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369자)

트로트 공

전직 역도 국가대표가 택배 상하차 야간조에 들어갔다 · 성재담

“⁠그날 열한 시에⁠, 내도 채널 2 듣고 있었다⁠.⁠”

공삼분 언니가 말했다⁠. 지게차 운전석에서⁠, 시동을 끈 채로⁠. 레일 소리가 이 말을 덮을 만큼 크지 않았다⁠. 기봉 반장이 고개를 홱 들었다⁠.

“⁠누나⁠.⁠”

반장이 이 사람을 누나라고 불렀다⁠. 작업장에서 이 말이 나온 것을 나는 처음 들었다⁠.

“⁠하지 마⁠. 누나 그거 하지 마⁠.⁠”

언니는 반장을 내려다보았다⁠. 운전대를 쥔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솟아 있었다⁠. 언니의 입이 다시 열렸다⁠. 나는 숨을 멈추고 기다렸다⁠. 그러나 나온 것은 말이 아니라 시동 소리였다⁠. 언니가 열쇠를 돌렸고⁠, 지게차가 덜컹 몸을 떨었다⁠. 후진 경보음 위에 대고 아무 가락이나 크게 뽑았다⁠.

“⁠기봉아 기봉아⁠, 니 초시계는 누가 감아 주노⁠. 내 무릎은 누가 감아 주노⁠.⁠”

지게차가 통로 끝으로 사라졌다⁠. 반장은 이 자리에 서서 헐거운 초시계 줄을 손목에 다시 감았다⁠. 나를 보지 않고 말했다⁠.

“⁠저 누나⁠, 건드리지 마⁠.⁠”

“⁠제가 건드린 게 아니잖아요⁠.⁠”

“⁠건드리지 말라고⁠. 저 누나 이 센터에서 지게차 올라간 첫 여자야⁠. 그거 누가 올려 줬는지 알아⁠?⁠”

이 사람은 대답을 듣지 않고 다음 도크로 갔다⁠.

*

공삼분 언니의 집은 이천 시내 오래된 연립 이층이었다⁠. 토요일 오후 두 시⁠, 나는 귤 한 봉지를 들고 이 문 앞에 섰다⁠. 초인종을 누르기 전부터 안에서 노래방 반주가 들렸다⁠.

문을 연 언니는 꽃무늬 몸빼 바지에 털조끼를 입고 있었다⁠. 손에 무선 마이크를 들고 있었다⁠.

“⁠니가 여길 어찌 알았노⁠.⁠”

“⁠안경이 알려 줬어요⁠. 언니가 지난 추석에 송편 돌렸다고⁠.⁠”

“⁠그 안경 입 싼 거 봐라⁠.⁠”

거실 한쪽 벽에 가정용 노래방 기계가 있었고⁠, 이 위에 동네 노래자랑 상장 일곱 장이 액자에 끼워져 줄지어 걸려 있었다⁠. 전부 장려상이었다⁠. 작은방 문이 반쯤 열려 있었고⁠, 이 안에서 스물셋쯤 된 남자가 헤드셋을 끼고 모니터 앞에 앉아 있었다⁠. 언니가 턱으로 그쪽을 가리켰다⁠.

“⁠우리 아들이다⁠. 대학 나와서 이 년째 취업 준비⁠. 자소서를 백 장 썼다⁠. 백 장 다 떨어졌다⁠. 내가 지게차로 번 돈으로 학원 다닌다⁠.⁠”

아들이 헤드셋을 한쪽만 벗고 나에게 꾸벅 인사했다⁠. 그리고 다시 헤드셋을 썼다⁠. 언니는 마이크를 소파에 던지고 부엌에서 믹스커피 두 잔을 타 왔다⁠.

“⁠열한 해 전에 우리 집 양반이 집을 나갔다⁠. 빚만 두고⁠. 내가 그해에 그 센터 화장실 청소를 했다⁠. 미화원⁠. 새벽 네 시에 변기 닦고 있는데 그때 반장이던 엄평구가 나를 보더니 그러더라⁠. 누나⁠, 팔뚝 보니까 지게차 해도 되겠네⁠.⁠”

언니가 자기 팔뚝을 탁 쳤다⁠. 굵은 팔이었다⁠.

