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008자) · 다리 위의 수첩
셋, 그리고 영
누가 보냈는지 아는 사람 · 정이한
만 19세 이상 이용가
율천교까지는 지하철로 이십 분, 걸어서 이십 분이다. 걸어가는 이십 분 동안 나는 세 번 멈췄다. 세 번 다 다시 걸었다. 십이 년 동안 이 근처를 지나간 적은 있다. 버스 창밖으로, 택시 뒷자리에서. 다리 위를 걸은 적은 없다. 다리 아래 둔치로 내려간 적은 더더욱 없다.
낮에 갔다. 밤에 갈 자신이 없었다. 해가 있는 동안에는 다리가 그냥 다리일 것 같았다.
다리는 그대로였다. 난간만 새것이었다. 이 년 전에 새로 했다고 다리 입구 표지판에 적혀 있었다. 난간 기둥마다 작은 금속판이 붙어 있었고, 금속판에 전화번호가 새겨져 있었다. 생명의 전화. 십이 년 전에는 없던 것이었다.
다리 중간쯤에 사람이 있었다. 노인이었다. 난간 옆에 접이식 낚시 의자를 펴고 앉아, 보온병 뚜껑에 뭔가를 따라 마시고 있었다. 낚싯대는 없었다. 모자 챙 아래로 흰 눈썹이 보였다. 무릎 위에 손바닥만 한 수첩이 놓여 있었다.
나는 그 옆 난간에 섰다. 난간을 잡으려다 말았다. 손을 코트 주머니에 넣었다.
“여기 자주 오세요?”
“매일 오오.”
“낚시하세요?”
“아니. 고기는 안 낚소.”
노인은 보온병 뚜껑을 한 모금 마시고, 강 쪽이 아니라 다리 위 인도 쪽을 봤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었다. 한 사람 한 사람. 자전거 탄 학생, 유모차 미는 여자, 휴대폰을 보며 걷는 남자. 노인의 눈이 사람들을 따라 움직였다가, 한 사람이 다리를 다 건너면 다음 사람에게 옮겨 갔다.
노인이 보온병 뚜껑을 하나 더 꺼내 보리차를 따라 내밀었다. 나는 받았다. 뜨거웠다.
“마누라가 싸 줘요. 하루 종일 다리에 있으려면 뜨신 거라도 마시라고. 근데 이거 다 마시면 화장실이 멀어. 다리 끝까지 칠백 미터요.”
노인은 그 말을 하고 혼자 웃었다. 나도 조금 웃었다. 보리차가 목을 타고 내려가면서 가슴께가 데워졌다.
“몇 년이나 오셨어요.”
“열다섯 해쯤 됐지.”
“뭘 보세요.”
노인은 그제야 나를 봤다. 오래 봤다. 내 얼굴이 아니라 내 손을. 코트 주머니에 들어간 손을.
“난간을 잡으려다 만 사람은 대개 두 부류요. 무서운 사람하고, 기억나는 사람.”
나는 주머니에서 손을 뺐다. 손바닥이 젖어 있었다.
“어르신. 이천십사 년 이월 십칠 일 밤을 기억하십니까?”
노인은 수첩을 폈다. 손가락에 침을 묻혀 넘겼다. 종이가 얇아서 넘길 때마다 바스락 소리가 났다. 날짜가 죽 적혀 있었고, 날짜마다 옆에 숫자가 있었다. 사선을 사이에 둔 두 숫자. 노인이 한 줄에서 손가락을 멈췄다.
2014.02.17 · 3 / 0
“셋, 그리고 영.”
내가 말했다. 노인이 나를 봤다.
“그걸 어찌 아시오.”
“택배로 받았습니다. 십이 년에 걸쳐서.”
노인은 수첩을 덮지 않았다. 강 쪽으로 몸을 돌려 난간에 팔을 얹었다. 그리고 다리 아래를 봤다. 교각 아래, 둔치 자갈밭. 지금은 산책로가 나 있었고, 벤치가 두 개 있었다.
“그날 넷이 내려갔소. 저 교각 밑으로. 밤 열한 시 좀 전. 술들 한 것 같았지. 웃음소리가 여기까지 올라왔으니까.”
“네.”
“열한 시 십사 분에 소리가 났소. 물소리. 나는 그 시각을 적어 뒀소. 소리 나면 시계부터 보는 게 버릇이라.”
노인은 수첩의 그 줄 아래를 짚었다. 작은 글씨로 23:14. 그 옆에 23:40.
