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350자)

손끝

아내는 일흔, 남편은 서른 · 하윤슬

효란은 작업대 서랍에서 확대경 두 개를 꺼냈다⁠. 하나는 제 이마에 올리고 하나는 이겸 앞에 놓았다⁠. 이겸은 확대경을 집어 들고 이리저리 돌려 보다가 거꾸로 이마에 댔다⁠. 현주가 계산대 너머에서 숨넘어가는 소리를 냈다⁠.

“⁠반대예요⁠. 볼록한 면이 밖으로⁠.⁠”

“⁠아⁠.⁠”

이겸이 확대경을 돌려 끼우고 효란을 보았다⁠. 둥근 유리 너머로 이겸의 한쪽 눈이 크게 부풀어 보였다⁠. 효란은 웃음이 새어 나오려는 입을 다물었다⁠.

“⁠엄 여사님⁠. 저 시계 고치는 거 배우고 싶어요⁠.⁠”

“⁠갑자기요⁠?⁠”

“⁠아내 돌아오면 놀래 주게요⁠. 아내가 시계를 고친대요⁠. 그럼 저도 할 줄 알아야죠⁠.⁠”

효란은 대답 대신 서랍에서 손님이 맡긴 낡은 여자 시계를 꺼냈다⁠. 뒷판에 흠집이 많은 둥근 시계였다⁠. 작업대 위에 부드러운 천을 깔고 시계를 엎어 놓았다⁠. 뒷판 가장자리에 손톱만 한 홈이 하나 있었다⁠.

“⁠여기 홈 보이죠⁠? 칼끝을 여기 넣고⁠, 비틀지 말고 들어 올려요⁠. 비틀면 홈이 뭉개져요⁠.⁠”

이겸이 뒷판 따는 칼을 쥐었다⁠. 손끝이 칼자루를 쥔 줄 모르고 계속 힘을 주었다⁠. 칼끝이 홈을 지나 천 위로 미끄러졌다⁠. 한 번 더 미끄러졌다⁠. 이겸의 입에서 작게 욕이 나오려다 들어갔다⁠.

효란은 의자를 이겸 옆으로 당겨 앉았다⁠. 오른손을 이겸의 오른손 위에 얹었다⁠. 이겸의 손등은 서늘했고⁠, 효란의 손바닥은 마흔 해 동안 쇠붙이를 쥐어 단단했다⁠. 효란은 이겸의 검지를 칼등에 올려 주었다⁠.

“⁠손끝으로 쥐려고 하지 말고⁠, 여기 손가락 둘째 마디로 받쳐요⁠. 손끝은 아직 거짓말을 해요⁠. 마디는 거짓말을 안 해요⁠.⁠”

“⁠손끝이 거짓말을 해요⁠?⁠”

“⁠병이 손끝부터 왔잖아요⁠. 나을 때도 손끝이 제일 늦게 와요⁠.⁠”

말하고 나서 효란은 입을 다물었다⁠. 엄 여사가 알 리 없는 말이었다⁠. 이겸은 모르는 척 칼끝만 보았다⁠. 효란의 손 밑에서 이겸의 손가락이 칼을 다시 홈에 넣었다⁠. 효란은 이겸의 손목을 아주 조금 들어 올렸다⁠. 딸깍⁠. 뒷판이 열렸다⁠.

“⁠대박⁠.⁠”

“⁠그 말 아직도 해요⁠?⁠”

“⁠네⁠?⁠”

“⁠…⁠… 요즘 사람들은 안 하는 말이라서요⁠.⁠”

효란은 손을 거두려고 했다⁠. 이겸이 칼을 내려놓고 효란의 손등에 제 손을 얹었다⁠. 손끝이 둔하다는 사람이 효란의 손등 주름을 하나씩 더듬어 내려갔다⁠. 효란의 숨이 반 박자 늦게 나왔다⁠. 이겸의 손끝이 효란의 약지 마디에서 멈췄다⁠. 반지가 살에 파묻힌 자리였다⁠.

