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339자)

물 자국

아내는 일흔, 남편은 서른 · 하윤슬

이겸은 시계방에 다녀온 다음 날부터 병실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다⁠. 외출 기록에 붉은 줄이 그어졌고⁠, 은희의 면회는 하루 삼십 분으로 줄었다⁠. 효란의 이름은 면회 화면에서 아예 사라졌다⁠. 칠번 씨는 아침마다 미안하다는 말을 세 가지 말투로 바꿔 가며 했다⁠. 이겸은 칠번 씨가 미안해하는 법을 어디서 배웠는지 궁금했다⁠.

동규는 이후 이틀 동안 회진에 오지 않았다⁠. 사흘째 저녁에 혼자 와서 침대 발치에 섰고⁠, 이겸의 몸무게가 오십을 넘었다는 보고만 듣고 나갔다⁠. 효란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이겸도 꺼내지 않았다⁠. 꺼내면 원장이 대답을 준비해 왔을 것이고⁠, 준비해 온 대답은 듣고 싶지 않았다⁠.

“⁠칠번 씨⁠. 병원 기록에서 2020년 여름을 찾을 수 있어요⁠?⁠”

“⁠생활 정보가 아닙니다⁠.⁠”

“⁠그럼 생활 정보로 물을게요⁠. 2020년 여름에 이 병원 엘리베이터가 멈춘 적 있어요⁠?⁠”

칠번 씨의 머리 위 등이 한참 파랗게 돌았다⁠. 이겸은 칠번 씨가 머리를 굴린다고 생각했다⁠.

“⁠2020년 8월 9일⁠, 집중호우로 정전⁠. 동관 지하 수면실 캡슐 네 대 기계 고장⁠. 엘리베이터는 사흘간 운행 중지⁠.⁠”

“⁠네 대요⁠?⁠”

“⁠네 대입니다⁠. 더는 생활 정보가 아닙니다⁠.⁠”

네 대였다⁠. 효란 혼자가 아니었다⁠. 이겸은 이불 위에 손을 펴고 손가락을 하나씩 접었다⁠. 손끝은 여전히 젖은 솜 같았지만⁠, 이제 이불의 결이 하나하나 따로 느껴졌다⁠. 약지를 접을 때 반지가 손바닥을 눌렀다⁠.

“⁠칠번 씨⁠. 적응기 4단계는 뭐예요⁠?⁠”

“⁠건물 안에서 길을 찾아봅시다⁠, 입니다⁠. 서이겸 님은 걷기 연습을 위해 저녁 아홉 시까지 병원 안 복도를 다니실 수 있습니다⁠.⁠”

벽 화면에 병원 안내도가 떴다⁠. 층마다 색이 달랐다⁠. 맨 아래 회색 칸에 작은 글씨가 있었다⁠. 「⁠지하 4층 · 옛 수면실 · 출입 제한⁠」⁠.

*

밤 여덟 시 반⁠, 이겸은 지팡이를 짚고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문이 열리자 고운 목소리가 먼저 물었다⁠.

“⁠몇 층 가세요⁠?⁠”

“⁠지하 4층요⁠.⁠”

“⁠지하 4층은 관계자만 가실 수 있습니다⁠. 대신 노래를 틀어 드릴까요⁠?⁠”

“⁠괜찮아요⁠.⁠”

엘리베이터는 이겸이 대답하기도 전에 피아노 곡을 틀었다⁠. 이겸은 노래가 끝나기 전에 내렸다⁠. 복도 끝에 비상계단 문이 있었다⁠. 문을 밀자 차갑고 축축한 공기가 얼굴에 닿았다⁠. 계단은 아래로 길게 접혀 내려갔다⁠.

재활사는 계단은 아직 이르다고 했다⁠. 이겸은 난간을 쥐고 한 칸씩 내려갔다⁠. 한 칸에 숨 한 번⁠, 지팡이 한 번이었다⁠. 지하 1층 층계참에서 허벅지가 떨렸고 지하 2층에서는 무릎이 시큰거렸다⁠. 2020년의 이겸은 역 계단을 두 칸씩 뛰어 내려가 첫차에 올랐다⁠. 지금 이겸은 계단 한 층에 칠 분이 걸렸다⁠. 등에 땀이 흘렀고⁠, 환자복이 등에 붙었다⁠.

