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407자)

삼억은 몇 평인가

몬스터와 출연 계약을 맺은 망한 웹예능 PD · 한빛결

깨밭 할머니의 집은 야산 아래 첫 번째 집이었다⁠. 슬레이트 지붕에 마당이 넓었고⁠, 마당 한가운데 평상에 고추 말리는 채반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할머니는 평상에 태랑을 앉혀 놓고 믹스 커피를 타 주었다⁠. 종이컵이 뜨거워서 태랑은 컵 입구를 손끝으로만 잡았다⁠.

“⁠사백 평⁠. 일억 이천⁠.⁠”

할머니가 손가락 하나를 꼿꼿이 펴고⁠, 옆의 손가락 둘을 반만 접어 보였다⁠.

“⁠지난달에 아들이 서울서 내려와서 그러더라고⁠. 전원주택 짓는 회사가 일억 이천에 산대⁠. 나는 안 판다고 했지⁠. 그 밭에서 깨를 사십 년 털었는데⁠.⁠”

“⁠그런데 왜 저희한테는 파세요⁠?⁠”

“⁠너한테 판다고 안 했어⁠.⁠” 할머니가 커피를 후루룩 마셨다⁠. “⁠5월 마지막 날까지 먼저 돈 들고 오는 놈한테 판다⁠. 아들한테도 그렇게 말했어⁠. 회사가 먼저 오면 회사고⁠, 네가 먼저 오면 너고⁠.⁠”

태랑은 종이컵을 내려놓았다⁠. 손끝이 빨갰다⁠.

평상 위에서 할머니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할머니는 안경을 이마에 올리고 스피커를 눌렀다⁠. 서울 아들의 목소리가 마당에 울렸다⁠.

“⁠엄마⁠, 그 고블린 영상에 우리 밭 나왔어⁠. 댓글에 다 엄마 얘기야⁠. 「⁠할머니 호미 든 거 보스전 같음⁠」이래⁠.⁠”

“⁠보스는 또 뭐여⁠?⁠”

“⁠제일 센 사람⁠. 아무튼 엄마⁠, 거기 위험해⁠. 회사에 빨리 팔아⁠.⁠”

“⁠5월 마지막 날까지는 안 판다⁠.⁠” 할머니가 스피커를 끄고 태랑을 보았다⁠. “⁠봤지⁠? 아들도 줄 서 있어⁠.⁠”

“⁠고블린 안 무서우세요⁠?⁠”

“⁠멧돼지보다 낫지⁠. 멧돼지는 고구마를 다 캐 가는데⁠, 쟤들은 어제 밭에 와서 돌만 주워 갔어⁠. 돌무더기를 쌓아 놨더라고⁠. 경계 돌을 다시 쌓아 놓은 거야⁠.⁠” 할머니가 모자를 벗어 부채질을 했다⁠. “⁠그리고 그 큰 놈⁠, 목소리가 우리 영감 좋아하던 동물 다큐 아저씨랑 똑같아⁠.⁠”

마당 구석에서 누렁이가 짖었다⁠. 태랑이 돌아보니 담장 위로 초록 귀 두 개가 솟아 있었다⁠. 막내였다⁠. 막내는 담장에 매달려 평상 위의 믹스 커피 봉지를 노려보고 있었다⁠.

“⁠저건 또 뭐여⁠?⁠”

“⁠막내예요⁠.⁠”

“⁠막내면 커피는 안 돼⁠. 키 안 커⁠.⁠”

막내가 담장 아래로 쑥 내려갔다⁠.

*

조연출은 드론을 샀다⁠. 대표가 광고비 선금에서 떼어 준 돈이었다⁠. 「⁠던전 랜선 투어⁠」를 찍겠다고 했을 때 대표는 드론이 몇 대냐고 물었고⁠, 조연출은 한 대라고 했고⁠, 대표는 두 대를 사라고 했다⁠. 한 대는 고블린이 훔쳐 갈 거라는 이유였다⁠.

대표의 말이 맞았다⁠. 첫 번째 드론은 이륙한 지 사십 초 만에 막내 손에 붙들렸다⁠. 막내는 드론을 머리 위로 들고 던전 안을 뛰어다녔다⁠. 화면 속에서 천장과 이끼와 고블린 일곱의 정수리가 빙글빙글 돌았다⁠. 조연출은 두 번째 드론을 띄웠다⁠.