“⁠학원비 육십만 원을 그 사람이 대 줬다⁠. 월급에서 까라고 했는데 끝까지 안 깠다⁠. 면허 따 오니까 센터장한테 가서 여자 지게차 기사 하나 써 보자고 우겼다⁠. 다들 웃었다⁠. 첫 달에 내가 팔레트 하나 안 떨어뜨리고 제일 많이 날랐다⁠. 그다음부터 아무도 안 웃었다⁠.⁠”

언니는 커피를 후 불었다⁠.

“⁠그 사람이 나를 땅에서 들어 올려 줬다⁠. 지게차 위로⁠. 그걸 내가 우째 잊노⁠.⁠”

“⁠안 잊으셔도 돼요⁠.⁠”

“⁠그라믄 니는 와 왔노⁠.⁠”

나는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언니에게 이 영상 이야기를 했다⁠. 사 년 전 용상 삼차 시기⁠, 뒤로 넘어가는 바벨⁠, 관중석의 비명⁠, 이 사이로 들리던 감독님의 목소리⁠.

“⁠감독님이 버티라고 했어요⁠. 저를 열네 살 때 시골 체육관에서 데려간 분이에요⁠. 신발도 사 주고 밥도 사 주고⁠, 국가대표 만들어 주셨어요⁠. 그분이 저를 아낀 거 맞아요⁠. 그런데 그날 그분 말을 들어서 제 허리가 나갔어요⁠.⁠”

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작은방에서 아들이 게임 속 누군가에게 짜증을 내는 소리가 났다⁠.

“⁠아낀 사람도 틀릴 수 있어요⁠, 언니⁠. 고마운 거랑 맞는 거랑은 따로예요⁠.⁠”

“⁠니는 와 이리 남의 일에 허리를 거노⁠.⁠”

언니가 말했다⁠. 커피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노래방 기계 위의 상장들을 보았다⁠.

“⁠말은 못 한다⁠. 그 사람한테 그건 못 한다⁠.⁠”

*

월요일 저녁⁠, 언니의 지게차 열쇠가 사물함 앞 열쇠함에 없었다⁠. 반장이 종이 한 장을 들고 와서 언니에게 읽어 주었다⁠. 「⁠지난주 팔레트 낙하 건으로 지게차 운전 자격 재점검⁠, 점검 기간 동안 하차 작업 배치⁠」 배치 도크는 13번이었다⁠.

“⁠팔레트 떨어뜨린 거 그거⁠, 랩 감다 만 거 바람에 날린 거다⁠. 비닐 한 장이다⁠.⁠”

“⁠센터장님 지시예요⁠, 공 기사님⁠.⁠”

반장은 언니를 다시 공 기사님이라고 불렀다⁠. 언니는 종이를 받아 들고 한참 보다가 반으로 접어 몸빼 주머니에 넣었다⁠. 오늘은 몸빼가 아니라 작업 바지였는데⁠, 거기 주머니가 있는 것을 처음 아는 사람처럼 주머니를 두 번 더듬었다⁠.

언니의 무릎은 지게차 위에 앉아서만 괜찮은 무릎이었다⁠. 열한 해 동안 페달만 밟은 무릎이었다⁠. 13번 컨테이너 앞에서 언니는 쌀 포대를 내려다보았다⁠.

“⁠이기 몇 킬로고⁠.⁠”

“⁠이십이요⁠.⁠”

“⁠쌀이 와 이리 무겁노⁠. 밥은 가벼운데⁠.⁠”

대학생들이 웃었다⁠. 언니는 장갑을 끼고 허리를 숙여 포대 귀를 잡았다⁠. 나는 말리려다 말았다⁠. 내 쪽을 보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이 보였다⁠. 언니는 포대를 팔로⁠, 허리로 들어 올렸다⁠. 노광석 씨가 나에게 하지 말라고 했던 그대로였다⁠.

세 번째 포대에서 언니의 오른 무릎이 꺾였다⁠. 포대를 안은 채 앞으로 주저앉았다⁠. 나는 이 포대 밑으로 두 팔을 넣어 받았다⁠. 포대를 내 배에 붙이고 언니의 팔에서 빼냈다⁠. 언니는 컨테이너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앉아 있었다⁠. 바닥의 회색 먼지가 작업 바지 무릎에 둥글게 묻었다⁠.

