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5,333자)

공청회

아내는 일흔, 남편은 서른 · 하윤슬

효란은 국회 진술인 대기실 소파에 앉아 아침 약 두 알을 물 없이 삼켰다⁠. 태민이 맞은편에서 넥타이를 세 번째로 고쳐 매고 있었다⁠. 스물일곱의 변호사가 국회에 처음 와 본 얼굴이었다⁠. 넥타이를 너무 세게 당겨서 목이 빨갰다⁠.

“⁠할머님 의뢰인⁠, 진술은 칠 분이에요⁠. 칠 분 넘으면 위원장님이 마이크 꺼요⁠.⁠”

“⁠시계 보는 건 내가 너보다 잘해⁠.⁠”

“⁠아⁠, 맞다⁠.⁠”

“⁠너는 진술 안 하니⁠?⁠”

“⁠저는 옆에 앉아만 있어요⁠. 할머니가 그러셨어요⁠. 효란이 옆에 앉아서 물만 따라 드리라고⁠. 말 많이 하면 효란이가 시계처럼 째깍째깍 노려본다고⁠.⁠”

효란은 태민을 째깍째깍 노려보았다⁠. 태민이 물컵을 들어 효란 앞에 물을 따랐다⁠. 너무 많이 따라서 물이 넘쳤다⁠. 태민은 넘친 물을 넥타이로 닦으려다 효란의 눈을 보고 손을 멈췄다⁠.

태민이 넥타이를 풀었다가 다시 맸다⁠. 효란은 손목 화면을 켰다⁠. 「⁠낙원동 할매회⁠」가 아침부터 들끓었다⁠.

「⁠미용실 순혜⁠: 국회 방송 틀었다⁠!⁠!⁠! 효란이 언제 나와⁠」

「⁠떡집⁠: 팻말 들고 국회 앞에 왔는데 또 못 들어가게 함⁠」

「⁠미용실 순혜⁠: 떡 포장지라고 해⁠」

「⁠떡집⁠: 했어⁠. 국회 경비는 안 속아⁠」

효란은 웃음이 나와서 화면을 껐다⁠. 대기실 문이 열리고 이겸이 고개를 들이밀었다⁠. 하늘색 셔츠를 입었고⁠, 머리는 물을 묻혀 눌러 놓았는데 정수리 한 가닥이 벌써 일어서 있었다⁠. 이겸은 방청석 표를 흔들어 보였다⁠.

“⁠나 맨 앞줄이야⁠.⁠”

“⁠맨 뒤에 앉아⁠.⁠”

“⁠당신은 맨날 맨 뒤래⁠. 오늘은 내가 맨 앞에 앉을게⁠. 당신이 나 보이게⁠.⁠”

이겸이 문을 닫기 전에 효란에게 손을 흔들었다⁠. 효란은 손을 흔들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문이 닫히자 왼손 약지를 오른손 엄지로 한 번 쓸었다⁠.

대기실 구석 의자에 남자 하나가 혼자 앉아 있었다⁠. 예순은 넘어 보였고⁠, 무릎 위에 종이 한 장을 올려놓고 입술을 달싹이며 읽고 있었다⁠. 진술문을 외우는 입이었다⁠. 남자가 고개를 들다가 효란과 눈이 마주쳤다⁠. 남자는 효란을 알아보았다⁠. 남자가 먼저 고개를 숙였다⁠.

“⁠저는 법안 찬성 쪽 진술인입니다⁠. 미리 말씀드리려고요⁠. 여사님하고 반대 얘기를 할 거라서⁠.⁠”

“⁠괜찮아요⁠. 저도 반대 얘기 할 거예요⁠.⁠”

남자가 웃었다⁠. 웃다가 손바닥으로 무릎 위 종이를 덮었다⁠.

“⁠밖에 같이 사는 사람이 와 있어요⁠. 국회 앞 벤치에요⁠. 들어오면 남들이 뭐라 할까 봐 안 들어온대요⁠. 열두 해를 같이 살았는데 남들한테는 아직 아무것도 아니라서요⁠.⁠”

효란은 남자의 손을 보았다⁠. 왼손 약지에 반지 자국만 하얗게 남아 있었다⁠. 반지는 없었다⁠. 효란은 제 왼손을 무릎 위에서 조금 오므렸다⁠.

