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396자)

무전

전직 역도 국가대표가 택배 상하차 야간조에 들어갔다 · 성재담

“⁠반장이 묻는 말에 평구가 대답하네⁠. 노광석이 가슴이 아파 집에 간다 카요⁠, 안 돼 안 돼 성수기에 빠지면 다음 주는 없다 해라⁠.⁠”

공삼분 언니의 목소리가 빈 사물함 복도를 울렸다⁠. 가락은 트로트였다⁠. 꺾는 자리에서 꺾고 늘이는 자리에서 늘였다⁠. 그런데 가사가 노래 같지 않았다⁠. 무전기 말투 그대로였다⁠.

“⁠두 시 하고 칠 분에 쿵 소리가 나더니⁠, 반장이 소리치네 13번에 사람 쓰러졌소⁠. 두 시 하고 팔 분에 반장이 또 묻네⁠, 119 부를까요 센터장님⁠?⁠”

언니가 숨을 한 번 들이쉬었다⁠. 꺾는 자리였다⁠. 꺾지 않았다⁠.

“⁠평구가 대답하네⁠. 부르지 마라⁠. 119 오면 신고 들어간다⁠. 경비실 시켜서 사설 불러라⁠. 레일 세우지 마라⁠, 권역이 본다⁠.⁠”

나는 사물함 문을 잡고 서 있었다⁠. 내가 들은 무전은 두 시 십 분이 넘어서야 터져 나왔다⁠. 정문 말고 뒷문⁠, 구급차 내가 불렀어⁠. 이 앞에 반장이 무전기를 귀에 붙이고 등을 돌렸던 이 분을 나는 듣지 못했다⁠. 이때 내 귀에는 탄이 세는 숫자밖에 없었다⁠.

“⁠노래 끝⁠.⁠”

언니가 말했다⁠.

“⁠박수 쳐라⁠.⁠”

나는 박수를 치지 못했다⁠. 손을 들었다가 내렸다⁠. 언니는 이걸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치지 마라⁠. 이건 박수 받을 노래가 아이다⁠.⁠”

언니는 작업 바지 주머니에서 접힌 종이 두 장을 꺼냈다⁠. 지게차 재점검 통보와 아들의 면접 안내였다⁠. 이것을 사물함 위에 나란히 펴 놓고 손바닥으로 한 번 눌렀다⁠.

“⁠이거는 노래였다⁠. 내가 지어 부른 노래⁠. 노무사가 물으면 내는 아무것도 못 들었다 할 수도 있다⁠. 아들 면접이 화요일이다⁠. 그건 내가 아직 못 정했다⁠.⁠”

“⁠정하지 마세요⁠, 언니⁠. 노래 들은 건 제 귀니까요⁠.⁠”

언니가 웃었다⁠. 이 웃음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

이날 낮 수원 병원 재활실에서 광석 씨는 일 킬로그램짜리 분홍색 아령을 오른손에 쥐고 있었다⁠. 손가락이 아령 손잡이를 다 감지 못해서 재활 치료사가 이 위에 고무 밴드를 감아 주었다⁠. 해미는 벽에 기대 팔짱을 끼고 있었다⁠.

“⁠팔꿈치 몸에 붙이세요⁠, 아저씨⁠. 손목 꺾지 말고요⁠.⁠”

내가 말했다⁠. 치료사가 나를 돌아보았다⁠. 광석 씨가 입꼬리를 한쪽만 올렸다⁠.

“⁠국대가⁠…⁠… 나를 가르치네⁠. 상자는⁠…⁠… 내가 가르쳤는디⁠.⁠”

“⁠그러니까 이번엔 제 차례예요⁠. 숨 들이쉬고⁠, 올리고⁠, 내쉬면서 내리고요⁠.⁠”

광석 씨는 아령을 손목 높이까지 들어 올렸다가 떨면서 내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째에 아령이 손에서 빠져 매트 위로 굴렀다⁠. 이 사람은 이것을 보고 숨을 몰아쉬었다⁠.

