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456자)

마이크는 헌터한테만

몬스터와 출연 계약을 맺은 망한 웹예능 PD · 한빛결

5월 13일 아침 아홉 시⁠, 파주경찰서 정문 앞에 1톤 트럭 한 대가 서 있었다⁠. 짐칸에 퇴비 포대가 실려 있었고⁠, 운전석 창문으로 챙 넓은 모자가 내다보았다⁠. 할머니였다⁠. 태랑이 조끼 차림으로 정문을 나서자 할머니가 경적을 두 번 울렸다⁠. 경찰서 앞을 지나던 사람들이 다 돌아보았다⁠.

“⁠타⁠.⁠”

“⁠할머니 운전하세요⁠?⁠”

“⁠사십 년 했어⁠. 면허는 삼십 년⁠.⁠”

태랑은 조수석에 올라탔다⁠. 트럭 안에서 퇴비 냄새와 박하사탕 냄새가 섞여 났다⁠. 할머니는 기어를 넣으며 박하사탕 하나를 태랑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벌금 나온대⁠?⁠”

“⁠통지 기다리래요⁠.⁠”

“⁠얼마든 내가 안 내준다⁠.⁠” 할머니가 핸들을 꺾었다⁠. 트럭이 인도 턱에 한 번 걸쳤다가 내려왔다⁠. “⁠잔금이나 생각해⁠. 열여드레 남았어⁠.⁠”

*

비닐하우스 안은 후끈했다⁠. 고추 모종이 고랑마다 줄지어 있었고⁠, 고랑 사이 통로에 퇴비 포대가 깔려 있었다⁠. 고블린 스물둘이 포대 위에 앉거나 누워 있었다⁠. 모종은 한 포기도 밟히지 않았다⁠. 어린것 아홉은 비닐하우스 맨 안쪽에서 서로 등을 붙이고 잤다⁠. 쇠 투구 고블린은 투구를 벗어 물을 받아 어린것들에게 나눠 주고 있었다⁠.

막내는 비닐하우스 입구 앞에 쪼그려 앉아 할머니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태랑을 보고도 일어나지 않았다⁠.

“⁠형⁠. 이거 봐⁠.⁠”

막내가 화면을 내밀었다⁠. 「⁠막내 고블린⁠」 계정이었다⁠. 맨 위 영상의 썸네일에 노란 글씨가 박혀 있었다⁠. 「⁠우두머리 돌려줘⁠」 조연출에게 배운 글씨체였다⁠. 영상 속에서 막내가 비닐하우스 안 어린것들의 등을 찍지 않고⁠, 퇴비 포대 위에 비어 있는 자리 하나만 오래 찍었다⁠. 우두머리가 늘 앉던 바위만 한 자리였다⁠. 말은 한마디도 없었다⁠. 끝에 자막 한 줄이 올라왔다⁠. 「⁠큰 고블린이 앉던 데⁠」

조회수가 사천만이었다⁠. 팔로워는 이백삼십만⁠. 댓글이 끝없이 내려갔다⁠. 「⁠#우두머리돌려줘⁠」 「⁠from Japan⁠: 返して⁠」 「⁠from Brazil — free the narrator⁠」 「⁠헌터 가족인데 이건 아닌 거 같음⁠」 「⁠협회 본사 앞에서 사람들 브이 하고 서 있대⁠」

“⁠사람들이 협회 앞에서 브이를 해⁠?⁠”

“⁠응⁠. 각도 다 틀림⁠.⁠” 막내가 화면을 넘겼다⁠. 사진 속에서 사람들이 협회 건물 앞에 줄지어 손가락 브이를 그리고 있었다⁠. 막내는 사진을 손가락으로 확대해 사람들의 손가락을 하나씩 보았다⁠. “⁠근데 틀려도 됨⁠. 이번엔⁠.⁠”

막내가 휴대전화를 내리고 태랑을 올려다보았다⁠. 붉은 두건 밑의 눈이 빨갰다⁠.