“⁠빼셨네요⁠.⁠”

“⁠빼는 데 십 년 걸렸어요⁠. 비누칠을 하도 해서 손가락이 다 텄습니다⁠.⁠”

태민이 두 사람 사이에서 어쩔 줄 모르고 넥타이를 또 만졌다⁠. 대기실 문 밖에서 진술인들을 부르는 소리가 났다⁠.

*

공청회장은 반달 모양이었다⁠. 앞쪽 단상에 위원장과 위원들이 앉았고⁠, 가운데 긴 탁자에 진술인 넷이 나란히 앉았다⁠. 뒤쪽 방청석이 꽉 찼다⁠. 맨 앞줄 한가운데에 이겸이 있었다⁠. 이겸 옆에 은희가⁠, 뒷줄에 상훈이 대패 없이 맨손으로 앉아 있었다⁠. 천장의 카메라 둘이 천천히 돌았다⁠.

법안을 낸 보건복지위원회 의원이 먼저 말했다⁠. 오십 대 중반의 남자였고⁠, 목소리가 컸다⁠.

“⁠치료법이 나오면서 세계 곳곳에서 스무 해⁠, 서른 해 잠들었던 분들이 깨어나고 있습니다⁠. 깨어난 분은 서른인데 배우자는 예순⁠, 일흔입니다⁠. 깨어 있던 배우자 가운데 많은 분이 이미 다른 사람과 새 가정을 꾸리셨습니다⁠. 서류로는 아직 혼인 중이라 새 가정은 법 밖에 있습니다⁠. 깨어난 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른 살 몸으로 일흔 살 배우자에게 서류로 묶여 계십니다⁠. 이 법안은 기상 뒤 여섯 달 안에 두 분이 다시 확인하지 않으면 혼인이 끝나도록 합니다⁠. 누구도 원하지 않는 혼인에 묶이지 않게 하자는 겁니다⁠.⁠”

다음 진술인은 대기실의 남자였다⁠. 예순한 살이었고⁠, 「⁠깨어 있던 배우자 모임⁠」 대표라고 했다⁠. 남자는 종이 한 장을 들고 있었는데 손이 떨려서 종이가 바스락거렸다⁠.

“⁠제 아내는 스물두 해째 에버슬립에 있습니다⁠. 저는 열두 해 전부터 다른 사람과 삽니다⁠. 그 사람이 지난해에 아팠습니다⁠. 수술 동의서에 제 이름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그 사람 남편이 아니니까요⁠. 법으로는 지하 3층에 있는 사람의 남편이니까요⁠.⁠” 남자는 종이를 내려놓았다⁠. “⁠아내가 깨어나면 저는 무슨 얼굴로 서야 합니까⁠? 법이 먼저 정리해 주면⁠, 저는 적어도 거짓말쟁이는 안 됩니다⁠.⁠”

공청회장이 조용했다⁠. 효란은 남자의 떨리는 손을 보았다⁠. 2041년 가을⁠, 법률 상담소에서 받아 온 서류를 들고 집으로 오던 제 손도 저렇게 떨렸다⁠. 남자의 이유에는 틀린 데가 없었다⁠.

위원장이 효란을 불렀다⁠. 효란은 마이크 앞으로 몸을 당겼다⁠. 손목 화면에 칠 분이 떴다⁠. 효란은 화면을 엎어 놓았다⁠.

“⁠탁효란입니다⁠. 일흔 살입니다⁠. 남편은 서른입니다⁠.⁠”

방청석에서 누군가 작게 웃었다⁠. 맨 앞줄의 이겸이 돌아보자 웃음이 멎었다⁠.

“⁠저도 2041년에 이혼 서류를 받아 왔습니다⁠. 남편이 잠든 지 스물한 해째였어요⁠. 저도 저기 선생님처럼 다른 사람 손을 잡고 다녔습니다⁠. 서류를 들고 와서 작업대 위에 펴 놓고 하룻밤을 봤어요⁠. 못 냈습니다⁠. 잠든 사람은 서명을 못 하잖아요⁠. 남편 몰래 남편을 끝내는 거라서요⁠.⁠”

효란은 의원을 보았다⁠.