“⁠엄 여사님 손은 따뜻하네요⁠.⁠”

“⁠늙은 손이라서 그래요⁠. 늙으면 열이 손으로 몰려요⁠.⁠”

“⁠그런 게 어딨어요⁠.⁠”

“⁠있어요⁠. 일흔 살 되면 알아요⁠.⁠”

효란은 손을 빼냈다⁠. 빼낸 손으로 핀셋을 집어 시계 속 톱니 하나를 가리켰다⁠. 핀셋 끝이 조금 떨렸다⁠. 마흔 해 동안 핀셋 끝이 떨린 날은 손에 꼽았다⁠. 효란은 숨을 내쉬며 떨림이 멎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톱니를 짚었다⁠.

*

맞은편 의자에서 공동수가 팔짱을 끼고 두 사람을 노려보고 있었다⁠. 노려보는 눈이 이겸의 손에 갔다가 효란의 손에 갔다가 다시 이겸의 슬리퍼로 갔다⁠. 현주가 동수에게 보리차를 건네며 속삭였다⁠.

“⁠할아버지⁠, 질투하시는 거예요⁠?⁠”

“⁠질투는 무슨⁠. 구두 굽 보는 거야⁠.⁠”

“⁠슬리퍼에 굽이 어디 있어요⁠.⁠”

“⁠그러니까 보는 거야⁠. 굽도 없는 놈이⁠.⁠”

은희는 계산대 옆에 서서 손목 화면을 보고 있었다⁠. 화면이 몇 분마다 떨렸다⁠. 은희는 받지 않았다⁠. 떨림이 다섯 번째가 되자 은희가 효란에게 다가와 낮게 말했다⁠.

“⁠원장님이에요⁠. 신청한 데하고 다른 데 와 있다고⁠. 지금 이리 오신대요⁠.⁠”

효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은희는 돌아가지 않고 효란의 어깨 옆에 서 있었다⁠. 은희의 눈이 계산대 옆 구석의 상복 사진으로 한 번 갔다가 돌아왔다⁠.

“⁠엄마 장례식에⁠, 오셨었어요⁠?⁠”

“⁠복도까지만⁠.⁠”

“⁠왜 안 들어오셨어요⁠?⁠”

“⁠네가 나 보면 울 것 같아서⁠. 울다가 나한테 화낼 것 같아서⁠. 상주가 화내면 손님들이 불편하잖아⁠.⁠”

은희는 입술을 깨물었다⁠. 교단에서 아이들한테 바른 자세를 가르치던 등이 조금 굽었다⁠.

“⁠어머님이 돌아가시기 한 해 전에 가게에 오셨어⁠. 시계 하나 고쳐 달라고⁠. 네 아버지 시계였어⁠. 고쳐 드렸더니 돈을 안 받는다고 했는데도 만 원짜리를 작업대에 놓고 가셨어⁠. 가시면서 한마디 하셨어⁠. 네가 고생이 많다⁠. 그게 다였어⁠.⁠”

은희는 대답하지 않았다⁠. 손에 쥔 손목 화면이 여섯 번째로 떨렸다⁠. 은희는 이번에도 받지 않았다⁠. 효란은 핀셋을 내려놓지 않았다⁠. 이겸이 열린 시계 속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톱니들이 작은 소리를 내며 돌았고⁠, 가운데에서 금빛 바퀴 하나가 좌우로 쉬지 않고 흔들렸다⁠.

“⁠이게 뭐예요⁠? 제일 바쁜 애⁠.⁠”

“⁠평형 바퀴요⁠. 시계의 숨이에요⁠. 이게 한 번 갔다 오면 초침이 한 칸 가요⁠.⁠”

“⁠숨이 멈추면요⁠?⁠”

“⁠시계가 멈추죠⁠. 태엽을 다시 감아 주면 다시 쉬어요⁠.⁠”

이겸이 고개를 들어 작업대 한가운데 유리 덮개를 보았다⁠. 아홉 시 사십일 분이 덮개 안에 그대로 있었다⁠.

“⁠저 시계는 왜 안 고쳐요⁠?⁠”

“⁠주인이 찾으러 오면 고치려고요⁠.⁠”

“⁠주인이 왔으면요⁠?⁠”

효란은 확대경을 이마 위로 밀어 올렸다⁠. 이겸을 똑바로 보았다⁠. 이겸도 확대경을 밀어 올렸다⁠. 둘의 눈 사이에 유리 덮개 하나가 있었다⁠.