두 번째 드론은 지하 1층을 끝까지 돌았다⁠. 버섯이 자라는 벽⁠, 물이 고인 웅덩이⁠, 고블린들이 잠자리로 쓰는 마른 풀더미⁠, 천장이 낮아지는 좁은 통로⁠. 화면 오른쪽 아래에 던전 지도가 선으로 그려졌다⁠. 조연출은 지도를 돌려 보며 빨대를 씹었다⁠. 아래로 내려가는 돌계단 앞에서 드론을 돌려 세웠다⁠. 우두머리가 계단 앞 바위에 등을 기대고 앉아 드론을 보고 있었다⁠.

“⁠아래는⁠, 날지 않는다⁠.⁠”

“⁠네⁠, 안 날아요⁠. 약속⁠.⁠”

우두머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연출은 드론을 돌리면서 녹화 화면을 한 번 더 확인했다⁠. 계단 앞까지 그려진 지도의 선이 바위 앞에서 끊겨 있었다⁠.

편집은 사흘 걸렸다⁠. 조연출은 우두머리의 말마다 궁서체 자막을 달았고⁠, 자막이 나올 때마다 붓 소리 효과음을 깔았다⁠. 대표는 편집실 문간에 기대 김밥을 먹으며 화면을 넘겨다보았다⁠.

“⁠라면 회사 둘이 경쟁 붙었어⁠. 고블린이 자기네 라면을 먹어 주면 한 편에 이천⁠.⁠”

“⁠우두머리가 아무 라면이나 안 먹어요⁠. 국물이 얇으면 뱉어요⁠.⁠”

“⁠그럼 국물 진한 회사로 해⁠.⁠” 대표가 김밥 꽁다리를 입에 넣었다⁠. “⁠그리고 판권 얘기 나오면 나한테 먼저 와⁠. 너희끼리 아무 데나 도장 찍지 말고⁠.⁠”

“⁠우두머리는 국물로 찍던데요⁠.⁠”

“⁠국물도 안 돼⁠.⁠”

영상은 나흘 뒤 올라갔다⁠. 「⁠던전 생활 브이로그 EP⁠.2 · 고블린 집 랜선 투어⁠」 썸네일 속에서 막내가 드론을 머리 위로 들고 있었고⁠, 노란 글씨가 막내 머리 위에 박혔다⁠. 「⁠집 구경 오지 마세요 (⁠진짜로⁠)⁠」

일주일 뒤 숫자가 천만을 넘었다⁠. 구독자는 팔십칠만이었다⁠. 숏폼 플랫폼에서는 「⁠고블린 브이 챌린지⁠」가 돌았다⁠. 사람들이 손가락 브이를 그리고 옆 사람이 손가락 각도를 고쳐 주는 영상이었다⁠. 미국 대학생들이 강의실에서 했고⁠, 독일 경찰관 둘은 순찰차 앞에서 했다⁠. 우두머리는 태랑의 휴대전화로 독일 경찰관의 브이를 보고 말했다⁠.

“⁠저 인간들은⁠, 각도가 틀렸다⁠.⁠”

천만을 넘긴 밤⁠, 태랑은 던전 지하 1층 마른 풀더미 옆에 앉아 우두머리에게 광고 수익 화면을 보여 주었다⁠. 조회수 천만⁠, 예상 수익 천사백만 원⁠. 우두머리는 화면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화면 불빛이 초록 얼굴을 파랗게 물들였다⁠.

“⁠천만 명이 보았는데⁠, 천사백만인가⁠?⁠”

“⁠한 명이 보면 일 원 조금 넘게 들어와요⁠. 광고를 끝까지 봐야 그렇고요⁠. 대부분은 건너뛰어요⁠.⁠”

“⁠인간들은⁠, 건너뛴다⁠.⁠” 우두머리가 손가락을 접었다⁠. 접는 품이 막내가 삼 분을 세던 품과 같았다⁠. “⁠할머니의 밭은⁠, 일억 이천⁠. 천만 명이 여덟 번 보아야 한다⁠.⁠”

“⁠아홉 번이요⁠. 세금이 있어서⁠.⁠”

“⁠세금은⁠, 누가 가져가나⁠?⁠”

“⁠나라요⁠.⁠”

“⁠나라는⁠, 아무것도 찍지 않았다⁠.⁠”

태랑은 웃음이 터져 휴대전화를 떨어뜨릴 뻔했다⁠. 우두머리는 웃지 않았다⁠. 동굴 안쪽 돌계단을 돌아보았다⁠. 바위 틈에서 작고 가는 숨소리들이 새어 나왔다⁠.