“⁠의원님 법안대로면⁠, 저 같은 사람은 여섯 달 안에 다시 확인하러 가면 됩니다⁠. 확인하러 가는 건 어렵지 않아요⁠. 남편 손잡고 동사무소 가면 되니까요⁠. 그런데 끝나는 걸 기본으로 두시면요⁠. 확인하러 못 가는 사람은 어떻게 되나요⁠? 깨자마자 몸을 못 가누는 사람⁠, 병원이 바깥소식을 막는 사람⁠, 자기가 몇 년에 사는지 하루에 세 번씩 말하는 연습을 하는 사람이요⁠. 저희 남편은 석 달 동안 휴대폰도 못 받았어요⁠.⁠”

방청석 맨 앞줄에서 이겸이 고개를 끄덕였다⁠. 은희가 이겸의 무릎을 눌렀다⁠.

효란은 대표 남자를 보았다⁠.

“⁠선생님은 끝내셔도 돼요⁠. 끝내셔야 할 것 같아요⁠. 다만 아내분이 깨어나시면⁠, 선생님 입으로 말씀하세요⁠. 법이 선생님 대신 말하지 않게요⁠. 아내분은 마흔 해를⁠, 아니 스물두 해를 주무셨어요⁠. 깨어나서 처음 듣는 이별이 법 조항이면 너무하잖아요⁠.⁠”

남자가 고개를 숙였다⁠. 떨리던 종이가 탁자 위에서 가만해졌다⁠.

“⁠끝을 기본으로 두지 마시고⁠, 두 사람이 정하게 해 주세요⁠. 끝내든 이어 가든 둘이 얼굴 보고 정하게요⁠. 법은 저희가 얼굴 볼 시간만 지켜 주세요⁠. 그게 다예요⁠.⁠”

효란은 화면을 뒤집었다⁠. 육 분 사십 초였다⁠. 효란은 마이크에서 몸을 뗐다⁠.

*

마지막 진술인은 동규였다⁠. 동규는 짙은 양복을 입고 마이크 앞에 앉았다⁠. 단상의 위원들이 서로 눈짓을 주고받았다⁠. 뉴스에서 다 본 얼굴이었다⁠.

“⁠에버슬립 원장 마동규입니다⁠. 2020년 8월 9일 밤⁠, 캡슐 넷을 끈 사람이 저입니다⁠. 오늘은 사과하러 온 것이 아니고 부탁하러 왔습니다⁠.⁠”

동규는 지하 3층의 숫자를 말했다⁠. 투자사가 빠진 뒤로 다음 기상이 무기한 멈췄다는 것⁠, 치료제 한 번 값이 얼마인지⁠, 민간 병원 하나가 삼천 명의 치료제를 다 낼 수 없다는 것⁠. 동규는 숫자를 말할 때마다 잠깐 쉬었다⁠.

“⁠잠든 분들은 법으로는 나라의 국민이지만⁠, 지금은 병원 하나의 통장에 기대 계십니다⁠. 병원이 흔들리면 그분들의 차례가 흔들립니다⁠. 제가 마흔 해 동안 거짓말을 한 것도 그래서였습니다⁠. 거짓말을 안 해도 되도록⁠, 나라가 그분들의 치료제를 맡아 주십시오⁠. 저는 그 뒤에 제 몫의 벌을 받겠습니다⁠.⁠”

단상의 의원이 마이크를 당겼다⁠.

“⁠원장님 병원의 잘못을 세금으로 메워 달라는 말씀입니까⁠?⁠”

“⁠네⁠. 제 잘못은 제가 갚겠습니다⁠. 그분들의 차례는 제 잘못이 아닙니다⁠.⁠”

공청회장이 술렁였다⁠. 효란은 동규의 옆얼굴을 보았다⁠. 기상실 앞에서⁠, 시계방에서⁠, 법원 복도에서 본 얼굴과 같았다⁠.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고⁠, 숫자로 사과했다⁠.

위원장이 공청회를 닫기 전에 법안을 낸 의원이 마이크를 한 번 더 당겼다⁠. 의원은 효란을 보지 않고 탁자 위의 종이를 보며 말했다⁠.

