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404자)

고블린 땅 사 주기

몬스터와 출연 계약을 맺은 망한 웹예능 PD · 한빛결

라이브는 4월 셋째 토요일 밤 여덟 시였다⁠. 펜스 앞 공터에 대표가 접이식 천막을 쳤다⁠. 천막 안에 노트북 세 대와 조명 두 개⁠, 김밥 다섯 줄이 놓였다⁠. 대표는 천막 기둥을 붙잡고 서서 태랑에게 휴대전화 화면을 들이밀었다⁠. 라이브 설정 화면이었다⁠. 「⁠후원금 입금 계좌⁠」 칸에 제작사 법인 계좌 번호가 적혀 있었다⁠.

“⁠이걸로 해⁠. 회사 계좌⁠.⁠”

“⁠고블린 땅 통장으로 해요⁠. 제 이름으로 하나 만들었어요⁠.⁠”

“⁠후원도 매출이야⁠. 매출은 회사로 들어와야 돼⁠.⁠”

“⁠출연료예요⁠.⁠” 태랑이 대표의 휴대전화를 받아 계좌 번호를 지웠다⁠. 「⁠고블린 땅 사 주기 · 길태랑⁠」 새로 판 통장 번호를 하나씩 눌러 넣었다⁠. “⁠우두머리가 출연료를 땅으로 달랬어요⁠. 이 돈은 땅 사는 데만 써요⁠. 회사 빚 갚는 데는 한 푼도 안 써요⁠.⁠”

“⁠너 그거 회사 채널에서 하는 라이브야⁠.⁠”

“⁠그러니까 회사 채널에 제 이름 통장이 뜨는 거죠⁠. 사람들이 보고 있으니까 저도 딴 데 못 써요⁠.⁠”

대표는 볼 안쪽을 혀로 밀었다⁠. 한참 밀다가 김밥 한 줄을 집어 은박지째 베어 물었다⁠. 은박지 씹는 소리가 났다⁠. 대표는 은박지를 퉤 뱉고 천막 밖으로 나갔다⁠. 조연출이 노트북 앞에서 고개도 들지 않고 말했다⁠.

“⁠선배⁠, 방금 대표님 표정 썸네일감이에요⁠. 은박지 씹은 얼굴⁠.⁠”

“⁠그거 진짜로 쓰면 해고야⁠.⁠”

“⁠해고되려면 월급부터 줘야죠⁠.⁠”

*

여덟 시 정각에 「⁠고블린 땅 사 주기 라이브⁠」가 켜졌다⁠. 짐벌이 펜스 틈으로 들어가 덩굴 덮인 하얀 돌 입구를 지나고⁠, 조명이 동굴 안을 밝혔다⁠. 고블린 스물하나가 지하 1층에 줄지어 앉아 있었다⁠. 맨 앞줄의 쇠 투구 고블린은 투구가 눈을 덮는 바람에 카메라가 어디 있는지 몰라 엉뚱한 벽에 대고 브이를 그렸다⁠.

동시 접속자 숫자가 화면 귀퉁이에서 뛰었다⁠. 이만⁠, 팔만⁠, 이십만⁠. 아홉 시가 되자 사십만을 넘었다⁠. 채팅창이 위로 쏟아졌다⁠. 「⁠쇠 투구 벽에다 브이 하는 거 실화냐⁠」 「⁠고블린 땅 한 평 보탭니다⁠」 「⁠from Mexico⁠: 50 pesos for goblin land⁠」 「⁠할머니 밭 사백 평 맞음⁠? 지도 앱으로 봤는데 생각보다 큼⁠」 채팅 사이로 후원 알림이 노란 띠로 지나갔다⁠. 「⁠1⁠,000원 · 고블린 집 장만 기원⁠」 「⁠50⁠,000원 · 우두머리 궁서체 자막 사랑합니다⁠」 「⁠100⁠,000원 · 헌터인데요 저도 보탬 회사엔 비밀⁠」

조연출은 노트북 앞에서 후원 금액을 소리 내어 읽었다⁠. 숫자를 하나 읽을 때마다 빨대를 한 번씩 씹었다⁠. 열한 시 무렵에는 빨대가 남아나지 않았다⁠.

