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010자) · 사원증

백사십사 번째

친구를 죽게 둔 우리 셋 · 정이한

택배는 매달 첫째 주 화요일 오전에 온다. 십이 년째다. 이번이 백사십사 번째다. 십이 곱하기 십이. 우연이겠지만 나는 이 숫자를 지난달부터 세고 있었다.

나는 청명우체국 소포계에서 일한다. 우체국 십사 년 차. 처음 이 년은 집배원이었고, 그다음부터 소포계다. 하루에 상자를 이백 개쯤 만진다. 들고, 무게를 달고, 송장을 찍고, 컨베이어에 올린다. 상자에는 얼굴이 없다. 골판지 냄새와 테이프 끈적임만 있다. 송장이 얼굴이다. 보내는 사람, 받는 사람, 무게, 접수 지점, 접수 시각. 송장을 보면 그 상자가 어디서 누구 손을 떠났는지 다 나온다.

내 상자에만 얼굴 하나가 비어 있다. 발신인.

발신인 없는 소포는 접수되지 않는다. 규정 이전에 시스템이 막는다. 입력을 안 하면 다음 칸으로 안 넘어간다. 그런데 이 상자는 십이 년 동안 매달 왔다. 송장마다 접수 지점이 다르고, 발신인 칸만 매번 비어 있다. 우체국 사람이 보면 그게 얼마나 이상한지 안다. 나는 우체국 사람이다.

첫 상자는 2014년 3월 4일에 왔다. 가로 십오, 세로 십, 높이 오 센티미터. 우체국 규격 3호. 안에는 단추가 하나 있었다. 흰 플라스틱 셔츠 단추. 두 번째는 지우개였다. 세 번째는 열쇠고리, 네 번째는 유리구슬. 전부 흔한 물건이고, 전부 쓰던 것이다. 새것은 하나도 없었다. 나는 그것들을 버리지 않았다. 버리지 못하는 성격이라고 말해 왔는데, 사실은 조금 다르다. 버리면 안 된다는 걸 알았다. 왜 알았는지는 모른 척했다.

지금 우리 집 옷장 위에 3호 상자가 아홉 개 쌓여 있다. 한 상자에 열여섯 개씩. 이사를 두 번 했고, 두 번 다 이 상자들을 제일 먼저 쌌다.

작년 가을에 같은 소포계 진에게 처음 이야기했다. 진은 나보다 여섯 살 어리고, 엑스레이 검색대 화면을 보는 걸 세상에서 제일 좋아한다. 상자 속을 들여다보는 게 취미인 사람이 우체국에 들어오면 그렇게 된다.

“매달 온다고요?”

“응.”

“십이 년을?”

“응.”

진은 컵라면 뚜껑을 덮다 말았다.

“선배, 그거 신고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뭐라고 신고해.”

“스토킹이요.”

“단추 하나 보내는 게?”

“백 번 넘게 보냈으면 백 번이죠. 다음 달 거 저 주세요. 검색대에 한번 넣어 볼게요. 폭발물일 수도 있잖아요.”

“십이 년 동안 안 터졌어.”

“그러니까 이번엔 터질 수도 있죠. 통계적으로.”

진은 진지했다. 나는 웃었다. 웃고 나서, 진의 말이 맞다는 걸 알았다. 맞는데 나는 신고하지 않았다. 까닭은 하나다. 무섭지 않았다. 십이 년 동안 이 물건들은 나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협박도, 요구도, 메모도 없었다. 그냥 물건 하나. 무서워야 하는데 무섭지 않다는 것. 그게 제일 이상한 부분이었다.

이번 달 첫째 주 화요일은 삼일이었다. 상자는 오전 열 시 이십 분에 들어왔다. 진이 먼저 봤다. 컨베이어에서 내려오는 3호 상자를 집어 들고, 송장을 보고, 나를 봤다.

“선배. 왔어요. 발신인 빈칸.”

“검색대 넣어.”

“진짜요?”

진은 상자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 검색대까지 걸어갔다. 무슨 성물을 나르는 사람처럼. 가는 길에 소포계 계장이 「진 주임, 그거 뭐야」 하고 물었고, 진은 「통계적 위험물이요」라고 대답했다. 계장은 알아들은 척 고개를 끄덕이고 제 자리로 돌아갔다.

진은 상자를 엑스레이 검색대에 넣었다. 화면에 흑백 그림이 떴다. 네모난 판 하나. 판 안에 더 작은 네모. 금속 고리 하나. 진이 화면에 코를 박았다.

“카드예요. 목걸이 줄 달린. 폭발물은 아니에요. 아쉽다.”

