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094자) · 일 퍼센트

모함

누가 보냈는지 아는 사람 · 정이한

만 19세 이상 이용가

감사관은 오십 대 남자였다. 본부에서 왔다고 했다. 계장 자리에 앉아서, 계장 책상 유리 밑 명함 스무 장 위에 서류철을 올려놓았다. 제일 위 명함이 서류철에 가려졌다. 계장은 그 옆 보조 의자에 앉아 무릎 위에서 손을 비볐다. 나와 눈을 맞추지 않았다.

“하윤 주임. 3월 9일 오후, 받는 사람 표기가 훼손된 소포 한 건을 하역장에서 분류 센터행 트럭에 실었죠.”

“네.”

“훼손은 누가 했습니까?”

“제가 했습니다. 탕비실 싱크대에서 손가락에 물을 묻혀서요.”

감사관이 볼펜을 멈췄다. 계장이 고개를 들었다. 둘 다 내가 부인할 줄 알았던 얼굴이었다. 부인하는 사람을 위한 질문 열 개쯤이 서류철 안에 준비되어 있었을 것이다. 감사관은 그 종이를 한 장 넘기고, 또 한 장 넘기고, 세 번째 장에서 멈췄다.

“이유는요.”

“그 상자가 분류 센터 미배달 보관함으로 가야 했습니다. 거기서 일하는 사람에게 닿아야 했습니다. 정상 접수로는 닿을 방법이 없었습니다.”

“개인 연락을 위해 우편 시스템을 훼손했다는 거군요.”

“네.”

감사관은 한참 나를 봤다. 그리고 서류철에서 다른 종이를 꺼냈다. 두꺼웠다.

“그럼 이건요.”

표였다. 날짜가 백사십사 줄. 2014년 3월부터 올해 3월까지. 줄마다 송장 번호, 접수 지점, 무게. 그리고 맨 오른쪽 칸. 발신인 — 공란.

“하 주임 앞으로 십이 년 동안 발신인 미기재 소포가 백사십사 건 배송됐습니다. 시스템상 접수가 불가능한 소포입니다. 한결물산에서 대량 계약 사전 점검을 하다가 이 기록을 발견해서 제보했어요. 내부자가 미배달 보관함 물건을 빼돌려 하 주임에게 보낸 정황이 있다고.”

나는 표를 봤다. 백사십사 줄. 내가 거실 바닥에 늘어놓았던 순서 그대로였다. 단추, 지우개, 열쇠고리. 그 순서가 감사관의 표에서는 절도 목록이 되어 있었다.

“빼돌린 거 아닙니다. 전부 한 사람이 자기 물건을 보낸 겁니다.”

“그 한 사람이 누굽니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 주임. 발신인을 말하면 하 주임은 받은 사람일 뿐입니다. 훼손 한 건으로 끝나요. 견책 정도. 발신인을 말하지 않으면, 백사십사 건을 하 주임이 내부자와 짜고 받은 걸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직위해제고, 징계위원회고, 경우에 따라 수사 의뢰입니다.”

석진 선배의 셈이 보였다. 내가 입을 열면 칠 층 끝 방의 사람이 수사를 받는다. 십이 년 동안 재부착 라벨을 사사로이 쓴 계약직 작업자. 남은 두 달을 조사실에서 보내게 된다. 내가 입을 닫으면 내가 잘린다. 잘린 우체국 사람의 진술은 아무도 믿지 않는다. 어느 쪽을 골라도 석진 선배가 이긴다. 그날 밤 둔치에서처럼. 둘 대 하나.

“발신인은 말하지 않겠습니다.”

감사관은 볼펜 뚜껑을 닫았다.

“알겠습니다. 오늘부로 직위해제입니다. 받은 물건 백사십사 개는 이번 주 금요일까지 증거로 제출하세요.”

계장이 그제야 나를 봤다.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명함 스무 장 밑에서 무언가를 꺼내려는 사람처럼 책상 유리를 손끝으로 두 번 두드렸다. 아무것도 꺼내지 않았다.

사물함을 비웠다. 우체국 점퍼, 칼, 테이프 커터, 도시락 가방. 진이 옆에서 종이 상자를 들고 서 있었다. 3호였다. 진이 접은 상자였다. 모서리가 반듯했다.

“선배. 이거 제가 접었어요. 칠 초 걸렸어요. 기록이에요.”

“고마워.”

“돌아오실 때 이 상자에 도로 넣어 오세요. 통계적으로 돌아오는 사람이 짐을 적게 가져가요. 선배 지금 짐 적게 가져가는 거예요.”

