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492자)

우리가 죽는 영상

몬스터와 출연 계약을 맺은 망한 웹예능 PD · 한빛결

편집실 모니터 두 대에 같은 장면이 떠 있었다⁠. 녹슨 조명 스탠드⁠, 「⁠헌터 직진 · 미술팀⁠」 장비 상자⁠, 빨간 소 그림 컵라면 상자⁠, 벽의 그을음⁠. 조연출은 십팔 분짜리로 잘랐다⁠. 내레이션은 넣지 않았다⁠. 우두머리의 목소리와 호석의 목소리만 남겼다⁠. 「⁠자⁠, 고블린 들어오세요⁠.⁠」 「⁠우리 둘 다 같은 일 해요⁠.⁠」 두 목소리 사이에 콜시트 종이를 한 장씩 넘기는 손을 끼웠다⁠.

썸네일은 이번에도 노란 글씨였다⁠. 「⁠헌터 직진은 연출이었다⁠」 빨간 화살표는 없었다⁠. 조연출이 화살표를 넣었다가 뺐다⁠.

“⁠화살표는요⁠, 가리킬 게 있을 때 넣는 거예요⁠.⁠” 조연출이 빨대를 씹었다⁠. “⁠이건 다 가리키고 있어서 넣을 데가 없어요⁠.⁠”

태랑은 의자를 뒤로 젖혀 천장을 보았다⁠. 천장의 형광등 하나가 가늘게 떨렸다⁠. 4월 29일 밤 열한 시였다⁠. 대표의 마감까지 하루가 남아 있었다⁠.

“⁠올리면 몇 회 갈 것 같아⁠?⁠”

“⁠이천만은 기본이요⁠. 뉴스가 받아 주면 오천⁠.⁠” 조연출이 모니터를 손가락으로 톡톡 쳤다⁠. “⁠선배⁠, 이거 하나면 대표님 삼억 넘어요⁠. 광고 안 붙어도요⁠. 방송사 하나 무너지는 영상은 다른 방송사들이 사러 와요⁠.⁠”

편집실 문이 열렸다⁠. 대표가 휴대전화를 귀에 댄 채 들어왔다⁠. 통화를 끊고 모니터를 보았다⁠. 「⁠헌터 직진은 연출이었다⁠」 대표의 얼굴에서 볼 안쪽이 크게 부풀었다⁠.

“⁠이거 뭐야⁠?⁠”

“⁠목요일에 찍은 거요⁠.⁠”

“⁠방금 엄 국장 전화였어⁠. 오억 준대⁠. 마감은 5월 10일로 미뤄 주고⁠.⁠” 대표가 손바닥으로 모니터 하나를 덮었다⁠. 손바닥 사이로 노란 글씨가 비어져 나왔다⁠. “⁠조건이 하나야⁠. 그 전에 아무것도 안 올라오면⁠. 이거 올라가면 오억이 날아가⁠. 오억이 날아가면 이 회사도 날아가⁠.⁠”

“⁠이거 올리면 방송사들이 사러 온대요⁠.⁠”

“⁠누가 그래⁠?⁠”

조연출이 빨대를 든 손을 들었다⁠. 대표는 조연출을 보다가 태랑을 보았다⁠.

“⁠태랑아⁠. 이건 웹예능이 아니야⁠. 이건 소송이야⁠. 방송사가 우리 상대로 변호사 열 명 붙이면 우리는 김밥값도 없어⁠.⁠”

태랑은 대표의 손바닥 밑에서 모니터를 빼냈다⁠.

“⁠안 올려요⁠. 아직은⁠.⁠”

“⁠아직은⁠?⁠”

“⁠출연자한테 먼저 물어볼 거예요⁠. 찍힌 건 고블린들이에요⁠.⁠”

*

5월 1일 낮⁠, 태랑은 노트북을 들고 던전 지하 1층에 앉았다⁠. 우두머리가 맞은편 돌 위에 앉았고⁠, 막내가 우두머리 무릎 옆에 쪼그렸다⁠. 막내는 목요일 이후로 할머니 휴대전화를 들고 다니지 않았다⁠. 「⁠막내 고블린⁠」 계정은 사흘째 새 영상이 없었고⁠, 팔로워 구십만이 댓글로 막내를 찾았다⁠. 「⁠막내 어디 감⁠」 「⁠막내야 밥은 먹었니⁠」

십팔 분이 흘렀다⁠. 우두머리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호석의 「⁠자⁠, 고블린 들어오세요⁠」가 나올 때 막내가 우두머리의 털 망토 자락을 쥐었다⁠. 화면이 꺼지자 우두머리가 노트북 뚜껑을 손가락 하나로 덮었다⁠.