“⁠놓쳤네⁠.⁠”

“⁠놓으신 거예요⁠. 잘하셨어요⁠. 안 되겠다 싶으면 놓는 거예요⁠.⁠”

치료사가 웃었다⁠. 해미는 웃지 않았지만 팔짱을 풀었다⁠. 나는 매트 옆에 쪼그려 앉아 아령을 주워 광석 씨 손에 다시 감아 주고⁠, 둘에게 새벽에 들은 노래를 전했다⁠. 열한 시의 거절과⁠, 두 시 팔 분에 119를 부르지 말라던 말까지⁠.

해미의 손이 벽에서 떨어졌다⁠. 해미의 눈이 아버지에게 갔다⁠. 광석 씨는 아령을 쥔 채 매트 끝을 보고 있었다⁠.

“⁠구 분이네⁠.⁠”

해미가 말했다⁠. 간호조무사의 목소리였다⁠.

“⁠두 시 팔 분에 불렀으면 두 시 이십몇 분에는 왔어요⁠. 이천 그 동네 119 안전센터가 십 분 거리예요⁠. 제가 의원에서 응급 이송 몇 번 해 봤어요⁠. 구 분이면⁠, 심장 멈춘 사람한테 구 분이면⁠…⁠…⁠.⁠”

해미는 말을 끝내지 못했다⁠. 광석 씨가 왼손을 들어 딸 쪽으로 내밀었다⁠. 해미가 이 손을 잡았다⁠. 아버지의 손을 잡은 채 나를 보았다⁠.

“⁠그 아줌마 감독관 앞에 데려올 수 있어요⁠?⁠”

“⁠노래는 증언이 아니래요⁠. 본인이 그래요⁠.⁠”

“⁠그럼 노래를 증언으로 만들면 되잖아요⁠.⁠”

*

이날 저녁 출근길⁠, 정문 차단기 앞에서 경비실 창문이 열렸다⁠. 경비 반장님이 종이컵 하나를 내밀었다⁠. 믹스커피였다⁠. 김이 바람에 꺾였다⁠.

“⁠커피다⁠.⁠”

“⁠보리차 말고요⁠?⁠”

“⁠아직은 이것만⁠.⁠”

이 사람은 창문을 닫으려다 말고 덧붙였다⁠.

“⁠센터장 방에 감독관한테 내는 서류가 또 들어갔다더라⁠. 반장이 오늘 낮에 불려 갔고⁠.⁠”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컵을 쥔 채 사무실로 걸었다⁠. 걸으면서 휴대폰이 울렸다⁠. 근로감독관이었다⁠. 사물함에 넣기 전이라 받을 수 있었다⁠.

“⁠육지숙 씨⁠, 회사가 추가 진술서를 냈어요⁠. 그날 밤 판단은 반장이 혼자 했다고요⁠. 열한 시 조퇴 거절도⁠, 휴게실로 옮긴 것도⁠, 사설 구급차도⁠. 센터장은 사후에 보고만 받았다고요⁠. 반장 본인 서명도 있어요⁠.⁠”

“⁠무전은요⁠?⁠”

“⁠녹음이 없대요⁠. 반장이 무전으로 센터장한테 물은 적 없다고 썼어요⁠.⁠”

나는 사무실 복도에 섰다⁠. 센터장실 문이 한 뼘쯤 열려 있었다⁠. 커피 컵에서 마지막 김이 올라왔다⁠.

*

“⁠미안하다⁠, 기봉아⁠.⁠”

엄평구의 목소리였다⁠. 문틈으로 엄평구의 등과 기봉 반장의 옆얼굴이 보였다⁠. 반장은 책상 앞에 선 채 손목의 초시계를 만지고 있었다⁠.

“⁠회사는 누군가는 책임져야 돼⁠. 너 직위 해제야⁠. 반장 수당 끊기고⁠, 이달 말까지만 일용으로 있어⁠. 다음 달에 평택 센터에 일용으로 넣어 줄게⁠. 내가 거기 센터장한테 말해 놨어⁠.⁠”

“⁠제가 다 뒤집어쓰라고 하셔서 썼잖아요⁠.⁠”

반장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컸다⁠.

“⁠센터장님이 그렇게 쓰면 저는 안 다친다고 하셨잖아요⁠. 반장이 현장 판단한 거면 회사가 지켜 준다고⁠. 그래서 썼잖아요⁠. 열한 시도⁠, 두 시도⁠, 다 제가 했다고⁠.⁠”

“⁠그러니까 고맙다고⁠, 기봉아⁠.⁠”

엄평구는 의자에서 일어나 반장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따뜻한 손이었을 것이다⁠.