열 시에는 장기 자랑을 했다⁠. 조연출이 짠 순서였다⁠. 쇠 투구 고블린이 버섯 세 개로 저글링을 하다가 투구가 눈까지 내려와 앞을 못 보고⁠, 떨어지는 버섯을 전부 투구로 받았다⁠. 버섯이 투구에 맞을 때마다 땡⁠, 땡 소리가 났다⁠. 채팅창이 웃음 글자로 뒤덮였다⁠. 우두머리는 장기 자랑에 나오지 않고 안쪽 바위 앞에 앉아⁠, 고블린이 하나씩 나올 때마다 내레이션을 붙였다⁠.

“⁠세 번째 고블린은⁠, 버섯을 사랑한다⁠. 그러나 버섯은⁠, 투구를 사랑한다⁠.⁠”

노란 후원 띠가 세 줄 연달아 지나갔다⁠. 「⁠우두머리 해설 정규 편성 가자⁠」 천막 밖에서 담배를 피우던 대표가 후원 알림 소리에 고개를 들이밀었다⁠. 노트북 화면의 합계를 보더니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 낀 채 한참 서 있었다⁠. 담뱃재가 길게 늘어졌다가 운동화 코에 떨어졌다⁠.

막내는 라이브 내내 화면 밖에 있었다⁠. 천막 뒤 의자에 할머니가 앉아 있었고⁠, 막내는 할머니 무릎 옆에 쪼그려 앉아 할머니 휴대전화를 들여다보았다⁠. 할머니는 고블린이 무릎에 기대도 쫓지 않았다⁠. 대신 휴대전화 글씨를 크게 키우는 법을 막내에게 물었다⁠. 막내는 손가락 두 개로 화면을 벌려 보였다⁠.

“⁠이렇게 하면 커짐⁠.⁠”

“⁠오⁠, 커지네⁠. 너 똑똑하다⁠.⁠”

“⁠할머니⁠, 이거 잠깐 빌려 감⁠?⁠”

할머니가 대답하기 전에 막내는 휴대전화를 들고 천막 기둥 뒤로 사라졌다⁠. 이십 분 뒤 조연출의 노트북에 알림이 떴다⁠. 숏폼 플랫폼이었다⁠. 「⁠새 계정 · 막내 고블린 · 첫 영상 업로드⁠」 영상 속에서 막내가 할머니 휴대전화를 셀카 모드로 들고 천막 안의 인간들을 찍고 있었다⁠. 인간들이 화면 밖의 고블린에게 브이를 그릴 때마다 막내가 손을 뻗어 손가락 각도를 고쳤다⁠. 자막은 막내가 손가락으로 직접 썼다⁠. 「⁠인간들 브이 각도 교정해 줌 ㅋ⁠」

“⁠계정은 어떻게 만들었어⁠?⁠”

“⁠할머니 번호로 인증함⁠.⁠”

할머니가 천막 기둥 뒤에서 소리를 질렀다⁠.

“⁠내 번호로 뭘 했다고⁠?⁠”

*

열한 시 사십 분⁠, 산길 아래에서 차 불빛이 올라왔다⁠. 승합차 두 대였다⁠. 앞 차 옆구리에 방송사 로고가 붙어 있었다⁠. 촬영팀 넷이 내려 펜스 앞에 조명을 세웠고⁠, 뒷좌석에서 엄호석이 내렸다⁠. 신입 헌터가 방패를 들고 호석을 따라 걸어왔다⁠.

조연출이 노트북 화면을 가리켰다⁠. 채팅창이 한 번 멈췄다가 두 배로 빨라졌다⁠. 「⁠국장 왔다⁠」 「⁠이거 각본임⁠?⁠」 「⁠헌터 직진 국장 맞음⁠」

호석은 짐벌 렌즈 앞까지 걸어왔다⁠. 왼다리를 끌었지만 걸음은 망설이지 않았다⁠. 렌즈 앞에서 목례를 했다⁠.

“⁠라이브 중에 실례합니다⁠. 방송사 예능국 엄호석입니다⁠. 「⁠헌터 직진⁠」 마지막 시즌 예고를 찍으러 왔는데⁠, 마침 켜져 있길래요⁠.⁠”

“⁠지금 생방송이에요⁠, 국장님⁠.⁠”

“⁠알아요⁠. 그래서 왔어요⁠.⁠” 호석이 펜스 너머 어둠을 보았다⁠. “⁠우두머리를 만나고 싶어요⁠. 얼굴 보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태랑은 짐벌을 돌려 동굴 안을 비췄다⁠. 고블린 스물하나가 앉아 있던 자리에서 몇이 일어나 뒤로 물러났다⁠. 조명이 닿지 않는 안쪽 바위 뒤에서 목소리가 났다⁠. 우두머리였다⁠. 내레이션처럼 끝을 길게 내리던 목소리가 오늘은 짧게 끊겼다⁠.

