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135자) · 소랑 · 3월 5일

아직 안 감

파도가 닿는 곳까지 · 진해솔

곽말순의 마지막 김 발 작업은 삼월 사일 목요일이었다.

말순은 평소보다 삼십 분 이른 새벽 세 시 반에 나와 있었다. 마지막은 원래 일찍 하는 거라고 했다. 옆 발을 이십 년 함께 걷은 최막례 할머니가 보온병을 들고 따라 나왔고, 은결은 그 다섯 시간을 다 받았다. 중간에 녹음기 배터리를 두 번 갈았다. 소랑은 뱃전에 쪼그려 앉아 훑인 김이 바구니에 쌓이는 것을 봤다. 막례 할머니는 말순보다 여섯 살 아래였고 말순보다 목소리가 두 배 컸다. 보온병에서 믹스커피를 따르며 오늘 끝나면 둘이 읍내 목욕탕에 가서 때를 밀자고 했고, 말순은 사십 년 묵은 때는 한 번에 안 나온다고 받아쳤다. 삼월 바다는 아직 손을 넣으면 뼈가 시렸고, 젖은 그물에서 튄 물방울이 소랑의 뺨에 닿을 때마다 바늘로 콕콕 찌르는 것 같았다.

말순이 마지막 발을 끌어 올릴 때 입에서 소리가 하나 나왔다.

“어이야.”

사십 년 동안 발을 올릴 때마다 냈다는 소리였다. 은결이 그걸 처음 들은 것은 십이월이었는데, 말순은 그런 소리를 낸 적이 없다고 우겼다. 그날은 우기지 않았다. 마지막 발이 뱃전을 넘어오자 말순은 허리를 펴고 장갑 한 짝을 벗어 뱃전에 내려놓았다. 젖은 면장갑이 나무에 닿는 소리가 작게 났다. 은결의 녹음기 레벨 바늘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바늘이 안 움직이는 소리일수록 오래 남는다는 것을 은결은 이 겨울에 배웠다.

“됐다.”

“할머니, 이제 뭐 하세요?”

“몰라. 마흔 해 했는데 다음 거를 우째 아노. 놀아야지. 노는 거는 못한다. 그것도 배워야 되겠지.”

말순이 은결을 봤다.

“그거 다 받았나. 들려줘라.”

은결이 헤드폰을 씌워 드렸다. 말순은 삼 분쯤 아무 표정 없이 듣다가 헤드폰을 벗었다.

“이게 내 소리가? 시끄럽네.”

소랑이 웃었고 막례 할머니는 더 크게 웃었다. 말순은 헤드폰을 돌려주면서 손을 한 번 털었다.

“나는 이거 아무도 안 듣고 없어지는 줄 알았다. 근데 하나는 들었네.”

*

이튿날 해평군 문화회관에서 어촌정비사업 투자설명회가 열렸다.

어촌계가 관광버스 한 대를 빌렸다. 배만식이 버스 앞자리에 서서 인원을 셌고, 마을 사람 서른한 명이 양복과 꽃무늬 조끼를 꺼내 입었다. 김 발 끝난 기념으로 읍내 구경이나 하겠다며 말순도 탔다. 소랑과 은결은 맨 뒷자리에 앉았다. 버스가 언덕을 넘을 때 말순이 앞에서 사탕 봉지를 뒤로 돌렸고, 봉지가 소랑에게 올 때는 박하사탕 두 개만 남아 있었다.

회관 대강당에는 넥타이를 맨 사람들이 앞쪽 세 줄을 차지하고 있었다. 투자사, 시행사, 도청 사람들이었다. 민서하가 서류철을 안고 무대 옆에 서 있다가 소랑을 보고 고개를 살짝 숙였다. 군수 인사말이 끝나고 조명이 꺼졌다.

스크린에 「마지막 겨울, 이진리」 예고편이 떴다.

드론이 방파제를 따라 미끄러졌고, 음악이 깔렸다. 은결은 첫 두 마디에서 그게 자기 이 년 전 음악을 흉내 낸 곡이라는 것을 알았다. 음악 밑으로 통통통통, 만식호 엔진 소리가 들어왔다. 버스 앞자리에서 만식의 뒷머리가 조금 들렸다. 그리고 그 소리가 나왔다. 기계보다 반 박자 늦게 들어오는 숨, 십이월 새벽 포구에서 말순이 김 발을 끌어 올리며 쉬던 그 숨이었다. 화면 아래에 자막이 떴다. 어느 어촌의 마지막 겨울, 사라지는 것들의 숨소리.