“그다음 이십육 분 동안 셋이 둔치에 서 있었소. 하나는 전화기를 들었다 놨다 했고, 하나는 다른 하나 팔을 붙들고 있었고, 하나는 둘한테 뭐라고 계속 말을 했소. 손짓을 해 가면서. 가르치는 사람처럼.”
“그 사람이.”
“키 큰 쪽. 코트 깃을 세운.”
노인은 거기서 말을 멈췄다. 보온병 뚜껑에 남은 것을 마저 마셨다. 보리차 냄새가 났다.
“나는 그때 여기서 소리를 질렀소. 들어가라고. 아무도 안 들어갔지. 내 목소리가 저기까지 안 갔는지, 갔는데 안 들은 건지. 나는 여기서 뛰어내려 갈 수가 없었소. 다리가 이래서.”
노인이 바지 자락을 조금 걷었다. 오른쪽 종아리가 가늘었다. 오래전 다친 다리였다.
“셋, 그리고 영. 셋이 있었고 아무도 안 들어갔다. 그렇게 적었소.”
나는 난간을 잡았다. 이번에는 잡았다. 차가웠다. 새 난간인데도 쇠 냄새가 났다.
“어르신. 경찰한테 말씀하셨습니까?”
“했지. 그다음 날 경찰서에 갔소. 수첩 들고. 젊은 순경이 받아 적더니, 목격자 셋 진술이 다 똑같다고 하더이다. 즉시 신고했다고. 늙은이가 밤에 다리 위에서 뭘 제대로 봤겠느냐고.”
노인은 웃었다. 이가 몇 개 없었다.
“그 셋이 똑같이 말했다는 게 나는 그때부터 이상했소. 사람 셋이 똑같이 말하려면 누가 가르쳐야 되거든.”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가르친 사람을 안다. 배운 사람을 안다. 나는 배운 사람이었다. 그날 밤 둔치에서 석진 선배는 우리 둘 앞에 서서 손짓을 해 가며 말했다. 우리는 아무것도 못 봤어. 진우가 혼자 미끄러졌어. 우리는 바로 신고했어. 바로. 따라 해 봐. 예린이 따라 했다. 나도 따라 했다. 세 번쯤 따라 하고 나서 내가 112를 눌렀다.
“어르신, 제가 전화한 사람입니다.”
노인이 나를 봤다. 이번에는 내 얼굴을.
“그럴 것 같았소. 전화기 들었다 놨다 한 사람.”
그때 뒤에서 차 문 닫히는 소리가 났다. 다리 입구 쪽 갓길에 검은 세단이 서 있었다. 운전석에서 남자가 내려 이쪽으로 걸어왔다. 사십 대 초반, 검은 점퍼, 짧은 머리. 걸음이 빨랐다. 노인이 그쪽을 보고 수첩을 덮었다. 덮는 손이 빨랐다.
남자가 우리 앞에 섰다. 나를 한 번 보고, 노인을 봤다.
“어르신, 또 나오셨네요.”
“내 다리요. 매일 나오오.”
“요즘 이상한 소리 하고 다니신다던데. 옛날 일 가지고. 그러다 다치세요. 다리도 불편하신데.”
남자는 그 말을 웃으면서 했다. 노인의 가는 종아리 쪽으로 눈을 한 번 내렸다가 올렸다. 그 눈길이 무엇인지 나는 알았다.
“누구세요.”
내가 물었다. 남자가 나를 봤다.
“지나가는 사람입니다. 하윤 씨죠?”
내 이름을 알고 있었다.
“상무님이 안부 전하랍니다. 몸 챙기시라고. 병가 내셨다면서요.”
석진 선배. 병가를 낸 건 오늘 아침이었다. 진에게만 문자로 말했다. 우체국 인사 시스템에 들어간 지 서너 시간. 그 시간 안에 이 사람이 알았다.
나는 한 발 앞으로 나섰다. 노인과 남자 사이로.
“어르신한테 말 거시려면 저한테 먼저 거세요. 이 다리 위에서 어르신 다치게 하면, 그건 제가 경찰서에 가서 말하겠습니다. 이번에는 즉시.”
남자는 나를 한참 봤다. 한 발 더 다가왔다. 담배 냄새가 났다.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등 뒤에 노인의 낚시 의자가 있었다. 물러서면 노인 무릎에 닿는다. 남자는 내 눈을 보다가, 다리 위를 지나가던 유모차를 봤다. 유모차 미는 여자가 이쪽을 힐끔 보며 걸음을 늦췄다. 남자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 돌아섰다. 세단에 타기 전에 휴대폰을 꺼내 뭔가를 찍었다. 우리 둘을. 차가 떠났다.
