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032자)

아빠 어디야

국토횡단 패러글라이딩 · 이수

이천 들판 위 1⁠,500m에서 우한은 처음으로 점심을 먹었다⁠. 비행복 가슴 주머니에서 은박지에 싼 주먹밥을 꺼내 한 손으로 벗겼다⁠. 다른 손은 조종줄을 놓지 않았다⁠. 주먹밥은 수아가 새벽에 싸 준 것이었다⁠. 김 대신 계란 지단을 둘렀다⁠. 우한이 비행하는 날마다 수아는 계란 지단을 둘렀다⁠. 김 부스러기가 하늘에서 날려 눈에 들어간 날이 있었다⁠.

열두 시 사십 분이었다⁠. 발밑으로 이천 들판이 넓게 펼쳐졌다⁠. 모내기를 앞둔 논에 물이 차 있었다⁠. 논마다 하늘을 담고 있어서 땅이 거울 조각을 이어 붙인 것 같았다⁠. 논둑 사이로 경운기 한 대가 기어갔다⁠. 들판 가장자리 마을에는 도자기 가마 굴뚝들이 서 있었다⁠. 굴뚝 하나에서 흰 연기가 올라와 동쪽으로 비스듬히 누웠다⁠. 바람이 위에서나 아래에서나 서쪽에서 불고 있었다⁠.

“⁠우한아⁠.⁠”

이어폰에서 기철이 불렀다⁠. 기철이 우한의 이름만 부르는 일은 드물었다⁠.

“⁠예⁠.⁠”

“⁠단톡방에 하윤이 왔다⁠.⁠”

우한은 주먹밥을 씹다가 멈췄다⁠. 새벽에 출발하면서 수아를 회수조 단톡방에 넣어 두었다⁠. 보람⁠, 기철⁠, 우한⁠, 수아⁠. 위치 공유 화면을 수아도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보람에게 부탁했다⁠. 수아는 출발할 때까지 아무 말도 올리지 않았다⁠.

“⁠읽어 줄까⁠.⁠”

“⁠읽어 주세요⁠.⁠”

기철이 헛기침을 했다⁠. 예순한 살 먹은 은퇴 예보관이 아홉 살 아이의 문자를 무전으로 읽었다⁠.

“⁠「⁠아빠 어디야⁠」⁠. 물음표는 없다⁠.⁠”

“⁠이천이라고 해 주세요⁠.⁠”

“⁠그것만⁠?⁠”

“⁠쌀밥 먹는 데라고요⁠.⁠”

기철이 휴대전화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가 무전기로 들어왔다⁠. 기철은 자판을 검지 하나로 눌렀다⁠. 한참 걸렸다⁠. 보람이 운전석에서 소리를 질렀다⁠.

“⁠제가 쳐 드릴게요⁠!⁠”

“⁠운전해⁠.⁠”

“⁠신호 걸렸어요⁠!⁠”

“⁠그래도 운전해⁠.⁠”

다시 한참 뒤에 기철이 말했다⁠.

“⁠답 왔다⁠. 「⁠아빠 점이 쌀 위에 있어⁠」⁠. 이번엔 물음표가 없어도 되는 문장이다⁠.⁠”

우한은 웃었다⁠. 하윤은 수아의 휴대전화로 위치 공유 화면을 보고 있었다⁠. 지도 위에 점 하나가 동쪽으로 기어가고 있었을 것이다⁠. 점이 논 위에 있었을 것이다⁠.

바리오가 울었다⁠. 이천 시내 동쪽 공장 단지 위였다⁠. 회색 지붕들이 햇빛을 받아 하얗게 끓고 있었다⁠. 우한은 남은 주먹밥을 입에 밀어 넣고 원을 그렸다⁠. 은박지는 접어서 주머니에 넣었다⁠. 하늘에서는 아무것도 버리지 않았다⁠. 석주가 가르쳤다⁠. 「⁠하늘은 자유다⁠. 그러니까 쓰레기도 자유롭게 떨어진다⁠. 남의 머리 위로⁠.⁠」

원을 그리는 동안 기억이 왔다⁠. 이번에는 하윤의 목소리가 데려왔다⁠.

