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638자)

두 번째 주사

아내는 일흔, 남편은 서른 · 하윤슬

이겸은 아내가 병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를 처음으로 아내의 소리로 들었다⁠. 문손잡이를 끝까지 돌리지 않고 반쯤에서 미는 소리⁠, 문턱에서 오른발부터 들이는 소리였다⁠. 2020년의 신혼집 현관에서도 효란은 그렇게 들어왔다⁠. 칠번 씨가 머리 위 등을 분홍으로 켰다⁠.

“⁠배우자 면회입니다⁠. 반갑습니다⁠, 탁효란 님⁠.⁠”

“⁠엄 여사라고 안 해⁠?⁠”

“⁠기록을 고쳤습니다⁠. 엄 여사님 기록은 지웠습니다⁠.⁠”

“⁠아깝다⁠. 정 들었는데⁠.⁠”

효란은 귤 봉지 대신 반찬통 두 개를 들고 왔다⁠. 협탁에 내려놓고 뚜껑을 열자 멸치볶음과 깻잎 냄새가 병실에 퍼졌다⁠. 이겸이 깻잎을 보고 웃었다⁠. 2020년에도 깻잎은 효란이 젓가락으로 한 장씩 떼어 주었다⁠. 효란은 이번에도 젓가락으로 깻잎을 한 장 떼어 밥 위에 얹어 주었다⁠. 이겸의 손끝이 젓가락을 쥐었고⁠, 이번에는 떨어뜨리지 않았다⁠.

“⁠늘었네⁠.⁠”

“⁠시계 뒷판도 땄잖아⁠.⁠”

밥을 반쯤 먹었을 때 효란이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이겸은 효란의 손을 보았다⁠. 젓가락을 내려놓은 손이 무릎 위에서 카디건 단추를 만지작거렸다⁠. 할 말이 있을 때 효란은 단추부터 만졌다⁠.

효란은 어제 법원 복도에서 들은 말을 처음부터 끝까지 했다⁠. 이야기는 물이 들어온 지하와 반쯤 잠긴 발전기에서 시작해 원장실 문밖에 서 있던 스물여섯 살의 기술자에서 끝났다⁠. 효란은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고 중간에 쉬지도 않았다⁠. 시계 부품 이름을 대듯이 차례대로 늘어놓았다⁠. 이겸은 숟가락을 쥔 채 듣다가 언제부턴가 숟가락을 놓쳤다⁠. 숟가락이 이불 위에 떨어지는 소리가 둔했다⁠.

“⁠그러니까 원장이⁠…⁠…⁠.⁠”

“⁠나를 깨워서 당신을 살렸대⁠.⁠”

“⁠그게 무슨⁠…⁠…⁠.⁠”

이겸은 말을 잇지 못했다⁠. 효란이 이불 위의 숟가락을 주워 물수건으로 닦았다⁠. 칠번 씨가 하던 일이었다⁠. 칠번 씨는 한 발 물러서서 등을 껐다⁠.

“⁠원장 말이 틀린 데가 없어⁠. 내가 깨워도 사는 사람이었던 거⁠, 당신이 깨우면 죽는 사람이었던 거⁠. 그 밤에 발전기가 멎었으면 당신은 지금 없어⁠.⁠”

“⁠그래도⁠.⁠”

“⁠그래도 뭐⁠.⁠”

“⁠당신 마흔 해를 그 계산에 넣었잖아⁠. 물어보지도 않고⁠.⁠”

효란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겸은 효란의 손을 잡았다⁠. 손등이 따뜻했고 주름 사이가 부드러웠다⁠. 이겸은 손끝으로 효란의 손등 주름을 하나씩 짚었다⁠. 젖은 솜 같던 손끝이 오늘은 주름 하나하나의 깊이를 따로 알았다⁠. 이겸은 손끝이 주름을 알아보는 것이 반가워서⁠, 반가운 것이 미안했다⁠.

“⁠물어봤으면 뭐라고 했을 것 같아⁠?⁠”

“⁠깨우라고 했겠지⁠.⁠”

효란이 피식 웃었다⁠. 이겸도 웃었다⁠. 웃는 사이 효란의 엄지가 이겸의 손목 안쪽으로 들어왔다⁠. 맥박 뛰는 자리를 엄지가 가만히 눌렀다⁠. 서른 살의 맥박이 일흔 살의 엄지 밑에서 빠르게 뛰었다⁠. 효란은 시계 초침을 세듯 맥박을 셌다⁠. 셀 수 있는 것을 세면서 효란의 숨이 길어졌다⁠. 이겸은 손목을 빼지 않았다⁠.