“⁠네가 써 줘서 센터가 산다⁠. 마흔다섯 명이 산다⁠. 평택 가도 내가 너 챙길게⁠.⁠”

반장의 어깨가 이 손 밑에서 내려앉았다⁠. 반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손 하나가 사람을 얼마나 무겁게 누를 수 있는지 나는 이 어깨를 보며 알았다⁠.

문 앞에서 돌아서다 문틈 사이로 엄평구와 눈이 마주쳤다⁠. 엄평구는 손을 반장의 어깨에서 떼지 않았다⁠.

*

레일이 돌기 십 분 전⁠, 엄평구가 야간조를 휴게실로 불러들였다⁠. 반장 대신 직접 섰다⁠. 히터의 먼지 타는 냄새 속에서 낮고 부드럽게 말했다⁠.

“⁠성수기 끝나는 일월 첫 주에 파견 재계약 심사가 있습니다⁠. 본사 방침이에요⁠. 근무 태도⁠, 안전 수칙⁠, 회사 협조⁠. 셋 다 봅니다⁠.⁠”

이 사람은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씩 짚어 갔다⁠. 쉰 넘은 형님들⁠, 대학생 둘⁠, 냉동 도크에서 막 나와 눈썹에 서리가 앉은 탄⁠, 무릎에 파스를 붙인 공삼분 언니⁠, 그리고 나⁠.

“⁠협조한 분들은 우선 재계약입니다⁠. 그리고 기봉 반장은 오늘부로 반장이 아닙니다⁠. 새 반장은 다음 주에 정해요⁠. 질문 있으세요⁠?⁠”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아무도 고개를 끄덕이지도 않았다⁠. 반장이 처음 사람들을 모았던 이날 저녁의 휴게실과 달랐다⁠. 당시에는 고개가 하나씩 내려갔다⁠. 이번에는 아무 고개도 움직이지 않았다⁠. 엄평구는 이것을 보았다⁠. 손목시계를 보고 문을 열었다⁠.

“⁠일곱 시예요⁠.⁠”

사람들이 나갔다⁠. 대학생 안경이 내 옆을 지나가며 협조가 뭐냐고 속삭였다⁠. 쉰 넘은 형님 하나가 대신 대답했다⁠. 입 닫는 거라고⁠.

*

이날 밤 13번 도크에 일용직이 하나 더 붙었다⁠. 기봉이었다⁠. 반장 조끼를 벗고 다른 사람들과 같은 회색 조끼를 입은 반장은 컨테이너 입구에서 한참 서 있었다⁠. 사 년 동안 도크 밖에서 초시계만 눌렀던 사람이었다⁠.

지게차를 빼앗긴 공삼분 언니가 옆 레일에서 강아지 사료를 올리다 말고 노래를 뽑았다⁠.

“⁠반장이 일용 됐네⁠, 초시계는 어디 갔노⁠. 13번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쌀 포대가 기다린다⁠.⁠”

“⁠누나⁠, 좀⁠.⁠”

“⁠환영 노래다⁠. 환영도 못 하나⁠?⁠”

기봉이 쌀 포대 앞에서 허리를 숙였다⁠. 팔로 들려고 했다⁠. 나는 포대를 발로 밀어 기봉의 앞에서 치웠다⁠.

“⁠무릎 굽혀요⁠. 포대 밑으로 팔 넣고⁠. 배에 붙여요⁠.⁠”

“⁠알아⁠.⁠”

“⁠아는 사람이 팔로 들어요⁠?⁠”

반장은 나를 노려보다가 무릎을 굽혔다⁠. 포대를 배에 붙여 들어 올렸다⁠. 얼굴이 붉어졌다⁠. 두 번째 포대에서 반장은 숨을 몰아쉬었고⁠, 열 번째 포대에서 레일 기둥을 잡았다⁠. 나는 이 옆에서 열한 번째를 들었다⁠.

“⁠사 년 동안 이걸 재고만 있었네⁠.⁠”

반장이 중얼거렸다⁠. 누구에게 한 말인지 몰랐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다음 포대를 들었다⁠. 이날 밤 반장은 쌀 포대 백스무 개를 날랐다⁠. 나는 이 숫자를 셌다⁠. 반장은 세지 않았다⁠.