지하 3층 층계참에는 커다란 유리창이 나 있었다⁠. 이겸은 유리에 이마를 댔다⁠. 창 너머는 끝이 보이지 않는 홀이었다⁠. 하얀 캡슐들이 줄을 맞춰 누워 있었다⁠. 캡슐마다 옆면에 작은 파란 불이 켜져 있어서⁠, 홀 전체가 물속처럼 푸르스름했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불빛들이 겨울밤 아파트 단지 창문 같았다⁠. 저마다 안에 사람이 하나씩 있었다⁠. 삼천 명이라고 원장은 말했다⁠. 이겸은 불빛을 세다가 그만두었다⁠.

홀 한가운데쯤⁠, 파란 불빛 하나 옆에 노란 불빛이 하나 있었다⁠. 접이의자 위에 사람이 앉아 손전등을 무릎에 세워 두고 있었다⁠. 이겸은 층계참 옆 문을 밀었다⁠. 잠겨 있지 않았다⁠.

*

노인은 이겸이 다가오는 발소리를 듣고도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캡슐 유리창 위에 손바닥을 얹고 있었다⁠. 일흔은 훨씬 넘어 보였고⁠, 등이 굽었고⁠, 손가락 마디마다 오래된 흉터가 있었다⁠. 무릎 위에 낡은 대패 하나가 놓여 있었다⁠.

“⁠지팡이 소리가 서툴구먼⁠. 새로 깬 사람이지⁠?⁠”

“⁠네⁠.⁠”

“⁠뉴스에 나온 그 서른 살⁠.⁠”

“⁠다들 저를 그렇게 부르네요⁠.⁠”

노인이 그제야 고개를 돌렸다⁠. 눈썹이 하얗고 길었다⁠. 노인은 접이의자 옆에 하나 더 펴 둔 의자를 턱으로 가리켰다⁠.

“⁠앉어⁠. 서 있다 넘어지면 나 못 일으켜⁠.⁠”

이겸은 앉았다⁠. 오늘만 두 번째로 듣는 말이었다⁠. 노인은 진상훈이라고 이름을 댔다⁠. 목수였다고 했다⁠. 캡슐 유리창 안에 여자가 하나 누워 있었다⁠. 서른 남짓한 얼굴이었고⁠, 긴 머리를 한쪽 어깨로 넘겨 땋아 두었다⁠. 캡슐 옆면의 작은 화면에 글자가 떠 있었다⁠. 「⁠윤인화 · 잠든 날 2020년 3월 2일 · 잠든 나이 서른둘 · 지금 몸 나이 서른둘⁠」⁠.

“⁠집사람이야⁠. 마흔 해째 이러고 있어⁠. 나도 처음엔 같이 누웠었어⁠. 동반 수면이라고⁠, 그때 병원에서 그런 걸 팔았어⁠. 같이 자면 같이 깬다고⁠.⁠”

이겸은 상훈의 얼굴을 보았다⁠. 상훈은 대패를 무릎 위에서 굴렸다⁠.

“⁠대패는 밀 때 깎이는 줄 알지⁠? 아니야⁠. 당길 때 날을 봐야 돼⁠. 밀 때는 나무가 깎이고⁠, 당길 때는 사람 손이 깎여⁠. 나는 마흔 해 동안 당기기만 했어⁠.⁠”

상훈은 캡슐 유리 위의 손바닥을 천천히 움직였다⁠. 아내의 땋은 머리 끝을 따라 쓰다듬는 손짓이었다⁠. 유리 위에 손바닥 자국이 하얗게 김으로 남았다가 사라졌다⁠.

“⁠다음 달 십칠 일이 집사람 차례야⁠. 위원회가 그렇게 정했어⁠. 마흔 해 만에 날짜가 생겼어⁠. 달력에 동그라미를 쳐 놨는데⁠, 동그라미가 너무 커서 손주 놈이 그날 무슨 생일이냐고 물어⁠.⁠”

“⁠축하드려요⁠.⁠”

“⁠축하는 그날 해⁠. 날짜는 위원회가 또 바꿀 수 있어⁠. 병원에 무슨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밀리는 게 날짜야⁠.⁠”

상훈은 이겸을 오래 보았다⁠. 손전등 불빛 아래서 하얀 눈썹이 그늘을 만들었다⁠.