“⁠놓으세요⁠, 언니⁠. 안 되겠다 싶으면 앞으로 던지고 발 빼요⁠.⁠”

“⁠던지면 쌀이 터진다⁠.⁠”

“⁠쌀은 쓸어 담으면 돼요⁠.⁠”

언니가 바닥에 앉은 채 웃었다⁠. 웃다가 손등으로 눈을 문질렀다⁠. 언니의 장갑에 묻은 먼지가 눈가에 회색 줄을 그었다⁠.

“⁠열한 해 만에 땅에 내려오니까 땅이 와 이리 머노⁠.⁠”

이날 밤 나는 13번 트럭 세 대 중 두 대 반을 내렸다⁠. 언니는 내 옆에서 가벼운 것만 골라 레일에 올렸다⁠. 휴지⁠, 기저귀⁠, 강아지 사료 작은 봉지⁠. 그리고 들 때마다 노래를 불렀다⁠. “⁠기저귀야 기저귀야⁠, 니가 제일 착하다⁠.⁠” 이 노래에 대학생들이 박자를 맞췄다⁠. 이 노래 밑에서 언니의 오른 무릎은 계속 떨리고 있었다⁠.

자정 쉬는 시간에 탄이 휴게실로 들어와 언니 앞에 쪼그려 앉았다⁠. 이 사람은 주머니에서 파스 세 장을 꺼냈다⁠. 냉동 도크 의무함에서 얻어 왔다고 했다⁠.

“⁠무릎 안쪽에 하나⁠, 바깥쪽에 하나 붙이세요⁠. 하나는 내일 거예요⁠.⁠”

“⁠막내 왕자가 내 무릎을 다 챙기네⁠.⁠”

언니는 작업 바지를 걷어 올리고 파스를 붙였다⁠. 멘톨 냄새가 컵라면 냄새를 덮었다⁠. 탄이 파스 끝을 손바닥으로 꾹꾹 눌러 주었다⁠.

“⁠누나⁠, 출입국에서 문자 왔어요⁠. 연장 서류 접수됐대요⁠. 결과는 열흘 뒤에 나와요⁠.⁠”

탄이 나를 보며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시 십오 분이 적힌 종이 한 장 값으로 받은 열흘이었다⁠. 탄도 이것을 알았고⁠, 그래서 더 웃지 않았다⁠.

“⁠니 우리 아들이랑 바꾸자⁠.⁠”

언니가 말했다⁠.

“⁠우리 아들은 자소서 백 장 쓰고 게임만 한다⁠. 니는 파스 들고 온다⁠. 바꾸자⁠. 내가 니 엄마한테 쌀국수 끓이는 거 배울게⁠.⁠”

“⁠제 엄마 국물 진짜 짜요⁠. 한국 사람은 못 먹어요⁠.⁠”

“⁠내 짠 거 좋아한다⁠. 경상도다⁠.⁠”

대학생들이 웃었고 탄도 그제야 웃었다⁠. 언니는 걷어 올린 바지를 내리지 않고 파스 붙인 무릎을 두 손으로 감쌌다⁠. 웃는 얼굴로 이 손에 힘을 주고 있었다⁠.

*

새벽 세 시⁠, 엄평구가 언니를 사무실로 불렀다⁠. 언니가 내 소매를 잡았다⁠. 그래서 나도 따라 들어갔다⁠. 엄평구는 나를 보고 눈썹을 조금 올렸지만 나가라고 하지 않았다⁠.

“⁠누나⁠, 무릎 괜찮아요⁠?⁠”

이 사람은 언니를 누나라고 불렀다⁠. 둘만 아는 말투였다⁠.

“⁠평구야⁠.⁠”

언니가 말했다⁠. 센터장님이 아니라 이름으로⁠.

“⁠니가 내 학원비 대 준 거⁠, 내가 열한 해 갚았다⁠. 지게차로 니 숫자 올려 줬다⁠. 니 반장일 때도 니 센터장 될 때도⁠. 근데 니가 나를 땅에 내려놨다⁠. 비닐 한 장 날린 걸로⁠.⁠”

“⁠점검 끝나면 다시 올라가요⁠. 일주일이면 돼요⁠.⁠”

엄평구는 책상 서랍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언니 쪽으로 밀었다⁠. 본사 물류운영본부 운영지원팀 계약직 면접 안내였다⁠. 날짜는 다음 주 화요일이었고⁠, 맨 위에 언니 아들의 이름이 이미 찍혀 있었다⁠.