“⁠형⁠. 나 가서 우두머리 꺼내 옴⁠.⁠”

“⁠어디 있는지 몰라⁠.⁠”

“⁠알아⁠. 협회 창고⁠. 헌터 형이 디엠 줌⁠.⁠”

태랑은 막내 옆에 쪼그려 앉았다⁠. 막내의 화면에 신입 헌터와의 대화방이 열려 있었다⁠. 「⁠의정부 지부 창고 3동⁠」 「⁠밥은 잘 먹음⁠」 「⁠나 이거 보낸 거 비밀⁠」 마지막 메시지 밑에 사진 한 장이 붙어 있었다⁠. 빨간 소 그림이 그려진 컵라면 상자였다⁠.

“⁠가면 너도 잡혀⁠.⁠”

“⁠잡히면 우두머리 옆에 있잖아⁠.⁠”

“⁠그럼 여기 어린것들은 누가 봐⁠?⁠”

막내가 비닐하우스 안쪽을 돌아보았다⁠. 어린것 하나가 잠결에 재채기를 했다⁠. 막내는 한참 어린것들을 보다가 휴대전화를 두건 안에 넣었다⁠. 그리고 태랑의 조끼 주머니에서 박하사탕을 꺼내 제 입에 넣었다⁠.

*

5월 20일 오후 세 시⁠, 방송사 12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태랑은 출입 데스크를 지나쳐 걸었다⁠. 경비원 둘이 뒤에서 불렀다⁠. 태랑은 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예능국 사무실의 긴 통로를 지나는데 오른편 책상에 조연출이 앉아 있었다⁠. 목에 사원증을 걸고 있었다⁠. 사원증 사진 속 얼굴은 빨대를 물고 있지 않았다⁠. 조연출은 모니터에서 눈을 들지 않았다⁠. 키보드를 치던 손가락만 멈췄다⁠.

국장실 문은 열려 있었다⁠. 엄호석이 책상에서 큐시트를 넘기다가 고개를 들었다⁠. 경비원들이 문간까지 쫓아왔고⁠, 호석이 손을 들어 경비원들을 돌려보냈다⁠.

“⁠앉아요⁠, 길 PD⁠.⁠”

“⁠생방송 하신다면서요⁠. 우두머리 데리고⁠.⁠”

“⁠해요⁠. 5월 31일 밤⁠.⁠” 호석이 큐시트를 책상 위에 엎었다⁠. “⁠앉으라니까⁠.⁠”

태랑은 앉지 않았다⁠. 조끼 안주머니에서 콜시트를 꺼내 책상 위에 펼쳤다⁠. 「⁠시즌 7 · 연출 엄호석⁠」 땀에 젖었다 마른 종이가 우글쭈글했다⁠.

“⁠이거 아직 있어요⁠.⁠”

“⁠종이 한 장이에요⁠.⁠” 호석이 종이를 손바닥으로 반듯하게 폈다⁠. 구김을 펴 주는 손이었다⁠. “⁠복도는 무너졌어요⁠. 조명도⁠, 상자도⁠. 이 종이 한 장은 어느 촬영장에나 있는 콜시트예요⁠. 변호사들은 이걸 보면 웃어요⁠. 연출자가 촬영 일정표에 이름 있는 게 무슨 죄냐고⁠.⁠”

“⁠우두머리가 증인이에요⁠.⁠”

“⁠고블린은 법정에 못 서요⁠. 몬스터예요⁠.⁠” 호석이 의자를 뒤로 젖혔다⁠. 무릎이 아픈지 얼굴이 한 번 굳었다⁠. “⁠길 PD⁠, 내가 왜 생방송을 하는지 알아요⁠? 협회가 카메라 없이 하면 더 험해요⁠. 그날 밤 봤잖아요⁠. 우리가 카메라를 켜고 하면⁠, 적어도 우두머리는 살아서 나와요⁠. 큐시트에 처분 없어요⁠. 제압까지예요⁠. 제압하고 봉인하고 끝⁠. 우두머리는 그다음에 보호 시설로 가요⁠. 진짜 보호 시설로⁠. 그건 내가 약속해요⁠.⁠”

“⁠서명도 해 주실 거예요⁠?⁠”

호석이 입을 다물었다⁠. 창밖으로 오피스텔 건물들이 줄지어 보였다⁠. 태랑이 짐을 빼낸 7층 창이 저 줄 어디쯤 있었다⁠.

