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475자)

탁 시계방

아내는 일흔, 남편은 서른 · 하윤슬

이겸은 엄 여사가 이틀째 오지 않은 날 오후에 칠번 씨를 불렀다⁠. 세 시가 지나고 네 시가 지나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아침 회진 때 의사가 엄 여사님은 봉사를 그만두셨다고 지나가듯 말했다⁠. 이겸은 고맙다고 대답했고⁠, 의사가 나가자 협탁의 빈 귤 봉지를 오래 쳐다보았다⁠.

“⁠칠번 씨⁠. 적응기 2단계가 뭐였죠⁠?⁠”

“⁠말로 검색해 봅시다⁠, 입니다⁠. 생활 정보만 찾으실 수 있습니다⁠.⁠”

“⁠생활 정보요⁠. 좋아요⁠. 탁효란⁠.⁠”

칠번 씨의 머리 위 등이 파랗게 돌았다⁠. 벽 화면에 글자가 떴다⁠.

「⁠생활 정보 · 가게 · 탁 시계방 · 서울 종로 낙원동 · 대표 탁효란 · 바늘 시계 수리 · 오전 아홉 시부터 저녁 일곱 시⁠」

이겸은 화면을 한참 보았다⁠. 뉴스는 막혀 있었고 기사도 막혀 있었는데⁠, 가게는 막혀 있지 않았다⁠. 병원은 아내가 어디 사는지 모른다고 했다⁠. 아내는 날마다 아홉 시에 셔터를 올리는 사람이었다⁠.

“⁠칠번 씨⁠. 이 가게까지 무인 택시로 얼마나 걸려요⁠?⁠”

“⁠사십오 분입니다⁠. 적응기 중에는 보호자 동반 외출만 가능합니다⁠. 혼자 나가시면 제가 원장님께 알려야 합니다⁠.⁠”

“⁠칠번 씨는 착하네요⁠.⁠”

“⁠감사합니다⁠. 지금 하신 말씀도 기록합니다⁠.⁠”

*

은희는 이겸의 부탁을 세 번 거절했다⁠. 네 번째로 이겸이 그럼 칠번 씨를 업고 무인 택시를 타겠다고 하자 은희는 이마를 짚었다⁠. 스물네 살 때도 은희는 오빠가 떼를 쓰면 이마를 짚었다⁠.

“⁠오빠⁠, 네 시간이야⁠. 보호자 동반 외출은 네 시간⁠. 우리 집 가서 애들 얼굴 보고 오는 걸로 신청했어⁠.⁠”

“⁠가는 길에 종로 들르자⁠. 십 분만⁠.⁠”

“⁠종로에 뭐가 있는데⁠.⁠”

“⁠우리 반지 맞춘 금은방⁠.⁠”

은희는 이겸을 오래 보았다⁠. 이겸은 웃었다⁠. 은희가 거짓말을 알아챈 얼굴로 휠체어 손잡이를 잡았다⁠.

무인 택시는 운전석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작은 화분을 두고 있었다⁠. 이겸은 화분을 손가락으로 찔러 보았다⁠. 플라스틱이었다⁠. 차가 한강 다리를 건널 때 이겸은 창에 얼굴을 붙였다⁠. 강물 빛은 2020년과 같았다⁠. 다리 위로 지하철이 지나갔다⁠. 맨 앞 칸에 운전석이 없었다⁠.

“⁠대박⁠. 은희야⁠, 기관사가 없어⁠.⁠”

“⁠이십 년 전에 다 없어졌어⁠. 오빠 같은 사람들 다 다른 일 했어⁠.⁠”

“⁠무슨 일⁠?⁠”

“⁠열차 안에서 사람들한테 길 알려 주는 일⁠. 그것도 십 년 전에 없어졌고⁠.⁠”

이겸은 다리를 건너는 지하철 맨 앞 칸의 빈자리를 끝까지 보았다⁠. 손끝이 무릎 위에서 오므라들었다⁠. 운전대 단추를 누르던 손가락 모양이었다⁠.

“⁠넌 뭐 했어⁠? 마흔 해 동안⁠.⁠”

“⁠초등학교 선생⁠. 서른다섯 해⁠. 애 둘 키우고 손주가 셋⁠.⁠”

“⁠손주⁠? 네가 할머니야⁠?⁠”

“⁠오빠는 주민등록으로 일흔이야⁠. 동사무소 가면 경로 우대 해 줘⁠.⁠”

이겸은 창에 이마를 대고 한참 웃었다⁠. 웃음이 잦아들자 은희가 오빠의 부스스한 뒷머리를 손바닥으로 눌러 주었다⁠. 눌러도 머리는 다시 일어났다⁠.