진은 웃으려고 했다. 잘 안 됐다.

우체국 뒷문 계단에 앉아 청명의료원 칠 층 간호사실에 전화를 걸었다. 등기 때문에 번호를 알고 있었다. 간호사가 서명옥 씨는 주무신다고 했다. 그리고 목소리를 낮췄다. 「오늘 아침에 분류 센터에서 등기가 왔어요. 계약 해지 통보요. 병실로 보냈더라고요. 환자분이 뜯어 보시고는 아무 말씀 안 하셨어요. 봉투를 꽃바구니 옆에 세워 두셨어요.」

꽃바구니 옆에. 시들어 가는 백합 옆에. 나는 그 봉투가 어떤 모양으로 세워져 있을지 알았다. 받는 사람이 보라고. 드나드는 사람이 다 보라고.

「간호사님, 그분한테 전해 주세요. 발신인은 말 안 했다고요.」 간호사는 무슨 뜻인지 묻지 않았다. 칠 층 간호사들은 무슨 뜻인지 묻지 않는 말을 많이 전한다.

우체국 뒷문을 나오자 휴대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강 노인의 아내라고 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우리 영감이 다리에서 넘어졌어요. 수첩을 뺏겼대요.”

다리 위에 강 노인은 낚시 의자에 앉아 있었다. 무릎이 까져 있었다. 바지에 흙이 묻어 있었다. 가슴 주머니가 뜯겨 단추가 없었다. 실밥만 남아 있었다.

“자전거였소. 뒤에서 오더니 주머니째 뜯어 갔지. 나를 밀치고. 얼굴도 못 봤소. 검은 헬멧.”

그의 아내가 옆에서 보온병 뚜껑에 보리차를 따라 그의 손에 쥐여 주고 있었다. 손이 떨려서 보리차가 넘쳤다.

“어르신, 병원 가세요.”

“안 가오. 오늘 셈 해야 되오.”

그는 다리 위 인도를 봤다. 사람들이 지나갔다. 그의 눈이 사람들을 따라 움직였다. 그런데 무릎 위에 수첩이 없었다. 셀 곳이 없었다. 그의 손가락이 무릎 위에서 허공에 사선을 그었다. 셋, 사선, 영.

“셈을 뺏겼소. 열다섯 해 만에 처음이오.”

아내가 보리차를 다시 따르며 혀를 찼다. 「내가 그렇게 집에 두라고 했는데. 이 양반이 수첩을 나보다 더 챙겨요. 결혼 사십 년에 나는 가슴 주머니에 한 번도 못 들어가 봤어.」 강 노인이 보리차를 마시다 사레가 들렸다. 아내가 등을 두드렸다. 두드리는 손이 셌다. 나는 웃음이 나오려는 걸 참았다. 참다가 조금 웃었다. 강 노인도 기침 끝에 웃었다. 이가 몇 개 없었다.

나는 코트 주머니에서 우체국 수첩을 꺼냈다. 새 쪽을 폈다. 맨 위에 오늘 날짜를 적었다.

“어르신, 오늘은 제가 셀게요.”

강 노인이 나를 봤다. 한참.

“난간 잡는 자세를 알아보겠소?”

“가르쳐 주세요.”

그는 가르쳐 줬다. 손바닥 전체로 잡는 사람, 손끝으로만 걸치는 사람, 잡았다 놓았다 하는 사람. 놓았다 다시 잡는 사람이 제일 위험하다고 했다. 나는 한 시간 동안 다리 위에 서서 셌다. 난간 앞에 멈춘 사람이 넷. 넷 다 다시 걸어갔다. 나는 사선을 긋고 오른쪽에 영을 적었다. 4 / 0. 강 노인이 그 쪽을 들여다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숫자요.」

나는 그 옆 난간을 잡았다. 차가웠다. 석진 선배는 하루 만에 세 군데를 쳤다. 나를, 칠 층 끝 방을 겨누는 칼을, 다리 위의 셈을. 그날 밤 둔치에서 이십육 분 동안 그가 했던 것과 같은 일이었다. 누가 입을 열 수 있는지 세고, 하나씩 닫는 일.

밤 열 시에 초인종이 울렸다.

문을 열자 예린이 서 있었다. 코트 안에 잠옷을 입고 있었다. 머리가 헝클어져 있었다. 한 손에 낡은 휴대폰을 쥐고 있었다. 화면이 금 간 옛날 기종이었다. 다른 손에 충전기.

“남편 세종 간대. 오늘 발령 났어. 다음 주 월요일부터.”

