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332자)

들어 올리는 손

전직 역도 국가대표가 택배 상하차 야간조에 들어갔다 · 성재담

“⁠지숙 씨는 퇴근해요⁠.⁠”

엄평구가 사물함 복도 끝에서 말했다⁠. 기봉은 비닐봉지를 든 채 그쪽으로 걸어갔다⁠. 분홍색 머리띠가 봉지 맨 위에서 흔들렸다⁠. 나는 무전기를 쥐고 서 있었다⁠. 엄평구의 눈이 내 손을 한 번 보았다⁠. 이것을 돌려 달라고 하지 않았다⁠. 녹음되지 않는 무전기는 기봉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센터장실 블라인드가 내려갔다⁠. 나는 셔틀을 탔다⁠. 무전기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이천역까지 가는 내내 이 닳은 안테나 끝을 엄지로 문질렀다⁠.

이날 저녁 기봉은 출근하지 않았다⁠. 몸살이라고 했다⁠. 레일이 돌기 직전 사물함 앞에서 휴대폰이 울렸다⁠. 기봉의 문자였다⁠.

「⁠센터장님이 반장 다시 시켜 준대⁠. 감독관한테 가지 말래⁠. 대출 심사 서류도 센터장님이 써 준대⁠. 미안하다⁠. 무전기는 너 가져⁠.⁠」

나는 이 문자를 세 번 읽었다⁠. 휴대폰을 사물함에 넣고 잠갔다⁠. 엄평구는 반장 자리 하나를 빼앗았다가 돌려주는 것으로⁠, 하루 만에 한 사람의 입을 두 번 닫았다⁠.

*

목요일 밤은 성수기 가장 긴 밤의 전날이었다⁠. 다음 날 금요일이 한 해 물량이 제일 많은 날이라고 다들 말했다⁠. 이 전날 밤 레일이 돌기 시작하자 채널 2에서 엄평구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레일 세 칸 올려⁠. 밀린 거 오늘 다 턴다⁠.⁠”

바닥이 떨리는 소리가 반 박자가 아니라 한 박자 당겨졌다⁠. 쉰 넘은 형님 하나가 욕을 했다⁠. 세 칸은 이 센터가 생긴 뒤로 한 번도 올려 본 적 없는 속도라고 했다⁠.

그리고 엄평구는 사람을 옮겼다⁠. 냉동 도크의 탄과 지게차에서 내려온 공삼분 언니⁠, 대학생 안경까지 모두 13번으로 보냈다⁠. 휴게실에서 협조를 말하던 날 고개를 움직이지 않았던 사람들이 하나씩 13번 앞에 섰다⁠. 무거운 것만 오는 도크에⁠, 세 칸 빨라진 레일 앞에⁠.

“⁠증인 모아 놓는 거다⁠.⁠”

언니가 내 귀에 대고 말했다⁠.

“⁠한 도크에 몰아 놓고 숫자 못 맞추면 재계약에서 한꺼번에 뺀다⁠. 내가 이 센터 열한 해다⁠. 저 사람 수 다 안다⁠.⁠”

엄평구가 13번 앞으로 직접 내려왔다⁠. 나를 지나쳐 탄 앞에 섰다⁠.

“⁠응우옌 씨⁠, 체류 결과 다음 주죠⁠?⁠”

“⁠네⁠, 센터장님⁠.⁠”

“⁠파견 회사가 재직 확인을 한 번 더 보낸대요⁠. 성수기 끝날 때까지 근무 잘하는지 보고⁠. 출입국에서 그런 거 확인 전화 오기도 하거든요⁠.⁠”

이 사람은 탄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탄은 이 손을 피하지 않았다⁠. 대신 허리를 펴고 엄평구를 똑바로 보았다⁠. 냉동 도크에서 얼었던 눈썹이 13번의 형광등 밑에서 녹고 있었다⁠.

“⁠센터장님⁠, 저는 13번에서 일 잘할게요⁠. 상자 하나도 안 떨어뜨릴게요⁠.⁠”

이 사람이 또박또박 말했다⁠.