“⁠탁효란 진술인 말씀 가운데⁠, 확인하러 갈 수 없는 분들 이야기는 법안에 빠져 있었습니다⁠. 끝나는 것을 기본으로 둘지⁠, 여섯 달을 얼마로 할지⁠, 다시 보겠습니다⁠. 다만 깨어 있던 배우자분들의 새 가정을 법 밖에 두는 일은 더 미룰 수 없습니다⁠. 그것도 같이 보겠습니다⁠.⁠”

방청석 맨 앞줄에서 이겸이 효란에게 엄지를 들어 보였다⁠. 은희가 이겸의 엄지를 손바닥으로 덮어 내렸다⁠. 국회 방송 카메라가 하필 두 사람의 손을 비췄다⁠. 효란의 손목이 떨렸다⁠. 「⁠미용실 순혜⁠: 저 엄지 이겸이지⁠?⁠? 국회에서 엄지 들면 잡혀가냐⁠」⁠.

*

공청회가 끝나고 효란은 복도로 나왔다⁠. 국회 복도는 길었다⁠. 대리석 바닥이 차가웠고 천장이 높아서 발소리가 둥글게 울렸다⁠. 태민이 방청석에서 이겸을 데리고 나오겠다며 반대편으로 뛰어갔다⁠. 공청회장에서 복도까지 스무 걸음을 걷는 동안 효란은 두 번 숨을 골랐다⁠. 아침 계단에서도 그랬다⁠. 칠 분 동안 말하는 사이 가슴 안쪽이 조금씩 조여 왔는데⁠, 말하느라 몰랐다⁠. 효란은 창가 의자에 앉으려다가⁠, 뒤에서 들리는 조용한 걸음에 돌아섰다⁠. 동규였다⁠.

“⁠진술 잘 들었습니다⁠.⁠”

“⁠원장님도요⁠. 숫자 좀 줄이시지⁠.⁠”

“⁠제가 아는 말이 그것뿐이라서요⁠.⁠”

동규는 효란 앞에 섰다⁠. 손에 아무것도 들지 않았다⁠.

“⁠태민 변호사님이 손해배상을 청구하셨지요⁠. 사십 년 치⁠.⁠”

“⁠네⁠.⁠”

“⁠공공 재원이 들어와도⁠, 그 돈이 법원 판결에 따라 여사님께 먼저 갑니다⁠. 지하 3층 분들 차례는 그다음입니다⁠. 손해배상만 거둬 주십시오⁠. 진술은 하신 대로 두시고⁠, 재판도 하신 대로 하시고⁠, 저도 벌을 받겠습니다⁠. 돈만 그분들께 먼저 가게 해 주십시오⁠.⁠”

“⁠원장님은 또 저한테 바꾸자고 하시네요⁠. 제 마흔 해랑⁠.⁠”

“⁠네⁠. 사십 년 전에는 여쭙지 못했습니다⁠. 이번에는 여쭙습니다⁠.⁠”

효란은 대답하려고 숨을 들이켰다⁠. 숨이 가슴 한가운데에서 멈췄다⁠. 숨을 끝까지 들이켜려는데 들어가지 않았다⁠. 가슴 안에서 누가 시계 태엽을 거꾸로 감았다⁠. 심장이 한 박을 건너뛰고⁠, 또 한 박을 건너뛰었다⁠. 효란은 동규의 소매를 잡았다⁠. 손끝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여사님⁠?⁠”

다리가 먼저 꺾였다⁠. 대리석 바닥이 무릎에 닿았고⁠, 차가운 기운이 무릎에서 허리로 올라왔다⁠. 동규가 효란의 어깨를 받쳐 바닥에 눕혔다⁠. 동규가 누군가를 향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사십 년 동안 목소리를 높이지 않던 사람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복도 끝까지 갔다⁠. 천장이 높았다⁠. 천장의 둥근 등이 여러 개로 번졌다⁠.

복도 저편에서 지팡이가 대리석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빠르고 엇박자인 소리였다⁠. 지팡이를 짚는 사람이 뛰는 소리였다⁠. 효란은 고개를 돌리려 했다⁠. 돌아가지 않았다⁠. 효란은 카디건 주머니 속에서 왼손을 꺼냈다⁠. 반지 낀 손을 대리석 바닥 위에 펴 놓았다⁠. 지팡이 소리가 가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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