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490자)

아래는 찍지 않는다

몬스터와 출연 계약을 맺은 망한 웹예능 PD · 한빛결

방송사 1층 카페의 창가 자리에서 엄호석은 아메리카노에 각설탕을 네 개 넣었다⁠. 스푼으로 젓지 않고 컵을 빙글빙글 돌려 녹였다⁠. 태랑과 조연출은 맞은편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조연출은 공짜 음료라는 말에 제일 비싼 딸기 라테를 시켰고⁠, 빨대를 꽂자마자 씹기 시작했다⁠.

“⁠삼천만 원⁠.⁠”

호석이 냅킨 위에 숫자를 썼다⁠. 볼펜 끝이 냅킨을 찢고 지나갔다⁠.

“⁠원본 전부하고 판권⁠. 올린 영상은 내리고⁠, 다시 안 찍는 조건이에요⁠.⁠”

탁자 밑에서 조연출의 운동화가 태랑의 정강이를 찼다⁠. 한 번은 실수일 수 있었다⁠. 두 번째는 분명했다⁠.

“⁠영상을 사서 뭐 하시게요⁠? 방송에 쓰시려고요⁠?⁠”

“⁠안 써요⁠. 묻을 거예요⁠.⁠”

호석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왼손을 탁자 위에 올렸다⁠. 손등의 흉터가 창으로 들어온 햇빛 아래에서 더 하얗게 보였다⁠. 살이 녹았다가 굳은 자국이었다⁠.

“⁠이거 열세 해 전 고양 게이트에서 오우거한테 맞은 거예요⁠. 나 헌터였어요⁠. C급⁠. 무릎 나가고 그만뒀어요⁠.⁠” 호석이 흉터를 손가락으로 쓸었다⁠. “⁠사람들은 오우거하고 고블린을 구분 못 해요⁠. 초록이고 이빨 있으면 다 무서워하죠⁠. 그래야 토벌 예산이 나와요⁠. 국회에서 예산 깎자는 말 나올 때마다 「⁠헌터 직진⁠」 시청률이 막아 줬어요⁠.⁠”

“⁠고블린이 브이 했다고 예산이 깎여요⁠?⁠”

“⁠브이 하는 고블린을 헌터가 때리면⁠, 그 헌터는 동물 학대범이 되는 거예요⁠. 그 영상 하나가 퍼지면 헌터 이천 명이 일자리를 잃어요⁠. 거기 지부장이 내 옛날 파티 동료예요⁠. 어제 전화가 왔어요⁠. 길 PD 영상 때문에 아침부터 민원 전화가 백 통이래요⁠.⁠”

조연출이 라테를 내려놓았다⁠. 운동화가 세 번째로 왔다⁠.

태랑은 정강이를 안으로 당기고 냅킨을 호석 앞으로 밀었다⁠.

“⁠안 팝니다⁠.⁠”

“⁠왜요⁠?⁠”

“⁠구독자가 지금 십일만이에요⁠. 사흘 전에 삼천이었어요⁠. 제가 웹예능을 여섯 해 했는데⁠, 이런 숫자는 처음 봐요⁠.⁠”

“⁠숫자 좋죠⁠.⁠” 호석이 냅킨을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근데 PD님⁠, 판권이 PD님 거예요⁠? 제작사 직원이잖아요⁠. 계약서 한번 읽어 보세요⁠. 그리고 고블린 귀엽다고 너무 가까이 가지 마요⁠. 걔들도 몬스터예요⁠.⁠”

호석은 탁자를 짚고 일어났다⁠. 계산대에 카드를 내밀다 말고 조연출을 돌아보았다⁠.

“⁠딸기 라테 맛있어요⁠?⁠”

“⁠네⁠.⁠”

“⁠다음엔 회의실로 올라와요⁠. 거기는 공짜 커피가 더 맛있어요⁠.⁠”

호석이 다리를 끌며 나가자 조연출이 태랑의 정강이를 마지막으로 한 번 찼다⁠.

“⁠삼천이요⁠, 선배⁠. 삼천⁠. 제 석 달 치가 사백이십이에요⁠.⁠”

“⁠알아⁠.⁠”

“⁠아는 사람이 정강이를 빼요⁠?⁠”

*

자유로를 타고 파주로 가는 동안 조연출은 조수석에서 휴대전화를 들고 소리 내어 읽었다⁠. 라디오에서는 정오 뉴스가 흘렀다⁠. 「⁠헌터 협회 경기 북부 지부⁠, 폐던전 무단 출입 영상에 유감 … 고블린은 길들일 수 없는 몬스터⁠」 앵커의 목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조연출이 댓글을 하나 더 읽었다⁠.