종로 거리에는 이겸이 아는 간판이 하나도 없었다⁠. 건물들은 높아졌고 가게들은 유리로 덮였고 사람들은 손목에 대고 혼잣말을 했다⁠. 큰길 전광판에 뉴스가 지나갔다⁠. 「⁠국회 보건복지위 의원⁠, 장기 수면 혼인 정리 법안 발의 예정 … 이십 년 넘게 잠든 배우자와의 혼인 어떻게 할까⁠」⁠. 은희가 전광판을 보더니 휠체어를 조금 빨리 밀었다⁠.

은희의 손목 화면이 떨렸다⁠. 은희가 화면을 보고 입술을 깨물었다⁠. 「⁠에버슬립 · 외출 위치 확인 · 종로 낙원동 · 신청 위치와 다릅니다⁠」⁠. 은희는 화면을 소매로 덮었다⁠.

*

낙원동 골목은 좁았다⁠. 휠체어가 들어가지 않아서 이겸은 병원에서 빌린 지팡이를 짚고 걸었다⁠. 열 걸음마다 쉬었다⁠. 은희가 팔을 받쳤다⁠. 골목 중간쯤에 2층짜리 낡은 건물이 있었다⁠. 아래층 유리문에 금색 글씨가 반쯤 벗겨진 채 남아 있었다⁠. 「⁠탁 시계방⁠」⁠.

맞은편에 구두 수선 부스가 있었는데 창이 닫혀 있었다⁠. 「⁠점심 먹으러 감⁠. 금방 옴⁠. 금방이 한 시간일 수도 있음⁠」⁠. 이겸은 쪽지를 읽고 웃었다⁠.

시계방 문을 열자 종이 딸랑 울렸다⁠. 안은 좁고 따뜻했고⁠, 벽마다 시계가 걸려 저마다 다른 박자로 갔다⁠. 째깍거리는 소리가 사방에서 엇갈려 와서 이겸은 비 오는 날 지붕 밑에 선 기분이 들었다⁠. 계산대에 스물대여섯쯤 된 여자가 앉아 있었다⁠. 확대경을 이마에 올렸고⁠, 손에 든 핀셋 끝에 머리카락만 한 나사가 집혀 있었다⁠.

“⁠어서 오세요⁠. 시계 고치러 오셨어요⁠? 손목 화면이면 저희 안 받아요⁠.⁠”

“⁠아니요⁠. 바늘 시계요⁠.⁠”

여자가 핀셋을 내려놓고 이겸을 위아래로 훑었다⁠. 병원 슬리퍼에서 눈이 멈췄다⁠.

“⁠요즘 바늘 시계 차는 사람은 우리 사장님하고 건너편 구두 할아버지밖에 없는데⁠. 혹시 박물관에서 오셨어요⁠?⁠”

“⁠병원에서요⁠.⁠”

“⁠아⁠.⁠”

여자는 그제야 이겸의 얼굴을 알아보았다⁠.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손목 화면을 켜려다 말고 이겸을 다시 보았다⁠. 화면 속 기사와 눈앞의 얼굴을 맞춰 보는 눈이었다⁠.

“⁠그⁠, 그 서른 살⁠…⁠…⁠?⁠”

“⁠네⁠. 서른 살⁠.⁠”

“⁠저 구현주예요⁠. 여기서 사장님한테 시계 배워요⁠. 사 년째요⁠. 사장님은 은행 가셨어요⁠. 한 시간쯤 걸려요⁠. 은행이 말로 하는 창구만 남아서 사장님이 꼭 싸우고 오시거든요⁠.⁠”

현주가 말을 쏟아 내는 동안 이겸은 벽을 보았다⁠. 시계들 사이사이에 사진이 붙어 있었다⁠. 맨 위 사진 속에서 서른한 살의 효란이 늙은 기술자 옆에 앉아 핀셋을 쥐고 찡그리고 있었다⁠. 이겸이 아는 얼굴이었다⁠. 잠들기 넉 달 전 얼굴과 다르지 않았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이겸이 모르는 얼굴이 되었다⁠. 마흔 살의 효란은 이 가게 셔터 앞에서 셔터 열쇠를 들고 있었다⁠. 쉰 살의 효란은 바닷가에서 바지를 걷고 여자 친구들과 물을 튀기고 있었다⁠. 예순 살의 효란은 상장을 들고 웃었고⁠, 곁에 키 큰 노인이 구두를 번쩍이며 서 있었다⁠. 노인의 손이 효란의 어깨 위에서 닿을 듯 말 듯 떠 있었다⁠.