“⁠올리지 않는다⁠.⁠”

태랑은 덮인 뚜껑을 내려다보았다⁠.

“⁠이거 올리면 협회가 토벌 못 해요⁠. 사람들이 화를 내요⁠. 방송사도 협회도 여러분한테 손 못 대요⁠.⁠”

“⁠보는 인간이 화가 나면⁠, 그다음은 무엇인가⁠?⁠”

“⁠방송사가 사과하고⁠, 협회가 감사받고⁠.⁠”

“⁠헌터들은⁠?⁠”

태랑은 대답하지 못했다⁠. 우두머리가 노트북을 태랑 무릎 위로 밀었다⁠.

“⁠헌터들이 일을 잃는다⁠. 일을 잃은 헌터는 화가 난다⁠. 화난 헌터는⁠, 카메라 없이 온다⁠.⁠” 우두머리가 아래층 계단을 돌아보았다⁠. “⁠카메라가 있을 때 우리는⁠, 정해진 때에 쓰러졌다⁠. 카메라가 없으면⁠, 정해진 때가 없다⁠.⁠”

“⁠그럼 계속 숨어요⁠? 봉인 날까지⁠?⁠”

“⁠땅을 산다⁠. 위의 밭⁠. 그것만 한다⁠.⁠”

“⁠땅 살 돈이 이 영상에 있다니까요⁠.⁠”

“⁠이 영상에는⁠, 쓰러진 것들이 있다⁠.⁠” 우두머리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갈라졌다⁠. 내레이션의 고른 끝이 무너지고⁠, 거친 숨이 섞였다⁠. “⁠쓰러진 것들의 얼굴을 천만 명이 보면⁠, 쓰러진 것들은 천만 번 쓰러진다⁠. 우두머리는⁠, 우리가 죽는 영상은⁠, 이제 그만 찍는다⁠.⁠”

동굴 천장에서 물방울이 떨어졌다⁠. 막내가 털 망토 자락을 놓지 않았다⁠. 태랑은 노트북을 닫은 채 무릎 위에 올려 두었다⁠. 노트북의 열기가 바지 천을 뚫고 올라왔다⁠.

“⁠출연자 허락 없이는 안 올려요⁠. 약속해요⁠.⁠”

“⁠국물로⁠?⁠”

“⁠지금 국물 없어요⁠.⁠”

막내가 일어나 동굴 구석의 버섯 굽는 돌판으로 갔다⁠. 식은 버섯 국물이 고인 돌판을 두 손으로 들고 왔다⁠. 국물에서 흙냄새가 올라왔다⁠. 태랑은 엄지를 버섯 국물에 찍어 노트북 뚜껑에 눌렀다⁠. 우두머리도 엄지를 찍어 옆에 눌렀다⁠. 노트북 뚜껑에 갈색 지문 둘이 나란히 남았다⁠.

“⁠이거 이제 못 지워요⁠. 노트북 커버 새로 사야 돼요⁠.⁠”

“⁠새로 사라⁠.⁠”

“⁠돈이 없어요⁠.⁠”

“⁠그러면⁠, 지우지 마라⁠.⁠”

태랑은 콜시트 묶음을 우두머리에게 돌려주었다⁠. 맨 위의 한 장⁠, 「⁠시즌 7 · 연출 엄호석⁠」이 인쇄된 종이만 접어 조끼 안주머니에 넣었다⁠. 국물 손도장 계약서와 할머니의 밭 계약서 사이였다⁠. 우두머리는 태랑의 손을 보았지만 막지 않았다⁠.

*

오후에는 깨밭에 올라갔다⁠. 할머니가 고랑을 다시 타고 있었고⁠, 고블린 스물하나가 할머니 뒤를 따라 돌을 골라냈다⁠. 우두머리는 할머니의 낡은 경운기를 밀었다⁠. 시동이 걸리지 않는 경운기였다⁠. 할머니가 손잡이를 잡고 방향을 틀면 우두머리가 뒤에서 밀었고⁠, 경운기는 시동이 걸린 것처럼 고랑을 따라 굴러갔다⁠.

“⁠큰놈 힘 좋다⁠. 기름값이 안 들어⁠.⁠”

“⁠우두머리는⁠, 기름이 아니다⁠.⁠”

“⁠기름보다 낫다니까⁠.⁠”

할머니가 고랑 끝에서 경운기를 세우고 태랑을 불렀다⁠. 장갑 낀 손으로 땀을 훔쳤다⁠.

