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029자)

남한강 둑 위 300m

국토횡단 패러글라이딩 · 이수

여주 시내 위 햇빛 조각은 우한이 닿기 전에 사라졌다⁠. 구름 그림자 두 개가 양쪽에서 밀려와 조각을 덮었다⁠. 아파트 주차장이 회색으로 꺼졌다⁠. 우한은 1⁠,200m에서 주차장 위를 두 바퀴 돌았다⁠. 바리오는 낮게만 울었다⁠. 뚜우우⁠. 기둥은 이미 끊겨 있었다⁠.

동쪽으로 남한강이 누워 있었다⁠. 강폭이 넓었다⁠. 강 건너 들판은 아직 군데군데 햇빛을 받고 있었다⁠. 저기까지 가야 했다⁠. 우한은 날개를 강 쪽으로 돌렸다⁠. 가속 발판은 밟지 않았다⁠. 가라앉는 공기 속에서 빨리 가면 더 빨리 떨어졌다⁠. 날개가 가장 덜 가라앉는 속도로⁠, 손을 조종줄에서 거의 떼다시피 하고 미끄러졌다⁠.

강 위로 나서자 공기가 차가워졌다⁠. 강바람이 비행복 소매 속으로 파고들었다⁠. 물 냄새가 났다⁠. 갯벌 냄새와는 다른⁠, 민물의 비린내였다⁠. 강물은 땅보다 늦게 데워졌다⁠. 강 위에서는 공기가 솟지 않고 오히려 내려앉았다⁠. 바리오 소리가 더 낮아졌다⁠. 숫자가 빠르게 줄었다⁠. 우한은 강물에 비친 날개 그림자를 봤다⁠. 흰 점 하나가 물결 위를 미끄러졌다⁠. 점이 점점 커졌다⁠.

“⁠우한아⁠, 고도⁠.⁠”

기철이었다⁠.

“⁠800⁠.⁠”

“⁠강 건너 들판까지 2km다⁠. 갈 수 있다⁠.⁠”

“⁠압니다⁠.⁠”

갈 수는 있었다⁠. 가서 무엇을 잡느냐가 문제였다⁠. 강 건너 들판도 그림자가 반을 덮고 있었다⁠. 햇빛을 받는 쪽은 강둑 바로 너머 비닐하우스 단지와 옆 논들이었다⁠.

우한은 강을 건넜다⁠. 500m⁠. 강둑이 발밑으로 지나갔다⁠. 둑 위로 자전거 길이 하얗게 이어졌다⁠. 자전거 탄 사람 둘이 멈춰서 고개를 들었다⁠. 400m⁠. 비닐하우스 단지 위로 날개를 돌렸다⁠. 바리오는 울지 않았다⁠. 하우스 지붕들이 햇빛을 받아 하얗게 빛났지만 공기는 솟지 않았다⁠.

이상했다⁠. 하우스는 밭보다 빨리 데워졌다⁠. 데워진 하우스 위에서는 공기가 솟아야 했다⁠. 우한은 하우스 지붕을 내려다봤다⁠. 지붕이 꽉 닫혀 있었다⁠. 데워진 공기가 비닐 안에 갇혀 있었다⁠.

300m⁠.

강둑이 저 아래에서 우한을 올려다봤다⁠. 300m면 아파트 백 층이었다⁠. 땅에서 보면 높았다⁠. 하늘에서는 바닥이었다⁠. 300m에서 기둥을 못 잡으면 칠팔 분 안에 땅에 닿았다⁠.

우한은 내릴 자리를 보기 시작했다⁠. 머리가 저절로 그렇게 움직였다⁠. 강둑 너머 논이 넓었다⁠. 물이 찬 논은 안 되었다⁠. 날개가 물에 빠지면 천이 상했다⁠. 물을 대지 않은 마른 논이 셋 보였다⁠. 셋 중 하나는 가장자리에 전봇대가 있었다⁠. 전깃줄이 논 위를 가로질렀다⁠. 나머지 둘 가운데 동쪽 것이 넓었다⁠. 바람을 안고 서쪽으로 내리려면 동쪽 끝에서 돌아 들어와야 했다⁠.

