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355자)

첫 완치 기상자

아내는 일흔, 남편은 서른 · 하윤슬

효란은 미용실 의자에 앉자마자 거울 속 엄순혜와 눈이 마주쳤다⁠. 순혜는 가위 대신 빗을 들고 효란의 물결치는 은빛 짧은 머리를 이리저리 빗어 넘기다가 갑자기 손을 멈췄다⁠.

“⁠잠깐⁠. 엄 여사⁠?⁠”

“⁠누가 그래⁠?⁠”

“⁠병원 간호사 조카가 그러더라⁠. 첫 완치 기상자 병실에 날마다 오는 할머니가 엄 여사래⁠. 연보라 카디건 입은⁠.⁠”

효란은 거울 속에서 눈을 피했다⁠. 순혜가 빗으로 효란의 정수리를 톡 때렸다⁠.

“⁠내 성을 왜 써⁠!⁠”

“⁠처음 떠오른 게 너였어⁠.⁠”

“⁠그럼 미용실 이름도 써⁠. 엄 여사가 머리도 하는 줄 알게⁠.⁠”

미용실 안의 할머니 손님 셋이 동시에 웃었다⁠. 낙원동 할매회의 절반이 이 미용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떡집 할매가 인절미 접시를 내밀며 물었다⁠.

“⁠기자회견에 서는 거야⁠?⁠”

“⁠맨 뒤에 서 있을 거야⁠. 벽에 붙어서⁠.⁠”

“⁠그럼 화장은 왜 안 해⁠. 맨 뒤에서도 얼굴은 보여⁠.⁠”

“⁠안 보이려고 가는 거야⁠.⁠”

순혜는 대답하지 않고 효란의 앞머리를 조금 쳐 냈다⁠. 쳐 낸 은빛 머리카락이 효란의 무릎에 떨어졌다⁠. 효란은 머리카락을 손끝으로 집어 바닥에 털었다⁠. 마흔 해 전⁠, 효란은 이 미용실에 처음 왔었다⁠. 병원에서 깨어나 한 달 만에 거울을 보니 캡슐 속에서 자란 머리카락이 어깨를 덮었다⁠. 머리를 잘라 준 사람이 서른두 살의 순혜였다⁠. 순혜는 머리를 자르면서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다 자르고 나서 한마디만 했다⁠. 머리는 또 자라⁠.

“⁠순혜야⁠.⁠”

“⁠왜⁠?⁠”

“⁠식용유는 안 되더라⁠.⁠”

순혜가 웃음을 터뜨렸다⁠. 웃다가 거울 속 효란의 왼손을 보았다⁠. 반지가 마디 밑에 그대로 있었다⁠.

창밖 골목 건너편에서 공동수가 구두를 닦고 있었다⁠. 닦는 손이 너무 빨라서 구두가 부스 밖으로 튀어 나갈 기세였다⁠. 순혜가 턱으로 가리켰다⁠.

“⁠저 양반은 오늘 구두 세 켤레째 닦는다⁠. 아침부터⁠.⁠”

*

기자회견은 에버슬립 본관 1층 강당에서 열렸다⁠. 단상 뒤 커다란 화면에 두 장의 몸 사진이 나란히 떠 있었다⁠. 왼편은 2020년 3월에 찍은 이겸의 몸이었고 오른편은 지난주에 찍은 이겸의 몸이었다⁠. 동규가 단상에 서서 두 사진을 손으로 가리켰다⁠.

“⁠보시는 대로 서이겸 님의 몸은 잠든 날과 같습니다⁠. 뼈도⁠, 근육도⁠, 세포 하나도 사십 년을 지나지 않았습니다⁠. 저희 에버슬립은 병을 고칠 날까지 재우고⁠, 고칠 수 있는 날 깨웁니다⁠. 오늘이 그날의 첫 아침입니다⁠.⁠”

박수가 터졌다⁠. 강당 앞줄은 기자들이었고 가운데는 수면자 가족회 사람들이었다⁠. 맨 뒤는 양복 입은 남자들이 차지했다⁠. 투자사에서 왔다고 했다⁠. 효란은 맨 뒤 벽에 붙어 서서 종이컵에 든 보리차를 들고 있었다⁠.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를 썼다⁠. 손에 종이컵을 들고 있으면 손이 할 일이 생겼다⁠.