“⁠누나 아들 본사 자리⁠, 내가 말해 놨어요⁠. 서울 본사요⁠. 계약직이지만 이 년 지나면 정규직 심사 있어요⁠. 누나가 그거 원했잖아요⁠. 번듯한 데⁠.⁠”

언니의 손이 종이 위에서 멈췄다⁠. 백 장 쓴 자소서⁠, 헤드셋⁠, 반쯤 열린 작은방 문⁠. 나는 언니가 이 종이를 보며 무엇을 보는지 알았다⁠.

“⁠노무사한테 한 번만 말해 줘요⁠. 그날 밤 무전은 정신없어서 아무것도 못 들었다고⁠. 그거 한 마디면 누나는 다음 주에 지게차 다시 타고⁠, 아들은 서울 가요⁠.⁠”

“⁠그게 무슨 은혜고⁠.⁠”

언니가 말했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니가 내한테 준 거⁠, 지게차⁠. 그거는 은혜였다⁠. 이거는 빚이다⁠. 내가 갚을 빚이 아니고 니가 지는 빚이다⁠.⁠”

“⁠누나⁠.⁠”

“⁠니 그날 무슨 말 했는지 내 다 안다⁠. 열한 시에도⁠, 두 시에도⁠.⁠”

엄평구는 대답하지 않았다⁠. 의자에 등을 기대고 언니를 오래 보았다⁠. 그러다 낮고 부드럽게 말했다⁠.

“⁠무전은 녹음이 안 돼요⁠, 누나⁠. 누나 말 하나⁠, 내 말 하나예요⁠. 그리고 누나 아들 이름은 이미 저 종이에 있어요⁠. 지우는 건 쉬워요⁠.⁠”

“⁠아들 이름 가지고 이러시는 겁니까⁠?⁠”

내가 말했다⁠. 엄평구가 처음으로 나를 보았다⁠.

“⁠지숙 씨는 들어오라고 안 했어요⁠. 누나가 데려왔으니까 그냥 둔 거예요⁠. 지숙 씨는 이 사람 아들한테 서울 자리 하나 구해 줄 수 있어요⁠? 못 하잖아요⁠. 나는 해요⁠. 그게 지숙 씨랑 나랑 다른 거예요⁠.⁠”

언니는 종이를 집어 들었다⁠. 찢을 것처럼 두 손으로 양 끝을 잡았다⁠. 그리고 찢지 않았다⁠. 반으로 접어 작업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아까 이 주머니였다⁠.

*

다섯 시⁠, 사물함 앞이 비었을 때 언니가 내 사물함 문에 등을 기댔다⁠. 나는 휴대폰을 꺼내다 말고 언니를 보았다⁠. 언니의 무릎에는 아직 먼지 자국이 둥글게 남아 있었다⁠.

“⁠니한테 말은 못 한다⁠.⁠”

언니가 말했다⁠.

“⁠그 사람이 무슨 말 했는지 니한테 일러바치면⁠, 그건 내가 고자질하는 기다⁠. 그 사람 등에 칼 꽂는 기다⁠. 그건 내가 몬 한다⁠.⁠”

“⁠알아요⁠, 언니⁠.⁠”

“⁠근데 노래는 내 거다⁠.⁠”

이 사람은 몸을 일으켜 사물함 줄 끝까지 걸어가더니⁠, 거기서 돌아섰다⁠. 텅 빈 사물함 앞 복도가 노래방보다 울림이 좋았다⁠.

“⁠노래로는 부를 수 있다⁠. 내가 지어 부르는 노래에 무슨 가사가 들어가는지는 내 마음이다⁠. 니가 그걸 듣고 뭘 알든 그건 니 귀가 한 일이다⁠.⁠”

언니는 목을 가다듬었다⁠. 주머니 속 접힌 종이 두 장이 언니의 손 밑에서 바스락거렸다⁠. 눈을 감고⁠, 열한 해 동안 지게차 위에서 뽑던 이 목청으로 첫 소절을 꺼냈다⁠.

“⁠열한 시 채널 2에 칙칙 소리 나더니⁠, 반장이 묻는 말에 평구가 대답하네⁠…⁠…⁠.⁠”

7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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