삼 주 전 섬강 가 밭에서 날개를 접던 손이 떠올랐다⁠. 우는 보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무 말 없이 「⁠그래⁠」라고 하던 수아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우한은 헬멧 안에서 이를 악물었다⁠. 7km⁠. 오늘은 원주까지 가지도 못하고 여주 강변 논바닥이었다⁠.

“⁠우한 씨⁠.⁠”

보람이 울먹였다⁠.

“⁠괜찮아⁠. 마른 논 보인다⁠.⁠”

“⁠거기 어디예요⁠? 우리 아직 이천이에요⁠.⁠”

“⁠강 건너⁠.⁠”

“⁠강을 어떻게 건너요⁠!⁠”

“⁠다리로⁠.⁠”

보람이 대답하지 못했다⁠. 우한은 동쪽 마른 논 끝으로 날개를 돌렸다⁠. 250m⁠. 하네스 안에서 발판을 밀어내고 다리를 아래로 내렸다⁠. 내릴 준비였다⁠. 무릎이 시큰거렸다⁠. 철심이 박힌 오른쪽이었다⁠.

칙⁠.

누군가 송신 단추를 눌렀다⁠. 우한은 숨을 멈췄다⁠. 이번에는 말이 들어왔다⁠.

“⁠이우한 씨⁠, 하우스 지붕 열렸어요⁠.⁠”

범수였다⁠. 숨이 차 있었다⁠. 엔진 소리가 없었다⁠. 차 밖이었다⁠.

“⁠강둑 아래 둔치예요⁠. 우한 씨 보여요⁠. 지금 북쪽 하우스 단지⁠, 농민들이 점심 먹고 들어와서 환기창 열고 있어요⁠. 지붕 꼭대기 따라 길게 열려요⁠. 방금 맨 끝 동 열렸어요⁠. 열기가 올라와요⁠. 비닐이 출렁거려요⁠.⁠”

우한은 북쪽 하우스 단지를 봤다⁠. 서쪽 것보다 작은 단지였다⁠. 열 동 남짓⁠. 지붕 꼭대기를 따라 비닐이 길게 접혀 올라가고 있었다⁠. 한 동⁠, 또 한 동⁠. 열린 틈으로 하우스 안 공기가 빠져나오고 있었다⁠. 몇 시간 동안 비닐 안에서 데워진 공기였다⁠.

“⁠맨 끝 동 위로 가요⁠. 바람 아래쪽⁠, 동쪽으로 오십 미터쯤 비켜서⁠. 열기가 바람에 밀려서 동쪽으로 기울어요⁠.⁠”

우한은 다리를 다시 발판에 올렸다⁠. 날개를 북쪽으로 꺾었다⁠. 230m⁠. 하우스 단지까지 400m 남짓⁠. 날개 아래로 마른 논이 지나갔다⁠. 내리려던 논이었다⁠.

220⁠, 210⁠. 북쪽 하우스 단지 끝 동이 다가왔다⁠. 우한은 범수의 말대로 동쪽으로 비켜 섰다⁠. 날개 오른쪽 끝이 툭 들렸다⁠.

삐⁠.

갈라진 소리였다⁠. 우한은 오른쪽으로 꺾었다⁠. 원을 그렸다⁠. 원이 작았다⁠. 기둥이 가늘었다⁠. 하우스 열 동이 내뿜는 열기였다⁠. 비닐하우스 한 동에서 떨어져 나왔던 어섬의 첫 기둥보다도 약했다⁠. 한 바퀴를 돌자 소리가 끊겼다⁠. 우한은 원을 반 뼘 옮겼다⁠.

삐⁠, 삐⁠.

바리오 숫자가 멈췄다⁠. 210에서 더 내려가지 않았다⁠. 오르지도 않았다⁠. 우한은 원을 그렸다⁠. 원을 그리고 또 그렸다⁠. 높이를 잃지 않는 것만으로도 기둥 안이라는 뜻이었다⁠.

