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110자) · 이오 · 3월 2일

일 미터 구십

겨울 정거장의 편지 · 서지오

2월 중순, 나는 여량우체국 국장실에 다시 앉았다. 이번에는 내가 서류를 들고 갔다. 한 장은 사직서였고, 다른 한 장은 강원지방우정청에 내는 우편취급국 지정 신청서 사본이었다.

우편취급국은 우체국이 없는 마을에 개인이 차리는 작은 우체국이다. 우정청과 계약을 맺고 등기와 소포를 받는다. 우표를 팔고, 마을 우편물을 모아 본국으로 보낸다. 설운리에는 우체국이 없다. 대합실은 우편함이 백 개 가까이 걸린 건물이다. 신청서의 운영 장소 칸에 나는 설운역 대합실이라고 적었다. 운영자 칸에는 정이오라고 적었다. 계약직 집배원은 운영자가 될 수 없다. 그래서 사직서가 같이 있었다.

허만길 국장님은 두 장을 나란히 놓고 한참 봤다. 라디에이터가 딸깍 소리를 두 번 냈다.

“이게 네가 고른 거냐? 누가 시킨 거 아니고?”

“네.”

“계약 기간이 석 달 남았다. 석 달만 채우면 퇴직금이 나와.”

“압니다.”

“취급국 운영자는 월급이 없다. 수수료로 먹고살아. 설운리 백열두 명 우편물 수수료로 한 달에 얼마 나오는지 알아?”

“계산해 봤습니다. 라면값은 나옵니다.”

국장님은 웃지 않았다. 사직서를 집어 규정집 옆에 각 맞춰 세웠다. 그리고 지정 신청서 사본을 오래 들여다봤다.

“지정 심사에 관할 국장 의견서가 들어가는 거 알지?”

“압니다.”

“내가 반대 의견을 쓰면 안 된다.”

“압니다.”

“리조트가 우리 국에 민원을 세 번 넣었어. 네 번째는 우정청으로 간다더라.”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국장님은 신청서를 내려놓고 서랍을 열었다. 지난번에 무언가를 꺼냈다가 도로 넣었던 그 서랍이었다. 국장님은 거기서 누렇게 바랜 봉투 하나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봉투 모서리가 조금 젖어 있었다.

“2010년 겨울에 설운 구역 돌 때 받은 거다. 그 대합실 함에서. 내 명패도 하나 걸려 있었거든. 계약직 때 장갑 넣어 두려고. 그때는 진짜 기차가 다닐 때였는데, 눈 오는 날 여섯 시 이십 분 차에는 그때도 편지가 따라왔어.”

나는 봉투를 봤다. 수신 허만길, 발신일은 올해 2027년 3월 31일이었다. 글씨가 거의 다 날아가 있었다. 수신인 이름과 날짜만 겨우 남아 있었다.

“십칠 년 동안 안 뜯었다. 너처럼.”

“지금은 뜯으시겠습니까?”

“다 날아간 걸 뜯어서 뭐 해.”

국장님은 봉투를 서랍에 도로 넣었다. 서랍을 닫는 손이 느렸다.

“의견서는 3월 말까지 쓰면 된다. 쓸지 말지는 그때 보자. 나가 봐.”

*

2월 26일은 심재우 씨 기일이었다. 영감님은 그날 아침 대합실에 오지 않았다. 나는 난로를 피워 놓고 공동묘지로 올라갔다. 영감님은 눈 덮인 봉분 앞에 쪼그려 앉아 소주병 뚜껑을 따고 있었다. 나를 보고 놀라지도 않았다. 잔이 하나뿐이어서 영감님은 병뚜껑에 소주를 따라 내게 내밀었다. 나는 그것을 봉분 앞 눈 위에 부었다. 영감님이 한참 그 자리를 보다가 말했다. 재우가 살아 있을 때 한 번도 역에 데려오지 않았다고. 제 아비가 거기서 무슨 짓을 하는지 알까 봐. 그 말을 하고 영감님은 봉분의 눈을 맨손으로 쓸어냈다. 새살 돋은 왼손이 눈에 닿을 때마다 조금씩 움찔했다.

*

3월 2일 아침 일곱 시, 역 아래 길에서 쇠 긁는 소리가 올라왔다. 나는 대합실에서 난로를 피우다가 창밖을 봤다. 트레일러에 실린 노란 굴착기가 승강장 앞에서 내려지고 있었다. 무한궤도가 언 땅을 물 때마다 레일 위에 쌓인 눈이 떨었다.

도재혁이 먼저 들어왔다. 서류를 들고 있었다.