소랑의 손이 의자 팔걸이를 쥐었다. 옆에서 은결이 일어서려는 것을 소랑이 먼저 알고 팔을 잡았다. 그런데 일어선 사람은 앞쪽에 따로 있었다.

말순이었다.

말순은 통로로 나와서 천천히 무대 쪽으로 걸었다. 걸음이 느렸고, 조명이 꺼진 강당에서 그 느린 걸음 소리가 예고편 음악보다 잘 들렸다. 스크린 불빛이 말순의 굽은 등을 하얗게 비췄다. 무대 앞에 선 말순이 스크린을 올려다봤다.

“저거 내 숨이다.”

강당이 조용해지고 누군가 예고편을 멈추자 조명이 켜졌다. 한도경이 무대 옆에서 마이크를 들고 웃으며 나왔다.

“어머니, 예쁘게 나왔죠? 이게 다 어머니 덕분이에요.”

“내가 와 니 어메고. 저거 누가 가져갔노. 나는 준 적이 없다.”

“출연료 드렸잖아요, 오만 원. 받으셨잖아요.”

“그 돈은 은결이 줬다. 이름 적으라꼬. 니는 이름을 안 적는다 캤다. 그라믄 저거는 누구 숨이고?”

앞쪽 넥타이들이 서로 얼굴을 봤다. 한도경이 목소리를 조금 낮춰, 그러나 마이크에 다 들리게 말했다.

“어머니, 소리에는 저작권이 없어요. 녹음한 사람한테 권리가 있어요. 법이 그래요.”

“그라믄 내 숨은 내 게 아이고 니 기가?”

한도경이 대답을 찾는 사이 뒷줄에서 웃음이 샜다. 이장 김동수가 기침을 두 번 했는데, 긴장해서 세 번이 나왔다. 민서하가 무대 옆에서 서류철을 가슴에 꼭 끌어안았다. 버스 앞자리에서 배만식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자기 배 소리 위에 무기명으로 얹힌 말순의 숨이 무엇을 뜻하는지 만식은 그 자리에서 제일 먼저 알아들었다. 자기가 이십만 원에 판 것도 저렇게 나갔다.

말순이 은결 쪽을 돌아봤다.

“니는 이름 적는다 캤제. 니 목록에 내 숨 있나?”

은결이 일어섰다.

“있어요. 곽말순, 김 발 걷는 소리, 봄까지. 어제 날짜까지 적었어요.”

말순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한도경을 향해 손가락을 들었다. 굽은 검지가 떨렸다.

“저거 빼라. 이름 없이 가져간 거는 도둑질이다. 내 숨은 저 아 목록에 있다.”

말순은 그 말을 남기고 통로를 천천히 걸어 나갔다. 소랑이 따라 나가 말순의 팔을 잡았다. 강당 문이 닫힐 때까지 아무도 조명을 끄지 않았다.

로비에서 민서하가 소랑을 불러 세웠다. 서류철을 여전히 가슴에 안고 있었고, 볼이 빨갰다.

“사장님, 제빙 공장 하루 돌리는 거요. 과장님께 다시 올려 볼게요. 오늘 저 할머니 보고 나니까, 제가 저희 할머니 얼음 깨던 소리를 하나도 기억 못 한다는 게 좀 무서워졌어요.”

“과장님이 안 된다고 하시면요?”

“그럼 세 번 올려요. 은결 씨 규칙이 세 번 묻는 거라면서요.”

민서하는 그렇게 말하고 서류철로 얼굴 반을 가린 채 강당 안으로 도로 들어갔다.

돌아오는 버스는 갈 때보다 조용했다. 사탕 봉지도 돌지 않았다. 말순은 창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았고, 막례 할머니가 그 어깨에 제 목도리를 덮어 줬다. 버스가 언덕 중턱에서 기어를 바꿀 때 배만식이 앞자리에서 일어나 통로를 걸어왔다. 흔들리는 버스에서 의자 등받이를 하나씩 짚으며 오는 동안, 마을 사람 서른한 명이 그 걸음을 곁눈으로 따라갔다.

만식이 소랑 옆 빈자리에 앉았다. 한참 창밖만 봤다.

“내 배 소리도 저래 나가겠제. 이름 없이.”

“네.”

“이십만 원에.”

소랑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버지 손등의 기름때가 버스 창으로 들어오는 오후 햇빛에 검게 번들거렸다. 만식이 그 손을 무릎 위에서 쥐었다 폈다.

“그렇다꼬 니 목록에 올린다는 거는 아이다. 보상은 받아야 된다. 엔진은 바꿔야 되고.”

“알아요.”

“알믄 됐다.”