“⁠다음 동 열려요⁠. 지금⁠. 두 번째 줄⁠.⁠”

범수가 말했다⁠. 우한이 원 중심을 북쪽으로 옮겼다⁠. 엉덩이 밑으로 무언가가 밀었다⁠.

삐⁠, 삐⁠, 삐⁠.

220⁠, 240⁠. 숫자가 오르기 시작했다⁠. 우한은 장갑 속에서 조종줄을 꽉 쥐었다⁠. 손가락 마디가 저렸다⁠. 원 하나에 10m씩⁠, 20m씩⁠. 하우스 단지가 발밑에서 천천히 돌았다⁠. 강둑이 돌았다⁠. 강둑 아래 둔치에 은색 승합차 한 대가 서 있었다⁠. 승합차 옆에 사람 하나가 서서 하늘을 보고 있었다⁠. 한 손에 무전기를 들고⁠, 다른 손으로 눈 위를 가리고⁠.

원을 그리며 우한은 십 년 전 들은 말 하나를 떠올렸다⁠. 비행을 배운 지 반년쯤 된 여름이었다⁠. 석주는 이륙장 벤치에 앉아 수박씨를 뱉으며 말했다⁠.

“⁠우한아⁠, 낮게 깔렸을 때 하우스 단지 보이면 지붕 봐라⁠.⁠”

“⁠지붕이요⁠?⁠”

“⁠농사짓는 사람들은 점심 먹고 한 시쯤 환기창 연다⁠. 안이 너무 더우면 모가 익어⁠. 창 열리는 순간 안에서 익은 공기가 한꺼번에 나온다⁠. 그게 낮게 깔린 사람한테는 마지막 동아줄이다⁠.⁠”

석주가 수박씨를 하나 더 뱉었다⁠.

“⁠이건 범수가 찾아낸 거다⁠. 범수가 처음 크로스컨트리 하다가 여주 강변에 낮게 깔렸을 때⁠. 하우스 창 열리는 거 보고 살았대⁠. 걔가 땅을 잘 봐⁠. 하늘보다⁠.⁠”

십 년 동안 우한은 범수의 말을 잊고 있었다⁠. 범수는 잊지 않았다⁠. 범수는 둔치에 서서 하늘이 아니라 땅을 보고 있었다⁠. 하우스 지붕을⁠, 점심 먹고 들어오는 농민들을⁠.

300⁠, 400⁠. 기둥이 굵어졌다⁠. 하우스 단지 열기가 들판의 데워진 공기를 끌어올리고 있었다⁠. 작은 거품들이 모여 하나의 기둥이 되었다⁠. 바리오가 「⁠삐삐삐삐⁠」 울었다⁠.

보람이 소리쳤다⁠.

“⁠올라가요⁠! 올라가요⁠! 회장님⁠! 회장님 최고예요⁠!⁠”

“⁠보람아⁠.⁠”

기철이 말했다⁠. 그러고는 한마디를 붙였다⁠.

“⁠지금은 괜찮다⁠. 소리 질러라⁠.⁠”

보람이 무전기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이어폰이 찢어질 듯했다⁠. 우한은 헬멧을 벗지 않았다⁠.

범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칙 소리도 내지 않았다⁠.

송산 물류센터 이층 사무실에서 김남수는 회사 무전기를 책상 위에 세워 두고 있었다⁠. 토요일 오후라 사무실에는 주말 당직 직원 둘만 나와 있었다⁠. 남수가 모니터에 위치 공유 화면을 띄운 것은 오전 열한 시였다⁠. 지도 위에 점 하나가 어섬에서 출발해 동쪽으로 기어가고 있었다⁠.

처음에 직원들은 사장이 주식 차트를 보는 줄 알았다⁠. 남수가 화면을 크게 키우자 당직 반장 이씨가 커피를 들고 다가왔다⁠.