“부속 창고 철거입니다. 대집행 대상 아닙니다. 창고는 회사 자산으로 먼저 넘어왔어요.”

부속 창고는 대합실 바로 옆, 벽 하나를 사이에 둔 붉은 벽돌 건물이다. 그 벽 하나의 안쪽에 우편함 백여 개 가운데 절반이 걸려 있다. 창고를 헐면 그 벽이 같이 무너진다.

“창고를 헐면 대합실 벽이 같이 무너집니다.”

“그건 부수적인 피해죠. 공사하다 보면 생기는.”

“부수적인 피해가 우편함 쉰 개입니다.”

“집배원님, 제 사정도 좀 들어 보세요. 이 창고 자리에 곤돌라 기초가 들어가요. 3월 안에 기초를 못 치면 공정이 한 달 밀리고, 한 달 밀리면 투자사가 빠집니다. 투자사가 빠지면 보상금도 없어요. 저 뒤에 계신 분들 천이백만 원이 이 창고 벽 하나에 걸려 있다고요.”

그는 그 말을 하면서 승강장 아래 길을 턱으로 가리켰다. 거기엔 아직 아무도 없었다.

도재혁은 대답하지 않고 굴착기 쪽으로 손을 들었다. 엔진이 걸리자 굵은 디젤 소리가 대합실 유리창을 떨게 했고, 검은 연기가 승강장 위로 퍼졌다. 버킷이 들리면서 쇠 이빨 다섯 개가 창고 지붕 쪽을 향해 천천히 올라갔다.

그때 영감님이 들어왔다. 영감님은 대합실 난로 앞에서 제 의자를 들었다. 이 년 동안 그 의자에 앉은 사람은 영감님뿐이었다. 의자를 든 채로 대합실을 나가서, 승강장을 가로질러, 창고 벽 앞까지 걸어갔다. 버킷 바로 아래였다. 영감님은 의자를 눈 위에 내려놓고 거기 앉았다. 남색 역무원 제복을 입고 있었다.

굴착기 기사가 버킷을 허공에서 멈췄다.

“어르신, 비키세요!”

영감님은 대답하지 않았다.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렸다. 새살이 돋은 왼손 위에 오른손이 겹쳐졌다.

도재혁이 뛰어갔고 나도 뛰어갔다. 도재혁이 먼저 닿아 영감님의 팔을 잡았다.

“어르신, 이거 공무집행 방해예요. 다치세요.”

“공무는 3월 31일이라며. 오늘은 3월 2일이오.”

“창고는 회사 거라니까요.”

영감님이 도재혁을 올려다봤다. 목소리가 크지 않았다. 디젤 소리에 반쯤 묻혔다.

“여덟 해 동안 여기 앉아서 남의 편지를 팔았소. 이번에는 앉아서 안 팔겠소.”

도재혁이 팔을 놓지 않았다. 나는 그 손목을 잡았다. 도재혁이 나를 돌아봤다. 처음으로 그의 얼굴에서 계산하는 표정이 빠졌다. 빠진 자리에 무엇이 들어왔는지는 나도 몰랐다.

그 사이에 사람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박두칠 씨가 경운기 경적을 울리며 제일 먼저 왔고, 그 뒤로 봉례 할머니가 흰 운동화를 신고 지팡이를 짚고 올라왔다. 윗골 사람들, 아랫골 사람들, 솔골 누렁이 주인아저씨와 누렁이. 누렁이가 굴착기를 보고 짖었다. 사람들은 말없이 영감님 의자 양옆으로 섰다. 한 사람씩 서다 보니 창고 벽 앞에 사람이 한 줄로 늘어섰다. 봉례 할머니는 영감님 바로 옆에 서서 지팡이를 굴착기 쪽으로 겨누었다.

“심가, 여기서 죽으면 팔순 잔치 난로는 누가 피우냐?”

“둘째 난로는 이오 군이 피우겠지.”

“너도 편지 읽었냐?”

“안 읽었소. 봉례 씨가 경로당에서 세 번이나 말했잖소.”

사람들 사이에서 누가 웃었다. 그 웃음이 퍼지는 동안 굴착기 기사가 엔진을 껐다. 버킷이 허공에서 천천히 내려앉았다. 쇠 이빨이 영감님 머리 위 두 뼘에서 멈췄다.

*

아홉 시에 군청 차가 올라왔다. 연지석 주무관이 내렸다. 그는 굴착기와 사람들과 의자에 앉은 영감님을 차례로 보고 나서, 마지막으로 도재혁을 봤다.