“⁠우두머리는⁠, 지금 바쁘다⁠.⁠”

“⁠잠깐이면 됩니다⁠.⁠”

“⁠바쁘다⁠.⁠”

바위 뒤에서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태랑은 바위 끝에 걸쳐 있는 털 망토 자락을 보았다⁠. 망토 끝이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동굴 안에는 바람이 없었다⁠.

호석은 고개를 끄덕이고 렌즈를 향해 몸을 돌렸다⁠. 신입 헌터를 손짓으로 불러 제 옆에 세웠다⁠. 신입 헌터는 방패를 앞으로 들어 몸을 반쯤 가렸다⁠.

“⁠시청자 여러분⁠, 이 친구는 다음 달 이 던전에서 첫 토벌을 합니다⁠. 헌터 학원 대출이 이천만 원이에요⁠. 새 문이 안 열린 지 삼 년이라⁠, 이번 봉인 정리가 이 친구가 올해 받는 일당의 대부분입니다⁠. 저 고블린들이 귀여운 거 압니다⁠. 저도 봤어요⁠. 근데 저 고블린들이 귀여워지는 만큼⁠, 이 친구 같은 헌터 이천 명이 일을 잃어요⁠.⁠”

채팅창이 갈라졌다⁠. 「⁠국장 말도 맞음⁠」 「⁠그럼 고블린은 어디 살아⁠」 「⁠헌터들도 사람임⁠」 「⁠땅 사 주면 되잖아 그래서 후원하는 거고⁠」 「⁠후원 취소함 헌터 가족이라⁠」 노란 후원 띠가 뚝 끊겼다가⁠, 한참 만에 하나가 지나갔다⁠. 「⁠10⁠,000원 · 둘 다 살면 안 됨⁠?⁠」

태랑은 렌즈 뒤에서 나와 호석 맞은편으로 갔다⁠. 조연출이 짐벌을 넘겨받아 두 사람을 한 화면에 잡았다⁠.

“⁠국장님은 헌터를 살리려고 고블린을 묻으시는 거죠⁠.⁠”

“⁠고블린을 묻는 게 아니라 영상을 묻는 거예요⁠.⁠”

“⁠영상을 묻으면 고블린도 묻혀요⁠. 5월 둘째 주에⁠.⁠”

“⁠PD님은 고블린 살리려고 이 친구를 굶기는 거고요⁠.⁠” 호석이 신입 헌터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신입 헌터가 움찔했다⁠. “⁠우리 둘 다 누구 하나는 굶겨요⁠. 차이는 PD님은 그걸 생방송으로 하고⁠, 나는 조용히 한다는 거죠⁠.⁠”

“⁠조용히 하는 게 더 나쁘죠⁠.⁠”

“⁠시끄럽게 하는 사람은 다 그렇게 말해요⁠.⁠”

호석은 다시 목례를 하고 승합차로 돌아갔다⁠. 신입 헌터만 펜스 앞에 남아 방패 뒤에서 머뭇거렸다⁠. 막내가 천막 뒤에서 할머니 휴대전화를 들고 나와 신입 헌터에게 화면을 내밀었다⁠.

“⁠형⁠. 나 계정 팠음⁠. 맞팔 ㄱ⁠?⁠”

신입 헌터가 방패 너머로 화면을 보았다⁠. 오래 보다가 제 휴대전화를 꺼냈다⁠. 「⁠팔로우⁠」 단추를 누르는 손가락이 한 번 떨렸다⁠.

*

라이브는 새벽 두 시에 끝났다⁠. 「⁠고블린 땅 사 주기 · 길태랑⁠」 통장에 칠천사백만 원이 들어와 있었다⁠. 태랑은 숫자를 세 번 확인하고 할머니 집으로 내려갔다⁠. 할머니는 마루에 불을 켜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막내가 돌려준 휴대전화를 손에 쥐고⁠, 「⁠막내 고블린⁠」 계정의 팔로워 숫자를 들여다보며 혀를 찼다⁠. 십이만이었다⁠.