이겸은 사진을 하나씩 따라 내려갔다⁠. 지팡이를 쥔 손에 땀이 찼다⁠. 마흔 해가 벽 한 칸에 붙어 있었다⁠. 이겸이 자는 동안 효란은 머리를 자르고 셔터를 올리고 상장을 받았다⁠. 한 번도 이겸을 기다리는 얼굴로 찍히지 않았다⁠. 이겸은 그것이 고마웠다⁠. 고마운데 숨이 막혔다⁠.

은희도 벽 앞에 서 있었다⁠. 은희의 눈은 계산대 옆 구석의 작은 사진 한 장에 멈춰 있었다⁠. 상복을 입은 효란이 장례식장 복도 끝 의자에 혼자 앉아 있는 사진이었다⁠. 뒤 벽의 안내판에 고인의 이름이 반쯤 보였다⁠. 이겸은 어머니의 이름을 읽었다⁠. 사진 아래 귀퉁이에 볼펜으로 2047이라고 적혀 있었다⁠.

“⁠언니가 왔었어⁠?⁠”

은희가 혼잣말처럼 물었다⁠. 현주가 사진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아⁠, 그거요⁠. 사장님이 누가 찍어 줬대요⁠. 들어가지는 않고 복도에만 있다 왔대요⁠. 들어가면 싸움 날 거라고⁠.⁠”

은희는 사진 앞에서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손에 든 빈 보온병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이겸은 동생의 어깨를 보았다⁠. 스물네 살 때도 은희는 울음을 참을 때 어깨부터 올라갔다⁠. 어깨가 올라가 있었다⁠.

“⁠이건 뭐예요⁠?⁠”

은희가 작업대 한가운데를 가리켰다⁠. 유리 덮개 안에 남자 손목시계가 누워 있었다⁠. 갈라진 가죽 줄⁠, 흠집 난 유리⁠, 아홉 시 사십일 분⁠. 이겸은 유리 덮개 앞으로 걸어갔다⁠. 지팡이 끝이 바닥을 두 번 헛짚었다⁠.

2020년 3월 14일 아침⁠, 캡슐에 눕기 전에 시계를 풀어 효란에게 주었다⁠. 효란은 시계를 손바닥에 올리고 뒷판을 귀에 대 보았다⁠. 깨어날 때까지 감아 놓겠다고 했다⁠. 이겸이 마지막으로 본 바늘이 아홉 시 사십일 분이었다⁠.

“⁠그건 사장님이 절대 안 고치는 시계예요⁠. 손대면 혼나요⁠. 저 첫날 먼지 닦다가 덮개 들었는데 사장님이 소리 지르셨어요⁠. 사장님이 소리 지르는 거 그날 처음 봤어요⁠.⁠”

“⁠왜 안 고친대요⁠?⁠”

“⁠모르죠⁠. 사장님 말로는 그 시계는 기다리는 중이래요⁠.⁠”

이겸은 유리 덮개에 손을 얹었다⁠. 둔한 손끝에 유리의 찬 기운이 늦게 왔다⁠. 감아 놓겠다던 사람이 마흔 해 동안 한 번도 감지 않았다⁠.

*

종이 다시 딸랑 울렸다⁠. 키 큰 노인이 문틀에 어깨를 대고 서 있었다⁠. 사진 속 노인이었다⁠. 손에 구두약 통을 쥐었고⁠, 앞치마에서 구두약 냄새가 났다⁠. 노인은 이겸의 얼굴보다 발을 먼저 보았다⁠.

“⁠병원 슬리퍼 신고 종로를 와⁠?⁠”

“⁠신발이 이것밖에 없어서요⁠.⁠”

“⁠네가 그 서른 살이구나⁠.⁠”

노인은 공동수라고 이름을 댔다⁠. 맞은편 부스를 턱으로 가리켰다⁠. 구두를 고친 지 쉰 해라고 했다⁠. 은희가 이겸 앞으로 나서려 하자 동수가 손바닥을 들어 막았다⁠. 동수는 작업대 옆 의자를 끌어다 이겸 앞에 놓았다⁠.