“⁠「⁠헌터들 일자리 걱정은 이해함⁠. 근데 브이 하는 애를 어떻게 때림⁠?⁠」 이거 좋아요 삼만이에요⁠. 밑에 답글⁠. 「⁠너 고블린한테 물려 봤냐⁠」 이것도 이만⁠.⁠”

“⁠싸우네⁠.⁠”

“⁠싸우면 좋은 거예요⁠. 싸우면 알고리즘님이 밀어 줘요⁠.⁠” 조연출이 화면을 넘겼다⁠. “⁠영국 커뮤니티에 누가 영어 자막을 달았대요⁠. 우두머리 말투를 옛날 영국 다큐 아저씨 말투로 번역했어요⁠. 거기서도 터졌어요⁠.⁠”

태랑은 운전대를 쥔 손가락으로 박자를 탔다⁠. 조연출이 화면을 끄고 창밖을 보았다⁠. 임진강 쪽으로 갈대밭이 누렇게 이어졌다⁠.

“⁠선배⁠. 국장님 말이 다 틀린 건 아니에요⁠.⁠”

“⁠알아⁠.⁠”

“⁠아는데 정강이를 빼요⁠?⁠”

“⁠정강이는 아파서 뺐어⁠.⁠”

“⁠삼천이면 저 석 달 치 주고도 남아요⁠. 선배 카메라 할부도 끝나고요⁠.⁠” 조연출이 빨대를 씹었다⁠. “⁠저 반지하 살아요⁠. 비 오면 벽에서 냄새 나요⁠. 그 냄새가 삼천만 원짜리 냄새예요⁠.⁠”

태랑은 대답하지 않고 깜빡이를 켰다⁠. 적성 나들목까지 십이 킬로미터가 남아 있었다⁠.

*

두 번째 촬영 날⁠, 조연출은 펜스 앞에서 십 분을 버텼다⁠. 버너와 코펠과 라면 다섯 봉지를 이고 온 가방을 내려놓지도 못하고 펜스 틈만 노려보았다⁠.

“⁠선배⁠, 쟤들 사람 먹어요⁠?⁠”

“⁠라면 먹어⁠.⁠”

“⁠라면 다 떨어지면요⁠?⁠”

“⁠그래서 다섯 개 가져왔잖아⁠.⁠”

입구 안으로 들어가자 고블린들이 먼저 나와 있었다⁠. 지난번에 셋이었는데 오늘은 일곱이었다⁠. 셋 뒤에 넷이 더 붙어서⁠, 다 같이 브이를 그렸다⁠. 새로 온 넷의 브이는 각도가 조금씩 틀렸다⁠. 맨 앞의 셋이 고개를 돌려 뒷줄의 손가락을 하나씩 고쳐 주었다⁠.

막내는 조연출을 보자마자 다가와 조연출이 문 빨대를 쏙 뽑아 갔다⁠. 제 입에 물고 질겅질겅 씹었다⁠.

“⁠야⁠, 그거 내 거⁠.⁠”

“⁠이거 국룰 아님⁠? 신입이 빨대 바침⁠.⁠”

조연출은 막내를 한참 내려다보다가 가방 앞주머니에서 새 빨대를 꺼내 물었다⁠. 빨대가 한 묶음 들어 있었다⁠.

태랑은 짐벌을 들고 고블린들의 아침을 따라갔다⁠. 던전 지하 1층은 생각보다 넓었다⁠. 천장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자리마다 이끼가 두꺼웠고⁠, 고블린들은 이끼에 얼굴을 비벼 세수를 했다⁠. 벽 틈에서 자란 버섯을 따서 돌판에 구웠다⁠. 버섯이 익는 냄새는 숲 바닥 냄새와 버터 냄새의 가운데쯤이었다⁠. 막내는 라면 봉지를 받아 들고 익숙하게 뜯었다⁠. 스프를 먼저 넣고⁠, 물을 붓고⁠, 뚜껑을 덮은 다음 돌바닥에 쪼그려 앉아 손가락을 하나씩 접었다⁠.

“⁠뭐 하는 거야⁠?⁠”

“⁠삼 분⁠. 인간들이 삼 분 기다리래⁠.⁠”

“⁠누가⁠?⁠”

막내는 대답하지 않고 손가락을 마저 접었다⁠. 조연출이 카메라 너머로 태랑에게 입 모양만 보냈다⁠. 쟤 컵라면 끓이는 거 누구한테 배웠대요⁠? 태랑은 어깨를 들썩했다⁠.