“⁠짧은 머리 여자가 또 왔어⁠. 이억 오천 부르더라⁠. 초소 옮기는 데 그렇게 쓸 돈이 있나 봐⁠.⁠”

“⁠안 파셨죠⁠?⁠”

“⁠5월 마지막 날까지는 안 판다고 했잖아⁠. 말 두 번 하게 하지 마⁠.⁠” 할머니가 휴대전화를 꺼내 화면을 보여 주었다⁠. 텔레비전 뉴스를 찍은 사진이었다⁠. 「⁠해외 언론⁠, 한국 고블린 브이로그 잇따라 조명 … 헌터 협회 본부 “⁠몬스터 미화 우려⁠”⁠」 “⁠손주가 보내 줬어⁠. 외국 신문에 우리 밭이 나왔대⁠. 깨밭이 외국 신문에 나온 건 처음이야⁠.⁠”

“⁠사천육백은 꼭 가져올게요⁠.⁠”

“⁠꼭은 돈이 아니라니까⁠.⁠” 할머니가 경운기 손잡이를 다시 잡았다⁠. 우두머리가 뒤에 붙었다⁠. “⁠큰놈⁠, 가자⁠.⁠”

경운기가 고랑을 따라 멀어졌다⁠. 우두머리의 털 망토 자락에 마른 흙이 들러붙어 있었다⁠. 막내는 밭 가장자리 경계 돌 위에 앉아 둘을 보았다⁠. 휴대전화를 꺼내 녹화 단추에 손가락을 올렸다가 내렸다⁠.

*

밤 열한 시⁠, 초소 컨테이너 앞에 접이식 의자 두 개가 나와 있었다⁠. 신입 헌터가 캔커피 두 개를 들고 앉아 있었다⁠. 하나를 태랑에게 내밀었다⁠. 차가운 캔에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지부장님 퇴근하셨어요⁠. 저 혼자 야간이에요⁠.⁠”

“⁠무섭지 않아요⁠?⁠”

“⁠무섭죠⁠. 그래서 커피 마셔요⁠. 졸면 더 무서우니까⁠.⁠”

둘은 한동안 캔커피만 마셨다⁠. 펜스 너머 하얀 돌 입구가 달빛에 희끄무레하게 떠 있었다⁠. 신입 헌터가 휴대전화를 꺼내 화면을 보여 주었다⁠. 「⁠막내 고블린⁠」 계정이 신입 헌터를 태그한 옛 영상이었다⁠. 방패 줄다리기 장면이었다⁠. 화면 아래에 신입 헌터의 팔로워 숫자가 떠 있었다⁠. 삼만 이천⁠.

“⁠지난달까지 천이백이었어요⁠. 막내가 태그해 줘서⁠. 엄마가 동네 사람들한테 자랑해요⁠. 우리 아들 고블린이랑 맞팔한다고⁠.⁠”

“⁠좋네요⁠.⁠”

“⁠좋죠⁠. 근데 다음 주에 토벌이에요⁠.⁠” 신입 헌터가 캔을 손바닥 사이에서 굴렸다⁠. “⁠맞팔한 애를 제가 방패로 밀어야 돼요⁠.⁠”

태랑은 캔을 의자 다리 옆에 내려놓았다⁠.

“⁠국장님이 그러던데요⁠. 마지막 시즌에 단역 하셨다고⁠.⁠”

신입 헌터의 손에서 캔 굴리는 소리가 멈췄다⁠. 한참 뒤에 다시 굴렀다⁠.

“⁠스무 살 때요⁠. 헌터 학원 끝나고 첫 일이었어요⁠. 일당 삼십⁠. 전기 막대 들고 뛰어 들어가서 고블린 세 마리를 쓰러뜨렸어요⁠. 쓰러뜨렸다기보다 걔들이 알아서 쓰러졌어요⁠. 막대 끝이 닿기도 전에요⁠. 나중에 그게 이상해서 스태프한테 물어봤는데⁠, 원래 그렇게 하는 거래요⁠. 쓰러진 애들은 보호 시설로 간다고⁠.⁠” 신입 헌터가 캔을 내려다보았다⁠. “⁠저는 그 말 믿었어요⁠. 믿는 게 편했으니까⁠.⁠”

“⁠지금은요⁠?⁠”

“⁠지금은 PD님 영상을 봤으니까요⁠.⁠” 신입 헌터가 고개를 들었다⁠. 눈이 빨갰다⁠. “⁠PD님⁠, 그거 올리실 거예요⁠? 아래층 거요⁠. 지부장님이 그러셨어요⁠. PD님이 뭘 찍었다고⁠.⁠”

“⁠안 올려요⁠. 우두머리가 싫대요⁠.⁠”

“⁠고블린이요⁠?⁠”

“⁠네⁠.⁠”

신입 헌터는 캔커피를 끝까지 마셨다⁠. 빈 캔을 찌그러뜨리지 않고 의자 밑에 반듯이 세워 두었다⁠.

