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5,408자)

일 분과 사 분

전직 역도 국가대표가 택배 상하차 야간조에 들어갔다 · 성재담

“⁠대체 인력은 들어오지 마세요⁠.⁠”

근로감독관이 정문 통로에 서서 말했다⁠. 대형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이 차단기 앞에서 멈췄다⁠. 이들은 패딩 주머니에 손을 넣고 서로를 보았다⁠. 대부분 이십 대였고⁠, 몇은 이 센터에 처음 와 보는 얼굴로 도크 서른두 개를 올려다보았다⁠.

“⁠작업 중지가 된 상황인지 확인하기 전까지는 다른 사람을 저 레일 앞에 세우지 마세요⁠, 센터장님⁠.⁠”

엄평구가 감독관 앞으로 걸어갔다⁠. 엄평구의 걸음이 처음으로 빨랐다⁠.

“⁠감독관님⁠, 지금 성수기 밤입니다⁠. 한 해 중 물량이 제일 많은 밤이에요⁠.⁠”

“⁠그날도 성수기 밤이었죠⁠.⁠”

감독관은 신분증 목걸이를 패딩 지퍼 위로 꺼냈다⁠. 그리고 13번 앞에 서 있는 우리를 보았다⁠. 지팡이를 짚은 광석 씨⁠, 이 팔을 받친 해미⁠, 탄⁠, 공삼분 언니⁠, 기봉⁠, 경비 반장님⁠, 그리고 무릎에 회색 진흙이 묻은 나⁠.

“⁠십이월 삼일 새벽 일⁠, 지금 여기서 보겠습니다⁠. 그날 있던 분들이 다 계시네요⁠. 이런 날 다시 오기 어려워요⁠.⁠”

*

“⁠13번에서 정문까지⁠, 그리고 뒷문 돌아서 휴게실까지⁠. 그날 쓰러진 분을 옮긴 대로 해 주세요⁠.⁠”

감독관이 말했다⁠. 시설팀 창고에서 이십 킬로그램짜리 제설용 모래 자루 네 개가 나왔다⁠. 기봉이 이것을 끈으로 묶어 팔십 킬로그램을 만들었다⁠. 나는 이 앞에 섰다⁠. 손바닥이 저절로 먼지를 찾았다⁠.

“⁠언니⁠.⁠”

해미가 내 팔을 잡았다⁠. 간호조무사의 손이었다⁠. 힘이 셌다⁠.

“⁠아무것도 들지 마요⁠. 의사가 쌀 한 봉지도 들지 말랬어요⁠.⁠”

나는 모래 자루를 내려다보았다⁠. 팔십 킬로그램⁠, 사람 하나의 무게였다⁠. 이날 밤 나는 이것을 배에 붙였다⁠. 지금 내 허리는 이것을 들 수 없었다⁠. 열여섯 해 동안 들 수 없는 것 앞에서 나는 한 번도 물러난 적이 없었다⁠. 물러나는 법을 몰랐다⁠.

“⁠놓을게요⁠.⁠”

내가 말했다⁠. 해미의 손에서 힘이 조금 빠졌다⁠.

“⁠제가 안 들게요⁠. 대신 같이 걸을게요⁠.⁠”

탄과 기봉과 쉰 넘은 형님 둘이 모래 자루를 들어 대차에 실었다⁠. 이날 밤 광석 씨를 실었던 바로 이 대차였다⁠. 탄이 레일 위에 놓여 있던 기봉의 초시계를 집어 들고 버튼에 엄지를 얹었다⁠. 기봉이 이것을 보고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시작⁠.⁠”

대차가 정문 쪽으로 굴렀다⁠. 나는 이 옆에서 걸었다⁠. 왼다리는 여전히 다섯 걸음마다 바닥을 끌었다⁠. 대차는 나를 기다리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따라 걸었다⁠. 정문 통로 끝⁠, 구급차 진입로 노란 선 앞에서 대차가 멈췄다⁠.

“⁠육십사 초⁠.⁠”

탄이 말했다⁠. 감독관이 이것을 적었다⁠. 대차는 다시 13번으로 돌아왔다⁠.