우두머리는 버섯 굽는 돌판 옆에 팔짱을 끼고 앉아 촬영을 지켜보았다⁠. 태랑이 카메라를 돌리자 우두머리가 손을 들었다⁠.

“⁠자막은⁠, 궁서체로 해 달라⁠.⁠”

“⁠네⁠?⁠”

“⁠우두머리의 말은⁠, 궁서체가 어울린다⁠.⁠”

조연출이 수첩에 받아 적었다⁠. 「⁠우두머리 = 궁서체⁠」 밑줄을 두 번 그었다⁠.

조연출은 겁이 풀리자 일을 시작했다⁠. 바위에 걸터앉아 고블린 일곱을 하나씩 카메라 앞에 앉히고 출연자 인터뷰를 땄다⁠. 질문은 예능에서 늘 하는 것들이었다⁠.

“⁠꿈이 뭐예요⁠?⁠”

막내가 렌즈에 코를 들이밀었다⁠. “⁠떡상⁠.⁠”

“⁠떡상이 뭔지는 알아⁠?⁠”

“⁠숫자 올라가는 거⁠. 올라가면 인간들이 소리 지름⁠.⁠”

두 번째 고블린은 꿈이 컵라면 한 상자라고 했고⁠, 세 번째 고블린은 상자 두 개라고 했다⁠. 네 번째 고블린은 한참 생각하더니 세 번째 고블린의 상자를 가리켰다⁠. 조연출이 카메라 뒤에서 어깨를 떨며 웃었다⁠. 웃다가 빨대를 또 빼앗겼다⁠.

*

촬영이 한 시간을 넘겼을 때 태랑은 동굴 안쪽에 아래로 내려가는 돌계단을 발견했다⁠. 계단 입구를 바위 두 개가 막고 있었고⁠, 바위 틈으로 찬 바람이 올라왔다⁠. 틈 안쪽에서 작은 목소리 여럿이 소곤거렸다⁠. 높고 가는 소리였다⁠.

태랑은 짐벌을 바위 틈에 갖다 댔다⁠. 화면 속에 어둠뿐이었다⁠. 야간 촬영 모드로 바꾸는데⁠, 초록 손바닥이 렌즈를 덮었다⁠.

“⁠아래는⁠, 찍지 않는다⁠.⁠”

우두머리가 바로 뒤에 서 있었다⁠. 발소리가 없었다⁠. 무거운 몸으로 소리 없이 걸을 수 있다는 것을 태랑은 처음 알았다⁠.

“⁠아래에 누가 있어요⁠?⁠”

“⁠어린것들이 잔다⁠.⁠”

“⁠애들 나오면 조회수가 세 배예요⁠. 진짜로요⁠. 아기 고블린이 하품만 해도⁠.⁠”

“⁠아래는⁠, 찍지 않는다⁠.⁠” 우두머리가 손바닥을 렌즈에서 떼지 않았다⁠. “⁠인간이 찍으면⁠, 인간이 찾아온다⁠. 우두머리는 안다⁠.⁠”

“⁠제가 찍어야 사람들이 여러분을 좋아해요⁠. 좋아하면 아무도 안 때려요⁠.⁠”

“⁠좋아하는 인간도⁠, 찾아온다⁠.⁠”

태랑은 짐벌을 내렸다⁠. 렌즈에 초록 손자국이 기름처럼 남았다⁠. 조끼 자락으로 렌즈를 닦는 동안 우두머리가 물었다⁠.

“⁠지난번에 찍은 것⁠. 보는 인간은⁠, 몇인가⁠?⁠”

태랑은 휴대전화를 열었다⁠. 숫자가 아침보다 또 올라 있었다⁠.

“⁠백팔십만이요⁠.⁠”

우두머리가 말이 없어졌다⁠. 귀걸이가 한 번 흔들렸다⁠. 막내가 라면 국물을 마시다 말고 고개를 들었다⁠. 다른 여섯도 버섯을 굽던 손을 멈췄다⁠.

“⁠백팔십만은⁠, 삼천보다 많은가⁠?⁠”

“⁠육백 배요⁠.⁠”

“⁠그러면⁠, 출연료를 정하겠다⁠.⁠”

우두머리가 일어나 동굴 안쪽 벽으로 걸어갔다⁠. 벽 위쪽에 사람 하나 겨우 지나갈 틈이 있었다⁠. 우두머리는 틈에 손을 걸고 몸을 끌어 올렸다⁠. 태랑과 조연출이 차례로 따라 기어올랐다⁠. 축축한 흙 굴을 무릎으로 한참 기자 위에서 빛이 들어왔다⁠.