“본부장님, 창고 철거 허가 서류 있습니까?”

“창고는 회사 자산입니다.”

“등기 이전은 4월 1일입니다. 지금은 군 재산이에요. 3월 31일 전에 건드리시면 군 재산 손괴입니다.”

도재혁의 입이 다물렸다. 연지석 주무관은 서류 가방에서 공문 한 장을 꺼냈다.

“그리고 지난주에 진정이 하나 들어왔습니다. 동의서 서명 가운데 스물여섯 건이 본인 날인이 아니라는 진정입니다. 주민 스물네 명의 확인서가 붙어 있고요. 군은 동의 현황을 다시 확인하기 전까지 대집행 절차를 보류할지 검토합니다. 검토 결과는 3월 안에 나옵니다.”

“보류할지 검토한다는 거지, 보류한다는 게 아니잖아요.”

“맞습니다. 그러니까 3월 31일 일정은 아직 그대로입니다. 오늘 이건 그 일정도 아닙니다.”

창고 벽 앞에 선 사람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일었다. 박두칠 씨가 스물여섯이면 내 도장도 들어갔겠네, 하고 크게 말했다가 봉례 할머니한테 지팡이로 정강이를 맞았다. 니 도장은 니가 술 먹고 잃어버렸잖아. 연지석 주무관은 굴착기 기사에게 철수하라고 했다. 기사는 도재혁을 봤고, 도재혁은 한참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한궤도가 다시 언 땅을 물고 트레일러에 올라갔다. 도재혁은 떠나기 전에 나한테 다가왔다.

“진정서, 집배원님이 넣으셨죠?”

“이제 집배원이 아닙니다.”

“그럼 뭐예요?”

“취급국 신청자입니다.”

도재혁은 그 말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 이해하고 나서 코로 웃었다. 그러고는 차에 탔다.

*

굴착기가 떠난 뒤에도 사람들은 한참 돌아가지 않았다. 영감님은 여전히 의자에 앉아 있었다. 일어서려다 다리가 풀려서 다시 앉았다. 두 시간 가까이 눈 위에 앉아 있었으니까. 박두칠 씨와 내가 양쪽에서 겨드랑이를 끼고 일으켰다. 영감님의 바짓단이 무릎까지 젖어 있었다.

대합실로 돌아와 난로 앞에 영감님을 앉혔다. 그 의자는 승강장 창고 벽 앞에 두고 온 채였다. 영감님은 대합실 긴 나무 의자에 앉아 손을 쬐었다. 새살 돋은 손바닥이 불빛에 분홍으로 비쳤다.

그날 오후, 창고 벽 앞에 섰던 사람들 가운데 함을 걸지 않았던 사람들이 하나둘 대합실로 들어왔다. 명씨 할아버지가 왔다. 대구 큰아들 말을 따라 함을 안 걸었던 사람이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담뱃갑 은박지에 제 이름을 쓰고 라면 상자에 붙였다. 누렁이 주인아저씨가 왔다. 목씨네 사촌들이 둘 왔다. 저녁이 되자 명패 걸린 함이 백서른하나가 되었다.

나는 그 수를 영감님에게 말했다. 영감님은 고개를 끄덕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장작을 두 개 한꺼번에 넣었다. 불이 크게 일어서 연통이 우웅 하고 울었다.

반하람은 그날 해 질 무렵 올라왔다. 회사에서 잘린 뒤로 그녀는 읍내 원룸을 빼고 봉례 할머니 집 건넌방에 들어가 살았다. 하숙비 대신 할머니에게 글자를 가르친다고 했다. 오늘은 들어오자마자 승강장 창고 벽 앞에 버려진 영감님 의자로 갔다. 레이저 측정기를 꺼내 의자에서 버킷이 멈췄던 자리까지 쏘았다. 허공이라 숫자가 안 떴다. 그녀는 대신 땅에 남은 무한궤도 자국에서 의자 다리까지 줄자로 쟀다.

“일 미터 구십이요.”

“뭐가 말입니까?”

“영감님이 목숨 건 거리요.”

그녀는 줄자를 감았다. 그리고 의자를 들어 대합실 안으로 가져왔다. 난로 앞, 원래 자리에 내려놓았다. 영감님이 긴 의자에서 일어나 제 의자로 옮겨 앉았다.

그녀는 한참 영감님이 의자에 앉는 것을 보고 있다가, 난로 쪽으로 손을 뻗은 채 말했다.

“아버지 생신이 3월 19일이에요. 그날 집에 가요. 금고 비밀번호 바꿨는지 보러.”

10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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