“⁠빠르네⁠.⁠”

“⁠당신 손이 따뜻해서 그래⁠.⁠”

“⁠늙으면 열이 손으로 몰린다니까⁠.⁠”

“⁠그거 진짜야⁠?⁠”

“⁠아니⁠. 지어낸 말이야⁠.⁠”

칠번 씨가 등을 다시 켰다⁠. “⁠배우자 면회 남은 시간 십 분입니다⁠. 혈압이 오르셨습니다⁠.⁠” 효란이 손을 빼며 칠번 씨를 흘겨보았다⁠. 이겸은 이불 속으로 손을 넣고⁠, 손목 안쪽에 남은 엄지 자국을 다른 손으로 덮었다⁠.

*

원장실은 본관 꼭대기 층에 있었다⁠. 이겸은 지팡이를 짚고 엘리베이터에 탔다⁠. 엘리베이터가 몇 층 가시냐고 물었고⁠, 이겸은 원장실이라고 대답했다⁠. 엘리베이터는 원장실은 예약하셨느냐고 되물었다⁠. 이겸은 안 했다고 대답했다⁠. 엘리베이터는 노래를 틀었고⁠, 문이 열렸다⁠.

원장실 벽 하나가 통째로 창이었다⁠. 창밖으로 한강이 넓게 펼쳐졌다⁠. 다른 벽에는 커다란 화면이 걸려 있었고⁠, 화면에 선과 숫자가 떠 있었다⁠. 해외 제약사의 이름 옆에서 붉은 선 하나가 아래로 꺾여 있었다⁠. 이겸은 숫자를 읽을 줄 몰랐지만 선이 아래로 꺾였다는 것은 알았다⁠.

동규는 책상 앞에 서서 이겸을 맞았다⁠. 의자를 권했다⁠. 이겸은 앉지 않았다⁠.

“⁠앉으시지요⁠. 서 계시다 넘어지시면⁠…⁠…⁠.⁠”

“⁠업고 가셔야죠⁠. 다들 그 말 하세요⁠.⁠”

동규가 웃지 않고 의자를 도로 밀어 넣었다⁠. 둘 다 서 있었다⁠.

“⁠들으셨지요⁠. 탁 여사님께⁠.⁠”

“⁠원장님이 제 아내 마흔 해를 가져가셨어요⁠.⁠”

“⁠서이겸 님의 목숨을 남겼습니다⁠.⁠”

“⁠제가 남겨 달라고 했어요⁠?⁠”

“⁠아니요⁠. 그 밤에는 아무도 저한테 뭘 해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다들 주무셨거나 비명을 지르셨습니다⁠.⁠”

이겸은 지팡이 손잡이를 쥐었다⁠. 손끝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이제는 느껴졌다⁠. 동규는 화면 쪽으로 몸을 돌렸다⁠. 꺾인 붉은 선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반지 사진이 나온 다음 날부터 저렇습니다⁠. 투자사들이 묻습니다⁠. 아내가 왜 일흔이냐고⁠. 기계 고장이면 다른 캡슐은 괜찮으냐고⁠. 지하 3층에 아직 이천구백아흔아홉 분이 계십니다⁠. 그분들 치료제 값을 병원이 먼저 내고 있습니다⁠. 투자가 빠지면 다음 기상부터 멈춥니다⁠.⁠”

“⁠그래서요⁠.⁠”

“⁠그래서 부탁드립니다⁠.⁠” 동규는 책상 서랍에서 얇은 화면 하나를 꺼내 이겸 앞에 놓았다⁠. “⁠서이겸 님의 두 번째 주사는 유월에 놓습니다⁠. 세 번째는 십이월입니다⁠. 주사는 해외 제약사와 병원이 맺은 계약으로만 들어옵니다⁠. 병원 밖에서는 구할 수 없습니다⁠. 한 번에 집 한 채 값입니다⁠.⁠”

이겸은 화면을 내려다보았다⁠. 「⁠첫 완치 기상자 홍보 계약 · 기간 두 해 · 투자 설명회와 언론 행사 참석 · 2020년 기상 사고에 관한 발언 금지 · 치료비 전액 병원 부담⁠」⁠.