“⁠근데 그거랑 그날 일은 다른 거예요⁠. 저는 그날 일흔여섯 번 셌어요⁠. 그 숫자는 센터장님이 재직 확인 안 보내도 그대로예요⁠.⁠”

엄평구의 손이 탄의 어깨에서 떨어졌다⁠. 엄평구는 탄을 오래 보았다⁠. 탄은 눈을 피하지 않았다⁠. 엄평구가 먼저 돌아섰다⁠. 돌아서면서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13번 할당⁠, 트럭 다섯 대⁠.⁠”

*

트럭 다섯 대는 무거운 상자 삼천오백 개였다⁠. 세 칸 빨라진 레일 위로 이것들이 쏟아졌다⁠.

공삼분 언니의 노래도 빨라졌다⁠. 언니는 가벼운 것만 골라 올리면서 레일 박자에 맞춰 가사를 쏟아 냈다⁠.

“⁠레일이 빨라지니 노래도 빨라진다⁠, 이기 트로트가 아이고 랩이다⁠, 언니가 랩을 한다⁠, 평구야 들리나 이기 힙합 상자다⁠.⁠”

대학생 안경이 붕대 푼 손으로 상자를 받다가 웃음을 참지 못해 상자를 두 번 놓쳤다⁠. 놓친 상자는 수건이었다⁠. 언니는 내가 가르친 대로 발을 뒤로 뺐다⁠. 이것을 보고 언니가 랩을 멈추고 손뼉을 쳤다⁠.

“⁠봐라⁠, 강습 효과 있다⁠!⁠”

나는 웃을 수 없었다⁠. 허리가 이미 초저녁부터 말을 듣지 않았다⁠. 알약을 두 시간마다 먹던 것을 한 시간마다 먹었다⁠. 왼다리는 열세 걸음이 아니라 다섯 걸음에 한 번 끌렸다⁠. 탄이 이것을 셌다⁠. 탄은 레일 끝에서 상자를 가르면서 나를 보았고⁠, 나는 탄의 입술이 숫자를 세는 것을 보았다⁠.

새벽 세 시⁠, 다섯 대째 트럭 안쪽 끝에 접이식 러닝머신 상자가 세 개 세워져 있었다⁠. 하나에 사십오 킬로그램이었다⁠. 둘이 드는 상자였다⁠. 옆에 둘 사람이 없었다⁠. 다들 레일에 매달려 있었다⁠.

나는 장갑을 벗었다⁠. 상자 모서리의 먼지를 엄지로 훑어 손바닥에 문지르고 손뼉을 한 번 쳤다⁠. 숨을 가두고 상자를 배에 붙였다⁠. 광석 씨가 내 팔을 끌어 포대 밑에 넣어 주던 이 자세로⁠.

허리 아래에서 무언가가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몸 안에서 나는 소리가 귀로 들렸다⁠. 사 년 전 선발전 무대에서 들었던 이 소리였다⁠.

이번에는 놓았다⁠. 상자를 앞으로 밀어 던지고 발을 뒤로 뺐다⁠. 상자가 컨테이너 바닥에 떨어져 모서리가 터졌다⁠. 그런데 발이 빠지지 않았다⁠. 다리가 내 말을 듣지 않았다⁠. 나는 이 자리에 무너졌다⁠. 고양이 모래 포대 위로 어깨가 떨어졌다⁠. 두 주 전 광석 씨가 쓰러진 바로 이 자리였다⁠. 바닥에 남아 있던 회색 모래가 뺨에 붙었다⁠.

*

“⁠누나⁠!⁠”

탄의 목소리였다⁠. 다음에 레일이 섰다⁠. 서른두 개 도크가 한 번에 숨을 멈췄다⁠. 고개를 돌리자 레일 기둥 옆에서 안경이 빨간 단추에 손바닥을 얹은 채 서 있었다⁠. 이 사람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조장도 반장도 아닌 일용직이 이 단추를 누른 두 번째 밤이었다⁠.

탄이 컨테이너 안으로 뛰어들었다⁠. 공삼분 언니가 따라 들어왔고⁠, 쉰 넘은 형님 둘이 뒤를 따랐다⁠. 나는 다리를 움직여 보려고 했다⁠. 왼다리는 남의 다리였고 오른다리도 따라 남의 것이 되어 가고 있었다⁠.

