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055자) · 십이 초

서명옥

누가 보냈는지 아는 사람 · 정이한

만 19세 이상 이용가

김 주임은 오토바이 시동을 걸어 놓고 나를 위아래로 봤다. 십이 년 전 내가 이 년 차 집배원일 때 김 주임은 칠 년 차였다. 지금은 이십일 년 차다. 헬멧 안에서 눈이 웃었다.

“하 주임, 소포계 가더니 엉덩이가 편해졌지. 뒷자리 흔들려. 꽉 잡아.”

“네.”

“근데 왜 타는 건지는 안 물어볼게. 통계적으로 물어보면 안 되는 얼굴이야.”

진이 김 주임한테까지 그 말을 옮겨 놓은 모양이었다.

오전 아홉 시 반, 등기 서른두 통과 소포 일곱 개를 싣고 오토바이가 우체국 뒷문으로 나갔다. 정문 건너편 갓길에 검은 세단이 서 있었다. 정문을 보고 있었다. 우리는 뒷문 골목으로 빠져서 시장 쪽으로 돌았다. 세단은 움직이지 않았다. 오토바이 뒷자리에서 나는 세단이 점점 작아지는 것을 셌다. 하나, 둘, 셋. 모퉁이를 돌자 없어졌다.

김 주임은 청명의료원 원무과에 등기를 넘기고, 나에게 헬멧을 벗으라고 했다. 「사십 분 뒤에 여기서. 늦으면 두고 간다. 농담 아니다.」

칠 층은 조용했다. 복도 끝에 창이 있었고 창밖으로 율천이 보였다. 멀리 다리가 작게 걸려 있었다. 율천교. 이 병원 칠 층에서 그 다리가 보인다는 것을, 나는 그 창 앞에서 처음 알았다.

끝 방 문은 반쯤 열려 있었다. 침대가 하나. 창가 쪽. 침대 머리맡에 링거 걸이가 섰고, 그 옆 보조 탁자 위에 3호 상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 접다 만 상자. 밑면 날개 하나가 덜 접혀 있었다.

침대에 누운 사람이 고개를 돌렸다.

장례식장에서 흰 소복을 입고 있던 사람. 그때 나를 오래 보던 눈. 얼굴은 반으로 줄어 있었다. 광대뼈가 드러났고, 머리카락은 짧게 깎여 있었다. 눈만 그대로였다. 그 눈이 나를 다시 오래 봤다. 이번에는 내가 피하지 않았다.

“하윤 씨.”

“어머님.”

서명옥 씨는 손을 들어 침대 옆 의자를 가리켰다. 손목이 연필처럼 가늘었다. 손등에 링거 바늘이 꽂혀 있었고, 손가락 끝에 파란 물이 들어 있었다. 도장 잉크였다. 십이 년 동안 하루에 수천 번 찍은 도장 잉크. 내 손가락에 든 것과 같은 파랑이었다.

나는 앉았다. 코트 안주머니에서 사진을 꺼내 탁자에 놓았다. 흰 셔츠. 도서관 서가.

“돌려드리려고요.”

“가져요. 사물함은 이제 비워야 돼요. 다음 사람 써야지.”

서명옥 씨는 탁자 위 접다 만 상자를 봤다.

“백사십오 번째예요. 다 못 접었어요. 손이 이래서.”

“어머님, 왜 저였어요.”

나는 그 질문을 병원 엘리베이터 안에서 열 번쯤 연습했다. 연습한 목소리로는 안 나왔다. 더 작게 나왔다.

“석진 선배는 어머님이 저를 원망해서 보낸 거라고 했어요. 제가 전화한 사람이니까. 방금이라고 한 사람이니까.”

서명옥 씨는 한참 대답하지 않았다. 창밖을 봤다. 다리 쪽을.

“원망했어요.”

그 말은 조용했다. 조용해서 방 안을 다 채웠다.

“하윤 씨가 제일 미웠어요. 석진이는 밉지 않았어요. 석진이는 그런 애니까. 예린이는 무서워서 그랬을 거니까. 하윤 씨는 전화기를 들고 있었잖아요. 이십육 분 동안. 들고 있었으면서.”

나는 무릎 위에서 손을 쥐었다.

“나는 그 이십육 분을 십이 년 동안 셌어요. 분류 센터 컨베이어가 한 바퀴 도는 데 이십육 분 걸려요. 알아요? 내가 재 봤어요. 첫날에. 밤새 그게 몇 바퀴 도는지 셌어요. 한 바퀴 돌 때마다 진우가 한 번씩 물에 들어갔어요. 하룻밤에 열여덟 번. 십이 년이면.”

