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347자)

넷과 스물

아내는 일흔, 남편은 서른 · 하윤슬

효란은 가정법원 정문 앞에서 「⁠낙원동 할매회⁠」 다섯 명에게 둘러싸였다⁠. 순혜는 보자기에 싼 떡 상자를 들고 왔고⁠, 떡집 할매는 손수 쓴 종이 팻말을 말아 쥐고 있었다⁠. 팻말이 반쯤 풀려 「⁠탁효란 힘내라⁠」의 ‘⁠힘⁠’ 자가 보였다⁠. 청사 입구의 경비원이 팻말을 보고 다가왔다⁠.

“⁠어르신들⁠, 법원 안에서는 손팻말 안 됩니다⁠.⁠”

“⁠이거 팻말 아니야⁠. 떡 포장지야⁠.⁠”

떡집 할매가 팻말을 다시 돌돌 말아 떡 상자 위에 얹었다⁠. 경비원은 떡 상자와 팻말과 할머니 다섯을 차례로 보다가 한숨을 쉬고 문을 열어 주었다⁠. 순혜가 효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판사한테 떡 하나 줄까⁠?⁠”

“⁠그거 주면 나 감옥 가⁠.⁠”

“⁠감옥 가도 떡은 맛있다고 할 거야⁠.⁠”

효란은 웃음을 참으며 순혜의 손을 떼어 냈다⁠. 순혜의 손이 차가웠다⁠. 순혜는 손이 차가워질 때마다 농담을 한 개씩 더 했다⁠. 마흔 해 동안 그랬다⁠.

공동수는 할매회 뒤에서 혼자 따로 걸었다⁠. 쉰 해 구두를 고친 사람이 제일 좋은 구두를 꺼내 신고 왔다⁠. 새로 간 굽이 대리석 바닥에서 걸음마다 끽끽 울었다⁠. 로비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씩 고개를 돌렸다⁠. 동수는 얼굴이 붉어져서 발끝으로 걸었고⁠, 발끝으로 걸으니 굽 소리가 더 높아졌다⁠.

“⁠아저씨는 왜 오셨어요⁠?⁠”

“⁠변호사가 나를 부를지도 모른대⁠. 증인으로⁠.⁠”

“⁠무슨 증인이요⁠?⁠”

“⁠너랑 스무 해 같이 다닌 증인⁠.⁠”

효란은 걸음을 멈췄다⁠. 동수가 효란의 눈을 피해 제 구두코를 내려다보았다⁠. 반짝반짝 닦은 구두코에 동수의 얼굴이 비쳤다⁠.

*

심문실은 작았다⁠. 긴 탁자 하나를 가운데 두고 판사가 맨 앞에 앉았고⁠, 양옆으로 사람들이 앉았다⁠. 판사는 쉰 남짓한 여자였고 안경을 코끝에 걸쳐 썼다⁠. 왼편에 병원 변호사와 동규와 은희가⁠, 오른편에 효란이 혼자 앉았다⁠. 탁자 끝에 휠체어를 탄 이겸이 간호사와 함께 있었다⁠. 이겸은 병원이 입힌 회색 니트를 입었고⁠, 머리는 이번에도 물을 묻혀 눌렀다가 다시 뻗쳐 있었다⁠.

이겸은 효란을 보자 입 모양으로만 말했다⁠. 효란아⁠. 효란은 고개를 아주 조금 끄덕였다⁠.

판사가 화면을 넘기며 말했다⁠.

“⁠에버슬립과 서은희 님이 신청하신 서이겸 님 성년후견 개시 심문입니다⁠. 오늘은 사정을 듣는 자리입니다⁠. 결정은 오늘 하지 않습니다⁠. 국회에서 장기 수면자 혼인 문제로 법안이 나온다는 이야기도 있어서⁠, 법원도 신중하게 보겠습니다⁠.⁠”

병원 변호사가 먼저 일어났다⁠. 지난번 시계방에 왔던 회색 정장의 젊은 여자였다⁠. 변호사는 화면을 판사에게 넘기며 또박또박 말했다⁠.

