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355자)

구름길

국토횡단 패러글라이딩 · 이수

오산 시내를 지날 즈음 우한은 1⁠,300m에 있었다⁠. 화성 공장 지붕 위에서 한 번⁠, 오산 들머리 저수지 둑 위에서 한 번⁠, 굵은 기둥 둘을 연달아 탔다⁠. 바리오가 「⁠삐삐삐⁠」 쉬지 않고 울었고⁠, 우한은 원을 돌며 장갑 낀 손가락을 한 번씩 오므렸다 폈다⁠. 손끝이 차가워지고 있었다⁠.

1⁠,300m에서 기둥이 끝났다⁠. 머리 위로 구름 바닥이 평평하게 깔려 있었다⁠. 위는 솜처럼 부풀었지만 아래는 칼로 자른 듯 반듯했다⁠. 공기가 오르다가 식어 물기가 엉기는 높이가 구름 바닥이었다⁠. 오늘은 거기가 천장이었다⁠. 천장은 해가 높아질수록 같이 올라갈 것이다⁠. 기철의 표에는 오후에 2⁠,000m라고 적혀 있었다⁠.

우한은 동쪽을 봤다⁠. 숨이 멈췄다⁠.

구름이 줄지어 서 있었다⁠. 하나⁠, 둘⁠, 셋⁠, 다섯⁠, 여덟⁠. 뭉게구름들이 동쪽으로 곧게 늘어서서 용인 쪽 하늘 끝까지 이어졌다⁠. 구름과 구름 사이는 비슷한 거리로 떨어져 있었다⁠. 누가 하늘에 점선을 그어 놓은 것 같았다⁠. 몇 km 옆에 또 한 줄⁠. 다시 옆에 또 한 줄⁠. 하늘에 길이 여러 갈래로 나 있었다⁠.

바람이 한 방향으로 고르게 불면 써멀이 바람을 따라 줄을 섰다⁠. 땅에서 솟은 기둥들이 바람에 밀려 한 줄로 늘어서고⁠, 꼭대기마다 구름이 피었다⁠. 구름 밑을 따라가면 오르는 공기가 끊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구름길이라 불렀다⁠. 영어로 스트리트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석주는 「⁠하늘 고속도로⁠」라고 불렀다⁠. 석주가 그렇게 부를 때마다 범수는 「⁠형⁠, 고속도로에도 사고 납니다⁠」라고 받았다⁠.

“⁠기철 선생님⁠. 길 났습니다⁠.⁠”

“⁠보인다⁠. 여기서도⁠.⁠”

기철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조금 높아졌다⁠. 기철은 땅에서 하늘을 보고 있었다⁠. 보람의 경차는 오산 시내를 빠져나가고 있을 것이다⁠.

“⁠몇 줄이냐⁠.⁠”

“⁠셋⁠. 가운데 줄이 용인까지 끊김 없습니다⁠.⁠”

“⁠가운데로 가⁠. 밟아라⁠.⁠”

우한은 발판 아래로 다리를 뻗었다⁠. 발판 밑에 쇠막대 하나가 더 매달려 있었다⁠. 가속 발판이었다⁠. 발로 밟으면 줄이 당겨져 날개 앞쪽이 조금 숙여졌다⁠. 날개가 고개를 숙이면 빨라졌다⁠. 대신 날개가 예민해졌다⁠. 앞쪽이 숙여진 날개는 난기류 한 번에 앞쪽 가장자리가 꺾여 접힐 수 있었다⁠. 고급 날개일수록 가속 발판을 많이 밟을 수 있었다⁠. 석주의 날개는 중급이었다⁠. 끝까지 밟으면 날개가 떨었다⁠.

우한은 반쯤 밟았다⁠.

날개가 고개를 숙였다⁠. 바람 소리가 헬멧을 때렸다⁠. 하네스가 앞으로 쏠리고 줄이 팽팽해졌다⁠. 구름 밑 그늘이 빠르게 다가왔다가 지나갔다⁠. 바리오는 울다가 멈추다가 다시 울었다⁠. 오르는 공기와 내리는 공기를 번갈아 지나는 소리였다⁠. 원을 그리지 않았는데도 높이가 줄지 않았다⁠. 1⁠,300⁠, 1⁠,280⁠, 1⁠,310⁠. 숫자가 같은 자리에서 오르내렸다⁠.