*

새벽 다섯 시⁠, 기봉이 사물함 줄 맨 앞의 반장 사물함을 비우고 있었다⁠. 이 사물함은 이제 다음 반장의 것이었다⁠. 검은 비닐봉지에 칫솔과 수건과 믹스커피 스무 봉지를 쓸어 넣었다⁠. 맨 안쪽에서 분홍색 머리띠 하나가 나왔다⁠. 이것을 오래 손에 쥐고 있었다⁠.

“⁠딸 거예요⁠?⁠”

이 사람이 나를 돌아보았다⁠. 놀라지도 않았다⁠.

“⁠초등학교 이 학년⁠. 차에 두면 잃어버린다고 여기 넣어 놨어⁠. 학교 끝나고 데리러 갈 때 이거 하고 가⁠.⁠”

이 사람은 머리띠를 비닐봉지 맨 위에 올려놓았다⁠.

“⁠반장 수당으로 이천 아파트 대출 받았어⁠. 내년 삼월 입주⁠. 이 학년 끝나고 삼 학년은 새 학교 보내려고⁠. 반장 떼면 대출 심사 다시 받아⁠. 평택 일용으로는 안 나와⁠.⁠”

“⁠반장님이 다 지는 거예요⁠.⁠”

“⁠반장 아니래도⁠.⁠”

반장은 초시계를 손목에서 풀었다⁠. 헐거워진 줄이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렸다⁠. 반장은 초시계를 비닐봉지에 넣지 않고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채 보았다⁠.

“⁠사 년 동안 이걸로 사람을 쟀어⁠. 너도 쟀고⁠, 노광석 씨도 쟀어⁠. 열한 시에 그 양반이 가슴 아프다고 했을 때도 이걸 봤어⁠. 아직 열한 시 칠 분인데 벌써 빠지면 어떡하냐고⁠.⁠”

반장의 목소리가 거기서 무너졌다⁠. 소리 없이 무너졌다⁠. 어깨가 먼저 떨렸고⁠, 다음에 턱이 떨렸다⁠. 반장은 손등으로 입을 막았다⁠.

“⁠두 시 팔 분에 내가 물었어⁠. ‘⁠119 부를까요⁠?⁠’ 센터장님이 부르지 말라 했어⁠. 119 오면 신고 들어간다고⁠. 경비실 시켜서 사설 부르라고⁠. 내가 그 말 그대로 경비실에 옮겼어⁠. 내 입으로⁠.⁠”

반장은 초시계를 쥔 손으로 사물함 문을 짚었다⁠. 금속 문이 반장의 무게에 덜컹 울렸다⁠.

“⁠내가 그때 그냥 119 불렀으면⁠. 휴대폰 사물함에 있어도 무전으로 경비실에 119 불러 달라고만 했으면⁠.⁠”

나는 이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나도 열한 시에 묻지 않았다⁠. 대답할 자격이 나에게 없었다⁠.

기봉은 한참 그러고 있다가 허리에 찬 무전기를 풀었다⁠. 검은 무전기의 안테나 끝이 닳아 하얗게 벗겨져 있었다⁠. 이것을 내 손에 쥐여 주었다⁠. 저울에 올리면 사백 그램쯤일 무전기가 손바닥에 닿는 순간 쌀 포대보다 무거웠다⁠.

“⁠감독관 앞에서 말할게⁠. 열한 시도⁠, 두 시 팔 분도⁠. 내가 서명한 거 내가 뒤집을게⁠. 대출이고 뭐고⁠.⁠”

“⁠딸은요⁠?⁠”

“⁠딸한테 아빠가 사람 쓰러지게 놔뒀다고 할 순 없잖아⁠.⁠”

복도 끝에서 발소리가 났다⁠. 운동화가 아닌 구두 소리였다⁠. 나는 무전기를 쥔 채 고개를 들었다⁠. 기봉도 들었다⁠. 사물함 줄 끝⁠, 비상구 초록 불빛 밑에 엄평구가 서 있었다⁠. 남색 점퍼 지퍼를 목까지 올린 채⁠,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기봉아⁠.⁠”

이 사람이 낮고 부드럽게 불렀다⁠. 열한 해 동안 이 목소리로 사람을 불렀을 것이다⁠.

“⁠잠깐 나 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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