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153자) · 은결 · 1월 24일
무적이 울던 자리
파도가 닿는 곳까지 · 진해솔
무적을 다시 울린다는 소식은 한도경의 입에서 먼저 나왔다.
일월 이십일일 저녁, 한도경이 물때 식탁에 서류 한 장을 펼쳤다. 해양수산청 직인이 찍힌 일회 가동 허가서였다. 방송 촬영 협조, 일월 이십사일 일요일, 안개 발생 시 십 분 이내. 서류 모서리에 커피 자국이 동그랗게 번져 있었다.
“아는 과장님이 도와주셨어. 삼 년 만에 우는 무적, 이진리의 마지막 겨울. 그림 나오지?”
한도경이 허가서를 은결 쪽으로 돌려놓았다.
“차 감독, 같이 받아. 내 허가야. 마이크 자리 제일 좋은 데 줄게. 대신 목록 넘겨. 서른 개 안 돼도 돼.”
차은결은 허가서의 직인을 오래 봤다. 무적은 은결이 어릴 때 딱 한 번 들어 본 소리였다. 어디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고, 가슴께가 울렸다는 것만 남아 있었다. 그 소리를 받을 수 있는 날이 사흘 뒤에 있었고, 그 문을 연 사람이 한도경이었다.
“방파제는 누구 땅도 아니잖아요. 저는 방파제 중간에서 받을게요.”
“받는 건 자유지. 근데 목록에 올리려면 이름 달아야 한다며? 무적 이름은 누가 줄 건데? 해수청 과장님?”
한도경이 웃으며 허가서를 접어 조끼에 넣었다. 그 말이 틀리지 않아서, 은결은 손바닥을 식탁 밑에서 한 번 쥐었다 폈다.
*
이튿날 오후 은결은 소랑과 함께 오판수를 찾아갔다.
판수는 방파제 초입 컨테이너 창고를 작업장으로 쓰고 있었다. 전 항로표지관리원, 이진리 등대에서 이십육 년을 일했고, 퇴직하고 나서도 등대 문 열쇠를 해수청에 반납하지 않았다고 했다. 반납하라는 사람이 없었다고 했다. 창고 안은 전기난로 하나와 라디오 하나, 벽 가득 걸린 공구가 전부였고, 기름 먹은 걸레 냄새가 난로 열기에 데워져 코끝에서 끈적하게 맴돌았다.
“한 피디가 돈 준다 카더라. 일당 삼십.”
“하실 거예요?”
“한다. 안 하믄 저 사람이 딴 사람 데리고 와서 한다. 저거는 내 손 아이믄 소리가 틀리게 난다.”
은결이 무릎을 꿇듯 난로 앞에 쪼그려 앉았다.
“어르신, 그 소리 제가 받아도 될까요? 목록에 올리고 싶어요. 어르신 이름으로요.”
“한 피디한테 허락받아라.”
“어르신한테 받고 싶어요.”
판수가 드라이버를 내려놓았다. 은결은 한 번 더 물었고, 판수는 대답 대신 라디오를 껐다. 창고 안이 조용해지자 바깥에서 파도가 방파제를 치는 소리가 들어왔다.
“니, 무적이 누구 위해 우는지 아나?”
“배요.”
“맞다. 배다. 카메라 아이다. 안개가 방파제 끝을 다 먹어야 그 소리가 멀리 간다. 한 피디는 해 지기 전에 울리라 카더라. 그림이 예쁘다꼬. 그때 울리믄 소리가 안 간다. 그라믄 내 소리가 아이다.”
판수가 은결을 봤다.
“내 시간에 울린다. 한 피디 신호 안 듣고. 니가 그때 받아라. 이름은 적어도 된다. 오판수, 이진리 등대 이십육 년. 그래 적어라.”
세 번째 물음은 은결이 할 필요가 없었다. 판수가 먼저 물었다. 받고 나서 들려줄 거냐고. 은결이 그렇다고 하자, 판수는 다시 라디오를 켰다.
*
일월 이십사일 오후 여섯 시에 안개가 들어왔다.
바다에서 육지 쪽으로 밀려오는 안개였다. 방파제 끝이 먼저 사라지고 그다음에 등대 아래쪽이 사라졌으며, 마지막에는 불빛만 떠 있었다. 물길 촬영팀은 등대 앞에 조명을 세웠다가 안개에 빛이 다 먹히자 다시 걷었다. 드론은 뜨지도 못했다. 촬영감독이 드론을 안고 안개 속에 멍하니 서 있는 모습이 너무 서글퍼서, 소랑이 은결의 옆구리를 찌르며 웃음을 참았다.