굴 끝은 야산 꼭대기의 밭이었다⁠. 3월의 밭은 아직 갈아엎기 전이라 지난해 깻대가 검게 말라 꽂혀 있었다⁠. 바람이 깻대 사이로 지나가며 마른 소리를 냈다⁠. 밭 가장자리에 돌무더기 경계가 둘러져 있었고⁠, 아래로 펜스와 던전 입구가 내려다보였다⁠.

우두머리가 경계 돌 하나를 밟고 걷기 시작했다⁠.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낮은 목소리로 셌다⁠.

“⁠우두머리는⁠, 지금⁠, 땅을 잰다⁠. 하나⁠. 둘⁠. 셋⁠.⁠”

조연출이 짐벌을 낚아채 우두머리를 따라갔다⁠. 화면 속에서 우두머리가 깻대 사이를 걸었다⁠. 태랑은 숫자를 세는 우두머리의 등을 보다가 물었다⁠.

“⁠이 밭을 왜 재요⁠?⁠”

“⁠5월 마지막 날⁠, 문이 닫힌다⁠. 인간들이 콘크리트를 붓는다⁠.⁠” 우두머리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문이 닫히면⁠, 고블린은 밖에서 산다⁠. 밖에서 살려면⁠, 땅이 있어야 한다⁠. 인간들이 그렇게 말했다⁠. 땅이 없는 것은⁠, 어디에 있어도 쫓겨난다고⁠.⁠”

“⁠그러니까 출연료가⁠.⁠”

“⁠땅이다⁠. 이 밭⁠.⁠” 우두머리가 경계를 다 돌고 처음 밟은 돌 위로 돌아와 멈췄다⁠. “⁠삼백십이 걸음⁠.⁠”

태랑은 휴대전화 지도 앱을 열어 밭 둘레를 손가락으로 그렸다⁠. 「⁠약 1⁠,320㎡ · 400평⁠」 사백 평이었다⁠. 파주 야산 밭의 시세를 검색하는 동안 조연출이 옆에서 화면을 들여다보고 숨을 들이켰다⁠.

“⁠선배⁠. 국장님이 부른 삼천으로는 이 밭 귀퉁이만 사요⁠.⁠”

“⁠귀퉁이도 땅이지⁠.⁠”

“⁠고블린한테 귀퉁이만 주게요⁠?⁠”

막내가 굴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경계 돌 위에 앉았다⁠. 빨대를 문 채 밭을 둘러보았다⁠.

“⁠여기 와이파이 됨⁠?⁠”

밭 아래 비탈에서 쉰 목소리가 올라왔다⁠. 호미를 든 노인이 허리를 반쯤 편 채 이쪽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꽃무늬 몸뻬에 챙 넓은 모자를 썼고⁠, 모자 끈을 턱밑에서 단단히 묶었다⁠.

“⁠거기 누구여⁠! 내 밭 밟지 마⁠!⁠”

우두머리가 경계 돌에서 내려왔다⁠. 조연출이 짐벌을 꼭 쥐었다⁠. 노인이 비탈을 한 걸음씩 올라왔다⁠. 고블린의 초록 얼굴을 보고도 걸음이 느려지지 않았다⁠.

“⁠멧돼지는 아니고⁠. 너 뭐여⁠?⁠”

우두머리가 노인을 내려다보았다⁠. 노인이 우두머리를 올려다보았다⁠. 둘 사이에 호미 한 자루가 떠 있었다⁠.

“⁠우두머리는⁠, 이 밭을 사려고 한다⁠.⁠”

노인이 호미를 내렸다⁠. 모자 챙 밑에서 눈이 가늘어졌다⁠.

“⁠돈은 있고⁠?⁠”

우두머리가 태랑을 돌아보았다⁠. 노인도 태랑을 보았다⁠. 막내도⁠, 조연출도⁠, 짐벌 렌즈도 태랑을 보았다⁠.

태랑은 손에 든 짐벌 손잡이를 만지작거렸다⁠.

“⁠곧 생깁니다⁠.⁠”

“⁠곧은 돈이 아니여⁠.⁠” 노인이 호미 끝으로 마른 깻대를 툭 쳤다⁠. “⁠우리 영감도 사십 년을 곧 생긴다고 했어⁠. 영감은 먼저 가고⁠, 곧은 아직 안 왔어⁠.⁠”

막내가 경계 돌 위에서 손뼉을 쳤다⁠. “⁠할머니 말 킹받게 잘함⁠.⁠”

노인이 막내를 내려다보았다⁠. 모자 끈을 한 번 고쳐 묶었다⁠.

“⁠킹은 또 뭐여⁠?⁠”

2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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