넘는다.

나는 거기서 잠깐 읽기를 멈췄다. 박두칠 씨가 손짓으로 계속하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은주가 온다. 네 딸 은주. 네가 술 먹고 대문 걷어차서 나간 그 은주. 삼 년 뒤 추석에 애 데리고 온다. 애 이름이 두리다. 네 이름에서 한 자 따 갔다고 하더라. 너 그 말 듣고 마당에서 울었다. 창피하니까 미리 알고 있어라.

박두칠 씨는 편지를 도로 받지 않았다. 목장갑 낀 두 손으로 얼굴을 덮고 난로 앞 의자에 앉았는데, 장갑 사이로 숨이 두 번 크게 새어 나왔고 세 번째 숨은 끝내 안 나왔다. 어깨만 들썩였다. 영감님이 장작을 하나 넣었고, 불이 확 일어나서 그의 등을 비췄다.

나는 편지를 봉투에 넣어 그의 무릎에 올려놓았다. 그러다 봉투 모서리의 발신일을 봤다. 2031년. 마지막 숫자 하나가 벌써 연필 자국처럼 흐려져 있었다.

박두칠 씨가 한참 만에 장갑을 내렸다.

“두리래.”

“네.”

“두칠이 두 자 따서 두리래.”

그는 편지를 패딩 안주머니, 막걸리 병이 든 반대쪽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막걸리 병을 꺼내 난로 옆 선반에 올려놓고 나갔다. 병은 뚜껑도 따지 않은 채로 거기 남았다. 문이 닫히고 나서 영감님이 그 병을 한 번 보고 나를 한 번 봤다.

“저건 누구 몫이오?”

“다섯 해 뒤 박두칠 씨 몫입니다.”

영감님은 병을 선반 안쪽 깊숙이 밀어 넣었다.

나는 대합실 불을 끄기 전에 함을 한 번 더 셌다. 열아홉. 떼어 간 라면 상자 자리의 못 자국 둘까지 치면 스물이 될 뻔한 자리였다. 안주머니의 3번 함 봉투를 꺼내 난로 불빛에 대 봤다. 발신일의 마지막 숫자는 아직 연필 자국만큼 흐렸지만, 지난주보다 더 흐려지지는 않았다.

3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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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곱줄2026.05.04· 3화

    첫 문단에서 이미 분위기가 잡히네요. 다음 화 기다립니다.

    • 조용한책상2026.05.05

      저도 그 장면에서 멈췄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