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050자) · 쑥떡

권석진

누가 보냈는지 아는 사람 · 정이한

만 19세 이상 이용가

권석진 선거 사무소는 율천동 사거리 상가 이 층에 있었다. 건물 한 면을 덮은 현수막에 석진 선배가 소매를 걷고 웃고 있었다. 이가 고르고 하얬다. 그 아래 굵은 글씨. 약속을 지키는 사람.

나는 그 현수막 아래서 오 분쯤 서 있었다. 들어갈지 말지를 고민한 게 아니었다. 들어가서 무엇을 먼저 말할지를 정했다. 십이 년 전 둔치에서 나는 석진 선배가 먼저 말하게 두었다. 먼저 말하는 사람이 문장을 정한다. 뒤에 말하는 사람은 그 문장을 따라 한다.

계단을 올라가자 떡 냄새가 났다. 사무소 안은 북적였다. 자원봉사자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전화를 돌리고, 명함 상자를 나르고, 벽에 붙은 지도에 빨간 스티커를 붙였다. 입구 탁자에 앉은 대학생이 나를 보자마자 일어나서 볼펜을 내밀었다.

“어서 오세요! 지지자 명부에 성함이랑 연락처 부탁드려요. 떡도 드세요. 쑥떡이에요. 후보님 어머님이 직접 하셨대요.”

“후보님 만나러 왔어요.”

“아, 약속 잡으셨어요? 후보님 오늘 일정이 꽉 차서요. 명부에 쓰시면 연락드릴게요. 쑥떡은 지금 드셔도 돼요.”

대학생은 쑥떡 접시를 한 손에, 볼펜을 다른 손에 들고 나를 봤다. 둘 중 하나는 받아야 보내 줄 얼굴이었다. 나는 볼펜을 받았다. 명부에 이름을 썼다. 하윤. 연락처 칸은 비웠다. 옆에 한 칸이 더 있었다. 소속. 나는 그 칸에 적었다. 증인.

대학생은 그 글자를 읽고 고개를 갸웃했다. 「증인이요? 아, 결혼식 증인 같은 거요?」 대답하기 전에 안쪽 문이 열렸다.

검은 점퍼였다. 오늘은 양복을 입고 있었다. 방문증 대신 선거 사무소 명찰. 대외협력 실장 도형준.

“하윤 씨. 오실 줄 알았습니다. 들어오세요. 휴대폰은 여기 주시고요. 보안 때문에. 선거 기간이라.”

그는 쟁반을 내밀었다. 쟁반 위에 이미 휴대폰이 세 대 놓여 있었다. 나는 휴대폰을 올렸다. 녹음을 켜 둘 생각을 했었다. 그가 먼저 쟁반을 내밀었다. 먼저 말하는 사람이 문장을 정한다.

안쪽 방은 작았다. 창이 하나. 창밖으로 율천 쪽 하늘이 보였다. 책상 뒤에서 석진 선배가 일어섰다. 셔츠 소매를 걷고 있었다. 현수막 속 사람과 똑같이.

“하윤아. 앉아. 떡 먹었어? 우리 어머니가 하셨어.”

“안 먹었어요.”

“먹고 가. 어머니 서운해하셔.”

그는 앉았다. 나는 서 있었다. 도형준이 문 옆에 섰다.

“선배. 저 진술 고칠 거예요.”

석진 선배는 고개를 끄덕였다. 놀라지 않았다. 그 말이 올 줄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 달력에 적어 둔 약속처럼.

“그래. 고쳐. 네 자유야.”

그는 책상 서랍을 열어 서류철 하나를 꺼냈다. 펼쳐서 나에게 돌려 보였다. 인쇄한 종이 몇 장. 맨 위에 경찰 로고.

“2014년 2월 17일 사건 기록. 이거 떼는 데 삼 주 걸렸어. 봐. 최초 신고자 하윤. 23시 40분. 신고 내용. 방금 사람이 빠졌어요. 방금. 네 목소리야. 녹취는 폐기됐지만 받아 적은 건 남아 있어.”

그는 그 줄에 손가락을 올렸다.

“네가 진술을 고치면, 이 방금이 거짓말이 되는 거야. 이십육 분 동안 뭘 했는지 네가 설명해야 돼. 너는 우정사업본부 공무원이야, 하윤아. 허위 진술로 수사를 방해했다는 게 인정되면 징계야. 파면일 수도 있고. 십사 년. 연금. 다.”

“알아요.”

“알아? 그럼 이것도 알아야지.”