“⁠그러니까 너 시끄럽게 하지 마라⁠. 뉴스에 반지 뜨고 나서 위원회가 한 번 모였다더라⁠. 날짜가 그대로 남았는지 나는 아직 몰라⁠.⁠”

이겸은 대답하지 못했다⁠. 시계방 벽의 사진들이 떠올랐고⁠, 기자회견장 맨 뒤의 모자가 떠올랐다⁠. 이 노인의 동그라미는 이겸이 한 일로도 밀릴 수 있었다⁠.

“⁠아저씨도 그 여름에 깨셨어요⁠?⁠”

상훈의 손이 대패 위에서 멈췄다⁠. 손전등 불빛이 흔들렸다⁠.

“⁠네 아내도 그날 깼지⁠. 탁 뭐라던가⁠. 키 작고 다부진 아가씨였어⁠. 깨자마자 맨발로 복도를 뛰어다니면서 네 이름을 불렀어⁠. 물이 발목까지 찼는데⁠.⁠”

이겸은 의자 팔걸이를 쥐었다⁠. 손끝이 둔해서 쥔 힘이 얼마인지 알 수 없었다⁠. 팔걸이가 삐걱거렸다⁠.

“⁠그 캡슐들⁠, 아직 있어요⁠? 고장 났다는 네 대⁠.⁠”

상훈은 대답하지 않고 일어나 손전등을 들었다⁠. 작업복 주머니에서 열쇠 꾸러미를 꺼냈다⁠. 열쇠마다 매직으로 숫자가 적혀 있었다⁠.

“⁠2045년에 지하 4층 문틀이 뒤틀렸어⁠. 병원이 나를 불렀어⁠. 고쳐 주고 열쇠를 돌려주는 걸 잊었지⁠. 열다섯 해째 잊어버리고 있어⁠.⁠”

*

지하 4층은 공기부터 달랐다⁠. 녹슨 쇠와 오래 마른 진흙 냄새가 났다⁠. 상훈의 손전등 불빛이 어둠 속으로 길게 뻗었다⁠. 천장이 낮았고⁠, 벽을 따라 낡은 캡슐들이 늘어서 있었다⁠. 지금 캡슐보다 크고 둔했다⁠. 뚜껑마다 유리가 뿌옇게 흐려 있었다⁠.

벽에 줄이 하나 그어져 있었다⁠. 이겸의 허리 높이였다⁠. 줄 아래 벽은 누렇게 바랬고 위는 하얬다⁠. 줄은 방 끝에서 끝까지 한 번도 끊기지 않고 이어졌다⁠. 마흔 해 전 여름의 흙탕물이 여기까지 차올랐다가 빠지면서 남긴 줄이었다⁠.

“⁠여기까지 찼어⁠. 비상 발전기는 저 안쪽 방에 있었고⁠. 물이 발전기 바로 밑까지 왔어⁠.⁠”

상훈이 손전등으로 캡슐을 하나씩 비췄다⁠. 뚜껑 옆에 이름표가 그대로 붙어 있었다⁠. 몇 번째 이름표에서 손전등이 멈췄다⁠. 「⁠서이겸⁠」⁠. 바로 옆 캡슐의 이름표에는 「⁠탁효란⁠」이 적혀 있었고⁠, 이름표 밑에 누런 종이 꼬리표가 달려 있었다⁠. 볼펜 글씨였다⁠. 「⁠2020⁠. 8⁠. 9⁠. 기계 고장⁠. 기상⁠.⁠」

이겸은 효란의 캡슐 앞에 섰다⁠. 뚜껑은 반쯤 열려 있었고 안은 비어 있었다⁠. 바닥에 깐 쿠션이 사람 모양으로 조금 눌린 채 굳어 있었다⁠. 이겸은 지팡이를 벽에 기대 놓고 캡슐 가장자리에 손을 얹었다⁠. 차가운 쇠가 손바닥에 먼저 왔고 손끝에 늦게 왔다⁠. 이겸은 쿠션의 눌린 자리를 손바닥으로 쓸었다⁠. 효란이 누웠던 자리였다⁠. 이겸 옆에서⁠, 같이 깨려고 누웠던 자리였다⁠.