“⁠서이겸 님은 적응기 중입니다⁠. 몸무게는 오십을 막 넘겼고⁠, 혼자 계단을 오르지 못하십니다⁠. 치료는 세 차례 주사 가운데 한 차례만 끝났습니다⁠. 후견인이 치료와 거처를 정해야 합니다⁠. 병원과 동생분이 함께 맡겠다는 것이 신청 취지입니다⁠.⁠”

“⁠배우자분이 계시잖아요⁠.⁠”

판사가 효란을 보았다⁠. 변호사가 화면을 한 장 넘겼다⁠. 사진 한 장이 탁자 위 화면에 떴다⁠. 예순 살의 효란이 탱고 반 상장을 들고 웃었고⁠, 곁에 동수가 서 있었다⁠. 시계방 벽의 사진과 같은 사진이었다⁠.

“⁠탁효란 님은 2020년 여름에 동반 수면 계약을 끝내셨고⁠, 이후 마흔 해 동안 따로 사셨습니다⁠. 2040년부터 스무 해 동안 공동수 님과 함께 다니셨습니다⁠. 노인복지관 탱고 반에서는 두 분이 짝이셨습니다⁠. 2041년에는 공동수 님이 청혼하셨고요⁠. 같은 해 가을⁠, 탁효란 님은 종로의 법률 상담소에서 이혼 상담을 받으셨습니다⁠. 상담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심문실이 조용해졌다⁠. 은희가 효란을 보았다⁠. 이겸은 효란을 보지 않았다⁠. 탁자 위에 올린 제 손을 보고 있었다⁠. 왼손 약지의 반지를 오른손 엄지로 천천히 돌리고 있었다⁠.

“⁠혼인은 서류로는 이어져 있지만⁠, 사실상 끝났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일흔 살 배우자분께 서른 살 남편의 후견을 맡기는 것은 서이겸 님께도⁠, 탁효란 님께도 짐이 됩니다⁠.⁠”

판사가 효란에게 물었다⁠.

“⁠탁효란 님⁠. 상담받으신 것 맞습니까⁠?⁠”

효란은 일어서지 않고 앉은 채로 대답했다⁠. 일어서면 무릎이 딱 소리를 냈고⁠, 판사 앞에서까지 무릎 소리를 들려주고 싶지 않았다⁠.

“⁠맞습니다⁠.⁠”

이겸의 엄지가 반지 위에서 멈췄다⁠.

“⁠이혼하려고 받으셨나요⁠?⁠”

“⁠네⁠. 서류도 받아 왔습니다⁠. 집에 아직 있어요⁠. 시계방 위층 서랍에⁠.⁠”

“⁠내지 않으신 이유가 있습니까⁠?⁠”

효란은 탁자 끝의 이겸을 보았다⁠. 이겸이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부스스한 머리 아래 창백한 얼굴이 효란을 똑바로 보았다⁠. 효란은 이겸에게 말하듯 판사에게 말했다⁠.

“⁠서류를 들고 집에 와서 생각해 보니까요⁠. 잠든 사람은 서명을 못 하잖아요⁠. 남편이 자는 동안 남편 몰래 남편을 끝내는 거더라고요⁠. 저는 그건 싫었어요⁠. 끝낼 거면 남편이 깨어나서⁠, 제 얼굴 보고⁠, 제 입으로 듣게 하려고 했어요⁠.⁠”

판사가 안경을 밀어 올렸다⁠.

“⁠그러면 지금은요⁠. 남편분이 깨어나셨습니다⁠.⁠”

효란은 숨을 한 번 골랐다⁠. 탁자 밑에서 왼손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렸다⁠. 반지가 마디 밑에 파묻혀 있었다⁠.

“⁠저는 탁효란입니다⁠. 서이겸의 아내입니다⁠.⁠”

마흔 해 만에 처음 남 앞에서 한 말이었다⁠. 말이 입 밖으로 나가는 동안 효란은 제 목소리가 이렇게 생긴 줄 처음 알았다⁠. 떨리지 않았다⁠.

*

이겸이 손을 들었다⁠. 판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겸은 휠체어 팔걸이를 두 손으로 짚고 몸을 일으키려 했다⁠. 간호사가 말렸다⁠. 이겸은 앉은 채로 말했다⁠.