“⁠주인이 제 시계라고 말을 해야 내주죠⁠.⁠”

이겸이 입을 열었다⁠. 효란은 이겸의 입이 무슨 말을 만들려는지 알았다⁠. 마흔 해 전 아침에도 같은 입 모양을 보았다⁠. 캡슐 뚜껑이 닫히기 직전이었다⁠. 입이 말을 다 만들기 전에 가게 문의 종이 울렸다⁠.

*

동규가 문 안으로 들어왔다⁠. 뒤에 회색 정장을 입은 젊은 여자와 병원 간호사 하나가 따라왔다⁠. 비좁은 가게가 단번에 꽉 찼다⁠. 동규는 벽의 시계들을 한 바퀴 둘러보고 나서 효란에게 고개를 숙였다⁠.

“⁠여사님 가게는 시계가 하나도 늦지 않네요⁠.⁠”

“⁠병원 벽시계는 고치셨어요⁠?⁠”

“⁠아직입니다⁠.⁠”

동규는 이겸에게 몸을 돌렸다⁠. 목소리가 공손했다⁠.

“⁠서이겸 님⁠, 적응기 외출은 신청하신 곳으로만 가실 수 있습니다⁠. 오늘은 돌아가셔야 합니다⁠.⁠”

“⁠십 분만요⁠. 시계 뒷판 여는 거 배웠어요⁠.⁠”

“⁠다음에 배우시지요⁠.⁠”

회색 정장의 여자가 앞으로 나와 손목 화면을 켰다⁠. 병원 변호사라고 했다⁠. 변호사는 효란을 보지 않고 화면을 읽었다⁠.

“⁠서이겸 님께 알려 드립니다⁠. 에버슬립과 서은희 님이 오늘 오전 가정법원에 서이겸 님의 성년후견 개시를 공동으로 신청했습니다⁠. 적응기가 끝날 때까지 서이겸 님의 치료와 거처와 재산은 후견인이 정하게 됩니다⁠. 심문 날짜는 법원이 따로 알려 드립니다⁠.⁠”

은희가 고개를 숙였다⁠. 이겸이 은희를 보았다⁠.

“⁠은희야⁠?⁠”

“⁠오빠 집에 데려가려면 그게 있어야 한대서⁠. 원장님이⁠…⁠…⁠.⁠”

은희는 말을 맺지 못했다⁠. 효란은 동규를 보았다⁠. 동규는 효란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동규가 효란 앞으로 한 걸음 다가와 작업대 맞은편에 섰다⁠.

“⁠여사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서 하세요⁠. 다 들으라고⁠.⁠”

“⁠그러지요⁠.⁠” 동규가 숨을 한 번 골랐다⁠. “⁠여사님이 사십 년 동안 다달이 내신 보존료를 병원이 전부 돌려드리겠습니다⁠. 이자까지 쳐서⁠. 이 가게 하나는 더 사실 수 있습니다⁠. 대신 물러나 주십시오⁠. 보호자 자리도⁠, 후견 심문도⁠.⁠”

가게 안이 조용해졌다⁠. 벽의 시계들만 저마다 다른 박자로 갔다⁠. 동수가 의자에서 일어났다가 현주가 소매를 잡아당기자 도로 앉았다⁠.

“⁠원장님⁠.⁠”

효란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효란은 화가 나면 존댓말을 썼다⁠. 마흔 해 동안 가게에 와서 시계를 집어 던진 손님들 앞에서 그랬다⁠.

“⁠제가 낸 돈은 남편 재워 달라고 낸 돈이에요⁠. 마흔 해 동안 한 달도 안 빠지고요⁠. 그걸 돌려받으면 저는 마흔 해 동안 뭘 한 사람이 되나요⁠?⁠”

“⁠여사님이 아내로 서시는 날⁠, 2020년 여름이 다시 열립니다⁠. 투자사들은 그 여름을 묻고 있습니다⁠. 그 여름이 열리면 지하 3층의 이천구백아흔아홉 명이 다음 차례를 잃습니다⁠. 여사님 한 분의 마흔 해와 그분들의 차례를 바꾸자는 겁니다⁠.⁠”

“⁠제 마흔 해는 원장님이 바꾸자고 할 물건이 아니에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십 년 치 돈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습니다⁠.⁠”

동규는 끝까지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효란은 동규의 말 가운데 거짓을 찾았다⁠. 찾을 수 없었다⁠. 거짓이 없어서 더 미웠다⁠.

