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155자) · 은결 · 4월 10일

내 이름 적어

파도가 닿는 곳까지 · 진해솔

사월 첫 주에 윤나래가 캐리어 하나를 끌고 이진리 정류장에 내렸다.

물길 프로덕션에서 잘렸다고 했다. 사직서를 쓴 날 한도경은 원본 카드 일을 한 번도 입에 올리지 않았고, 대신 일이 서툴다는 말을 세 번 했다고 했다. 윤나래는 정류장 벤치에 캐리어를 세워 두고 한참 바다만 보다가, 마중 나온 차은결에게 방값을 두 달 치밖에 못 낸다고 먼저 말했다. 배소랑은 그 말을 듣자마자 방값 대신 아침 설거지와 칠판 물때를 맡기겠다고 했고, 윤나래는 그날 저녁부터 분필을 쥐었다. 글씨가 소랑보다 반듯했다. 소랑은 그게 조금 분했다. 첫날 윤나래가 물때표 아래에 오늘의 소리라는 칸을 따로 만들어 파도, 갈매기, 사장님 한숨이라고 적어 두자, 소랑은 한숨 소리는 이름이 없어서 목록에 못 올린다며 그 줄을 지웠다. 이튿날 그 자리에 배소랑 한숨이라고 다시 적혀 있었다.

그 주에 서울에서 전화가 왔다. 음반사 「낮은음」의 대표 주혜린이었다. 직원이 넷이고, 대표가 직접 짐도 나른다고 했다.

“목록 얘기는 나래 씨한테 들었어요. 조건이 까다로워서 다들 못 하겠다던데, 저는 그 조건이 좋아서 전화했어요. 이름 다 싣고 마을 이름도 싣죠. 대신 돈이 적어요. 백이십이에요.”

은결은 방파제 끝에서 그 전화를 받았다. 등대 벽의 들뜬 페인트가 코트 어깨에 하얗게 묻어났고, 발밑 테트라포드 사이로 사월 물이 겨울보다 느리게 드나들었다. 사백을 거절하고 받은 백이십이었다. 바람이 수화기 구멍을 계속 두드렸는데, 은결은 그 소리가 싫지 않았다.

“마을 이름은 제가 정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마을이 정해야 해요.”

“그럼 마을한테 물어보세요. 저는 기다리는 거 잘해요. 망하는 것도 잘하고요.”

*

어촌계 총회는 사월 십일 토요일 오후 두 시에 열렸다.

안건은 둘이었다. 정비사업 이 단계 동의, 그리고 소리 음반에 마을 이름 이진리를 싣는 것. 회관 형광등은 여전히 하나가 깜빡였고, 접이식 의자 서른 개가 모자라서 뒤쪽에 스티로폼 부표를 방석 삼아 깔고 앉은 사람이 여섯이었다. 창문을 다 닫았는데도 어디선가 김 비린내와 경운기 기름 냄새가 새어 들어왔다.

배만식이 계장석에서 일어섰다. 목소리가 형광등보다 먼저 방을 채웠다.

“첫째 안건부터 하자. 둘째는 할 것도 없다. 마을 이름 싣는 거 반대다.”

“이유를 들어도 될까요?”

은결이 뒤쪽에서 손을 들었다. 서른한 명이 한꺼번에 돌아봤다. 만식은 은결을 똑바로 봤다.

“투자하는 사람들이 인터넷에 이진리 치면 뭐가 나오노? 사라지는 소리, 마지막 겨울, 할매들 이름 스물 몇 개. 망하는 동네로 보인다. 그라믄 돈이 안 온다. 돈이 안 오믄 선착장도 없고, 엔진도 없고, 젊은 아들도 안 온다. 니는 음반 내고 서울 가믄 그만이지만 우리는 여기 산다.”

“저 안 가요.”

“봄까지라 캤다며.”

“봄 지났어요. 아직 안 갔어요.”

앞쪽에서 이장 김동수가 기침을 했다. 한 번에 끝났다. 요즘은 긴장이 좀 풀렸다고 했다.

“그라고 이름이 나가믄 전화 온다. 벌써 왔다. 말순 아지매한테.”

회관이 웅성거렸다. 곽말순이 앞줄에서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왔다. 유튜브 한다는 아가 설명회 동영상 보고 전화했더라. 할머니 숨소리 한 번만 더 들려 달라꼬. 내가 그래서 숨 안 쉰다 캤다.”