만식은 일어서서 다시 앞자리로 걸어갔다. 은결이 소랑의 손등에 제 손을 얹었다. 소랑은 아버지가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다가, 그게 서른세 해 동안 처음 본 등이라는 걸 알았다. 늘 앞에서 걷던 사람의 등을 뒤에서 본 적이 없었다.

*

그날 밤 물때 초인종이 울렸다. 윤나래였다. 패딩 모자를 푹 눌러쓰고 손에 작은 플라스틱 케이스를 쥐고 있었다.

“이거, 십이월 포구에서 받은 원본이에요. 대표님한테는 사본만 있어요. 원본은 제가 안 드렸어요.”

은결이 케이스를 받았다. 손가락만 한 메모리카드가 안에 들어 있었다.

“나래 씨, 이거 드리면 잘려요.”

“알아요. 근데 오늘 할머니 걸어 나가시는 거 뒤에서 봤어요. 제가 저 숨을 받을 때 할머니 등이 저렇게 굽어 있었는지도 몰랐어요.”

윤나래가 돌아서다가 현관 턱에서 멈췄다. 칠판의 규칙 세 줄 쪽으로 눈이 한 번 갔다.

“감독님, 복례 할머니 얘기도 제가 드릴 게 있어요. 근데 그건 아직 제 손에 없어요. 찾으러 가야 돼요.”

“뭘 찾아요?”

“할머니가 제작사로 두 번 전화하셨어요. 두 번째는 제가 받았어요. 대표님은 감독님한테 한 번만 말했죠?”

은결의 손에서 케이스가 미끄러질 뻔했다. 윤나래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어둠 속으로 뛰어 내려갔다.

이튿날 아침 은결과 소랑은 메모리카드를 들고 말순의 집에 갔다. 규칙대로 먼저 들려드렸다. 말순은 그 숨을 끝까지 들었다. 장판 위에 무릎을 세우고 앉아 헤드폰 한쪽을 손으로 누른 채였다.

“이거는 지워라.”

“네?”

“내가 모르고 쉰 숨이다. 누가 듣는 줄도 모르고. 어제 거는 남겨라. 그거는 니가 받는다 카고 내가 쉰 숨이다. 같은 숨이라도 다르다.”

은결은 말순이 보는 앞에서 파일을 지웠다. 목록을 만든 뒤 처음으로 지운 소리였다. 말순은 지워진 화면을 들여다보고 나서야 무릎을 폈다.

“저 사람 거는 우짤 낀데? 방송에 나간다며.”

“사본이라 저희가 못 지워요. 대신 저 사람 걸 들은 사람들한테, 원래 주인이 누군지는 알려 드릴 수 있어요.”

“우째?”

“할머니 이름 붙은 걸 더 크게 틀면요.”

말순이 은결을 오래 봤다. 그러고는 부엌으로 가서 찬장을 열고 김 한 톳을 꺼내 왔다. 작년 겨울 것 중 마지막 톳이라고 했다.

“이거 들고 가서 그 나래라는 아한테 줘라. 잘리믄 밥은 묵어야 될 거 아이가.”

*

그 주에 목록은 스물여섯 줄이 됐다. 김 발 마지막 날의 다섯 시간, 곽말순의 「어이야」, 뱃전에 내려놓은 젖은 장갑, 그리고 최막례 할머니의 보온병 뚜껑 돌리는 소리였다. 막례 할머니는 이름 적는 걸 허락하면서 말순 이름보다 한 칸 아래에 적어 달라고 했다. 이십 년 동안 늘 한 발 뒤에서 걷었다고 했다.

그날 밤 소랑은 현관 칠판을 지우고 새로 적었다. 만조 오전 아홉 시 오십 분, 간조 오후 네 시 이십 분. 적고 나서 그 아래를 잠깐 봤다. 겨울 내내 내일 새벽 다섯 시 출발이라고 적혀 있던 자리였다. 이제 적을 게 없었다. 봄이 왔고, 봄까지라고 적힌 손님 칸의 날짜는 지나 있었다.

소랑은 분필을 내려놓고 들어갔다. 은결이 언제 가느냐고는 묻지 않았다. 물으면 대답이 올 것 같아서였다.

다음 날 아침 현관에 나와 보니 그 자리에 글씨가 한 줄 적혀 있었다. 소랑의 글씨가 아니었다. 분필을 너무 세게 눌러 쓴 탓에 획 끝마다 가루가 뭉쳐 있었고, 받침 하나는 두 번 고쳐 쓴 자국이 남아 있었다. 소랑은 신발도 안 신고 현관 턱에 선 채로 그 네 글자를 한참 봤다. 이 층에서 녹음기 전원 켜지는 소리가 작게 났다. 소랑은 칠판지우개를 집었다가 도로 내려놓았다.

아직 안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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