서명옥 씨는 거기서 멈췄다. 숨이 찼다. 산소 줄이 코 밑에서 흔들렸다.

“그러면 왜 저한테 물건을 보내셨어요. 미우면 편지를 쓰시지. 미운 말은 쓰기 쉽잖아요.”

“쓰기 쉬우니까 안 썼어요.”

그녀는 나를 봤다.

“미운 말을 쓰면 하윤 씨가 버릴 거잖아요. 석진이 말대로 원망이구나 하고. 버리면 끝이에요. 나는 하윤 씨가 버리지 않는 걸 보내야 했어요. 진우 물건은 아무도 못 버려요. 쓰던 거니까. 하윤 씨가 그걸 옷장 위에 올려 두는 걸 나는 알았어요. 이사할 때마다 제일 먼저 싼다는 것도. 이사 트럭 짐 목록은 분류 센터를 지나가거든요.”

나는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물건마다 점은 제가 찍었어요. 진우가 도서관에서 책 등에 붙이던 청구기호처럼. 점 하나는 날짜, 둘은 시각, 셋은 셈. 순서대로 놓으면 읽히게. 하윤 씨는 우체국 사람이니까 언젠가는 줄을 세울 줄 알았어요. 그런데 팔 년이 지나도 안 세더라고요.”

“죄송해요.”

“사 년 전부터는 백지를 보냈어요. 이제 쓰자, 이제 쓰자 하고. 못 썼어요. 쓰려고 하면 미운 말밖에 안 나와서. 미운 말은 안 보내기로 했으니까.”

그녀는 손을 들어 사진 속 진우의 셔츠 단추를 짚었다.

“그러다 작년 섣달에 의사가 석 달이라고 했어요. 석 달 남았다고 하니까 미운 말이 줄더라고요. 이상하죠. 시간이 없으니까 미워할 시간도 없어요. 그래서 숫자만 썼어요. 날짜, 시각, 셋 그리고 영. 그것만 쓰고 나니까 알았어요. 하윤 씨가 세 줄을 읽으면, 그다음은 하윤 씨가 쓸 차례라는 걸.”

“사원증은요.”

나는 안주머니에서 사원증을 꺼냈다. 뻣뻣한 목걸이 줄.

“그건 진우 코트 주머니에 있었어요. 경찰이 유품이라고 돌려준 봉투에. 뒤풀이 자리에서 하윤 씨가 떨어뜨린 걸 진우가 주웠나 봐요. 걔는 그런 애였어요. 남의 물건은 하루 일찍 돌려줘야 하는 애. 다음 날 돌려주려고 넣어 뒀겠죠.”

나는 사원증을 쥐었다. 목걸이 줄이 손바닥을 찔렀다. 십이 년 동안 물에 불었다가 마른 것처럼 뻣뻣하다고 생각했던 그 줄은, 정말로 물에 들어갔다 나온 것이었다. 진우의 주머니에 든 채로.

“그건 제일 마지막에 보내려고 했어요. 진우가 못 돌려준 거. 내가 대신 돌려준 거예요. 십이 년 늦게.”

나는 울지 않으려고 했다. 우체국 사람은 창구에서 울지 않는다. 여기는 창구가 아니었다. 나는 울었다. 소리 없이. 서명옥 씨는 나를 달래지 않았다. 창밖 다리를 봤다. 내가 울음을 다 마칠 때까지. 그것이 그녀가 나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정확한 것이었다. 기다려 주는 것. 이십육 분이 아니라, 필요한 만큼.

“어머님. 진우가 그날 흔들던 종이, 뭔지 아세요.”

서명옥 씨가 고개를 돌렸다.

“추천서예요. 한결물산 여름 인턴. 과에 한 자리였어요. 교수님이 진우 이름으로 써 줬어요. 장례식에서 교수님이 나한테 그랬어요. 진우가 됐었는데, 학과 사무실에서 원본이 사라지고 석진이 이름으로 다시 올라갔다고. 석진이 아버지 회사였으니까. 진우는 그날 과 사무실 복사기에서 원본 사본을 찾아서 들고 나갔대요. 석진이한테 따지러.”

인턴 한 자리. 여름 두 달. 나는 그 크기를 가늠했다. 사람 하나가 물에 들어갈 만한 크기가 아니었다. 그렇게 작은 것 때문에. 석진 선배는 지금 그 회사의 상무다. 그 여름 두 달에서 시작해서.

“교수님은요.”

“작년에 돌아가셨어요. 추천서 원본 복사본은 교수님 연구실 캐비닛에 있었는데, 그건 모르겠어요.”

