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163자) · 소랑 · 6월 11일

젖은 소리

파도가 닿는 곳까지 · 진해솔

유월 십일 목요일 오전 아홉 시, 제빙 공장 철문 앞에 민서하가 노란 안전모를 쓰고 서 있었다.

배소랑은 그 안전모를 보고 웃음부터 났다. 민서하의 머리보다 두 치수는 커서 고개를 숙일 때마다 챙이 코끝까지 내려왔다. 민서하는 그걸 손가락으로 밀어 올리면서 서류 한 장을 흔들었다. 철거 전 설비 점검 확인서였다. 과장 결재란이 비어 있었다.

“세 번 올렸어요. 세 번 다 반려됐어요. 그래서 점검으로 올렸어요. 설비 점검은 제 전결이에요.”

“점검이면 기계를 돌려야 되는 거예요?”

“돌려 봐야 점검이 되죠.”

민서하의 목소리는 떨렸는데 말은 한 번도 안 끊겼다. 차은결이 뒤에서 녹음기 케이스를 내려놓으며 소랑과 눈을 맞췄다. 둘 다 웃음을 참고 있었다.

공장 열쇠는 김봉석 할아버지가 들고 왔다. 오월에 군청에 반납한 꾸러미를 민서하가 점검용이라며 도로 빌려 왔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철문 자물쇠를 따는 데 손이 세 번 미끄러졌고, 네 번째에는 민서하가 할아버지 손등 위에 제 손을 겹쳐 열쇠를 같이 돌렸다. 녹이 슨 쇠가 비명을 지르며 열리자 안에서 서늘한 공기가 확 밀려 나왔다. 삼십 년 동안 얼음을 만든 자리라서, 유월인데도 콘크리트 바닥에서 한기가 올라와 장화 밑창을 뚫고 발바닥을 찔렀다. 반쯤 내려앉은 지붕 틈으로 햇빛이 칼처럼 비스듬히 꽂혀 있었고, 그 빛줄기 안에서 먼지가 천천히 떠돌았다.

“전기는 들어오나?”

“어제 한전에 부탁해서 하루만 넣었어요.”

할아버지가 배전반 앞에 서서 차단기를 하나씩 올렸다. 딸깍, 딸깍, 마지막 레버에서 공장 전체가 한 번 크게 몸을 떨었다. 컨베이어가 돌기 시작했다.

그때 철문 밖에서 차 문이 쾅 닫혔다. 해양관광과 문재혁 과장이었다. 쉰 초반, 반소매 와이셔츠 겨드랑이가 벌써 젖어 있었다.

“민 주무관! 이거 누가 허락했어?”

“제가 했습니다. 설비 점검입니다.”

“지붕 내려앉은 공장에서 무슨 점검이야! 사고 나면 누가 책임져?”

“제가 집니다. 안전모 다 씌웠고, 지붕 밑은 줄 쳐 뒀습니다. 한 시간이면 끝납니다.”

과장이 공장 안을 가리키며 한 발 들어서려다 멈췄다. 컨베이어 롤러 위로 얼음 블록이 하나씩 밀려 나오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창고 냉동실에 이틀 동안 얼려 둔 마지막 얼음이었다. 얼음이 쇠에 부딪히면서 쩡 하고 갈라지는 소리가 공장 천장까지 올라갔다가 과장의 발밑으로 떨어졌다.

과장은 입을 벌린 채 그 소리를 들었다. 한참 뒤에 입을 다물었다.

“한 시간이야. 한 시간 넘으면 징계야.”

“네, 과장님.”

과장은 철문 밖으로 나가 차에 기대 담배를 꺼냈는데, 불은 붙이지 않았다. 소랑은 과장이 담배를 입에 문 채 공장 쪽으로 귀를 돌리고 있는 걸 봤다. 나중에 민서하가 알려 준 바로는, 과장의 아버지가 이 공장에 얼음을 받으러 오던 어선 선장이었다. 과장은 그 얘기를 결재 서류 어디에도 적은 적이 없었다.

*

은결은 컨베이어 옆에 서서 삼십 분 동안 녹음기를 들고 있었다. 겨울에 받은 소리와 달랐다. 여름이라 얼음이 빨리 녹아서, 녹는 물이 롤러 사이로 흘러내리는 소리가 쇠 긁는 소리에 섞여 들었다. 은결이 헤드폰을 벗어 소랑에게 씌웠다.

소랑은 삼 분쯤 들었다. 헤드폰 안에서 쇠와 물이 동시에 울었다.

“겨울엔 마른 소리였는데 지금은 젖은 소리네요.”

“네. 같은 기계인데요.”