한 달 전 수요일 밤이었다⁠. 우한의 쉬는 날이었다⁠.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는데 수아가 식탁에 큰 봉투 하나를 올려놓았다⁠. 병원 이름이 찍힌 누런 봉투였다⁠. 수아가 봉투에서 엑스레이 사진을 꺼냈다⁠. 무릎뼈 사진이었다⁠. 하얀 뼈 사이로 더 하얀 쇠막대 하나와 나사 셋이 박혀 있었다⁠.

“⁠버리려다가⁠.⁠”

수아가 사진을 형광등에 비춰 들었다⁠. 우한은 고무장갑을 낀 채 사진을 봤다⁠. 육 년 전 사진이었다⁠. 우한은 문경에서 착륙하다 논두렁에 무릎을 찧었다⁠. 바람이 땅 가까이에서 갑자기 꺾였다⁠. 오른쪽 무릎뼈가 두 조각이 났다⁠. 병원에서 철심을 박고 넉 달을 깁스로 지냈다⁠. 깁스한 넉 달 동안 수아는 하윤을 업고 출근했다⁠.

“⁠의사가 그랬잖아⁠. 이 자리엔 한 번 더 못 박는다고⁠.⁠”

“⁠기억해⁠.⁠”

“⁠강릉 간다며⁠.⁠”

우한은 고무장갑을 벗었다⁠. 수아가 어떻게 알았는지 묻지 않았다⁠. 보람이 지난 주말 집에 놀러 왔다가 우한의 책상에 펼쳐진 지도를 봤다⁠. 지도 위에 어섬에서 경포대까지 빨간 줄이 그어져 있었다⁠. 보람은 지도를 보고 「⁠우와⁠, 이거 진짜 해요⁠?⁠」라고 소리쳤다⁠. 수아는 부엌에서 보람의 소리를 들었다⁠.

“⁠안 가⁠.⁠”

“⁠정말⁠?⁠”

“⁠접을게⁠. 이번엔⁠.⁠”

수아가 엑스레이 사진을 봉투에 다시 넣었다⁠. 사진이 봉투 입구에 걸려 잘 안 들어갔다⁠. 수아는 사진을 억지로 밀어 넣지 않고 봉투를 무릎 위에 올려놓은 채로 앉아 있었다⁠.

하윤이 방에서 나왔다⁠. 손에 줄 공책 하나를 들고 있었다⁠.

“⁠아빠⁠, 숙제⁠.⁠”

공책 맨 위에 하윤의 글씨로 제목이 적혀 있었다⁠. 「⁠우리 가족 이야기 — 아빠가 가장 높이 간 곳⁠」⁠. 제목 밑은 비어 있었다⁠. 담임 선생님이 가족에게 물어서 한 쪽을 채워 오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엄마 편은 「⁠엄마가 가장 많이 웃은 날⁠」⁠, 할머니 편은 「⁠할머니가 가장 멀리 간 곳⁠」이었다⁠. 하윤은 아빠 편을 고르면서 아무도 겹치지 않는 걸 골랐다고 했다⁠.

“⁠가장 높이 간 데가 어디야⁠?⁠”

우한은 식탁 의자에 앉았다⁠. 하윤이 연필을 쥐고 기다렸다⁠.

“⁠문경⁠. 1⁠,850m⁠.⁠”

“⁠그게 얼마만큼이야⁠?⁠”

“⁠우리 아파트를 육백 개 쌓은 만큼⁠.⁠”

하윤이 공책에 적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럼 이번에는 몇 개 쌓을 거야⁠?⁠”

“⁠이번⁠?⁠”

“⁠보람 이모가 그랬어⁠. 아빠 이번에 바다에서 바다까지 간다고⁠. 산 넘어서⁠.⁠”

수아가 웃었다⁠. 소리 없이⁠, 어깨로만 웃었다⁠. 수아는 엑스레이 봉투를 식탁에 내려놓고 하윤의 공책을 끌어당겼다⁠. 공책 귀퉁이에 볼펜으로 작게 적었다⁠.

「⁠원주까지 한 번에 가면⁠.⁠」

우한은 하윤의 글씨를 봤다⁠. 수아가 볼펜을 내려놓고 말했다⁠.