이겸은 휠체어에 앉아 단상 가운데에 있었다⁠. 하늘색 환자복 위에 병원이 내준 회색 니트를 걸쳤고⁠, 부스스한 머리는 누가 물을 묻혀 눌러 놓았다⁠. 옆에 은희가 서 있었다⁠. 동규가 은희를 유일한 가족이라고 소개하자 은희가 고개를 숙였다⁠.

강당 천장 아래로 주먹만 한 취재 드론들이 날아다녔다⁠. 기자들이 손목 화면으로 드론을 부렸다⁠. 드론은 이겸의 얼굴에 붙었다가 동규의 입에 붙었다가 박수 치는 가족들의 손에 붙었다⁠. 하나가 강당 뒤까지 날아와 투자사 남자들의 머리 위를 돌았다⁠. 효란은 고개를 숙였다⁠.

질문 시간이 되자 앞줄의 젊은 기자가 손을 들었다⁠.

“⁠서이겸 씨⁠, 깨어나서 가장 먼저 보고 싶었던 사람이 누구예요⁠?⁠”

이겸이 마이크를 받았다⁠. 손끝이 아직 둔해서 마이크를 두 손으로 감쌌다⁠.

“⁠아내요⁠.⁠”

강당이 조용해졌다⁠. 기자가 이어서 물었다⁠.

“⁠아내분은 오늘 오셨어요⁠?⁠”

이겸은 대답하기 전에 강당 끝까지 눈을 보냈다⁠. 앞줄과 가운데 줄을 지나 맨 뒤 벽까지 왔다⁠. 모자 아래에서 효란은 이겸의 눈과 마주쳤다⁠. 이겸은 오래 보지 않았다⁠.

“⁠찾고 있어요⁠. 아직⁠.⁠”

동규가 마이크를 넘겨받았다⁠. “⁠적응기 중이시라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박수가 다시 터졌다⁠. 효란 옆을 지나던 드론 하나가 낮게 내려와 종이컵을 든 효란의 손 앞에서 반 초쯤 멈췄다가 날아갔다⁠. 종이컵이 손 안에서 조금 찌그러졌다⁠.

*

오후 세 시⁠, 효란은 귤 봉지를 들고 3층 병실 문을 두드렸다⁠. 이겸은 회견장에서 입은 회색 니트를 벗지 않고 침대에 기대앉아 있었다⁠. 눌러 놓은 머리가 그새 다시 뻗쳐 있었다⁠. 칠번 씨가 침대 옆에서 혈압을 재다가 엄 여사를 보고 머리 위 등을 노랗게 켰다⁠.

“⁠엄 여사님⁠. 오늘 회견장 맨 뒤에 모자 쓰신 분⁠, 엄 여사님 맞죠⁠?⁠”

“⁠보리차 마시러 갔어요⁠. 공짜라서⁠.⁠”

“⁠보리차가 공짜예요⁠? 2060년에도⁠?⁠”

“⁠병원 보리차만요⁠.⁠”

이겸이 소리 내어 웃었다⁠. 웃다가 기침을 했고⁠, 칠번 씨가 등을 두드려도 되느냐고 물었다⁠. 이겸이 손을 저었다⁠. 효란은 의자에 앉아 귤을 집었다⁠. 엄지손톱으로 꼭지 옆을 눌렀다가⁠, 이번에는 껍질을 일부러 세 조각으로 뜯었다⁠. 이겸이 뜯긴 껍질을 보았다⁠.

“⁠오늘은 끊으시네요⁠.⁠”

“⁠귤이 시어서 그래요⁠.⁠”

“⁠엄 여사님⁠. 제 아내 찾는 거⁠, 뭐 좀 알아내셨어요⁠?⁠”

“⁠아직요⁠.⁠”

“⁠단서 하나 드릴게요⁠. 효란이는 반지를 못 빼요⁠.⁠”

효란의 손이 귤 위에서 멈췄다⁠.