민서하는 컨베이어 끝에서 녹아 떨어지는 얼음 조각을 주워 들고 있었다. 손바닥에서 물이 흘러 안전모 끈을 타고 턱으로 떨어졌다. 민서하가 그 조각을 입에 넣었다.

“맛이 똑같아요. 어릴 때 할머니 따라와서 먹던 거랑요. 소리는 기억이 안 났는데, 맛은 나네요.”

민서하는 얼음을 깨물면서 웃었다. 이 사이에서 얼음이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은결이 녹음기 방향을 살짝 그쪽으로 돌렸다가, 도로 컨베이어 쪽으로 돌렸다. 묻지 않고는 안 받는다는 규칙을 은결의 손이 먼저 지키고 있었다.

점검이 끝나 갈 무렵 민서하가 소랑을 불렀다.

“사장님, 하나 알려 드릴 게 있어요. 이십육일 토요일 경매장 부속동 사용 신청이 두 개 들어왔어요. 사장님네 청음회랑, 한도경 대표님 방송 시사회요. 한 대표님 거는 군수님 결재가 먼저 났어요. 같은 날 같은 시간이에요.”

“그럼 저희는요?”

“부속동이 방이 두 개예요. 앞방하고 뒷방. 앞방은 한 대표님이 쓰세요. 뒷방은 제가 드릴 수 있어요.”

뒷방은 경매 때 얼음 상자를 쌓아 두던 창고였고, 창문 하나 없이 콘크리트 벽 네 면이 맞붙어 있었다. 소랑은 그 방 콘크리트 벽이 소리를 어떻게 돌려주는지 삼십 년 전부터 알았다.

*

이튿날 철거가 시작됐다.

포클레인 한 대가 들어왔다. 마을 사람들이 줄 밖에 멀찍이 서서 봤다. 말순도 나와 있었고 이장도 나와 있었고, 정해자 씨는 슈퍼 문을 잠그고 나왔다. 배만식은 계장 조끼를 입고 철거 확인서에 서명하려고 포클레인 기사 옆에 서 있었다.

소랑은 줄을 넘어 아버지 앞으로 걸어갔다.

“아빠, 다음 주에 창고도 헐리죠. 보상 나오면 엔진 바꾸는 거, 언제예요?”

“이십칠일. 읍내 조선소에 맡겼다.”

“청음회 다음 날이네요. 엔진 바꾸기 전에 만식호 받게 해 주세요. 이름 달고요.”

만식이 서명하던 볼펜을 멈췄다. 포클레인 엔진 소리가 둘 사이를 채웠다. 뜨거운 경유 냄새가 코를 찔렀고, 유월 햇볕이 소랑의 정수리를 달궜다.

“니 청음회 한다며. 소리 트는 기계는 누가 만지노?”

“주 대표님이 사람 데려온대요.”

“니가 만지라.”

소랑의 목이 굳었다. 만식이 볼펜을 조끼 주머니에 꽂았다.

“니 서울서 소리 만지는 일 했제. 그거 그만두고 여기 왔제. 도망 왔다꼬 내가 말했제. 내 말이 틀렸으믄, 이십육일에 니가 그 기계 앞에 앉아라. 그라믄 내 이름 준다.”

“아빠가 그걸 왜 정해요?”

“내 배다. 내 이름이고.”

만식은 확인서에 서명을 마저 하고 기사에게 손짓했다. 포클레인 팔이 올라갔다. 소랑은 줄 밖으로 물러나지 않았다. 은결이 뒤에서 와서 소랑의 팔을 잡아 끌었다.

지붕이 먼저 내려앉았다.

소리는 컸는데 짧았다. 슬레이트와 철골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소리가 공장 안에 삼십 년 동안 쌓인 한기와 함께 밖으로 쏟아져 나왔고, 그다음에는 먼지가 오래 떠 있었다. 은결은 녹음기를 들고 있었다. 나중에 재 보니 육 초였다. 포클레인 기사 한만수 씨가 먼지를 털며 내려와서, 자기 이름을 적어도 좋다고 먼저 말했다. 이십 년 동안 헐기만 했는데 헌 소리를 누가 받아 간 건 처음이라고 했다.

먼지가 가라앉기도 전에 머리 위에서 벌 떼 소리가 났다. 한도경의 드론이 공장 터 위를 낮게 돌고 있었다. 한도경은 줄 밖 그늘에서 조종기를 쥐고 서 있었고,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은결에게 말했다.

“차 감독도 받았어? 이거 내 방송 엔딩이야. 지붕 무너지고, 먼지 뜨고, 음악 올라가고. 이십육일에 부속동 앞방에서 처음 튼다. 군수님도 오셔.”

“저희는 뒷방에서 틀어요. 이름 달고요.”

“뒷방.”

한도경이 그제야 고개를 들어 웃었다. 드론이 한 바퀴를 더 돌았다.