“아쉬워?”

“아니 그게, 통계적으로요.”

나는 상자를 받아 들고 휴게실로 갔다. 칼로 테이프를 갈랐다. 안에 있는 것은 사원증이었다. 내 사원증이었다. 청명우체국, 2014년 발급. 사진 속 나는 스물여섯이었다. 목걸이 줄이 물에 오래 불었다가 마른 것처럼 뻣뻣했다.

2014년 2월에 나는 그 사원증을 잃어버렸다. 그날 밤을 나는 십이 년 동안 순서대로 떠올린 적이 없다. 조각으로만 온다. 동기 모임 뒤풀이가 끝나고 넷이 강 둔치로 내려갔다. 석진 선배, 예린, 진우, 나. 이월 강바람이 목덜미로 파고들었다. 자갈이 운동화 밑창을 통해 발바닥을 눌렀다. 다리 교각 아래 가로등 하나가 주황색으로 흔들렸다. 석진 선배와 진우가 교각 쪽에서 언성을 높였다. 무슨 말이었는지는 조각이 안 맞는다. 그다음 조각은 물소리다. 무언가 무거운 것이 물에 들어가는 소리. 그다음 조각은 예린의 손이다. 내 팔을 쥔 손. 손톱이 코트 소매를 뚫고 들어왔다. 그다음은 없다. 그다음은 경찰서 형광등이다.

잃어버린 장소를 안다. 율천교 아래 강 둔치. 경찰서에 앉아 있을 때 목이 비어 있었다. 그 뒤로 새 사원증을 받았고, 그 뒤로 두 번 더 바뀌었다. 잃어버린 것을 찾으려고 한 적은 없었다. 찾으면 그 자리로 다시 가야 하니까.

나는 사원증을 탁자에 내려놓고 오래 앉아 있었다. 진이 휴게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가, 내 얼굴을 보고 도로 나갔다. 나가면서 문을 아주 조용히 닫았다. 진이 문을 조용히 닫는 걸 나는 처음 봤다.

그날 밤 나는 상자 아홉 개를 거실 바닥에 다 쏟았다. 쏟는 소리가 생각보다 가벼웠다. 십이 년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그 정도였다. 단추가 굴러 소파 밑으로 들어갔다. 나는 엎드려서 팔을 넣어 그것을 꺼냈다. 먼지가 손등에 묻었다. 단추는 차가웠다. 방바닥 온도였다.

백사십사 개. 시간순으로 늘어놓았다. 의미가 없었다. 종류별로 놓았다. 없었다. 색깔 순으로. 크기 순으로. 없었다. 네 번째로 물건 하나하나를 손에 들고 봤다. 들면서 알았다. 물건마다 숫자가 있었다. 단추는 구멍이 넷. 지우개 옆면에 인쇄된 숫자 2. 유리구슬 안에 든 무늬가 셋. 열쇠고리 고리에 새겨진 1. 볼펜 뚜껑의 홈 넷.

숫자를 순서대로 적었다. 도착한 순서대로. 백사십사 개의 숫자가 나왔다. 여덟 개씩 끊으니 열여덟 줄이 됐다.

첫 줄은 이랬다.

2 0 1 4 0 2 1 7

2014년 2월 17일.

손에 든 볼펜이 멈췄다. 그다음 줄을 읽었다.

2 3 1 4 2 3 4 0

23시 14분. 23시 40분.

나는 그 두 시각이 무엇인지 보는 순간 알았다. 23시 14분에 진우가 물에 들어갔다. 23시 40분에 내가 112에 전화를 걸었다. 경찰 조서에는 「목격 직후 즉시 신고」라고 적혀 있다. 내가 그렇게 진술했다. 나머지 둘도 그렇게 진술했다.

이십육 분이었다. 나는 십이 년 동안 그 시간을 십구 분쯤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기억이 칠 분을 줄여 놓았다.

셋째 줄을 읽었다.

0 0 0 3 0 0 0 0

한참 보고 나서 알았다. 셋, 그리고 영. 그 자리에 셋이 있었고, 아무도 물에 들어가지 않았다.

나머지 열다섯 줄은 아직 읽히지 않았다. 숫자가 흩어져 있었다. 나는 그 셋째 줄에서 멈췄다. 볼펜을 내려놓았다. 손이 떨렸다. 십이 년 만에 처음이었다. 떨리는 손을 무릎 사이에 끼웠다. 거실 바닥이 차가웠다. 백사십사 개의 물건이 형광등 아래 각자의 그림자를 달고 줄지어 있었다. 단추, 지우개, 구슬, 뚜껑. 하나하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줄을 세우니 문장이 됐다. 십이 년 동안 누군가 나에게 문장 하나를 한 글자씩 부치고 있었다. 나는 그 글자들을 받아서 상자에 넣고, 옷장 위에 올리고, 이사할 때마다 제일 먼저 쌌다. 읽지 않고.