“⁠내 번호로 고블린이 유명해졌어⁠.⁠”

“⁠죄송합니다⁠.⁠”

“⁠죄송할 거 없어⁠. 우리 손주들보다 팔로워가 많아⁠.⁠” 할머니가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돈 가져왔냐⁠?⁠”

태랑은 은행 앱 화면을 마루에 올려놓았다⁠. 할머니가 돋보기를 쓰고 숫자를 읽었다⁠. 손가락으로 자릿수를 하나씩 짚었다⁠.

“⁠칠천사백⁠. 계약금하고 중도금으로 받아 준다⁠. 잔금 사천육백은 5월 마지막 날 밤 열두 시까지⁠. 못 가져오면 이 돈은 돌려줄게⁠. 근데 밭은 다른 데로 간다⁠.⁠”

“⁠다른 데요⁠?⁠”

“⁠협회에서도 다녀갔어⁠. 짧은 머리 여자⁠. 초소를 밭으로 옮기고 싶대⁠. 이억을 부르더라⁠.⁠” 할머니가 계약서 두 장에 도장을 찍었다⁠. 인주가 손톱 밑에 빨갛게 배었다⁠. “⁠나는 고블린이 좋아서 너한테 파는 거 아니야⁠. 네가 먼저 와서 파는 거야⁠. 협회가 먼저 왔으면 협회한테 팔았어⁠. 사십 년 깨 턴 밭이 아까운 거지⁠, 사람이 아까운 게 아니야⁠.⁠”

“⁠고블린은요⁠?⁠”

“⁠고블린은 김을 잘 매⁠.⁠”

태랑은 계약서 한 장을 접어 조끼 안주머니에 넣었다⁠. 국물 손도장 계약서와 같은 주머니였다⁠. 종이 두 장이 맞닿아 바스락거렸다⁠.

*

동굴로 돌아왔을 때 우두머리는 바위 뒤에서 나와 마른 풀더미 옆에 앉아 있었다⁠. 고블린 스물하나는 잠들었고⁠, 아래층 돌계단의 바위 틈에서 작은 숨소리들이 고르게 올라왔다⁠. 태랑은 할머니의 계약서를 펴 보였다⁠. 우두머리는 도장 자리를 손가락으로 오래 쓸었다⁠.

“⁠칠천사백은⁠, 몇 평인가⁠?⁠”

“⁠이백사십 평 조금 넘어요⁠. 근데 땅은 반만 사는 게 안 돼요⁠. 다 사야 다 우리 거예요⁠. 5월 31일 밤까지 사천육백 더⁠.⁠”

“⁠문이 닫히는 날⁠.⁠”

“⁠네⁠. 같은 날이에요⁠.⁠”

우두머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태랑은 우두머리 옆에 앉아 휴대전화를 열었다⁠. 자정에 방송사가 「⁠헌터 직진⁠」 마지막 시즌 예고편을 올려 두었다⁠. 조회수가 벌써 백만이었다⁠. 연기 속에서 헌터 다섯이 걸어 나오고⁠, 낮고 굵은 성우의 목소리가 깔렸다⁠. 「⁠어두운 던전에⁠, 또 한 무리의 몬스터가 숨어 있다⁠. 헌터는⁠, 언제나⁠, 먼저 들어간다⁠.⁠」

우두머리가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엄니 사이로 숨이 멈췄다⁠. 예고편이 끝나고 검은 화면이 되자 우두머리가 손가락으로 화면을 눌러 처음으로 되돌렸다⁠. 성우의 첫 문장이 다시 흘렀다⁠.

“⁠이 목소리는⁠, 우두머리가 배운 목소리다⁠.⁠”

“⁠성우요⁠? 다큐 성우 아니었어요⁠?⁠”

“⁠예전에⁠, 인간들이 작은 화면을 들고 와서 이 목소리를 틀었다⁠. 찍은 것을 그 자리에서 다시 보았다⁠. 우두머리는 옆에서 들었다⁠. 여러 번⁠.⁠” 우두머리가 화면을 껐다⁠. 꺼진 화면에 초록 얼굴이 비쳤다⁠. “⁠오늘 펜스 앞의 목소리도⁠, 그때 들었다⁠.⁠”

태랑은 휴대전화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동굴 천장에서 물방울 하나가 떨어져 풀더미 옆 돌바닥에서 튀었다⁠.

“⁠국장님 목소리를요⁠? 언제요⁠?⁠”

우두머리는 대답 대신 아래층 돌계단을 막은 바위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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