석진 선배는 두 번째 종이를 넘겼다. 진술서였다. 내 서명이 있었다. 스물여섯 살 내 글씨.

“여기 네가 쓴 거. 진우는 석진 선배랑 교각 쪽에 있었고, 나는 예린이랑 조금 떨어져 있었다. 이 문장 기억나? 너 여기서 조금이라는 말을 두 번 썼어. 조금 떨어져 있었다. 조금 뒤에 소리가 났다. 사람이 거짓말을 하면 조금이라는 말을 많이 써. 수사관들 그거 알아.”

그는 종이를 덮었다.

“네가 진술을 고치면 나도 고칠 거야. 이번에는 사실대로. 그날 진우랑 언성 높인 건 나 말고 너였다고. 너 진우 좋아했잖아. 다들 알았어. 진우가 추천서 얘기를 하니까 네가 화가 났다고. 네가 밀었다고. 나는 그걸 십이 년 동안 덮어 줬다고.”

나는 숨을 쉬었다. 한 번. 길게.

“예린이가 그렇게 말해 줄 거야. 예린이는 애가 둘이야. 남편이 우리 회사고. 둘 대 하나야, 하윤아. 그날도 둘 대 하나였어. 그래서 네가 따라 한 거잖아.”

“진우 어머님은요.”

석진 선배의 얼굴이 처음으로 조금 부드러워졌다. 진심으로 부드러워졌다. 그게 제일 무서웠다.

“석 달이래. 작년 섣달에 의사가 그랬대. 이제 다 됐다더라. 하윤아, 기다리면 끝나. 그분도 편해지고, 너도 편해지고. 내가 병원비는 대 드릴게. 익명으로. 칠 층 끝 방. 제일 좋은 약으로. 너 그분 편하게 보내 드리고 싶잖아. 나도 그래.”

“꽃도 보내셨죠.”

“보냈지. 예의잖아.”

나는 책상 앞으로 한 걸음 갔다. 도형준이 문 옆에서 몸을 뗐다. 석진 선배가 손을 들어 그를 멈췄다.

“선배. 진우가 흔들던 종이. 추천서.”

“아, 그 얘기 들었구나. 인턴 한 자리. 하윤아, 생각해 봐. 인턴 한 자리 때문에 누가 사람을 밀어. 말이 되니? 걔가 괜히 흥분해서 교각 쪽으로 가다가 미끄러진 거야. 종이는 물에 젖어서 아무것도 안 보였어. 그냥 종이였어.”

나는 그 문장을 들었다. 한 번 더 들었다. 머릿속에서.

“젖은 걸 어떻게 아세요.”

석진 선배가 멈췄다.

“진우는 그 종이를 쥔 채로 들어갔어요. 선배가 빼앗으려 했을 때 진우가 놓지 않았으니까. 그러면 종이는 진우랑 같이 물에 들어갔어요. 그런데 선배는 그게 젖어서 안 보였다고 하세요. 젖은 걸 봤다는 거예요. 물에서 나온 걸. 선배가 둔치에서 주운 거예요. 이십육 분 안에. 진우가 물 밖으로 손을 내밀었을 때 그 손에서 빠져나온 걸.”

방 안이 조용했다. 바깥에서 자원봉사자가 「후보님 두 시 인터뷰요!」 하고 외치는 소리가 문틈으로 들어왔다.

석진 선배는 웃었다. 이번에는 웃음이 끝까지 갔다. 편안하게.

“하윤아. 너 녹음 안 하고 있지. 휴대폰 쟁반에 있잖아.”

“네.”

“그럼 말해 줄게. 너한테만. 그날 진우가 한 번 올라왔어. 교각 기초 돌에 손을 걸었어. 그 손에 종이가 있었어. 끝까지 안 놓더라. 나는 그 종이를 빼냈어. 그리고 기다렸어. 걔가 다시 손을 걸면 내가 잡아 줄 생각이었어. 진짜야. 안 걸더라. 이십육 분 동안 한 번도.”

그는 그 말을 날씨 이야기처럼 했다.

“그러니까 그 이십육 분은 나 혼자 쓴 게 아니야. 우리 셋이 같이 쓴 거야. 너는 전화기를 들고 있었고, 예린이는 네 팔을 붙들고 있었고, 나는 기다렸어. 셋이 같이 기다렸어. 너 혼자 빠져나가려고 하지 마. 그건 배신이야. 진우한테도.”