“⁠결혼 전에 반지 맞추러 갔는데⁠, 효란이 손가락이 반 호수 굵었어요⁠. 금은방 사장님이 넉넉하게 하자니까 효란이가 싫다고 했어요⁠. 빠지면 안 된다고⁠. 꽉 끼는 걸로 했어요⁠. 그래서 아마 지금쯤 손가락이 퉁퉁 부어서 반지가 살에 파묻혔을 거예요⁠.⁠”

“⁠…⁠… 그렇게 찾으면 되겠네요⁠. 손가락이 퉁퉁 부은 할머니⁠.⁠”

“⁠네⁠. 손가락이 퉁퉁 부은⁠, 귤을 한 줄로 까는 할머니⁠.⁠”

이겸은 효란의 얼굴을 보지 않고 창밖의 드론을 보며 말했다⁠. 효란도 이겸의 얼굴을 보지 않고 귤 알을 떼어 협탁에 놓았다⁠. 카디건 주머니 속에서 왼손 약지가 반지 둘레를 따라 욱신거렸다⁠. 마흔 해 동안 한 번도 아프지 않던 자리였다⁠.

“⁠엄 여사님은 왜 저한테 잘해 주세요⁠?⁠”

“⁠옆 병실이라서요⁠.⁠”

“⁠옆 병실 비었던데요⁠.⁠”

효란은 귤 껍질 세 조각을 손바닥에 모아 쥐었다⁠. 대답을 고르는 사이 칠번 씨가 혈압계를 감으며 끼어들었다⁠. “⁠서이겸 님⁠, 혈압이 조금 올랐습니다⁠. 대화를 줄이시기를 권합니다⁠.⁠” 효란은 일어나 껍질을 쓰레기통에 넣었다⁠. 문을 나설 때까지 이겸은 더 묻지 않았다⁠.

*

저녁 여섯 시⁠, 효란은 강당 뒤 직원 복도에서 손목 화면을 보고 있었다⁠. 단톡방이 오 분에 백 개씩 올라왔다⁠. 순혜가 기사 하나를 올렸고 떡집 할매가 같은 기사를 또 올렸다⁠. 기사 맨 위에 사진 두 장이 붙어 있었다⁠. 하나는 휠체어 팔걸이에 얹힌 이겸의 왼손이었고⁠, 하나는 종이컵을 쥔 늙은 왼손이었다⁠. 두 약지에서 같은 금반지가 빛났다⁠. 누군가 두 사진을 나란히 붙여 놓고 제목을 달았다⁠.

「⁠아내는 일흔⁠, 남편은 서른⁠?⁠」

밑에 댓글이 수천 개 달려 있었다⁠. 효란은 위에서부터 셋만 읽었다⁠. 「⁠반지 같은 거 아님⁠? 금반지 다 똑같지⁠」 「⁠손 보니까 일흔은 넘었는데⁠」 「⁠남편은 서른인데 아내가 할머니면 그게 부부냐⁠」⁠. 효란은 화면을 끄고 손을 내려뜨렸다⁠.

복도 끝에서 동규가 걸어왔다⁠. 걸음 소리는 이번에도 나지 않았다⁠. 동규는 효란 앞에 서서 손목 화면을 들어 보였다⁠. 같은 사진이었다⁠.

“⁠맨 뒤에 서 계신다고 하셨습니다⁠.⁠”

“⁠맨 뒤에 서 있었어요⁠.⁠”

“⁠드론은 맨 뒤까지 옵니다⁠.⁠”

“⁠그럼 드론을 못 오게 하셨어야죠⁠. 원장님 기자회견이잖아요⁠.⁠”

동규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투자사 분들이 회견이 끝나고 한 시간 동안 물으신 건 이 사진 하나였습니다⁠. 아내가 왜 일흔이냐고요⁠. 저는 아직 답을 드리지 않았습니다⁠.⁠”

“⁠기계 고장이라고 하세요⁠. 마흔 해 동안 그렇게 하셨잖아요⁠.⁠”

동규는 잠깐 효란을 내려다보았다⁠. 효란은 동규의 눈동자가 아주 조금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시계 초침이 이 초 늦는 것을 듣는 귀로⁠, 효란은 사람의 목소리가 반 박자 늦는 것도 들었다⁠.

“⁠내일부터 면회는 어렵겠습니다⁠.⁠”

“⁠제가 보호자예요⁠. 원장님이 쓰라고 한 확인서에⁠.⁠”

“⁠지인 보호자의 면회는 적응기 동안 병원이 정합니다⁠. 서이겸 님께는 엄 여사님이 봉사를 그만두셨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남편이 물으면요⁠?⁠”

“⁠한 번 더 기계 고장을 말씀드려야겠지요⁠. 이번에는 사람의 고장으로⁠.⁠”

동규는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돌아갔다⁠. 효란은 찌그러진 종이컵을 아직 쥐고 있었다⁠. 컵 바닥에 남은 보리차가 식어 있었다⁠.