“⁠이번엔 뒷문으로요⁠.⁠”

대차가 반대쪽으로⁠, 도크 서른두 개의 뒤편과 하역장 기둥 사이를 지나 컨테이너 휴게실 쪽으로 굴렀다⁠. 길이 꺾일 때마다 대차 바퀴가 바닥 이음매에 걸렸다⁠. 지게차 통로를 지날 때는 한 번 멈춰 서야 했다⁠. 이날 밤에도 지게차가 지나갔을 것이다⁠. 휴게실 문 앞에서 대차가 멈췄다⁠.

“⁠사 분 사십일 초⁠.⁠”

감독관은 이 숫자를 적고 나서 한참 펜을 멈추고 있었다⁠. 일 분과 사 분의 차이를 감독관은 숫자로 적었고⁠, 우리는 다리로 알았다⁠.

*

“⁠쓰러진 건 두 시 칠 분이었습니다⁠.⁠”

탄이 휴게실 문 앞⁠, 대차 옆 바로 이 자리에서 감독관에게 말했다⁠. 이날 감독관이 무릎을 꿇었던 바닥이었다⁠.

“⁠13번 위 전광판에 그 숫자가 떠 있었어요⁠. 구급대원 손이 아저씨 가슴에 닿을 때까지⁠, 서른 번 누르고 두 번 부는 걸 일흔여섯 번 했어요⁠.⁠”

“⁠파견 회사에서 두 시 십오 분이라고 서명하셨죠⁠.⁠”

“⁠네⁠. 제가 했어요⁠.⁠”

이 사람은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틀린 걸 알고 썼어요⁠. 체류 연장 서류 때문에요⁠. 소장님이 그거 서명하면 재직 확인서 바로 준다고 했어요⁠. 지금 그 서명은 제가 뒤집을게요⁠. 두 시 십오 분은 틀렸어요⁠. 두 시 칠 분이 맞아요⁠.⁠”

감독관이 고개를 들어 엄평구를 보았다⁠. 엄평구는 파견 회사 소장이 한 일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경비 반장님이 앞으로 나왔다⁠. 모자를 벗어 손에 쥐었다⁠. 흰머리가 귀를 덮었다⁠.

“⁠두 시 십삼 분에 경비실 내선 전화가 울렸어요⁠. 반장 목소리였어요⁠. 센터장님 지시라고⁠, 사설 구급차 부르고 119 오면 뒷문으로 보내라고⁠. 나는 그대로 했어요⁠. 119가 정문에 섰을 때 내가 뒷문으로 돌려보냈어요⁠. 그거 칠 분 걸렸어요⁠.⁠”

이 사람은 모자를 다시 썼다⁠.

“⁠그 칠 분⁠, 내가 보냈어요⁠.⁠”

기봉은 반장 조끼를 벗어 손에 들고 섰다⁠. 감독관을 보지 않고 광석 씨를 보았다⁠.

“⁠열한 시 칠 분에 노광석 씨가 가슴이 조인다고 집에 보내 달라고 했습니다⁠. 제가 무전으로 센터장님께 올렸고⁠, 센터장님이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성수기에 빠지면 다음 주 배정이 없다고⁠. 두 시 팔 분에 제가 119 부를까요 여쭸고⁠, 센터장님이 부르지 말라 하셨습니다⁠. 구급차 기록이 남는다고⁠. 회사에 낸 진술서는 센터장님이 쓰라는 대로 썼습니다⁠. 그것도 뒤집겠습니다⁠.⁠”

이 사람의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다⁠. 다 외운 사람처럼 또박또박했다⁠. 그러나 누가 써 준 문장이 아니었다⁠.

감독관이 공삼분 언니를 보았다⁠. 언니는 파스 붙인 무릎을 손으로 짚고 섰다⁠. 목을 가다듬었다⁠. 노래하기 전의 이 소리였다⁠.

“⁠노래 말고 말로 해 주세요⁠.⁠”

감독관이 말했다⁠. 언니가 입을 다물었다가 다시 열었다⁠.

“⁠노래로 하믄 안 되나⁠. 내가 말로 하믄 버벅댄다⁠.⁠”

“⁠말로요⁠.⁠”

“⁠알았다⁠, 말로 한다⁠.⁠”

언니는 숨을 한 번 들이쉬었다⁠. 그리고 가락 없이⁠, 꺾지도 늘이지도 않고⁠, 이날 밤 채널 2에서 들은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말했다⁠. 열한 시 칠 분⁠, 두 시 칠 분⁠, 두 시 팔 분⁠, 두 시 십이 분⁠. 말로 하니 노래보다 짧았다⁠. 다 말하고 나서 엄평구를 보았다⁠.