“차 감독, 하나만 충고할게. 나래가 뭘 들고 오든 믿지 마. 걔 잘린 애야. 잘린 애는 원래 억울해.”

은결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녹음기의 녹음 버튼 옆, 한 번도 쓰지 않은 표시 버튼을 눌러 파일 육 초 지점에 금을 하나 그었다. 소랑은 은결의 턱이 한 번 단단해지는 것을 봤다. 윤나래가 삼월에 한 말, 두 번의 전화 이야기를 은결은 석 달 동안 한 번도 꺼내지 않았다. 꺼내지 않고 기다리는 동안 은결의 턱이 늘 저랬다.

집에 와서 은결이 칠판 앞에 섰다.

31. 제빙 공장 지붕 내려앉는 소리(6초) — 한만수 · 6월 11일

소랑이 그걸 보고 한참 있었다.

“이건 사라지는 소리가 아니라 사라진 소리네요.”

“그래서 마지막에 넣었어요.”

그날 밤 소랑은 잠을 못 잤다. 새벽 한 시에 거실로 내려가 보니 은결이 먼저 난로 없는 상 앞에 앉아 있었다. 유월 밤인데도 소랑의 손끝이 차가웠다. 은결이 그 손을 잡아 제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소랑 씨, 이 초였다면서요.”

“네.”

“이 초 동안 무슨 일이 있었어요? 소리 말고요.”

소랑은 한참 대답하지 못했다. 창밖에서 파도가 방파제를 치는 소리가 두 번 왔다.

“객석 맨 뒤에서 누가 일어났어요. 나가는 사람이었어요. 저는 그 사람이 제 소리 때문에 나간 줄 알았어요. 아무도 안 나갔는데 그 사람 하나가요. 그 뒤로 페이더에 손을 올리면 그 뒷모습이 먼저 보여요.”

은결은 아무 말 없이 소랑의 손가락을 하나씩 폈다. 굳은 마디가 은결의 손바닥 안에서 천천히 풀렸다.

“이십육일에 제가 옆에 앉을게요. 소랑 씨가 못 올리면 제가 올릴게요. 대신 손은 소랑 씨가 먼저 얹어요.”

*

사흘 뒤 소랑은 혼자 공장 터에 가 봤다.

터만 남아 있었다. 치운 잔해 밑으로 시멘트 바닥이 드러나 있었고, 기계가 서 있던 자리에 볼트 구멍이 두 줄로 나란히 나 있었다. 소랑은 쪼그려 앉아 그 구멍을 하나씩 셌다. 스물넷이었다. 컨베이어 다리가 스물넷이었다. 구멍마다 녹물이 번져 동그란 테가 져 있었고, 손가락을 넣어 보니 안쪽이 아직 서늘했다.

소랑은 휴대폰으로 그 바닥을 찍어 은결에게 보냈다. 답이 금방 왔다.

이것도 기록이에요.

소랑은 그 답을 보고 구멍 스물네 개 옆에 한참 앉아 있었다. 이십육일까지 열이틀이 남아 있었다. 열이틀 뒤에 소랑은 경매장 뒷방에서 페이더에 손을 올려야 했다. 손가락 끝에서 이 초짜리 하울링이 벌써 울리는 것 같았다. 소랑은 그 손가락을 볼트 구멍 하나에 넣어 서늘한 녹 냄새가 밸 때까지 빼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에 포구 앞에 트럭 한 대가 서 있었다. 읍내에서 얼음을 실어 온 첫 얼음차였다. 사십 분을 달려온 짐칸 뒷문을 열자 얼음이 반쯤 녹아 있었고, 녹은 물이 짐칸 바닥 홈을 타고 아스팔트로 쏟아졌다. 은결이 어디선가 녹음기를 들고 뛰어왔다. 소랑이 부르지도 않았는데 은결은 늘 이런 소리 앞에 먼저 와 있었다.

기사가 은결을 보고 웃었다. 이거 소리 난다고 받는 사람은 처음 본다고 했다. 은결이 이름을 여쭤도 되느냐고 묻자 기사는 트럭 문을 닫다가 멈췄다.

“이름은 여름 다 지나고 적으이소. 한 철 해 보고요. 이 일 계속할지 저도 모릅니더.”

“그럼 여름 끝나고 다시 여쭐게요.”

“또 물어요?”

“세 번 물어요.”

기사는 고개를 저으며 웃고 트럭에 올랐다. 짐칸 뒤로 녹은 얼음물이 한 줄 길게 이어지다가 햇볕에 금세 말랐다. 공장이 없어져서 생긴 소리였다. 은결은 받은 파일에 이름 대신 기다림이라고 적어 두었다.

8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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