은결은 방파제 중간에 삼각대를 세웠다. 마이크 각도를 잡는 손이 두 번 미끄러졌다. 장갑을 벗은 손끝이 금속 나사에 닿을 때마다 쩍쩍 들러붙었고, 입김이 마이크 방풍 털에 서리가 되어 앉았다.
“손 떨려요?”
“추워서요.”
“진짜요?”
은결은 삼각대를 잡은 채 한참 있다가 대답을 바꿨다.
“무서워서요. 이거 못 들으면 어쩌지 하고요. 아니, 들었는데 아무렇지도 않으면 어쩌지 하고요.”
“무슨 말이에요?”
“이 년 동안 소리가 안 들린 게 아니에요. 들어도 아무것도 안 생겼어요. 전에는 소리를 들으면 음이 오고, 그 음이 어디로 갈지 보였어요. 여기서도 안 오면 그만두려고 왔어요.”
소랑이 안개 속에서 은결을 봤다. 얼굴이 잘 안 보였는데, 소랑이 한 발 다가서는 소리는 들렸다.
“여기서 받은 게 열아홉 줄이에요. 그럼 들린 거잖아요.”
“듣는 거랑 만드는 거는 달라요. 저는 아직 한 음도 안 썼어요.”
여섯 시 사십 분, 등대 앞에서 한도경의 무전기가 울렸다. 판수 선생님, 지금 가시죠, 조명 다시 칩니다. 판수의 대답은 없었다. 여섯 시 오십 분에 또 울렸다. 선생님, 해수청이랑 약속한 시간이 있어요. 무전기가 치직거리기만 했다. 한도경이 안개를 헤치고 등대 문 앞까지 걸어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방파제 중간까지 들려왔다. 문은 열리지 않았다.
“선생님, 일당 드렸잖아요!”
등대 안쪽에서 판수의 목소리가 쇠문을 울리며 나왔다.
“일당은 안개 값이다. 소리 값 아이다.”
소랑이 참던 웃음을 결국 터뜨렸다. 은결도 웃었고, 웃다가 제 손이 더는 떨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
일곱 시 십이 분에 무적이 울었다.
처음 삼 초는 아무 소리도 없었다. 안개가 방파제 끝을 완전히 삼키고 등대 불빛마저 번져서 동그란 얼룩이 됐을 때, 그 얼룩 한가운데에서 소리가 왔다.
부— 웅.
소리는 귀로 오지 않고 가슴으로 왔다. 갈비뼈 안쪽이 한 번 울렸고, 그 울림이 명치를 타고 내려가 장화 속 발바닥까지 떨게 했다. 안개 때문에 소리가 흩어지지 않고 뭉쳐서, 사방에서 한꺼번에 밀려오는 것 같았다. 한 번 울리고 십오 초를 쉬고, 다시 울렸다. 은결은 녹음기를 보지 않았다. 눈을 감고 있었다.
세 번째 소리가 왔을 때 은결의 어깨가 흔들렸다. 소랑이 손을 뻗어 은결의 손을 잡았다. 은결의 손은 얼음처럼 차가웠고, 소랑의 손은 패딩 주머니에서 막 나와 뜨거웠다.
“소랑 씨, 들려요.”
소랑이 손에 힘을 줬다.
“들려요, 지금. 와요.”
네 번째 소리 뒤에 먼바다 쪽에서 뭔가가 대답했다. 짧고 높은 뱃고동이었다. 안개 속에서 조업하고 돌아오던 김정호 선장의 배가 삼 년 만에 들은 무적에 고동으로 답했다. 무적이 울면 고동이 답하고, 고동이 답하면 무적이 다시 울었다. 방파제 위의 물길 촬영팀도, 조명을 끈 채 서 있던 촬영감독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윤나래가 붐마이크를 든 채 울고 있는 걸 은결은 나중에 소랑에게서 들었다.
십 분 동안 무적은 마흔 번쯤 울었다.
*
그날 밤 물때 거실에서 소랑이 먼저 말을 꺼냈다.
“서울에서 공연 음향 했다고 했잖아요. 팔 년 차에 이천 석짜리 공연 총괄을 맡았어요. 그날 하울링이 났어요. 이 초쯤이요. 제 실수였어요. 아무도 안 다쳤고, 관객 중에 알아챈 사람도 별로 없었을 거예요.”
소랑이 소주잔을 돌렸다.
“근데 저는 그날 이후로 콘솔 앞에 못 앉겠더라고요. 페이더에 손을 올리면 그 이 초가 손가락 끝에서 다시 울려요. 이 년 버티다 그만두고 여기 왔어요. 웃긴 게 뭔지 알아요? 여기 오니까 소리가 다 잘 들려요. 콘솔 앞에서는 하나도 안 들렸는데.”