“⁠시험 삼아 한 번 날아 봐⁠. 어섬에서 원주까지⁠. 안 내리고 한 번에 가면 강릉 가⁠. 못 가면 접어⁠. 이번엔 진짜로⁠.⁠”

“⁠원주까지면 140km야⁠.⁠”

“⁠그러니까⁠. 140km를 한 번에 못 가면 240km는 더 못 가잖아⁠.⁠”

수아는 회계 사무실에서 일했다⁠. 숫자 앞에서 수아는 우한보다 빨랐다⁠. 하윤이 엄마와 아빠를 번갈아 보다가 공책에 크게 적었다⁠.

「⁠아빠가 가장 높이 간 곳⁠: 문경 (⁠아파트 600개⁠)⁠. 다음에는 강릉 (⁠아마도⁠)⁠.⁠」

“⁠아마도는 왜 써⁠.⁠”

“⁠아빠 아직 안 갔잖아⁠.⁠”

삼 주 뒤 토요일⁠, 우한은 어섬에서 혼자 떴다⁠. 보람만 회수차로 따라왔다⁠. 기철은 손주 돌잔치에 갔다⁠. 우한은 원주를 7km 앞두고 섬강 가 밭에 내렸다⁠. 오후 네 시에 구름이 갑자기 다 사라졌다⁠. 우한은 1⁠,000m에서 원주 쪽으로 미끄러지며 써멀을 찾았지만 하나도 걸리지 않았다⁠. 밭에 내려서 날개를 접는 동안 보람이 도착했다⁠. 보람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울었다⁠. 우한이 다친 줄 알았다고 했다⁠.

밤늦게 우한은 집에 들어가 수아에게 말했다⁠.

“⁠갔어⁠. 원주⁠.⁠”

수아는 「⁠그래⁠」라고만 했다⁠. 하윤은 이미 자고 있었다⁠. 우한은 씻고 누워서 천장을 오래 봤다⁠. 7km였다⁠. 걸으면 두 시간이 안 되는 거리였다⁠. 숫자로는 거의 다 간 것이었다⁠. 우한은 숫자 뒤에 숨었다⁠. 수아에게 처음 한 거짓말이었다⁠.

삐삐삐삐⁠.

바리오가 쉬지 않고 울었다⁠. 공장 단지 기둥이 굵었다⁠. 초당 3m⁠. 우한은 원을 좁히며 위를 봤다⁠. 구름 바닥이 아까보다 높아져 있었다⁠. 1⁠,600⁠, 1⁠,700⁠. 손가락이 저려 왔다⁠. 장갑 속에서 손을 쥐었다 폈다⁠.

안산 아파트 베란다에서 지수아는 빨래를 널고 있었다⁠. 하윤의 체육복⁠, 우한의 작업복⁠, 수건 다섯 장⁠. 거실 탁자 위에서 휴대전화가 울릴 때마다 하윤이 달려가 화면을 봤다⁠. 아홉 살은 지도 위의 점 하나를 텔레비전보다 오래 봤다⁠.

“⁠엄마⁠, 아빠 이천이래⁠. 쌀밥 먹는 데⁠.⁠”

“⁠아빠다운 소리네⁠.⁠”

수아는 수건을 탁탁 털었다⁠. 아침에 우한이 집을 나설 때 수아는 현관까지 나가지 않았다⁠. 주먹밥 두 개를 은박지에 싸서 식탁에 올려 두었을 뿐이었다⁠. 우한은 주먹밥을 비행복 주머니에 넣고 「⁠다녀올게⁠」라고 했다⁠. 수아는 부엌에서 「⁠응⁠」이라고 했다⁠. 육 년 전 문경에 가던 아침에도 그랬다⁠. 저녁에 수아는 병원 응급실 복도에 서 있었다⁠.

“⁠엄마⁠, 보람 이모가 뭐 썼어⁠.⁠”

하윤이 휴대전화를 들고 베란다로 왔다⁠. 수아는 젖은 손을 앞치마에 닦고 화면을 받았다⁠. 보람이 방금 올린 글이었다⁠.