그녀는 산소 줄을 고쳐 꼈다.

“하윤 씨. 나는 경찰서에 세 번 갔어요. 세 번 다 같은 말을 들었어요. 목격자 셋의 진술이 일치한다. 한 사람이라도 진술을 바꾸지 않으면 다시 열 수 없다. 살인은 이제 공소시효가 없어졌는데도, 그 문을 여는 열쇠는 나한테 없어요. 하윤 씨 입에 있어요.”

“알아요.”

“나는 부탁 안 해요. 부탁하면 하윤 씨가 나 때문에 하는 게 되니까. 그럼 또 누가 가르친 말이 되잖아요. 석진이가 가르쳤던 것처럼.”

그때 복도에서 발소리가 났다. 간호사가 문을 두드리고 들어왔다. 커다란 꽃바구니를 안고 있었다.

“서명옥 님, 꽃 왔어요. 아까 일 층에 배달 기사님이 두고 가셨어요. 예쁘죠.”

백합과 장미. 리본에 금색 글씨. 「쾌유를 빕니다 — 한결물산 상무 권석진」.

서명옥 씨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졌다. 나는 일어섰다. 의자가 뒤로 밀려 소리를 냈다.

“그거 두지 마세요. 가져가 주세요.”

간호사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나를 봤다. 서명옥 씨가 손을 들었다.

“두세요.”

“어머님.”

“두세요. 시들 때까지. 석진이가 뭘 보냈는지, 여기 드나드는 사람 다 보게.”

나는 그 말을 알았다. 내가 우체국에서 진에게 한 말이었다. 서명옥 씨는 그 말을 모르고 했다. 같은 말을 한 사람이 둘이 됐다.

간호사가 꽃바구니를 창가에 놓고 나갔다. 향이 방 안에 퍼졌다. 병실 냄새를 덮었다. 서명옥 씨는 그 향 속에서 눈을 감았다.

“하윤 씨. 석진이는 나를 찾았어요. 하윤 씨보다 먼저. 하윤 씨가 보낸 상자가 분류 센터에 온 날, 센터에 한결물산 사람이 와서 재부착 작업자 명단을 달라고 했대요. 새로 대량 계약을 했다고. 그날 밤 반장이 나한테 물었어요. 이모님 무슨 일 있으시냐고.”

내 상자였다. 번진 받는 사람 칸. 찌그러진 모서리. 하역장에서 검은 점퍼가 손을 뻗었던 상자. 그는 상자를 빼앗지 못했지만, 상자가 어디로 가는지는 봤다. 내가 길을 내지 않으려고 우편을 골랐는데, 우편이 길이 됐다.

“제가 길을 냈어요.”

“아니에요. 내가 먼저 냈어요. 십이 년 전에. 그 사람 아버지 회사 소포가 매일 내 손을 지나갔어요. 나는 그걸 알면서 그 자리에 있었어요.”

사십 분이 거의 다 됐다. 나는 사진을 도로 안주머니에 넣었다. 사원증 옆에. 접다 만 3호 상자를 내려다봤다. 밑면 날개 하나가 덜 접혀 있었다.

“이거 제가 접어도 돼요?”

서명옥 씨가 눈을 떴다.

“접는 데 몇 초 걸려요.”

“십이 초요.”

그녀가 처음으로 웃었다. 산소 줄이 흔들렸다.

나는 날개를 접었다. 테이프를 붙였다. 십이 초가 걸렸다. 빈 상자를 탁자에 올려놓았다. 안에 넣을 것은 아직 없었다.

일 층 로비로 내려가자 김 주임이 오토바이 옆에서 시계를 보고 있었다. 병원 정문 건너편, 버스 정류장 옆 갓길에 검은 세단이 서 있었다. 이번에는 우체국 앞에 있던 차보다 먼저 와 있었다. 나를 따라온 것이 아니었다. 나보다 먼저 이 병원을 알고 있었다.

나는 헬멧을 쓰고 오토바이 뒷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세단 쪽으로 고개를 돌려, 운전석을 똑바로 봤다. 창문이 손가락 두 개만큼 내려와 있었다. 나는 그 틈을 보면서 수첩에 시각을 적었다. 열 시 사십칠 분.

김 주임이 시동을 걸며 말했다. 「하 주임, 저 차 아는 차야?」 「네. 요즘 제일 자주 보는 차예요.」 김 주임은 더 묻지 않고, 세단 앞을 일부러 천천히 지나갔다. 이십일 년 차 집배원의 속도로.

6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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