구름길 한가운데서 날개가 한 번 떨었다⁠. 구름 하나가 끝나고 다음 구름이 시작되는 틈이었다⁠. 오르던 공기가 갑자기 내려앉았다⁠. 날개 앞쪽 가장자리가 툭 하고 안으로 꺾였다⁠. 흰 천 한 자락이 접혀 들어가며 날개 왼쪽 삼분의 일이 쭈그러들었다⁠. 하네스가 왼쪽으로 확 기울었다⁠.

우한은 가속 발판에서 발을 뗐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발을 떼자 날개가 고개를 들었다⁠. 오른손 조종줄을 살짝 당겨 날개가 왼쪽으로 도는 것을 막았다⁠. 접힌 자락에 바람이 다시 들어찼다⁠. 퍽 소리와 함께 천이 펴졌다⁠. 삼 초도 안 걸렸다⁠. 중급 날개라서 스스로 펴질 힘이 있었다⁠. 고급 날개였다면 손으로 펴야 했을 것이다⁠.

“⁠뭐예요⁠? 방금 뭐예요⁠? 우한 씨 숨소리 이상했어요⁠!⁠”

“⁠앞이 접혔다⁠. 폈다⁠.⁠”

“⁠접혀요⁠? 날개가요⁠? 그게 접혀요⁠?⁠”

“⁠접힌다⁠. 그래서 등급을 나눈다⁠.⁠”

보람이 한참 말이 없었다⁠. 우한은 가속 발판에 다시 발을 얹었다⁠. 이번에는 삼분의 일만 밟았다⁠.

발밑으로 경부고속도로가 지나갔다⁠. 회색 실 한 가닥에 자동차들이 점점이 박혀 있었다⁠. 휴게소 지붕이 손톱만 했다⁠. 토요일 아침 서울을 빠져나가는 차들이 실을 따라 남쪽으로 기어갔다⁠. 저 차들 중 하나에서 누군가 고개를 들면⁠, 흰 날개 하나가 동쪽으로 미끄러지는 게 보일 것이다⁠.

“⁠우한 씨⁠! 우한 씨 지금 고속도로 위예요⁠?⁠”

“⁠지났다⁠.⁠”

“⁠우리 아직 고속도로 못 탔어요⁠! 신호등에 걸렸어요⁠! 아니 근데 하늘은 신호등 없어요⁠?⁠”

“⁠없다⁠.⁠”

“⁠불공평해요⁠!⁠”

기철이 무어라 중얼거렸다⁠. 무전기에 잡히지 않을 만큼 작은 소리였다⁠.

구름길을 따라 곧게 가는 동안은 몸이 할 일이 적었다⁠. 발을 밟고 있고⁠, 날개를 보고 있고⁠, 바리오를 듣고 있으면 되었다⁠. 머리가 다시 기억을 데려왔다⁠. 이번에는 보람의 목소리가 데려왔다⁠.

지난 일요일 아침이었다⁠. 자비대 활공장 풀베기 날이었다⁠. 활공장은 화성 남양 쪽 낮은 산 중턱에 있었다⁠. 산 주인에게 땅을 빌려 나무를 베고 잔디를 깔아 만든 이륙장이었다⁠. 석주가 만들었다⁠. 이십 년 전 석주가 산 주인 집을 열한 번 찾아가 소주를 따르고 얻어 낸 땅이었다⁠. 5월이면 잔디 사이로 쑥과 개망초가 무릎까지 올라왔다⁠. 회원들은 한 달에 한 번 모여 예초기를 돌렸다⁠.

일요일 오전 열한 시⁠, 예초기 소리 사이로 회원들의 휴대전화가 일제히 울렸다⁠. 자비대 단톡방이었다⁠. 보람이 올린 글이었다⁠.

「⁠토요일 강릉 회수 준비물⁠!⁠! 1⁠. 김밥 2⁠. 보조배터리 3⁠. 우한 씨 무릎 파스 4⁠. 기철 선생님 혈압약 5⁠. 경포대 가서 먹을 회 예약⁠」

예초기 소리가 하나씩 꺼졌다⁠. 서른 명 가운데 풀베기에 나온 사람이 열두 명이었다⁠. 열두 명이 동시에 휴대전화를 봤다⁠. 보람은 활공장 구석에서 깔고 앉았던 방석째로 굳었다⁠.