“그럼 소랑 씨도 저랑 똑같네요. 들리는데 못 만드는 거요.”
“우리 되게 못났다.”
“네.”
“인정하세요?”
“네.”
소랑이 웃었는데 눈에서 뭐가 떨어졌다. 은결이 손을 뻗어 소랑의 뺨에 손등을 댔다. 소랑은 피하지 않았다. 난로가 탔고 냉장고가 돌았고, 밖에는 안개가 아직 걷히지 않았다. 소랑이 먼저 몸을 기울였다. 입술이 닿는 동안 두 사람 다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는데, 이 방에 소리가 그렇게 많은데도 은결에게는 아무것도 안 들렸다.
“저 봄에 가야 돼요.”
“알아요.”
“근데 지금은 안 갈래요.”
“그거 나쁜 말인 거 알아요?”
“알아요.”
소랑이 은결의 목덜미에 손을 얹었다. 손바닥이 아직 뜨거웠다. 은결은 그 열이 목에서 등으로 천천히 번져 내려가는 동안, 오늘 가슴으로 왔던 소리가 아직 갈비뼈 안에서 다 가시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날 밤 이 층 끝 방의 불은 켜지지 않았다. 새벽 세 시쯤 은결이 깼을 때, 이불 밖으로 나가 있던 제 손을 누군가 이불 안으로 넣어 두었다.
*
아침 여덟 시, 한도경이 물때 현관문을 열었다. 밤새 한숨도 못 잔 얼굴이었고, 조끼에 안개 물기가 아직 얼룩져 있었다.
“차 감독, 어제 판수 선생님한테 뭐라고 했어?”
은결은 계단 중간에서 멈췄다. 소랑이 부엌에서 나와 은결 뒤에 섰다.
“아무 말도 안 했어요. 여쭤봤어요. 받아도 되냐고요.”
“그게 뭐라고 한 거야. 나는 해 지기 전 그림이 필요했어. 안개 속에서 불빛만 번진 거, 그거 방송에 못 써. 해수청 과장님한테 나 체면 다 구겼고.”
“소리는 제대로 났잖아요.”
“소리는 차 감독 거고 그림은 망했지.”
한도경이 숨을 한 번 고르고 목소리를 낮췄다.
“좋아. 무적은 목록에 올려. 근데 알아 둬. 방송은 유월이고 음반은 언제 나올지 몰라. 먼저 튼 쪽이 원본이 돼. 사람들은 이름 붙은 원본 같은 거 안 찾아. 먼저 들은 걸 기억해.”
“그럼 저는 늦게 틀게요. 대신 이름 붙여서요.”
한도경이 은결을 보다가 소랑을 봤다. 소랑이 팔짱을 끼고 한 발 앞으로 나왔다.
“대표님, 아침 드실래요? 김치찌개 있어요. 방값에 포함이에요.”
한도경은 대답 없이 문을 닫고 나갔다. 소랑이 은결의 등을 한 번 두드리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찌개 끓는 소리가 났다.
*
그 뒤에 은결은 창가에 앉아 노트를 폈다. 목록 쪽이 아니었다. 손으로 오선을 그은 새 장에 음표가 여덟 마디쯤 앉아 있었다.
“들려줘요.”
“안 돼요. 안 끝났어요.”
“은결 씨, 그게 이 년 동안 곡을 못 쓴 이유예요. 안 끝난 걸 못 보여 주면 끝낼 수가 없어요. 혼자서는 못 끝내요.”
은결은 노트를 내려다보다가 목소리로 그 여덟 마디를 불렀다. 가사 없이 낮은 데서 시작해 한 번 올라갔다가 다시 낮은 데로 내려오는 선이었다. 소랑은 듣다가 알았다. 안개 속에서 오던 그 소리가 여덟 마디 안에 들어 있었다. 노래가 끝나고 방이 조용해졌다. 소랑은 이번에는 우는 걸 감추지 않았다.
그날 오후 은결은 헤드폰을 들고 판수의 창고에 가서 받은 것을 먼저 들려줬다. 판수는 끝까지 듣는 동안 헤드폰 한쪽을 손바닥으로 꾹 누르고 있었다. 다 듣고 나서 헤드폰을 벗어 은결 무릎 위에 올려놓고 한마디만 했다. 정호 그놈 고동은 삼십 년째 반 박자 늦다. 목록은 스물두 줄이 됐다. 무적, 등대 나선계단 쇠문, 그리고 무적에 답한 김정호 선장의 고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