예린은 현관에 선 채로 말했다. 신발을 벗지 않았다.

“남편이 그러더라. 상무님이 그러셨대. 하윤 씨가 계속 이러면 세종이 끝이 아닐 수도 있다고. 내가 물었어. 무슨 뜻이냐고. 남편이 모른대. 모르는데 무섭대. 애들 재우다가 남편이 우는 걸 처음 봤어.”

예린은 금 간 휴대폰을 내밀었다.

“이거 그날 내 폰이야. 뒤풀이 노래방에서 진우가 노래 부르는 거 녹음하고 있었어. 진우가 노래 진짜 못했거든. 놀리려고. 끄는 걸 잊어버렸어. 코트 주머니에 넣은 채로 둔치에 내려갔어. 다음 날 보니까 녹음이 한 시간 넘게 돼 있었어. 처음 몇 초만 들었어. 진우 노래. 그다음은 못 들었어. 십이 년 동안 서랍에 넣어 놨어. 버리지도 못하고 켜지도 못하고.”

나는 휴대폰을 받았다. 가벼웠다. 3호 상자에 종이 한 장 넣은 것만큼.

“예린아.”

“켜 봐. 나 혼자는 못 들어.”

거실 바닥에 앉아 충전기를 꽂았다. 한참 아무 반응이 없었다. 예린이 손톱을 물었다. 오 분쯤 지나 화면에 빨간 배터리 그림이 떴다. 다시 오 분. 로고가 떴다. 켜졌다. 배터리 일 퍼센트.

녹음 파일은 하나였다. 한 시간 십이 분. 나는 재생 막대를 끌어 오십 분 근처에 놓았다. 노래방 소리가 끝나고, 발소리, 자갈 소리, 웃음소리가 지나간 뒤였다.

바람 소리가 먼저 나왔다. 주머니 천에 긁히는 소리. 그다음이 석진 선배의 목소리였다. 스물여섯 살의, 지금보다 높은 목소리.

“종이 내놔. 진우야, 내놓으라고.”

진우의 목소리. 처음 듣는 목소리 같았다. 십이 년 동안 나는 진우 목소리를 잊고 있었다.

“이건 교수님 거야. 형 거 아니야.”

무언가 부딪치는 소리. 짧은 숨. 그리고 물소리.

예린이 손으로 입을 막았다. 나는 재생 막대를 보지 않았다. 시간을 보지 않았다. 셌다. 하나, 둘.

내 목소리가 나왔다. 멀리서. 「선배, 전화, 전화해야 돼요.」 예린의 목소리. 울음이 섞인. 「하윤아, 하윤아.」 그리고 석진 선배. 가까이서. 아주 차분하게.

“기다려. 올라오면 내가 잡아. 전화는 그다음에 해. 따라 해 봐. 우리는 아무것도 못 봤어.”

멀리서, 아주 멀리서, 쉰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다리 위에서. 「들어가! 누가 들어가!」

그리고 석진 선배가 한 번 더 말했다. 자갈을 밟는 소리와 함께. 교각 쪽으로 걸어가는 소리였다.

“놔, 진우야. 종이 놔. 놓으면 잡아 줄게.”

화면이 꺼졌다. 일 퍼센트가 다 됐다.

예린과 나는 꺼진 화면을 봤다. 둘 다 말이 없었다. 거실 바닥에 백사십사 개의 물건이 아직 줄지어 있었다. 금요일까지 내야 하는 증거들. 그 한가운데 금 간 휴대폰이 놓였다.

“하윤아.”

예린이 말했다. 입술을 말아 넣지 않았다.

“남편 세종 가라고 할 거야. 나 이거 낼 거야.”

“예린아, 너 혼자 애 둘이야.”

“알아. 계산했어. 오는 길에 택시 안에서. 남편 월급, 주말 기차표, 둘째 어린이집. 다 해 봤어. 안 맞아. 그래도 해.”

예린은 그제야 신발을 벗었다. 거실 바닥에 앉았다. 백사십사 개 물건 사이에. 흰 단추 하나를 집어 손바닥에 올렸다.

“이거 진우 거지.”

“응.”

“나 이것도 셀 줄 몰랐어. 십이 년 동안. 너는 받기라도 했지. 나는 아무것도 안 받았어. 아무도 나한테는 안 보냈어. 그게 벌인 줄 알았어. 아니더라. 나는 스스로 들고 있었어. 서랍에.”

예린은 단추를 도로 제자리에 놓았다. 줄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게.

8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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