“⁠아래에⁠, 몇이 있어요⁠?⁠”

“⁠스물넷⁠. 어린것이 아홉⁠.⁠” 우두머리가 바위 틈을 보며 말했다⁠. “⁠위의 일곱까지⁠, 서른하나⁠. 예전에는⁠, 더 많았다⁠.⁠”

“⁠예전에 얼마나요⁠?⁠”

우두머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가슴팍의 이빨 목걸이를 엄지로 하나씩 넘겼다⁠. 넘길 때마다 이빨끼리 부딪쳐 마른 소리가 났다⁠.

*

천만을 넘긴 다음 날 아침⁠, 펜스 앞에 컨테이너가 하나 생겼다⁠. 컨테이너 옆구리에 「⁠헌터 협회 경기 북부 지부 · 파주 제7 폐던전 감시 초소⁠」라는 현수막이 묶여 있었다⁠. 펜스 위로 철조망이 한 겹 더 감겼다⁠.

컨테이너 앞에 여자 하나와 청년 하나가 나와 있었다⁠. 여자는 짧게 친 머리에 협회 점퍼를 입었고⁠, 가슴에 무전기를 꽂았다⁠. 껌을 씹고 있었다⁠. 금연 껌이라고 껍질에 적혀 있었다⁠. 청년은 제 몸통보다 큰 방패를 들고 있었다⁠. 방패가 무거워서 청년의 팔꿈치가 조금씩 떨렸다⁠.

“⁠길태랑 PD⁠?⁠”

“⁠네⁠.⁠”

“⁠헌터 협회 경기 북부 지부장입니다⁠.⁠” 여자가 손을 내밀지 않았다⁠. “⁠여기 출입 금지인 거 알죠⁠? 지난 촬영 두 번 다 무단 출입이에요⁠. 신고 들어와 있어요⁠.⁠”

“⁠고블린들하고 출연 계약을 했습니다⁠.⁠”

“⁠몬스터랑 계약⁠?⁠” 지부장이 껌을 반대편 어금니로 옮겼다⁠. “⁠그 종이 법원에 들고 가 봐요⁠. 판사가 국물 지문 보고 웃을 거예요⁠. 토벌 날짜 바뀌었어요⁠. 5월 둘째 주⁠. 봉인 전에 깨끗하게 정리합니다⁠.⁠”

“⁠앞당긴 이유가 제 영상 때문이에요⁠?⁠”

“⁠우리 지부 헌터 이천 명 중에 절반이 지난겨울 대리운전 뛰었어요⁠. 이번 봉인 정리가 올해 우리 일의 반이에요⁠. 그런데 PD님 영상 때문에 고블린 보러 오겠다는 사람이 하루에 이백 명이에요⁠. 어제 밤에 대학생 셋이 펜스 넘다 걸렸고⁠. 여기 한 놈이라도 물리면 그 책임 누가 집니까⁠?⁠” 지부장이 손가락으로 태랑의 조끼 가슴께를 짚었다⁠. “⁠PD님이 지실래요⁠?⁠”

펜스 너머 입구에서 그림자가 길어졌다⁠. 우두머리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 한낮 햇빛 속으로⁠, 이번에는 비스듬한 빛이 끝나는 자리에서 멈추지 않고 펜스까지 왔다⁠. 뒤로 고블린 일곱이 줄지어 따라 나왔다⁠. 막내가 맨 끝에서 깡충거렸다⁠.

신입 헌터가 방패를 들어 올리려다 놓쳤다⁠. 방패가 흙바닥에 쿵 떨어지며 먼지를 일으켰다⁠. 지부장이 무전기에 손을 얹었다⁠.

우두머리는 펜스 철망에 얼굴을 바짝 대고 지부장을 내려다보았다⁠. 철망 한 칸 사이로 숨이 오갔다⁠.

“⁠헌터다⁠.⁠”

“⁠그래⁠, 헌터다⁠.⁠” 지부장이 껌을 멈췄다⁠. “⁠오래 산 놈 같은데⁠. 우리 처음 보는 거 아니지⁠?⁠”

“⁠우두머리는⁠, 헌터를 많이 보았다⁠.⁠”

막내가 철망 밑 틈으로 손을 뻗어 바닥에 떨어진 방패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방패가 철망에 막혀 덜컹댔다⁠. 신입 헌터가 반대편 손잡이를 붙잡았다⁠. 둘이 철망을 사이에 두고 방패를 당겼다⁠.