“⁠저는 아내랑 가고 싶어요⁠. 아내 가게 위층에 방이 있어요⁠. 계단이 가파른데⁠, 계단은 연습하면 돼요⁠. 저 지난주에 지하 4층까지 걸어 내려갔어요⁠.⁠”

동규가 고개를 들었다⁠. 변호사가 동규를 돌아보았고⁠, 동규는 아무 표정도 짓지 않았다⁠.

“⁠아내가 다른 사람이랑 스무 해 다닌 거⁠, 저도 오늘 알았어요⁠. 상담받은 것도요⁠.⁠” 이겸은 잠깐 말을 멈추고 효란을 보았다⁠. “⁠마흔 해예요⁠. 제가 자는 동안 아내는 마흔 해를 살았어요⁠. 저는 그 마흔 해를 하루도 같이 못 했어요⁠. 그런데 아내가 그 마흔 해를 저 기다리는 데만 썼으면⁠, 저는 그게 더 무서웠을 거예요⁠.⁠”

은희가 고개를 숙였다⁠. 판사는 화면에 무언가를 적고 나서 말했다⁠.

“⁠서이겸 님은 석 달째 되는 날 적응기 평가를 받으시지요⁠?⁠”

“⁠유월 십이 일입니다⁠.⁠”

동규가 대신 대답했다⁠. 판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평가 결과를 보고 다시 정하겠습니다⁠. 서이겸 님이 혼자 판단하실 수 있다는 결과가 나오면 후견은 필요 없습니다⁠. 그때까지 거처는 병원으로 하되⁠, 배우자분의 면회는 막지 마십시오⁠. 병원이 정할 일이 아닙니다⁠.⁠”

변호사가 무언가 말하려 했다⁠. 판사가 손바닥을 들어 막았다⁠.

“⁠배우자분은 배우자분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

심문실을 나서는 길에 이겸의 휠체어가 효란 옆을 지나갔다⁠. 간호사가 문을 잡는 사이⁠, 이겸이 효란의 손목을 붙잡았다⁠. 손끝이 아직 둔해서 붙잡는 힘이 엉성했다⁠. 이겸이 효란의 귀에 입을 대고 빠르게 말했다⁠.

“⁠지하 4층에 상훈 아저씨라는 분이 있어⁠. 그 여름에 같이 깼대⁠. 고장이 아니래⁠. 누가 손으로 깨웠대⁠. 스위치를 하나씩 내렸대⁠.⁠”

간호사가 휠체어를 밀었다⁠. 이겸의 손이 효란의 손목에서 미끄러져 나갔다⁠. 효란은 복도 한가운데에 혼자 남았다⁠. 법원 복도는 길고 하얬다⁠. 창으로 든 봄볕이 바닥에 네모나게 누워 있었다⁠. 복도 끝에서 동수가 끝내 부르지 않은 증인석을 등지고 서 있다가⁠, 효란과 눈이 마주치자 구두 굽 소리를 죽이며 계단으로 내려갔다⁠.

효란은 계단참까지 동수를 따라갔다⁠. 동수는 층계참 창틀에 기대 서서 구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새 굽에 대리석 가루가 하얗게 묻어 있었다⁠.

“⁠아저씨⁠.⁠”

“⁠변호사가 안 불러서 다행이다⁠.⁠”

“⁠불렀으면 뭐라고 하시려고요⁠?⁠”

“⁠다 말하려고 했지⁠. 스무 해 동안 탱고 반에서 네 손 잡고 돌았는데⁠, 너는 한 번도 반지를 안 뺐다고⁠. 내 손바닥에 반지 자국이 날 정도였다고⁠. 그게 무슨 이혼할 여자냐고⁠.⁠”

효란은 대답하지 못했다⁠. 동수가 고개를 들었다⁠. 일흔넷의 눈가가 붉었다⁠. 동수는 붉은 눈을 들키지 않으려고 창밖 벚나무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나 그 젊은 놈 싫다⁠. 굽도 없는 놈이 똑똑하게 말은 잘해⁠.⁠”

“⁠아저씨 싫어하라고 똑똑한 거 아니에요⁠.⁠”

“⁠알아⁠. 그래서 더 싫어⁠.⁠”

동수는 구두 굽으로 계단을 한 번 탁 찼다⁠. 소리가 계단 아래까지 울려 퍼졌다⁠. 동수는 제 굽 소리에 놀라 어깨를 움츠리고⁠, 할매회가 기다린다며 먼저 내려갔다⁠. 굽 소리가 한 층씩 멀어졌다⁠.