나는 그 사람을 봤다. 십이 년 전 둔치에서 우리 앞에 서서 손짓을 하던 사람. 그 사람은 그 뒤로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흔들릴 이유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 이십육 분 동안 그는 기다린 게 아니었다. 셈을 했다. 그리고 그 셈이 맞았다고 십이 년 동안 믿고 살았다.

“선배 말이 하나는 맞아요.”

“뭐.”

“저도 그 이십육 분 안에 있었어요. 빠져나가려는 거 아니에요. 들어가려는 거예요. 십이 년 늦게.”

나는 돌아섰다. 도형준이 문 앞을 막았다. 석진 선배가 다시 손을 들었다. 도형준이 비켰다.

“하윤아.”

문고리를 잡은 채로 돌아봤다.

“너 감사실 연락 받을 거야. 내일쯤. 우편물 훼손으로. 받는 사람 칸에 물 묻혀서 번지게 한 거, 하역장 카메라에 네가 그 상자 들고 나오는 게 찍혀 있어. 계장님이 확인해 주셨어. 번진 송장 사진도 있고. 우편법 몇 조였더라. 네가 도 실장한테 읊었다며.”

그는 서류철을 서랍에 넣었다.

“고쳐. 진술. 네 자유니까. 근데 우체국 사람이 우편물 훼손으로 잘리고 나서 하는 말을 누가 믿을까.”

나는 문을 열고 나왔다. 쟁반에서 휴대폰을 집었다. 입구 탁자의 대학생이 쑥떡 접시를 내밀었다.

“하나 드시고 가세요. 진짜 맛있어요.”

나는 하나를 집었다. 대학생의 얼굴이 환해졌다. 쑥떡은 따뜻했다. 계단을 내려가며 한 입 먹었다. 달았다. 석진 선배의 어머니가 아들을 위해 새벽부터 빚은 떡이었다. 그 어머니도 아마 모를 것이다. 칠 층 끝 방의 다른 어머니가 무엇을 셌는지.

상가 앞 사거리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수첩을 폈다. 오늘 들은 문장을 적었다. 한 글자씩. 그가 한 말 그대로. 한 번 올라왔어. 종이를 빼냈어. 기다렸어. 안 걸더라. 적으면서 손이 떨리지 않았다. 떨려야 할 것 같은데 안 떨렸다. 녹음은 없었다. 증거가 되지 않는 문장이었다. 그래도 적었다. 적어야 순서가 생긴다. 순서가 생겨야 진술이 된다.

신호가 바뀌었다. 건너편 현수막 속 석진 선배가 웃고 있었다. 약속을 지키는 사람. 나는 그 아래를 지나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버스 안에서 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진은 첫 신호에 받았다. 뒤에서 컨베이어 소리가 났다. 야근 중이었다.

“선배, 살아 계세요? 선거 사무소 갔다면서요. 김 주임님이 그러던데요. 헬멧 쓴 사람이 그렇게 비장한 거 처음 봤대요.”

“진아. 나 내일 감사 받아. 우편물 훼손.”

컨베이어 소리만 들렸다. 한참.

“그 번진 거요.”

“응.”

“하역장 카메라 각도 제가 알아요. 탕비실은 안 찍혀요. 선배가 싱크대에서 뭘 했는지는 아무도 몰라요. 상자 들고 나가는 것만 찍혔어요. 번진 송장이야 비 오는 날 하루에 열 개씩 나오고요.”

“진아.”

“네.”

“내가 물 묻힌 거 사실이야.”

진은 또 조용했다. 이번에는 더 길게. 그러다 말했다.

“알아요. 저 그날 선배 손가락 봤잖아요. 파랬어요.”

“그러니까 감사실 가서 그렇게 말할 거야. 내가 번지게 했다고. 왜 그랬는지도.”

“선배, 그러면 통계적으로 선배가 지는 거예요.”

“응.”

“근데요.”

진은 숨을 한 번 들이쉬었다.

“저 선배 편이에요. 통계 말고.”

전화를 끊었다. 버스 창에 내 얼굴이 비쳤다. 나는 깨끗한 사람이 아니었다. 십이 년 전에는 거짓 진술을 했고, 열흘 남짓 전에는 받는 사람 칸을 지웠다. 석진 선배는 그걸 안다. 그래서 그 두 가지로 나를 묶으려 한다. 나는 그 두 가지를 먼저 풀어 놓기로 했다. 내 입으로. 남이 꺼내기 전에. 먼저 말하는 사람이 문장을 정한다.

그날 저녁 아홉 시에 계장에게서 문자가 왔다. 「하 주임, 내일 아침 여덟 시 반에 사무실로. 감사실에서 사람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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