웃음이 터졌는데 금방 잦아들었다. 만식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이름을 달면 사람이 찾아오고, 찾아오는 사람이 다 반가운 건 아니었다. 은결은 그걸 알고 목록을 만들었고, 알고도 이름을 받았다. 알고 한 일이 누군가에게 전화 한 통의 값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계장님 말씀이 맞아요.”

은결이 일어섰다. 무릎이 조금 떨렸다.

“이름 달면 전화 와요. 귀찮은 사람도 와요. 근데 이름 안 달면 한도경 씨가 와요. 이름 없는 숨은 아무나 가져가서 아무 데나 틀어요. 할머니 숨이 투자설명회에서 나왔을 때, 그걸 멈출 수 있었던 건 할머니 이름이 제 목록에 있어서였어요.”

“그라믄 사람 이름만 달믄 되지 마을 이름은 와 다노?”

만식의 반문에 은결은 대답을 못 했다. 거기까지는 생각이 가 있지 않았다. 소랑이 옆에서 은결의 코트 자락을 잡아당겼다. 앉으라는 신호였는지, 버티라는 신호였는지 은결은 끝까지 알 수 없었다.

그때 맨 뒤 부표 방석에서 누가 손을 들었다. 여든 살 곽분님, 말순의 시누이였다. 은결이 삼월에 자장가를 세 번 받아 간 할머니였다.

“내 이름 적어.”

회관이 조용해졌다.

“내 자장가면 내 이름 적어야지. 와 마을 이름을 적노? 마을이 내 애들 재웠나? 내가 재웠다.”

만식이 입을 열었다가 다물었다. 그 틈에 여기저기서 말이 터져 나왔다. 슈퍼 정해자 씨는 자기 냉장고 문 소리가 음반에 들어가면 냉장고를 새로 사도 되느냐고 물었고, 중매인 박기출은 호가 소리가 서울에 나가면 경매가가 오르느냐고 물었다. 둘 다 반은 농담이었고 반은 진담이었다. 우체부 박우식 씨는 이름은 좋은데 오토바이가 헐떡거리는 소리라서 창피하다고 했고, 그 말에 은결이 오토바이는 안 창피해할 거라고 대답하자 회관이 한 번 더 웃었다. 곽분님은 그 웃음이 다 잦아들 때까지 부표 위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기다렸다가 말을 이었다.

“마을 이름 싣고 말고는 느그 젊은 것들이 알아서 해라. 나는 내 이름만 있으믄 된다. 내 이름 있으믄 우리 손주들이 이진리가 어데 붙었는지 찾아온다. 그라믄 마을 이름 없어도 찾아온다.”

투표는 둘로 갈렸다. 정비사업 이 단계는 스물넷 찬성으로 통과됐고, 마을 이름은 열다섯 대 열다섯으로 보류됐다. 한 사람이 기권했다. 기권한 사람이 계장석에 앉아 있었다는 걸 은결은 나중에 소랑에게서 들었다.

회관을 나와 언덕을 오르는 동안 소랑은 말이 없었다. 사월 저녁 바람은 겨울보다 한결 순해져서 목덜미를 쓸고 지나가도 더는 등뼈까지 파고들지 않았다. 언덕 중간 유채밭에서 벌 몇 마리가 늦게까지 붕붕거렸고, 소랑은 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아빠가 기권했어요. 계장이 기권하는 거, 제가 알기로 처음이에요.”

“반대하셨잖아요. 처음에.”

“반대는 말로 하고, 손은 안 들었어요. 곽분님 할머니 말 듣고요.”

소랑이 유채꽃 하나를 꺾어 손가락으로 돌렸다.

“은결 씨, 아빠 배 이름 달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직요. 근데 오늘은 한 칸 가까워졌어요.”

소랑은 꽃을 은결의 코트 단춧구멍에 꽂았다. 은결은 그걸 빼지 않고 물때까지 걸었다. 현관에서 윤나래가 칠판을 닦다가 꽃을 보고 분필을 떨어뜨렸다.

*

그날 밤 물때 식탁 위에서 은결의 휴대폰이 스피커로 울렸다. 주혜린이었는데, 목소리 뒤에서 누군가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한도경 대표님이 방금 저한테 전화하셨어요. 무적은 자기 허가로 울린 거니까 음반에 넣으면 문제 삼겠대요. 방송 전에 풀리면 소송하겠대요.”

소랑이 컵을 내려놓았다. 윤나래가 수세미를 쥔 채 굳었다. 은결은 휴대폰 화면을 내려다봤다.

“대표님, 그럼 무적은 빼도 돼요.”

“왜요? 저 싸우는 거 좋아하는데. 소송하시면 저희 직원 넷이 다 법원 가서 앉아 있을게요. 요즘 일이 없어서 시간 많아요.”