“⁠앉아⁠. 서 있다 넘어지면 내가 업고 가야 돼⁠. 나 허리 안 좋아⁠.⁠”

이겸은 앉았다⁠. 동수는 앉지 않았다⁠.

“⁠효란이 마흔 해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알아⁠?⁠”

“⁠벽에 붙어 있는 만큼은요⁠.⁠”

“⁠벽에 없는 게 더 많아⁠. 걔 처음 이 골목 왔을 때 마흔도 안 됐어⁠. 시계 하나 고치는 데 사흘씩 걸렸어⁠. 밤에 셔터 내리고 혼자 울다가⁠, 아침이면 아무 일 없었다는 얼굴로 셔터 올렸어⁠. 다달이 병원에 돈 부치는 날은 점심을 굶었어⁠. 네가 자는 동안 걔는 일했어⁠.⁠”

“⁠알아요⁠. 그래서 왔어요⁠.⁠”

“⁠뭘 하러⁠.⁠”

이겸은 대답하지 못했다⁠. 동수가 구두약 통을 작업대에 탁 내려놓았다⁠.

“⁠나는 2041년에 효란이한테 같이 살자고 했어⁠. 걔가 뭐라고 했는 줄 알아⁠? 반지가 안 빠진대⁠. 그게 다였어⁠. 반지가 안 빠져서 못 한대⁠.⁠”

현주가 핀셋을 떨어뜨렸다⁠. 은희가 숨을 들이켰다⁠. 이겸은 동수의 손을 보았다⁠. 크고 마디가 굵었고⁠, 엄지손가락이 구두약에 검게 물들어 있었다⁠. 스무 해 동안 효란의 어깨 위에서 닿을 듯 말 듯 떠 있던 손이었다⁠.

“⁠아저씨는 반지 빼 보라고 안 하셨어요⁠?⁠”

“⁠식용유도 줘 봤어⁠.⁠”

이겸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웃음이 터진 자리에서 눈물이 같이 나왔다⁠. 동수는 웃지 않았지만 입꼬리가 아주 조금 움직였다⁠.

“⁠그 사람 다치게 하면⁠, 나 구두 굽으로 너 때린다⁠. 굽은 내가 제일 잘 알아⁠.⁠”

*

종이 세 번째로 울렸다⁠. 효란이 장바구니를 들고 문 안에 서 있었다⁠. 연보라 카디건에 물결치는 은빛 짧은 머리였고⁠, 왼손에 은행 번호표를 구겨 쥐고 있었다⁠. 효란은 가게 안을 한 번에 다 보았다⁠. 이겸⁠, 은희⁠, 동수⁠, 유리 덮개 위에 얹힌 이겸의 손⁠. 장바구니에서 무 하나가 굴러 떨어졌다⁠.

아무도 무를 줍지 않았다⁠. 이겸이 먼저 입을 열었다⁠.

“⁠엄 여사님⁠? 여기 웬일이세요⁠?⁠”

효란은 이겸을 보았다⁠. 이겸의 눈이 웃고 있었는데 입술은 떨렸다⁠. 효란은 장바구니를 계산대에 내려놓고 허리를 굽혀 무를 주웠다⁠.

“⁠…⁠… 시계 맡기러 왔어요⁠.⁠”

현주가 계산대 너머에서 고개를 쑥 내밀었다⁠.

“⁠사장님⁠, 무슨 시계를 사장님이 사장님 가게에 맡겨요⁠?⁠”

동수가 현주의 뒤통수를 손바닥으로 가볍게 쳤다⁠. 은희가 손으로 입을 막았다⁠. 효란은 무를 장바구니에 도로 넣고⁠, 작업대 맞은편 의자를 당겨 앉았다⁠. 작업대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겸과 효란이 마주 앉았다⁠. 유리 덮개가 두 사람 사이에 있었다⁠.

“⁠어떤 시계를 맡기시게요⁠?⁠”

이겸이 물었다⁠. 효란은 유리 덮개 위의 이겸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아홉 시 사십일 분이 이겸의 손가락 사이로 보였다⁠. 효란은 왼손을 카디건 주머니에 넣지 않았다⁠. 작업대 위에 그대로 올려 두었다⁠.

“⁠오래 멈춘 시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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