“⁠건드리지 마요⁠. 허리⁠.⁠”

“⁠누나⁠, 배에 붙일게요⁠.⁠”

탄이 말했다⁠. 탄은 내 겨드랑이 밑으로 팔을 넣지 않았다⁠. 형님 둘에게 내 다리를 맡기고⁠, 언니에게 내 머리를 맡기고⁠, 자기는 내 허리 밑으로 두 팔을 넣어 가슴에 붙였다⁠. 네 사람이 한 몸처럼 무릎을 굽혔다⁠.

“⁠하나⁠, 둘⁠, 셋⁠.⁠”

이 사람이 셌다⁠. 나는 들렸다⁠. 들어 올려졌다⁠. 열네 살 이후로 내가 무언가를 들지 않고 들린 것은 처음이었다⁠. 사람의 팔 여덟 개가 내 무게를 나누어 가졌다⁠. 무게가 바벨처럼 한가운데로 모였다⁠.

무전기에서 반장의 목소리가 나왔다⁠. 몸살이라던 기봉이 아니라 엄평구가 임시로 세운 사람이었다⁠.

“⁠13번⁠, 뒷문으로⁠. 휴게실로 옮겨⁠.⁠”

“⁠정문⁠.⁠”

탄이 말했다⁠. 무전기를 향해서가 아니라 우리 넷에게⁠.

“⁠정문이 일 분이에요⁠.⁠”

이들은 정문으로 달렸다⁠. 나는 천장의 형광등이 하나씩 머리 위로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레일이 멈춘 작업장 곳곳에서 마흔 명의 고개가 우리를 따라 돌았다⁠. 아무도 길을 막지 않았다⁠. 엄평구가 사무실 계단 위에서 내려다보았다⁠. 무전기를 입에 대지 않았다⁠.

정문 차단기가 이미 올라가 있었다⁠. 경비실 문 앞에 경비 반장님이 서 있었다⁠. 이 사람의 손에 휴대폰이 들려 있었다⁠.

“⁠119 불렀어⁠. 감시 카메라로 너희 뛰어나오는 거 보고 바로⁠.⁠”

탄이 걸음을 세다가 멈췄다⁠.

“⁠육십이 초요⁠.⁠”

13번 도크에서 정문까지 육십이 초였다⁠. 경비 반장님이 나를 내려다보았다⁠. 반장은 종이컵 대신 휴대폰을 쥔 손을 내 이마 위에 대고 바람을 막아 주었다⁠.

“⁠그날 밤 두 시 십삼 분에 내 전화가 울렸어⁠. 반장 목소리로⁠. 사설 부르고 119는 뒷문으로 보내라고⁠. 커피 타 준다 했지⁠. 감독관한테 내가 말할게⁠. 재계약이고 뭐고⁠.⁠”

구급차의 사이렌이 멀리서 들려올 때 엄평구가 정문까지 걸어 나왔다⁠. 나를 보지 않고 경비 반장님 앞에 섰다⁠.

“⁠반장님⁠, 그 전화 이야기 함부로 하시면 안 됩니다⁠. 일월 재계약 있으시잖아요⁠.⁠”

“⁠나 재계약 안 해도 돼⁠.⁠”

경비 반장님이 말했다⁠. 휴대폰을 쥔 손은 여전히 내 이마 위에 있었다⁠.

“⁠어제 집사람한테 다 말했어⁠. 투석 받는 사람이 그러더라⁠. 그 양반 딸 얼굴 생각하라고⁠. 경비 자리는 또 구하면 된다고⁠.⁠”

엄평구는 대꾸가 없었다⁠. 구급차는 십일 분 만에 정문에 섰다⁠.

*

이천 시내 병원 응급실 침대에서 나는 진통 주사를 맞았다⁠. 엠알아이를 찍기 전이었다⁠. 해미가 의원 근무복 차림으로 커튼을 젖히고 들어왔다⁠. 내 휴대폰 긴급 연락처에 해미의 번호가 있었다⁠. 언제 넣었는지 나도 몰랐다⁠. 탄이 내 사물함에서 휴대폰을 꺼내 와 해미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해미는 침대 옆 의자에 걸쳐진 내 조끼를 집어 들었다⁠. 안주머니가 불룩했다⁠. 거기서 알약 포장지를 꺼냈다⁠. 은박이 절반 넘게 비어 있었다⁠. 이 사람은 간호조무사의 눈으로 포장지 뒷면의 글씨를 읽었다⁠.