“⁠그거 터지면 저 헌터 못 해요⁠. 저 할 줄 아는 게 방패 드는 거 하나예요⁠. 대출이 아직 천칠백 남았어요⁠.⁠” 신입 헌터가 펜스를 보았다⁠. “⁠근데 막내한테는 미안해요⁠. 걔가 쓰러진 애들 중에 누구 동생이었는지도 모르잖아요⁠.⁠”

펜스 아래 틈에서 초록 머리 하나가 빼꼼 나왔다⁠. 붉은 두건이었다⁠. 막내가 할머니 휴대전화를 들고 있었다⁠. 사흘 만이었다⁠. 화면을 신입 헌터 쪽으로 돌리고 녹화 단추를 눌렀다⁠.

“⁠형⁠. 커피 나도⁠.⁠”

신입 헌터가 일어나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갔다⁠. 냉장고 문 여는 소리가 나고⁠, 캔 하나를 들고 나왔다⁠. 펜스 틈으로 캔을 밀어 넣었다⁠. 막내가 캔을 받아 들고 따는 법을 몰라 이빨로 깨물었다⁠. 캔에서 커피가 분수처럼 솟았다⁠.

“⁠아⁠, 킹받네⁠.⁠”

신입 헌터가 처음으로 소리 내어 웃었다⁠. 막내는 커피를 뒤집어쓴 채 캔을 핥고⁠, 핥다가 녹화 화면을 돌려 제 얼굴을 확인했다⁠. 두건이 커피에 젖어 검붉게 변해 있었다⁠.

“⁠이거 올림⁠. 제목은 「⁠헌터 형이 준 커피 폭발함⁠」⁠”

“⁠올리지 마⁠. 나 근무 중이야⁠.⁠”

“⁠근무 중인 형이 제일 웃김⁠.⁠”

*

조연출의 반지하 방에 새벽 한 시가 되도록 불이 켜져 있었다⁠. 노트북 옆에 외장 하드 하나가 놓여 있었다⁠. 「⁠파주 원본⁠」이라고 매직으로 쓴 흰 테이프가 붙어 있었다⁠. 첫 촬영부터 라이브까지⁠, 드론 지도와 아래층 복도까지 전부 들어 있는 하드였다⁠.

메일이 왔다⁠. 보낸 사람은 방송사 인사팀이었다⁠.

「⁠조연출 정규직 채용 확정 안내⁠. 입사 확정 조건 — 파주 제7 폐던전 관련 촬영 원본 일체(⁠드론 촬영분 포함⁠) 제출⁠. 제출 기한 5월 12일⁠.⁠」

조연출은 메일을 두 번 읽고⁠, 외장 하드를 손바닥으로 덮었다⁠. 하드가 아직 따뜻했다⁠. 벽지의 들뜬 자리 아래로 검은 점이 지난달보다 한 뼘 넓어져 있었다⁠. 창문 너머 골목에서 배달 오토바이가 지나갔다⁠. 바퀴 소리가 창틀을 흔들고 멀어졌다⁠. 조연출은 하드를 덮은 손을 떼지 않았다⁠.

한참 뒤에 노트북으로 드론 촬영분을 열었다⁠. 지하 1층의 지도가 선으로 그려진 화면이었다⁠. 버섯이 자라는 벽⁠, 물웅덩이⁠, 고블린들이 자는 마른 풀더미⁠, 흙 굴로 이어지는 벽 위쪽의 틈⁠. 선은 아래층 계단 앞 바위에서 끊겨 있었다⁠. 바위 앞에 우두머리가 등을 기대고 앉아 드론을 올려다보던 장면이 나왔다⁠. 「⁠아래는⁠, 날지 않는다⁠.⁠」 「⁠네⁠, 안 날아요⁠. 약속⁠.⁠」 제 목소리가 노트북 스피커에서 가늘게 흘러나왔다⁠.

조연출은 휴대전화를 들어 태랑과의 대화방을 열었다⁠. 「⁠선배 저⁠」까지 쓰고 손가락을 멈췄다⁠. 커서가 깜박였다⁠. 지우고⁠, 다시 「⁠선배⁠」까지 쓰고⁠, 다시 지웠다⁠. 대화방 맨 아래에는 저녁에 태랑이 보낸 사진이 남아 있었다⁠. 커피를 뒤집어쓴 막내와 웃는 신입 헌터였다⁠. 조연출은 사진에 하트를 누르고 휴대전화를 엎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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