「⁠여기 지난번에 원주 7km 앞에서 내렸던 데랑 같은 길이에요⁠!⁠」

수아는 글을 두 번 읽었다⁠. 7km 앞에서 내렸던 데⁠. 삼 주 전 토요일 밤⁠, 우한은 현관에 들어서며 「⁠갔어⁠. 원주⁠」라고 했다⁠. 수아는 「⁠그래⁠」라고 했다⁠. 우한의 얼굴을 보지 않고 했다⁠. 보지 않은 게 아니라 볼 수 없었다⁠. 우한의 얼굴을 보면 알 것 같았다⁠. 알게 되면 강릉에 보내지 않아야 했다⁠.

“⁠엄마⁠, 7km가 뭐야⁠?⁠”

“⁠아빠가 덜 간 거리⁠.⁠”

“⁠많이⁠?⁠”

수아는 대답하지 않고 자판을 눌렀다⁠. 「⁠원주 못 갔었어⁠?⁠」 물음표를 찍을지 말지 손가락이 한참 망설였다⁠. 찍었다⁠. 보냈다⁠.

베란다 빨래 건조대에서 우한의 작업복이 바람에 흔들렸다⁠. 수아는 작업복 소매를 집게로 하나 더 집었다⁠. 날아가지 않게⁠.

다시 이천 하늘⁠. 기철의 목소리가 이어폰으로 들어왔다⁠.

“⁠우한아⁠.⁠”

기철이 다시 불렀다⁠. 목소리가 조금 굳어 있었다⁠.

“⁠단톡방에 하나 더 왔다⁠.⁠”

“⁠하윤이요⁠?⁠”

“⁠수아 씨다⁠.⁠”

우한은 원을 그리던 손을 멈출 뻔했다⁠. 날개가 기둥 가장자리로 밀려나며 오른쪽 끝이 들썩였다⁠. 우한은 급히 다시 줄을 당겼다⁠.

“⁠읽어 주세요⁠.⁠”

기철이 바로 읽지 않았다⁠. 무전기 너머에서 보람의 목소리가 작게 들렸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진짜 몰랐어요⁠.⁠」 보람이 우는 것 같았다⁠.

“⁠보람이가 아까 단톡방에 쓴 게 있다⁠. 위치 공유 화면 보다가⁠. 「⁠여기 지난번에 원주 7km 앞에서 내렸던 데랑 같은 길이에요⁠!⁠」라고⁠. 수아 씨가 그걸 봤다⁠.⁠”

우한은 숨을 들이쉬었다⁠. 차가운 공기가 목구멍을 긁었다⁠.

“⁠수아 씨가 쓴 거 읽는다⁠.⁠”

“⁠예⁠.⁠”

“⁠「⁠원주 못 갔었어⁠?⁠」⁠”

기철이 잠깐 쉬었다⁠.

“⁠물음표 있다⁠.⁠”

바리오가 울었다⁠. 우한은 원을 돌았다⁠. 한 바퀴⁠, 두 바퀴⁠. 발밑으로 이천 공장 지붕이 돌고 논이 돌고 가마 굴뚝이 돌았다⁠. 하늘에서는 답장을 쓸 손이 없었다⁠. 우한이 말하면 기철이 쳐야 했다⁠. 기철이 치면 보람도 읽고 수아도 읽고 하윤도 읽을 것이다⁠.

“⁠기철 선생님⁠.⁠”

“⁠말해⁠.⁠”

“⁠그대로 쳐 주세요⁠. 「⁠못 갔어⁠. 7km 모자랐어⁠. 미안해⁠. 지금은 원주 가는 중이야⁠.⁠」⁠”

기철이 검지로 자판을 눌렀다⁠. 한 글자씩⁠. 무전기로 자판 소리가 들어왔다⁠. 톡⁠, 톡⁠, 톡⁠. 오래 걸렸다⁠. 보람이 대신 쳐 주겠다고 하지 않았다⁠.

“⁠보냈다⁠.⁠”

1⁠,800m⁠. 기둥 꼭대기였다⁠. 우한은 날개를 동쪽으로 돌렸다⁠. 저 앞에 여주가 있었다⁠. 여주 너머에 남한강이 있었다⁠. 남한강 너머에 원주가 있었다⁠. 우한은 가속 발판에 발을 얹었다⁠.

이어폰이 조용했다⁠. 단톡방에 답이 오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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