“⁠이거 마약성 진통제예요⁠.⁠”

이 사람의 목소리가 커튼 안에서 낮게 깔렸다⁠.

“⁠처방전에 하루 두 번이라고 써 있었을 거예요⁠. 몇 번 먹었어요⁠?⁠”

“⁠한 시간에 한 번⁠.⁠”

“⁠언니 이걸 매일 먹고 쌀 포대 들었어요⁠? 아빠 옆에서⁠? 우리 아빠한테 아픈 거 숨겼다고 할 자격이 언니한테 있어요⁠?⁠”

이 말에 할 말이 없었다⁠. 이 사람이 옳았다⁠. 광석 씨는 혀 밑에 넣는 알약을 끊고 숨겼다⁠. 나는 삼키는 알약을 늘리고 숨겼다⁠. 숨긴 방향만 달랐다⁠.

“⁠선발전 때부터예요⁠.⁠”

내가 말했다⁠. 커튼 너머에서 공삼분 언니와 탄이 숨죽이는 것이 느껴졌다⁠.

“⁠아프다고 하면 빠지라고 할까 봐⁠. 빠지면 끝일까 봐⁠. 사 년 동안 그랬어요⁠. 아저씨 열한 시에 집에 가겠다고 했을 때⁠, 나는 그게 부러웠어요⁠. 그래서 안 물었어요⁠.⁠”

해미는 포장지를 손에 쥔 채 오래 서 있었다⁠. 그러다 이것을 침대 위 내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감독관님이 그러셨어요⁠. 급박한 위험이 있으면 일하는 사람이 스스로 일을 멈추고 대피할 수 있대요⁠. 법에 있대요⁠. 회사는 그걸로 불이익 주면 안 된대요⁠. 아빠 그날 그걸 알았으면⁠.⁠”

*

진통 주사가 돌기 시작했다⁠. 다리 감각이 조금 돌아왔다⁠. 발가락이 움직였다⁠. 나는 침대 난간을 잡고 상체를 일으켰다⁠. 공삼분 언니가 커튼을 젖히고 들어오며 소리를 질렀다⁠.

“⁠니 지금 미쳤나⁠. 서지도 못하는 기⁠.⁠”

“⁠설 수 있어요⁠.⁠”

나는 침대 끝으로 다리를 내렸다⁠. 바닥에 발을 디뎠다⁠. 무릎이 떨렸다⁠. 탄이 내 팔을 잡았다⁠. 나는 의자에 걸쳐진 가죽 벨트를 집어 허리에 둘렀다⁠. 버클을 채우는 데 손이 세 번 미끄러졌다⁠. 안쪽에 지져진 내 이름 머리글자가 수술 자국에 닿았다⁠.

“⁠엠알아이 찍고 가요⁠. 의사가 그랬어요⁠.⁠”

해미가 말했다⁠.

“⁠찍을게요⁠. 그다음에 내일 밤 센터 가요⁠.⁠”

나는 이들 셋을 보았다⁠. 파스 냄새가 나는 언니⁠, 손가락에 반창고를 감은 탄⁠, 의원 근무복 위에 패딩을 걸친 해미⁠. 그리고 커튼 너머 응급실 대기 의자에 앉아 있을 쉰 넘은 형님 둘과 안경⁠.

“⁠내일 밤이 제일 긴 밤이래요⁠. 레일 세 칸 그대로 돌 거예요⁠. 오늘 같은 밤이 또 와요⁠.⁠”

“⁠그래서⁠?⁠”

언니가 말했다⁠.

“⁠레일 앞에서 다 같이 손을 놓자고요⁠. 상자 내려놓고⁠, 발 빼고⁠, 일 멈추고⁠. 급박한 위험이니까⁠. 법에 있대요⁠.⁠”

한동안 아무 소리가 없었다⁠. 응급실 어딘가에서 아이가 울었다⁠. 탄이 먼저 입을 열었다⁠. 탄은 내 팔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몇 명이요⁠, 누나⁠?⁠”

“⁠마흔다섯 명⁠.⁠”

9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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