동규의 눈이 작업대 한가운데로 내려갔다⁠. 유리 덮개 안의 손목시계를 오래 보았다⁠. 덮개에 비친 동규의 하얀 머리가 시계판 위에 겹쳤다⁠.

“⁠저 시계는 아직 안 가는군요⁠.⁠”

“⁠주인이 안 찾아가서요⁠.⁠”

“⁠저도 사십 년째 못 고친 게 하나 있습니다⁠.⁠”

“⁠뭔데요⁠?⁠”

동규는 대답하지 않았다⁠. 덮개에서 눈을 떼고 서류판을 고쳐 들었다⁠. 효란은 동규의 손을 보았다⁠. 서류판 모서리를 쥔 엄지가 하얗게 질려 있었다⁠.

*

간호사가 이겸의 팔을 부축해 일으켰다⁠. 이겸은 지팡이를 짚고 문까지 걸었다⁠. 열 걸음이었다⁠. 은희가 따라붙었다⁠. 문턱 앞에서 이겸이 멈췄다⁠. 동규가 문을 잡아 주며 효란에게 말했다⁠.

“⁠엄 여사님⁠, 오늘 서이겸 님을 돌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병원에서 따로 사례하겠습니다⁠.⁠”

이겸이 돌아섰다⁠. 지팡이 끝이 문턱에 부딪혀 둔한 소리를 냈다⁠.

“⁠원장님⁠.⁠”

“⁠네⁠.⁠”

“⁠제 아내한테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가게 안의 모든 사람이 숨을 멈췄다⁠. 시계들만 멈추지 않았다⁠. 동규의 손이 문고리 위에서 굳었다⁠. 은희가 손으로 입을 막았다⁠. 현주는 핀셋을 떨어뜨렸고⁠, 이번에는 줍지 않았다⁠.

효란은 작업대 앞에 앉은 채 이겸을 보았다⁠. 이겸은 동규를 보지 않고 효란을 보고 있었다⁠. 부스스한 머리 아래 창백한 얼굴이 처음으로 붉었다⁠.

“⁠엄 여사라고 부르지 마세요⁠. 사례도 하지 마세요⁠. 저 사람은 탁효란이에요⁠. 제 아내예요⁠. 귤을 한 줄로 까요⁠. 반지를 못 빼요⁠.⁠”

“⁠이겸아⁠.⁠”

마흔 해 만에 효란의 입에서 이름이 나왔다⁠. 나오고 나서야 효란은 이름이 얼마나 오래 입안에 있었는지 알았다⁠. 혀끝에 쇠 맛이 돌았다⁠.

“⁠알았어⁠?⁠”

“⁠첫 주에⁠.⁠”

“⁠왜 말 안 했어⁠?⁠”

“⁠네가 숨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숨고 싶은 사람은 잡으면 더 멀리 가잖아⁠.⁠”

동규가 문고리에서 손을 내렸다⁠. 회색 정장의 변호사가 화면에 무언가를 빠르게 적었다⁠. 간호사가 이겸의 팔을 다시 잡았다⁠. 이겸은 끌려가는 몸을 문틀에 기대 버티며 마지막으로 말했다⁠.

“⁠효란아⁠. 시계 감아 놓는다며⁠.⁠”

문이 닫혔다⁠. 종이 딸랑 울렸다가 잦아들었다⁠. 골목에서 택시 문 닫히는 소리가 났고⁠, 바퀴 소리가 큰길로 멀어졌다⁠. 동수가 바닥에 떨어진 현주의 핀셋을 주워 작업대에 올려놓았다⁠. 아무 말 없이 문을 열고 건너편 부스로 갔다⁠. 부스 창에 붙어 있던 쪽지를 떼어 내는 소리가 났다⁠. 현주는 계산대 뒤에서 무릎을 끌어안고 앉아 사장님을 쳐다보지 않으려고 애썼다⁠. 효란은 작업대 위에 놓인 열린 여자 시계를 내려다보았다⁠. 평형 바퀴가 좌우로 흔들리며 숨을 쉬고 있었다⁠. 유리 덮개 안의 아홉 시 사십일 분은 움직이지 않았다⁠. 효란은 덮개 손잡이에 손을 얹었다가⁠, 들지 않고 손을 거두었다⁠.

5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