노인이 한참 뒤에 말했다.
“저 사람 석 달에 한 번씩 오오. 이 년 전부터.”
“이 년 전부터요.”
“이 년 전에 누가 여기 와서 나한테 그날 일을 물었소. 여자. 예순쯤. 그 여자가 다녀가고 나서부터 저 차가 오기 시작했지.”
“그 여자가 누군지 아세요.”
“이름은 안 댔소. 대신 그날 물에 빠진 사람 이름을 댔지. 서진우. 그리고 자기가 그 사람 엄마라고.”
노인은 수첩을 다시 폈다. 2014년 2월 17일 줄을 휴대폰으로 찍으라고 내게 내밀었다. 나는 찍었다. 손이 떨려서 두 번 찍었다. 첫 장은 흔들려서 숫자가 번졌다. 둘째 장은 선명했다. 3 / 0. 사선이 종이 결을 따라 조금 휘어 있었다.
“그 엄마한테도 이 줄 보여 줬소. 그 엄마가 한참 보더니 그랬소. 셋이 있었고 아무도 안 들어갔군요. 그 말을 두 번 하더이다. 그러고 가더니 안 왔소.”
노인은 수첩을 가슴 주머니에 넣었다. 단추를 채웠다. 그리고 그제야 이름을 댔다. 강만수. 다리 옆 아파트에 산다고 했다. 열다섯 해 전 이 다리에서 아들을 잃을 뻔했다고. 아들은 그날 난간에서 내려왔고, 지금은 부산에서 택시를 몬다고. 그날부터 강 노인은 다리에 나왔다. 난간 앞에 선 사람을 세고, 그 사람이 내려오면 사선 오른쪽에 영을 적었다. 수첩이 지금 일곱 권째라고 했다.
“영이 제일 많소. 그게 좋은 숫자요.”
“그 엄마가 뭘 보낸다면, 나는 모르오. 나는 안 보냈소. 나는 적기만 하오. 보내는 건 내 일이 아니라.”
돌아오는 길에 나는 다리 아래 둔치로 내려갔다. 십이 년 만에. 산책로 옆 벤치에 앉았다. 교각이 머리 위로 검게 솟아 있었다. 강물은 삼월 초라 아직 차가운 색이었다. 자갈이 운동화 밑창을 눌렀다. 그날처럼.
휴대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 문자였다. 「하윤아, 오늘 다리 갔다며. 춥다. 감기 조심해. — 석진」
그 벤치에서 나는 진우를 생각했다. 십이 년 동안 진우를 떠올리면 늘 물소리가 먼저 왔다. 오늘은 다른 것이 먼저 왔다. 진우의 셔츠. 진우는 흰 셔츠만 입었다. 단추를 목까지 다 채웠다. 더운 날에도. 동기들이 답답하지 않냐고 놀리면 진우는 「단추는 다 채우라고 있는 거야」 했다. 그날 밤에도 흰 셔츠였다. 코트 안에. 첫 번째 상자에 들어 있던 흰 셔츠 단추를 나는 십이 년 동안 그냥 단추라고 불렀다. 진우의 단추라고 부르지 않았다. 부르면 그 단추가 어디서 왔는지 물어야 했다. 누가 떼어서, 누가 보관했다가, 누가 보냈는지.
진우는 도서관 사서가 꿈이었다. 졸업하면 시립도서관 시험을 보겠다고 했다. 책을 빌릴 때마다 반납일 전날 반납하는 사람이었다. 하루 일찍. 그 버릇을 나는 우체국에 들어가서 알아봤다. 하루 일찍 오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은 기한을 지키는 게 아니라 기한을 믿지 않는다.
강바람이 불었다. 삼월 바람이었다. 이월 바람보다 조금 무뎠다. 나는 코트 깃을 세우고 휴대폰 화면을 다시 봤다. 춥다. 감기 조심해. 그 두 문장을 쓴 손이 그날 밤 둔치에서 우리 앞에 서서 손짓을 하던 손이었다. 따라 해 봐. 그 손은 십이 년 동안 무엇을 했을까. 상무라는 호칭, 잔 부딪치는 소리, 석 달에 한 번 다리에 오는 검은 세단. 그 손은 열심히 살았다.
나는 그 문자를 삭제하지 않았다. 캡처했다. 우체국 사람은 송장을 버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