보낸 사람은 나를 협박하지 않았다. 요구하지도 않았다. 십이 년 동안 매달 하나씩, 그날의 물건을 보냈다. 내가 세기를 기다린 것이다.

그날 밤 열두 시 가까이 되어 휴대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받지 않으려다 받았다.

“하윤아.”

그 목소리를 나는 십이 년 동안 들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한 글자 만에 알았다. 목소리가 낮아졌고 말투가 부드러워졌지만, 이름을 부를 때 끝을 조금 끌어올리는 버릇은 그대로였다.

“석진 선배.”

“오랜만이다. 잘 지냈지.”

전화기 너머에서 잔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어디 모임 자리 같았다. 누가 멀리서 「상무님」 하고 불렀다. 석진 선배는 손으로 송화기를 막았다가 떼었다.

“번호는 어떻게 아셨어요.”

“예린이한테 물어봤어. 너 요즘 이상한 거 받는다며. 택배.”

나는 말을 못 했다. 예린에게 택배 이야기를 한 적은 없었다. 진에게만 했다. 진이 누구에게 했는지는 모른다. 아니면, 예린도 뭔가를 받고 있거나.

“하윤아. 그거 신경 쓰지 마. 다 지난 일이잖아. 누가 장난치는 거야. 네가 그런 거에 흔들리면 안 돼. 너 그날 신고 제일 먼저 한 사람이잖아. 잘한 사람이 왜 흔들려.”

석진 선배는 그 문장을 천천히 말했다. 한 글자씩 내 귀에 놓는 것처럼. 그날 밤에도 그는 그렇게 말했다. 둔치 자갈 위에서, 물소리 속에서. 기다려. 천천히 말 맞추고 신고하자. 우리가 뭘 봤는지 똑같이 말해야 돼.

“선배.”

“응.”

“그날 몇 시에 신고했는지 기억하세요.”

전화기 너머가 조용해졌다. 삼 초쯤. 그 삼 초가 이십육 분보다 길었다.

“즉시 했지. 조서에 그렇게 있잖아.”

“네. 조서에는요.”

“하윤아. 그 택배, 나한테 좀 보내 줄래. 내가 알아봐 줄게. 누가 그러는지. 나 요즘 아는 사람 많아.”

나는 옷장 위 빈자리를 봤다. 상자 아홉 개가 있던 자리. 지금 그 상자들은 거실 바닥에 쏟아져 있었다. 백사십사 개가, 열여덟 줄의 숫자가 되어서.

“생각해 볼게요.”

“그래. 생각해 봐. 너 혼자 끙끙대지 말고.”

전화가 끊겼다. 나는 휴대폰을 뒤집어 놓았다. 뒤집어 놓고도 화면 쪽 바닥이 한참 밝았다. 부재중 알림 없이, 통화 기록 한 줄만 남았다. 십이 년 동안 그 사람 번호는 내 휴대폰에 없었다. 이제 있었다. 거실 바닥에서 사원증이 형광등을 받아 반짝였다. 스물여섯 살 내 얼굴이 나를 보고 있었다.

다음 날 나는 우체국에 출근하지 않았다. 병가를 냈다. 처음이었다. 진이 문자를 보냈다. 「선배 폭발물 아니었죠? 통계적으로 다행이에요.」

나는 답장을 하지 않았다. 사원증을 코트 안주머니에 넣었다. 목에 걸지는 않았다. 열두 해 전 그 밤처럼 목에서 빠져나갈까 봐. 현관에서 신발을 신다가 한 번 멈췄다. 발바닥에 자갈이 눌리던 감각이 먼저 왔다. 나는 그 감각을 신발 속에 넣은 채로 문을 열었다.

율천교로 갔다.

1화는 어땠나요?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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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이한작가2026.10.09· 1화

    작가 정이한입니다. 발신인 칸이 십이 년째 빈 택배가 매달 옵니다. 1화의 백사십사 번째 상자를 열며, 여러분은 누가 보냈다고 짐작하셨나요?

  • 한화만더2026.05.19· 1화

    조용한데 계속 긴장돼요. 이런 톤 좋아합니다.

    • 정이한작가2026.05.20

      설정을 앞세우지 않으려고 애썼는데 그렇게 봐 주셔서 다행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