“⁠같이 깨자고 했어요⁠. 효란이가 먼저 하자고 했어요⁠. 저 혼자 자는 거 싫다고⁠.⁠”

상훈은 대답하지 않았다⁠. 손전등을 안쪽 방으로 돌렸다⁠. 문짝 없는 문틀 너머에 커다란 쇳덩이가 웅크리고 있었다⁠. 비상 발전기였다⁠. 발전기 옆 벽에 배전반이 붙어 있었고⁠, 스위치가 두 줄로 늘어서 있었다⁠. 스위치마다 캡슐 번호가 적힌 종이가 붙어 있었다⁠. 스위치 가운데 넷에 붉은 테이프가 감겨 있었다⁠. 이겸은 손전등 불빛을 따라 붉은 테이프 밑의 번호를 읽었다⁠. 하나가 효란의 캡슐 번호였다⁠.

“⁠아저씨⁠, 이게⁠…⁠…⁠.⁠”

계단 위에서 쇠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다른 손전등 불빛 하나가 계단을 타고 내려왔다⁠. 걸음 소리는 거의 나지 않았다⁠.

*

동규는 손전등을 아래로 내리고 두 사람 앞에 섰다⁠. 흰 가운 대신 회색 점퍼를 입었다⁠. 숨이 조금 찼다⁠. 예순여섯의 원장도 계단을 걸어 내려온 것이었다⁠.

“⁠진상훈 님⁠. 열쇠는 돌려주셨어야지요⁠.⁠”

“⁠잊어버렸어⁠.⁠”

“⁠열다섯 해 동안요⁠?⁠”

“⁠목수는 잘 잊어⁠. 못 박을 자리만 기억해⁠.⁠”

동규는 상훈에게서 눈을 떼고 이겸을 보았다⁠. 이겸은 효란의 캡슐 가장자리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서이겸 님⁠. 여기는 출입 제한 구역입니다⁠. 올라가시지요⁠.⁠”

“⁠원장님⁠. 고장 난 캡슐 넷이 전부 물 자국 위에 있어요⁠. 물에 잠긴 캡슐은 하나도 고장이 안 났고⁠, 물 위에 있던 캡슐만 고장이 났어요⁠. 그리고 저 스위치 넷에만 테이프가 감겨 있어요⁠.⁠”

“⁠물이 들어왔습니다⁠. 2020년 여름에⁠.⁠”

“⁠고장이라면서요⁠.⁠”

“⁠물이 들어와서 고장이 났습니다⁠.⁠”

동규의 목소리는 끝까지 고요했다⁠. 이겸은 지팡이를 짚고 동규 앞으로 걸어갔다⁠. 두 걸음 만에 무릎이 꺾일 뻔했다⁠. 동규가 손을 내밀었다⁠. 이겸은 손을 잡지 않고 벽을 짚었다⁠. 벽의 물 자국이 손바닥 밑에 있었다⁠.

“⁠제 아내가 마흔 해를 혼자 살았어요⁠. 원장님이 고장이라고 적은 종이 한 장 때문에요⁠.⁠”

동규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손전등 불빛이 바닥에 둥글게 고여 있었다⁠. 동규가 입을 열었을 때 목소리는 처음으로 조금 낮아져 있었다⁠.

“⁠서이겸 님⁠. 그날 밤은 당신을 살린 밤이었습니다⁠.⁠”

“⁠무슨 말이에요⁠?⁠”

“⁠올라가시지요⁠. 오늘 밤은 여기까지입니다⁠.⁠”

동규가 이겸의 팔을 잡았다⁠. 이번에는 이겸도 뿌리치지 못했다⁠. 다리가 더는 버티지 못했다⁠. 동규는 이겸을 부축해 계단을 올랐다⁠. 상훈이 뒤에서 손전등을 비춰 주었다⁠. 지하 3층 층계참에서 동규가 경비원을 부르려고 손목 화면을 들었다⁠. 고개를 돌린 사이 상훈이 이겸의 귀에 입을 댔다⁠. 대패 기름 냄새가 났다⁠.

“⁠네 아내는 고장으로 깬 게 아니야⁠. 누가 손으로 깨웠어⁠. 내가 복도에서 봤어⁠. 손전등 든 젊은 놈이 스위치를 하나씩 내렸어⁠.⁠”

이겸은 고개를 돌려 상훈을 보았다⁠. 상훈은 벌써 이겸에게서 떨어져⁠, 층계참 유리창 너머 푸른 홀을 보고 있었다⁠. 수많은 불빛 가운데 하나 옆에 접이의자 두 개가 비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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