“⁠평구야⁠, 미안하다⁠. 니한테 진 빚은 이걸로 못 갚는다⁠.⁠”

마지막으로 광석 씨가 지팡이를 한 걸음 앞으로 짚었다⁠. 해미가 광석 씨의 팔을 놓으려 하자 광석 씨가 고개를 저었다⁠. 광석 씨는 딸의 손을 그대로 둔 채 감독관을 보았다⁠.

“⁠나는⁠…⁠… 두 해 전에 협심증 받았어⁠. 약 끊었어⁠. 채용 때 안 적었어⁠. 그건 내가 숨긴 거여⁠.⁠”

숨을 쉬었다⁠.

“⁠그라고 그날⁠…⁠… 열한 시에 집에 가려고 했어⁠. 못 갔어⁠. 둘 다⁠…⁠… 적어 줘요⁠.⁠”

감독관은 이 두 가지를 다 적었다⁠. 적는 동안 펜이 한 번 멈췄다⁠. 해미의 손가락이 아버지 팔뚝을 꽉 쥐었다⁠. 이 사람은 울지 않았다⁠. 대신 감독관에게 또렷하게 말했다⁠.

“⁠아빠가 숨긴 건 산재 서류에 제가 이미 썼어요⁠. 숨긴 사람이 잘못한 거랑 못 가게 한 사람이 잘못한 거⁠, 둘 다 따로 봐 주세요⁠.⁠”

*

조사가 길어지는 동안 차단기 앞의 대체 인력들은 추위에 발을 굴렀다⁠. 공삼분 언니가 휴게실에서 식은 치킨 상자 세 개를 들고 파스 붙인 무릎을 절며 그쪽으로 걸어갔다⁠.

“⁠묵어라⁠. 식어도 치킨이다⁠.⁠”

스무 살 남짓한 남자애 하나가 머뭇거리다 다리 하나를 집었다⁠.

“⁠저희 오늘 일당 나와요⁠?⁠”

“⁠그건 평구한테 물어라⁠. 근데 니 처음이제⁠. 오늘 저 레일 앞에 섰으면 내일 아침에 허리 펴지지도 않았다⁠. 치킨 묵고 집에 가는 기 남는 장사다⁠.⁠”

“⁠아줌마는 왜 일 안 해요⁠?⁠”

“⁠아줌마 아이고 언니다⁠. 그라고 우리는 지금 일하는 중이다⁠. 안 드는 일⁠.⁠”

남자애들이 무슨 말인지 몰라 서로를 보았다⁠. 언니는 이 앞에서 강아지 사료 봉지 하나를 들어 올렸다가 앞으로 툭 던지고 발을 뒤로 빼 보였다⁠. 국가대표 강습 제이 강⁠, 놓는 법이라고 했다⁠. 남자애 하나가 따라 했다⁠. 버스 기사가 운전석에서 이것을 보고 웃었다⁠. 감독관이 그쪽을 돌아보고⁠, 펜 끝으로 이마를 긁었다⁠.

*

“⁠감독관님⁠.⁠”

엄평구가 말했다⁠. 목소리가 다시 낮고 부드러워져 있었다⁠.

“⁠육지숙 씨는 마약성 진통제를 한 시간에 한 번씩 먹으면서 일했습니다⁠. 응급실 기록에 있을 거예요⁠. 그날 밤 이 사람이 본 시각이⁠, 이 사람 판단이 정상이었는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은 배정이 끊긴 적이 있어요⁠. 회사에 앙심이 있을 수 있죠⁠.⁠”

해미가 뭔가 말하려 했다⁠. 나는 해미의 손을 잡았다⁠.

“⁠맞습니다⁠.⁠”

내가 말했다⁠. 마흔다섯 명이 나를 보았다⁠.

“⁠진통제 먹었습니다⁠. 사 년 동안 숨겼습니다⁠. 그날 밤에도 먹었어요⁠. 그런데 전광판 숫자는 탄이 봤고⁠, 무전은 반장님이 했고⁠, 전화는 경비 반장님이 받았고⁠, 길은 방금 다 같이 걸었어요⁠. 제 허리 말고 다른 데서 다 나왔어요⁠.⁠”

감독관이 펜을 내려놓았다⁠. 엄평구의 눈이 나에게 왔다⁠. 감독관에게 고개를 숙였다⁠.