효란이 복도로 돌아오자 동규가 심문실에서 마지막으로 나왔다⁠. 효란은 동규 앞을 막아섰다⁠.

“⁠원장님⁠. 잠깐요⁠.⁠”

동규가 멈췄다⁠. 변호사에게 먼저 가라고 손짓했다⁠. 변호사가 멀어지자 복도에는 두 사람과 네모난 볕만 남았다⁠.

“⁠2020년 8월 9일 밤에 누가 스위치를 내렸어요⁠?⁠”

동규는 대답하지 않았다⁠. 효란은 다시 물었다⁠. 이번에는 존댓말을 또박또박 다 붙였다⁠.

“⁠원장님⁠. 그 밤에 제 캡슐 스위치를 누가 내리셨어요⁠?⁠”

동규가 볕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창밖으로 법원 마당의 벚나무가 보였다⁠. 꽃이 반쯤 피어 있었다⁠. 동규는 벚나무를 보면서 말했다⁠. 목소리가 낮았다⁠. 시계방에서도⁠, 기상실 앞에서도 들어 보지 못한 높이였다⁠.

“⁠제가 내렸습니다⁠.⁠”

효란의 손이 카디건 자락을 쥐었다⁠.

“⁠그 밤에 저는 스물여섯이었습니다⁠. 막내 기술자였고⁠, 당직이었습니다⁠. 물이 지하로 들어왔고 본 전기가 나갔습니다⁠. 비상 발전기는 반쯤 물에 잠겼습니다⁠. 남은 힘으로 캡슐 스물넷을 다 돌리면 새벽 네 시에 발전기가 멎었습니다⁠. 멎으면 스물넷이 다 죽습니다⁠. 넷을 끄면 스물이 아침까지 버텼습니다⁠.⁠”

“⁠왜 넷이에요⁠?⁠”

“⁠그 넷은 아픈 분들이 아니었습니다⁠. 동반 수면하신 건강한 분들이었습니다⁠. 건강한 분은 깨워도 삽니다⁠. 아픈 분은 깨우면 그 자리에서 돌아가십니다⁠. 저는 깨워도 사는 넷을 깨웠습니다⁠.⁠”

동규가 고개를 돌려 효란을 보았다⁠.

“⁠여사님 남편분이 스물 가운데 한 분이었습니다⁠. 넷을 깨워야 스물이 살았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 계산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계산을 사십 년 동안 기계 고장이라고 불렀습니다⁠.⁠”

“⁠합의서는요⁠? 제가 서명한 거⁠.⁠”

“⁠당시 원장님이 만드셨습니다⁠. 돌아가신 지 스무 해 됐습니다⁠. 정전으로 캡슐을 껐다고 하면 병원이 그달에 문을 닫았을 겁니다⁠. 그러면 스물도 다른 데로 옮기다가 죽었을 겁니다⁠. 저는 여사님이 서명하시는 걸 원장실 문밖에서 봤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효란은 마흔 해 전 원장실을 떠올렸다⁠. 젖은 환자복 위에 담요를 두르고 앉아 볼펜을 쥐었다⁠. 손이 떨려서 이름이 두 줄로 겹쳐 써졌다⁠. 문밖에 누가 서 있었는지 효란은 보지 못했다⁠.

복도 끝에서 엘리베이터가 몇 층 가시냐고 누군가에게 물었다⁠. 효란은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볕이 발등 위로 조금 옮겨 와 있었다⁠. 마흔 해 전 여름밤⁠, 맨발로 발목까지 찬 물을 헤치며 이겸의 이름을 부르던 복도 끝에⁠, 손전등을 든 스물여섯 살의 남자가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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