“⁠두 해만 웃어 주십시오⁠. 투자자 앞에서⁠, 가족회 앞에서⁠, 화면 앞에서⁠. 서른 살 몸으로 다시 걷는 모습을 보여 주십시오⁠. 치료비는 병원이 냅니다⁠. 탁 여사님 일은 말씀하지 않으시면 됩니다⁠.⁠”

“⁠안 하면요⁠?⁠”

“⁠주사는 놓아 드립니다⁠. 저는 의사이기도 합니다⁠. 다만 비용은 서이겸 님 몫입니다⁠. 세 번째 주사까지 맞지 않으시면 손끝부터 다시 굳습니다⁠. 처음보다 빨리⁠.⁠”

이겸은 제 손끝을 내려다보았다⁠. 아침에 효란의 손등 주름을 하나씩 짚은 손끝이었다⁠. 동규의 목소리는 끝까지 공손했다⁠. 공손해서 빠져나갈 데가 없었다⁠.

“⁠원장님은 그 밤에 넷을 끄고 스물을 살렸죠⁠. 지금은 저 하나를 웃게 해서 삼천을 살리시려고요⁠.⁠”

“⁠네⁠.⁠”

동규는 망설이지 않았다⁠.

“⁠계산은 그때나 지금이나 같습니다⁠. 다른 것은 이번에는 서이겸 님께 여쭙는다는 것 하나입니다⁠. 그 밤에는 아무한테도 묻지 못했습니다⁠.⁠”

*

병실로 돌아오는 복도에서 이겸은 누군가에게 손목을 붙잡혔다⁠. 재활실 유리벽에 손바닥을 붙였던 쉰 남짓한 여자였다⁠. 오늘은 사진을 들고 있었다⁠. 사진 속에서 스물두 살쯤 된 남자가 축구공을 옆구리에 끼고 웃었다⁠. 여자는 수면자 가족회 회장이라고 했다⁠. 아들은 열아홉 해째 지하 3층에 있었다⁠.

“⁠원장님 방에서 나오시는 거 봤어요⁠. 계약 얘기 들으셨죠⁠?⁠”

“⁠가족회도 아세요⁠?⁠”

“⁠가족회가 원장님께 부탁드린 거예요⁠.⁠”

회장은 이겸의 손목을 놓지 않았다⁠. 손이 거칠었다⁠. 열아홉 해 동안 무슨 일을 해서 보존료를 냈는지 손바닥이 말해 주었다⁠.

“⁠우리 아들 차례가 가을이에요⁠. 위원회가 그렇게 정했어요⁠. 반지 사진 나오고 나서 이미 두 집이 날짜가 밀렸어요⁠. 서이겸 씨가 웃어 주시면 투자가 돌아온대요⁠. 부인 일은 정말 마음이 아파요⁠. 그런데 부인은 마흔 해를 사셨잖아요⁠. 우리 애는 스물두 살에서 멈춰 있어요⁠.⁠”

회장은 울지 않았다⁠. 사진을 이겸의 손에 쥐여 주고 고개를 숙였다⁠. 이겸은 사진을 받아 들었다⁠. 축구공을 낀 남자의 앞니가 하나 깨져 있었다⁠. 깨진 앞니가 웃는 얼굴 한가운데에서 빛났다⁠.

“⁠제가 웃으면 이분이 깨어나요⁠?⁠”

“⁠모르죠⁠. 근데 안 웃으시면 확실히 늦어져요⁠.⁠”

회장은 사진을 돌려 달라고 하지 않고 돌아섰다⁠. 이겸은 사진을 든 채 복도에 서 있었다⁠. 칠번 씨가 바퀴를 굴려 다가와 휠체어를 권했다⁠. 이겸은 고개를 저었다⁠.

*

저녁 면회 시간에 은희가 왔다⁠. 보온병에 이번에는 미역국 대신 보리차를 담아 왔다⁠. 은희는 침대 곁에 앉자마자 협탁 위의 축구공 사진을 보았다⁠. 누구냐고 묻지 않았다⁠. 은희도 가족회 단톡방에 들어가 있었다⁠.

“⁠원장님이 계약 얘기 했지⁠?⁠”

“⁠너도 알았어⁠?⁠”

“⁠나한테 먼저 물어보셨어⁠. 오빠가 할 것 같으냐고⁠. 내가 오빠는 웃으라고 하면 잘 웃는 사람이라고 했어⁠.⁠”

은희는 보리차를 따라 이겸에게 내밀었다⁠. 이겸은 컵을 받아 두 손으로 감쌌다⁠. 손끝에 열기가 먼저 닿았다⁠. 처음이었다⁠. 뜨거운 것이 손바닥보다 손끝에 먼저 왔다⁠. 이겸은 컵을 내려다보며 한동안 말이 없었다⁠.