“⁠아⁠, 이거 저희 셋 방에 쓰려던 거였는데요⁠.⁠”

아무도 웃지 않았다⁠. 범수가 예초기를 내려놓고 장갑을 벗었다⁠. 장갑을 벗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이우한 씨⁠.⁠”

“⁠예⁠.⁠”

“⁠강릉이요⁠.⁠”

“⁠예⁠.⁠”

“⁠회칙 7조 아시죠⁠.⁠”

“⁠압니다⁠.⁠”

“⁠압니다⁠.⁠”

범수가 우한의 말을 그대로 따라 했다⁠. 화가 날수록 범수는 짧아졌다⁠. 범수가 활공장 오두막으로 들어가더니 비닐 파일 하나를 들고 나왔다⁠. 서류 몇 장이 끼워져 있었다⁠. 범수가 서류를 우한의 가슴팍에 댔다⁠.

“⁠읽어 봐요⁠. 땅 주인이랑 쓴 계약서예요⁠. 12조⁠.⁠”

우한은 읽었다⁠. 이륙장에서 비롯된 인명 사고가 일어나면 땅 주인은 계약을 끊을 수 있다는 조항이었다⁠. 조항 밑에 손글씨로 덧붙인 줄이 있었다⁠. 「⁠2005년 사고 이후 추가⁠」⁠. 범수의 글씨였다⁠.

“⁠십 년 전에 석주 형 떨어지고 나서 땅 주인이 이걸 넣자고 했어요⁠. 내가 그 집 가서 무릎 꿇고 넣은 거예요⁠. 활공장 안 뺏기려고⁠.⁠”

범수가 파일을 넘겼다⁠. 보험사에서 온 문서였다⁠. 동호회 단체 보험을 갱신하며 받은 안내문이었다⁠. 활공장을 벗어난 장거리 비행 중의 사고는 보장하지 않으며⁠, 그런 사고가 잦으면 단체 보험 갱신을 거절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보험 없으면 체험객 못 받아요⁠. 체험객 못 받으면 활공장 땅값 못 내요⁠. 땅값 못 내면 서른 명이 어디 가서 날아요⁠. 우한 씨 하나 때문에 서른 명이 하늘을 잃어요⁠.⁠”

우한은 파일을 범수에게 돌려주었다⁠. 범수 말에 틀린 데가 없었다⁠. 우한도 알고 있었다⁠. 자비대가 체험객 탠덤 비행으로 먹고산다는 것⁠. 주말마다 범수가 두 사람이 타는 큰 날개에 관광객을 하나씩 매달고 하루 여덟 번 산을 뛰어내린다는 것⁠. 범수의 무릎도 우한의 무릎만큼 망가져 있다는 것⁠.

“⁠어섬에서 뜹니다⁠. 활공장 아니고요⁠.⁠”

“⁠어섬⁠.⁠”

범수가 어섬이라는 이름을 씹듯이 말했다⁠. 그러고는 활공장 아래 주차장을 봤다⁠. 주차장에는 남수가 회원들 먹으라고 수박 다섯 통을 싣고 와 있었다⁠. 남수는 트럭 짐칸에 걸터앉아 수박을 쪼개다가 칼을 든 채로 범수와 눈이 마주쳤다⁠.

범수가 주차장으로 걸어 내려갔다⁠. 우한이 따라갔다⁠. 보람과 기철이 뒤따랐다⁠. 회원들은 예초기를 든 채로 서 있었다⁠.

“⁠형님⁠.⁠”

“⁠어⁠, 범수야⁠. 수박 먹어⁠.⁠”

“⁠어섬 이륙장 형님 돈으로 만드셨죠⁠.⁠”

“⁠내 돈이 어디 있어⁠. 회사 돈이지⁠.⁠”

“⁠보험도 형님이 드셨고요⁠.⁠”

“⁠이륙장 이름으로⁠.⁠”

“⁠그래서 강릉 가도 우리 보험은 상관없다⁠, 이거예요⁠?⁠”

남수가 칼을 내려놓았다⁠. 수박 물이 짐칸 바닥으로 흘렀다⁠.

“⁠범수야⁠. 나는 석주가 못 간 데를 누가 가는 거 한번 보고 싶어서⁠.⁠”

“⁠형님은 그날 안 계셨잖아요⁠.⁠”

남수의 입이 닫혔다⁠. 범수가 말을 이었다⁠. 목소리가 낮아졌다⁠.