“⁠이거 무거움⁠, 리얼⁠.⁠”

“⁠내 거야⁠, 놔⁠.⁠”

“⁠형 팔 떨림⁠.⁠”

“⁠안 떨려⁠.⁠”

조연출이 짐벌을 들고 둘의 줄다리기를 찍었다⁠. 지부장이 손을 들어 렌즈를 가렸다⁠. 손바닥에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찍지 마요⁠.⁠”

“⁠여기 공공장소예요⁠.⁠”

“⁠여기 출입 금지 구역이에요⁠.⁠”

막내가 방패를 확 놓았다⁠. 신입 헌터가 방패를 끌어안은 채 뒤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막내가 철망 너머에서 브이를 그렸다⁠. 신입 헌터는 흙을 털며 일어나다가⁠, 저도 모르게 따라 펴지던 손가락을 주먹으로 말아 쥐었다⁠.

“⁠너 몇 살이야⁠?⁠”

“⁠고블린 나이로 스물셋⁠. 형은⁠?⁠”

“⁠스물넷⁠.⁠”

“⁠형이네⁠. 형⁠, 방패 들 때 팔 떨지 마⁠. 화면에 다 나옴⁠.⁠”

지부장이 신입 헌터의 뒤통수를 손바닥으로 쳤다⁠. 소리가 맑게 울렸다⁠.

“⁠몬스터랑 나이 트지 마⁠.⁠”

*

오후 세 시에 검은 승용차 한 대가 산길을 올라왔다⁠. 엄호석이 뒷좌석에서 내렸다⁠. 지팡이는 없었다⁠. 왼다리를 끌면서 흙길을 걸어와 초소 앞 지부장 옆에 자리를 잡았다⁠. 둘은 악수도 인사도 없이 나란히 펜스를 보았다⁠. 오래 같이 일한 사람들의 거리였다⁠.

“⁠천만 축하해요⁠, PD님⁠.⁠”

“⁠감사합니다⁠.⁠”

“⁠삼억⁠.⁠” 호석이 이번에는 냅킨 대신 서류 봉투를 내밀었다⁠. 「⁠원본·판권 양도 계약서(⁠안⁠)⁠」 “⁠원본 전부⁠, 판권 전부⁠, 드론 촬영분까지⁠. 채널은 그대로 두고 영상만 내려요⁠. 그리고 협회 토벌은 우리가 찍어요⁠. 깨끗하게⁠. 아무도 험한 꼴 안 보게⁠.⁠”

“⁠고블린들은요⁠?⁠”

“⁠토벌이 뭔지는 아시잖아요⁠.⁠” 호석이 턱으로 컨테이너 앞의 신입 헌터를 가리켰다⁠. 신입 헌터는 흙 묻은 방패를 소매로 닦고 있었다⁠. “⁠저 친구 첫 토벌이에요⁠. 헌터 학원 대출이 이천이래요⁠. 카메라가 있으면 다들 조심해요⁠. 카메라 없이 하면 험해지고요⁠. 나는 저 친구가 험한 일 안 하게 하려는 거예요⁠.⁠”

지부장이 껌을 씹으며 고개를 돌렸다⁠. 호석의 말을 반박하지 않았다⁠.

태랑은 서류 봉투를 받지 않았다⁠. 호석은 봉투를 든 손을 내리지 않았다⁠. 봉투 모서리가 바람에 파르르 떨렸다⁠.

“⁠삼억이면 저 위에 밭 사고도 남아요⁠, PD님⁠. 그 밭에 PD님 이름으로 집 짓고 살아도 돼요⁠. 웹예능 계속하셔도 되고⁠. 다른 데서⁠.⁠”

호석이 할머니의 밭을 알고 있었다⁠. 산길을 오르며 차창 밖으로 보았든 영상을 끝까지 돌려 보았든⁠, 이번에는 삼십 초에서 멈춘 사람이 아니었다⁠. 태랑은 봉투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봉투 안에 든 종이가 몇 장인지 두께로 짐작이 갔다⁠. 사람 하나의 다음 십 년을 정하기에는 얇은 두께였다⁠.

펜스 너머에서 철망이 덜컹 울렸다⁠. 우두머리가 철망을 손으로 쥐고 있었다⁠. 초록 손가락이 철망 사이로 비어져 나왔다⁠. 우두머리는 호석을 보지 않았다⁠. 태랑만 보았다⁠.

“⁠삼억은⁠, 몇 평인가⁠?⁠”

3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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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귤까는중2026.10.31· 3화

    삼억이 몇 평이냐고 묻는 우두머리에서 빵 터졌어요. 깨밭 할머니는 누구 편이에요?

    • 한빛결작가2026.10.31

      할머니는 먼저 돈 내는 사람 편이에요. 오월 말까지 판이 계속 뒤집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