“⁠지숙 씨하고 잠깐 이야기해도 될까요⁠? 둘이서요⁠.⁠”

감독관이 나를 보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13번 컨테이너 안은 정문 앞보다 공기가 한 겹 더 찼다⁠. 무너진 상자 더미에서 흘러나온 생수가 고양이 모래와 섞여 바닥이 미끄러웠다⁠. 형광등 빛이 입구에서 끊겨 안쪽은 어두웠다⁠. 엄평구는 이 어둠 쪽에 섰다⁠.

“⁠산재는 회사가 인정하게 할게요⁠.⁠”

엄평구가 말했다⁠.

“⁠노광석 씨 치료비⁠, 재활비 회사가 다 내요⁠. 해미 씨 학자금 남은 거⁠, 그것도 내가 어떻게든 할게요⁠. 응우옌 씨 재직 확인은 내가 직접 출입국에 써요⁠. 기봉이 대출 서류도⁠. 지숙 씨 수술비도⁠.⁠”

“⁠대신요⁠.⁠”

“⁠두 시 팔 분 무전은 빼 줘요⁠. 열한 시는 넣어도 돼요⁠. 그건 판단 실수예요⁠. 근데 두 시 팔 분이 들어가면 그건 사고가 아니라 사건이에요⁠. 나는 경찰서 가요⁠.⁠”

이 사람은 어둠 속에서 내 어깨 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이 손이 내 어깨에 닿기 전에 멈췄다⁠.

“⁠나도 여기서 상자 내렸어요⁠, 지숙 씨⁠. 스무 해 전에⁠. 13번에서⁠. 허리 여기서 버렸어요⁠. 그래서 숫자를 맞췄어요⁠. 숫자를 맞춰야 이 사람들이 남으니까⁠. 그게 틀렸어요⁠?⁠”

“⁠틀렸어요⁠.⁠”

내가 말했다⁠. 내 목소리가 컨테이너 벽에 부딪혀 돌아왔다⁠.

“⁠숫자는 맞추셨어요⁠. 사람은 못 맞추셨어요⁠. 그리고 저는 아저씨한테 둘 다 말하기로 했어요⁠. 숨긴 것도⁠, 집에 가려고 했던 것도⁠. 센터장님 것도 둘 다예요⁠. 열한 시 칠 분하고 두 시 팔 분⁠, 그 둘 다요⁠.⁠”

엄평구는 내민 손을 거두었다⁠. 어둠 속에서 엄평구의 숨소리만 오래 들렸다⁠. 그러다 엄평구가 컨테이너 입구 쪽으로 걸어 나갔다⁠. 나는 다리를 끌며 뒤를 따랐다⁠.

*

감독관 앞에 선 엄평구는 점퍼 지퍼를 끝까지 올렸다⁠. 마흔다섯 명과 광석 씨와 해미와 경비 반장님과 대체 인력 버스에서 내린 낯선 얼굴들이 엄평구를 보았다⁠.

“⁠그날 밤 뒷문으로 옮기라고 한 건 접니다⁠.⁠”

이 사람이 말했다⁠.

“⁠119 부르지 말라고 한 것도 접니다⁠. 열한 시에 노광석 씨 못 보내게 한 것도 접니다⁠. 반장한테 진술서 쓰게 한 것도⁠.⁠”

이 사람은 광석 씨를 보았다⁠. 광석 씨는 지팡이를 쥔 손을 떨면서 광석 씨를 마주 보았다⁠. 엄평구가 고개를 숙였다⁠. 오래 숙이지는 않았다⁠. 기봉이 반장 조끼를 쥔 손을 천천히 내렸고⁠, 경비 반장님이 모자챙을 한 번 만졌다⁠. 이 사이에 대체 인력 버스 기사가 시동을 껐다⁠. 고개를 든 엄평구가 나를 돌아보았다⁠. 엄평구의 얼굴에 이상하게도 웃음 비슷한 것이 걸려 있었다⁠.

“⁠지숙 씨⁠, 이겼네요⁠.⁠”

엄평구가 말했다⁠.

“⁠근데 본사가 뭘 하려는지 알아요⁠?⁠”

11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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