“⁠형님은 결혼하고 날개 접으셨죠⁠. 그날 석주 형 회수차 몬 거 저예요⁠. 대관령 고개에서 석주 형 찾으러 비탈 내려간 것도 저고요⁠. 형님은 돈 대고⁠, 구경하고⁠, 끝나면 수박 사 오시면 되죠⁠.⁠”

“⁠범수 씨⁠.⁠”

우한이 끼어들었다⁠. 범수가 우한을 보지 않고 남수만 봤다⁠.

“⁠돈으로 하늘을 사요⁠, 형님⁠?⁠”

남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수박 칼 손잡이를 손바닥으로 문지르기만 했다⁠. 범수가 돌아서 활공장으로 올라갔다⁠. 회원들이 길을 비켜 주었다⁠. 수박은 반이 남았다⁠. 사흘 뒤 범수는 우한의 날개 가방을 창고에 넣었다⁠.

“⁠우한아⁠.⁠”

이어폰에서 남수의 목소리가 났다⁠. 우한이 화들짝 놀랐다⁠. 남수가 자비대 채널에 들어온 건 처음이었다⁠.

“⁠사장님⁠?⁠”

“⁠회사 무전기 하나 켜 놨어⁠. 듣기만 할게⁠. 말 안 해⁠.⁠”

“⁠들리십니까⁠?⁠”

“⁠들려⁠. 잘 가네⁠.⁠”

남수는 정말 다시는 말하지 않았다⁠.

구름길이 끝나 가고 있었다⁠. 우한은 1⁠,250m에서 가속 발판을 놓았다⁠. 날개가 고개를 들었다⁠. 30km를 원 하나 그리지 않고 왔다⁠. 왼쪽 앞으로 산줄기 하나가 북쪽으로 솟아 있었다⁠. 정광산이었다⁠. 정상 가까이에 잔디를 깐 이륙장이 손톱만 하게 보였다⁠. 주말마다 수도권 동호인들이 몰리는 활공장이었다⁠.

국내 최장 비행 기록이 저기서 시작됐다⁠. 몇 해 전 한 비행자가 정광산에서 떠서 경북 봉화까지 185km를 날았다⁠. 우한은 기록 보도를 휴대전화에 저장해 두고 있었다⁠. 지난겨울 줄을 갈던 밤마다 꺼내 봤다⁠. 185km를 날려면 써멀을 몇 개나 타야 하는지⁠, 몇 시에 떠서 몇 시에 내렸는지⁠, 어디서 낮아졌는지 찾아 읽었다⁠.

정광산 이륙장 위에 형형색색의 날개 여남은 개가 떠 있었다⁠. 노랑⁠, 파랑⁠, 초록⁠. 다들 새 날개였다⁠. 흰 날개는 우한 하나였다⁠. 정광산 날개들 가운데 하나가 우한 쪽으로 다가오다가 방향을 틀었다⁠. 멀어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날개 위 사람 눈에 「⁠Edel⁠」 세 글자가 보였을지 우한은 알 수 없었다⁠.

바리오가 다시 울기 시작했다⁠. 정광산 남쪽 비탈에서 솟는 기둥이었다⁠. 우한은 원을 그렸다⁠. 원을 그리며 고도를 쟀다⁠. 1⁠,300⁠, 1⁠,350⁠. 동쪽 이천 쪽 하늘에 다음 구름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어폰에서 보람이 말했다⁠.

“⁠우한 씨⁠, 우리 고속도로 탔어요⁠! 지금 시속 110이에요⁠! 우한 씨는 시속 몇이에요⁠?⁠”

우한은 바리오 액정 아래 작은 숫자를 봤다⁠. 땅 위의 속도였다⁠.

“⁠52⁠.⁠”

“⁠우리가 이겼다⁠!⁠”

“⁠보람아⁠.⁠”

기철이 말했다⁠. 이번에는 뒤에 한마디가 더 붙었다⁠.

“⁠고속도로에도 사고 납니다⁠.⁠”

보람이 조용해졌다⁠. 우한은 원을 그리며 기철의 말을 한 번 더 들었다⁠. 기철이 누구의 말을 흉내 낸 것인지 알았다⁠.

3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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