“⁠사장님⁠, 이게 뭡니까⁠?⁠”

“⁠우한이⁠.⁠”

“⁠우한 반장님이요⁠? 야간조⁠?⁠”

“⁠하늘에 있어⁠.⁠”

이씨가 화면과 남수를 번갈아 봤다⁠. 점이 이천 위를 지날 때 이씨는 의자를 끌어왔다⁠. 점이 여주 강변에서 멈춰 빙빙 돌기 시작할 때⁠, 포장 라인의 김씨가 이씨 어깨 너머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무전기에서 보람이 「⁠마른 논 보인다고요⁠?⁠」 하고 울먹일 때⁠, 김씨가 「⁠떨어지는 거예요⁠?⁠」 하고 물었다⁠. 남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남수는 점이 강둑 근처까지 내려오는 동안 의자 팔걸이를 쥐고 있었다⁠. 십 년 전 석주가 떨어진 날도 남수는 이렇게 앉아 있었다⁠. 십 년 전에는 위치 공유 화면이 없었다⁠. 저녁 일곱 시에 범수가 전화를 걸어왔다⁠. 「⁠형님⁠, 석주 형이⁠.⁠」 범수는 거기서 말을 끝맺지 못했다⁠.

무전기에서 범수의 목소리가 났다⁠. 「⁠하우스 지붕 열렸어요⁠.⁠」 남수의 손이 팔걸이에서 떨어졌다⁠. 화면 속 점이 같은 자리를 돌기 시작했다⁠. 돌고⁠, 또 돌았다⁠. 이씨가 숨을 내쉬었다⁠. 김씨가 「⁠오⁠, 오⁠」 하고 소리를 냈다⁠. 바리오 소리는 무전기에 잡히지 않았지만 보람의 비명이 잡혔다⁠.

남수가 일어나 창가로 갔다⁠. 창밖으로 시화호 쪽 하늘이 보였다⁠. 우한이 떠난 하늘이었다⁠. 남수는 창틀을 손바닥으로 두 번 두드렸다⁠.

“⁠이 반장⁠.⁠”

“⁠예⁠, 사장님⁠.⁠”

“⁠오늘 당직 몇 시까지야⁠?⁠”

“⁠여섯 시요⁠.⁠”

“⁠저녁 시켜⁠. 짜장면 하고⁠. 양장피도⁠.⁠”

“⁠몇 개요⁠?⁠”

남수가 모니터를 돌아봤다⁠. 점이 강둑을 떠나 동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곱 시 넘어서까지 있을 사람 수대로⁠.⁠”

이씨가 휴대전화를 꺼냈다⁠. 김씨가 「⁠저도요⁠」 하고 손을 들었다⁠. 포장 라인에서 둘이 더 올라왔다⁠. 창고 지게차 기사 하나가 계단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사무실 모니터 앞에 의자가 하나씩 늘었다⁠.

기둥 꼭대기 가까이에서 우한은 무릎을 한 번 굽혔다 폈다⁠. 내리려고 다리를 내렸다가 다시 올린 오른쪽 무릎이 아직 시큰거렸다⁠. 하네스 엉덩이 밑 보호대에 체중을 싣고⁠, 발판에 두 발을 단단히 얹었다⁠. 손가락을 하나씩 접었다 폈다⁠. 장갑 속 손바닥이 땀에 젖어 있었다⁠. 두 시간을 더 날아야 했다⁠.

1⁠,400m에서 우한은 기둥을 떠났다⁠. 남한강이 서쪽으로 물러났다⁠. 강둑 아래 은색 승합차가 장난감처럼 작아졌다⁠. 승합차가 둔치를 빠져나가 동쪽 큰길로 올라서고 있었다⁠.

동쪽으로 섬강이 은빛으로 굽이쳤다⁠. 강 너머로 원주의 산들이 솟기 시작했다⁠. 우한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 차가운 공기가 폐 속 깊이 들어왔다가 나갔다⁠.

송신 단추에 손가락을 댔다⁠. 이번에는 눌렀다⁠.

“⁠회장님⁠. 고맙습니다⁠.⁠”

칙⁠. 단추를 뗐다⁠.

대답은 없었다⁠. 오 초 뒤에 단추 소리가 한 번 났다⁠. 칙⁠. 또 한 번⁠. 칙⁠.

말 없는 두 번이었다⁠. 이번에는 우한도 칙 소리의 뜻을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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