*

주차장에는 무인 택시들이 줄지어 손님을 기다렸다⁠. 효란이 택시 하나에 손을 들자 뒤에서 누가 효란의 팔을 붙잡았다⁠. 은희였다⁠. 단상에서 입었던 남색 정장을 그대로 입었고⁠, 손에 든 보온병은 비어서 가벼웠다⁠.

“⁠언니⁠. 잠깐만요⁠.⁠”

“⁠은희야⁠, 오늘은⁠…⁠…⁠.⁠”

“⁠오빠가 뉴스 봤어요⁠. 간호사가 화면 끄는 걸 깜박했대요⁠.⁠”

효란은 택시 문에서 손을 내렸다⁠. 은희는 효란의 팔을 놓고 한 발 물러섰다⁠. 예순넷의 은희는 효란보다 머리 하나가 컸다⁠. 초등학교 교단에 서른다섯 해를 섰던 사람의 등이었다⁠.

“⁠오빠가 저한테 물었어요⁠. 저 할머니가 효란이냐고⁠.⁠”

“⁠뭐라고 했어⁠?⁠”

“⁠아니라고 했어요⁠.⁠”

은희는 숨을 한 번 고르고 또박또박 말했다⁠. 교실에서 아이들한테 하던 말투였다⁠.

“⁠언니⁠. 언니는 마흔 해를 살았어요⁠. 시계 가게도 하셨고⁠, 친구들이랑 바다도 가셨고⁠, 탱고도 추셨어요⁠. 구두 수선하시는 아저씨랑 스무 해를 같이 다니셨잖아요⁠. 저 다 알아요⁠. 오빠는 이제 서른이에요⁠. 오빠한테 남은 날이 언니보다 마흔 해는 길어요⁠.⁠”

“⁠그래서⁠.⁠”

“⁠오빠 데려가지 마세요⁠. 저희 집으로 갈 거예요⁠. 우리 애들도 있고 손주도 있어요⁠. 오빠가 처음부터 다시 살 수 있게요⁠. 언니 옆에 있으면 오빠는 서른부터 간병부터 해요⁠.⁠”

효란은 대답하지 않았다⁠. 은희의 말 가운데 틀린 데를 찾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구두 아저씨와 같이 산 적은 없었다⁠. 같이 늙었을 뿐이었다⁠. 두 말이 어떻게 다른지 은희에게 설명할 힘이 지금은 없었다⁠.

“⁠엄마 돌아가실 때 저 혼자였어요⁠. 언니는 그때 오빠 깨워 달라는 서명 안 해 주셨잖아요⁠. 위원회에서 아내 동의가 있으면 다시 본다고 했는데⁠.⁠”

효란은 그제야 은희를 똑바로 보았다⁠.

“⁠깨우면 죽는다고 했어⁠. 치료법이 없으면⁠.⁠”

“⁠알아요⁠. 그래도 저는 언니가 미웠어요⁠. 스무 해 동안⁠.⁠”

은희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흔들렸다⁠. 은희는 흔들린 목소리를 다잡으려고 빈 보온병 뚜껑을 돌려 닫았다⁠. 이미 닫힌 뚜껑이었다⁠.

“⁠언니는 이미 한평생 다 살지 않았어요⁠?⁠”

택시가 기다리다 못해 문을 닫고 다음 손님에게 갔다⁠. 효란은 멀어지는 택시를 보다가 은희에게 고개를 돌렸다⁠.

“⁠다 살았으면 이렇게 서 있겠니⁠.⁠”

은희가 입을 다물었다⁠. 주차장 끝에서 다음 택시가 미끄러져 왔다⁠. 효란은 택시에 올랐다⁠. 고른 목소리가 행선지를 물었다⁠. 효란은 종로 낙원동이라고 말하고 창에 이마를 댔다⁠. 유리창에 일흔 살 여자의 얼굴이 비쳤다⁠. 창밖으로 에버슬립 본관 3층 창 하나에 불이 켜져 있었다⁠. 누군가 창가에 서서 주차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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