“⁠은희야⁠. 너는 왜 그 서류에 서명했어⁠? 후견 신청⁠.⁠”

“⁠오빠 우리 집에 데려가려고⁠.⁠”

“⁠그거 말고⁠. 2020년에⁠. 효란이가 깨고 나서⁠, 내 보호자를 병원으로 바꾸는 서류⁠.⁠”

은희의 손이 보온병 뚜껑 위에서 멈췄다⁠. 은희는 오빠를 보지 않고 창밖의 드론들을 보았다⁠. 드론 하나가 불빛을 깜박이며 강을 건넜다⁠.

“⁠원장님이 부탁했어⁠. 그때는 원장님 아니고 막내 기술자였어⁠. 병원 앞 편의점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어⁠. 스물여섯 살짜리가 스물네 살짜리한테 고개를 숙였어⁠. 언니가 지금 서명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고⁠. 오빠를 지키려면 병원이 보호자가 돼야 한다고⁠.⁠”

“⁠효란이는 알아⁠?⁠”

“⁠몰라⁠. 언니는 내가 그때부터 언니를 미워한 줄만 알아⁠.⁠” 은희는 보온병 뚜껑을 손바닥으로 몇 번 문질렀다⁠. “⁠오빠⁠, 그냥 해⁠. 두 해만 웃어⁠. 웃는 거 오빠 잘하잖아⁠.⁠”

“⁠은희야⁠.⁠”

“⁠응⁠.⁠”

“⁠나 웃는 거⁠, 효란이 앞에서만 잘해⁠.⁠”

은희는 대답하지 않았다⁠. 보온병을 가방에 넣고 일어났다⁠. 문을 나서기 전에 돌아서서 오빠의 환자복 깃을 반듯하게 펴 주었다⁠. 스물네 살 때 오빠가 출근할 때마다 하던 손짓이었다⁠. 깃은 은희가 손을 떼자 다시 한쪽으로 접혔다⁠.

*

밤 아홉 시⁠, 이겸은 원장실 문을 두드렸다⁠. 동규는 아직 퇴근하지 않았다⁠. 책상 위 스탠드 하나만 켜져 있었고⁠, 창밖 한강 다리에 불빛이 줄지어 지나갔다⁠. 이겸은 낮에 받은 화면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화면 옆에 회장의 아들 사진도 내려놓았다⁠.

“⁠안 할게요⁠.⁠”

동규는 화면을 보지 않고 사진을 보았다⁠.

“⁠회장님을 만나셨군요⁠.⁠”

“⁠네⁠. 아드님 앞니가 깨졌더라고요⁠. 저는 앞니 깨진 사람 앞에서 거짓말로 웃는 거 못 해요⁠. 원장님 계산은 맞을 수도 있어요⁠. 근데 제 아내 마흔 해를 또 고장이라고 부르는 계약에는 제 이름 못 넣어요⁠.⁠”

“⁠주사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제가 갚을게요⁠.⁠”

“⁠어떻게요⁠?⁠”

동규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날카로워졌다⁠. 비웃음은 아니었다⁠. 진짜로 묻는 목소리였다⁠.

“⁠서이겸 님은 일자리가 없습니다⁠. 집도 없습니다⁠. 2060년에 계좌도 없습니다⁠. 기관사라는 일은 이 나라에 이제 없습니다⁠. 집 한 채 값을 두 번 갚으시겠다고요⁠?⁠”

이겸은 제 손을 책상 위에 펴 보였다⁠. 손가락이 아직 가늘었고 손끝이 창백했다⁠. 왼손 약지에 반지가 있었다⁠.

“⁠시계 뒷판 땄어요⁠. 아내가 손끝은 거짓말을 하고 마디는 거짓말을 안 한대요⁠. 마디로 일할게요⁠. 시계든 뭐든 배울게요⁠. 다 못 갚으면 원장님이 제 손끝 다시 굳는 거 보세요⁠. 그것도 원장님 계산에 넣으시고요⁠.⁠”

동규는 한참 말이 없었다⁠. 스탠드 불빛 아래에서 동규의 하얀 머리가 노랗게 보였다⁠. 동규는 회장의 아들 사진을 집어 이겸에게 내밀었다⁠.

“⁠이건 가져가십시오⁠. 회장님이 서이겸 님께 드린 겁니다⁠.⁠”

이겸은 사진을 받았다⁠. 동규는 홍보 계약 화면을 서랍에 넣었다⁠. 서랍을 닫지 않고 반쯤 열어 두었다⁠. 이겸은 반쯤 열린 서랍을 보았고⁠, 동규도 보았다⁠. 둘 다 서랍을 닫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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