소랑이 웃음을 참다 사레가 들렸다. 은결은 기침하는 소랑의 등을 두드리면서 말했다.

“무적은 오판수 선생님 거예요. 선생님한테 한 번 더 여쭤볼게요. 한도경 씨한테는 안 여쭤봐요.”

“좋아요. 그리고 차 감독님, 하나만 물을게요. 마을 이름 보류됐다면서요. 그럼 뭐로 표기해요?”

은결은 창밖을 봤다. 밤이라 아무것도 안 보였는데 파도 소리는 났다.

“사람 이름만요. 스무 명이요. 마을 이름은 그분들 이름이 대신 말해 줄 거예요.”

*

이튿날 은결은 오판수의 컨테이너 창고에 다시 갔다. 한도경의 전화 얘기를 하자 판수는 드라이버를 내려놓지도 않고 코웃음을 쳤다.

“내가 말했제. 일당은 안개 값이라꼬. 해수청 허가는 문 열 허가지 소리 허가가 아이다. 문은 저 사람이 열었고 소리는 내가 냈다.”

“그럼 음반에 넣어도 될까요? 한 번 더 여쭤보는 거예요.”

“니는 몇 번을 묻노. 넣어라. 대신 내 이름 옆에 정호 이름도 넣어라. 그놈 고동이 반 박자 늦은 거까지 다 들어가야 그기 우리 등대 소리다.”

판수가 창고 벽에 걸린 달력을 떼어 뒷면에 볼펜으로 뭔가를 적었다. 이진리 등대 무적, 1974년 설치, 2023년 정지, 2027년 1월 24일 일회 가동. 운전 오판수, 응답 김정호.

“이거 음반 종이에 그대로 넣어라. 한 피디가 뭐라 카믄 이 종이 보여 줘라. 거기 한 피디 이름은 없다.”

은결은 달력 종이를 두 번 접어 코트 안주머니에 넣었다. 종이에서 기름 먹은 걸레 냄새가 났다.

*

오월 중순, 곽분님이 은결을 집으로 불렀다. 자장가를 한 번 더 불러 주겠다고 했다.

방 안에는 선풍기가 벌써 나와 있었다. 날개에 먼지가 앉은 채 고개를 좌우로 돌렸고, 그 바람이 은결의 목덜미를 한 번씩 스칠 때마다 방 안 모기향 연기가 흩어졌다가 다시 모였다. 곽분님은 벽에 등을 대고 앉아 무릎을 두어 번 쓸고 불렀다. 목소리는 가늘었지만 음 끝이 떨리지 않았고, 한 소절이 끝날 때마다 손바닥으로 무릎을 한 번씩 토닥였다. 은결은 그 토닥임이 박자라는 걸 두 소절째에 알았다. 이번에도 가사가 달랐다.

“할머니, 또 다르네요.”

“다르지. 애가 다르니까. 큰애 재울 때하고 작은애 재울 때하고 다르지. 손자 재울 때 또 다르고.”

“지금은 누구 재우는 거예요?”

곽분님이 잠깐 있다가 말했다.

“지금은 나 재운다. 밤에 잠이 안 오믄 내가 나한테 불러 준다. 그거는 가사가 또 다르다.”

은결은 녹음기를 쥔 채 아무 말도 못 했다. 선풍기가 고개를 돌려 은결 쪽을 향했다가 다시 벽 쪽으로 갔다. 은결은 그 네 번째 가사를 들으면서 아현동 골목의 흥얼거림을 떠올렸다. 그 할머니도 누군가를 재우려고 부른 노래였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은결은 이 년 동안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누구를 재우는 노래였는지 물어볼 사람은 이제 없었고, 은결은 그걸 묻지 않은 채 노래에 음을 붙였다.

“할머니, 이거 네 개 다 넣어도 돼요?”

“넣어라. 내가 네 번 다르게 살았다는 거 아이가.”

그날 목록에 네 줄이 한꺼번에 올라갔다. 곽분님 자장가, 큰애, 작은애, 손자, 그리고 나. 목록 전체에서 한 사람 이름이 네 번 이어진 것은 그 자리뿐이었다. 목록은 서른 줄이 됐다. 봄 사이에 이름을 못 받았던 줄들이 하나씩 주인을 찾아서, 이름은 스무 개가 됐다.

그날 밤 은결은 오선지 노트를 폈다. 여덟 마디 다음 장에 음표가 스물네 마디 앉아 있었다. 그중 네 마디는 가사가 달랐다.

7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