“⁠헌터 서른이 나와요⁠. 일당 오십씩⁠. 그날 밤 시청률이면 협회 예산 표결이 뒤집혀요⁠. 그 돈으로 헌터 이천 명이 올해를 버텨요⁠.⁠” 호석이 큐시트를 다시 뒤집어 태랑 앞으로 밀었다⁠. “⁠같이 해요⁠. 웹 중계를 맡아 줘요⁠. PD님 얼굴이 화면에 나오면 사람들이 덜 화내요⁠. 막내 계정도 같이 켜고요⁠. 출연료는 내가 낼게요⁠.⁠”

“⁠땅으로요⁠?⁠”

“⁠돈으로요⁠.⁠”

“⁠그럼 안 해요⁠.⁠”

호석이 오래 태랑을 보았다⁠. 큐시트 맨 위 줄에 「⁠22⁠:40⁠」이라는 숫자가 보였다⁠. 태랑은 숫자를 읽기 전에 몸을 돌렸다⁠. 통로를 걸어 나가는 동안 조연출의 책상 앞을 다시 지났다⁠. 조연출은 여전히 고개를 들지 않았다⁠. 모니터 귀퉁이에 노란 포스트잇이 한 장 붙어 있었다⁠. 「⁠빨대 금지 — 사원증 사진처럼⁠」 제 손글씨였다⁠.

*

다음 날 아침 아홉 시⁠, 예능국 회의실에서 생방송 회의가 열렸다⁠. 조연출은 회의실 맨 끝자리에 앉아 큐시트를 받았다⁠. 종이 석 장이었다⁠. 첫 장 맨 위에 「⁠헌터 직진 마지막 시즌 특집 생방송 · 파주 제7 폐던전 대정리⁠」가 인쇄돼 있었다⁠.

「⁠22⁠:00 오프닝 · 국장 인사⁠」

「⁠22⁠:40 고블린 우두머리 방사⁠」

「⁠22⁠:45 헌터 진입 · 제압⁠」

「⁠22⁠:55 봉인 착공 · 레미콘 투입⁠」

「⁠23⁠:00 엔딩 · 헌터 다섯 걸어 나옴⁠」

조연출의 이름은 둘째 장에 있었다⁠. 「⁠중계차 화면 전환 · 광고 송출⁠」 화면 여섯 개 가운데 무엇을 내보낼지⁠, 언제 광고를 넣을지를 누르는 자리였다⁠. 신입이 맡는 자리가 아니었다⁠. 회의가 끝나고 조연출이 국장실 문을 두드리자 호석이 고개를 들었다⁠.

“⁠제가 왜 화면 전환이에요⁠?⁠”

“⁠고블린 영상을 제일 많이 잘라 본 사람이니까요⁠. 어디서 끊어야 하는지 알잖아요⁠.⁠”

오후에는 사전 촬영이 있었다⁠. 의정부 지부 창고 3동은 높은 철제 창고였다⁠. 바닥 한가운데 쇠 우리가 있었고⁠, 우리 안에 우두머리가 팔짱을 끼고 앉아 있었다⁠. 털 망토가 바닥에 펼쳐져 있었다⁠. 늙은 고블린 여덟은 옆의 작은 우리에 있었다⁠. 조연출이 카메라를 들고 우리 앞으로 가자 우두머리가 고개를 들었다⁠.

“⁠빨대⁠.⁠”

조연출은 카메라를 내렸다⁠.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가⁠, 아침에 버리지 못한 빨대 한 개를 꺼내 쇠창살 사이로 내밀었다⁠. 우두머리가 빨대를 받아 엄니 사이에 물었다⁠. 커다란 얼굴에 가는 빨대가 우스꽝스러웠다⁠. 조연출은 웃지 못했다⁠.

“⁠빨대는⁠, 땅이 생겼나⁠?⁠”

“⁠아직이요⁠. 사원증은 생겼어요⁠.⁠”

“⁠사원증은⁠, 몇 평인가⁠?⁠”

조연출의 목이 막혔다⁠. 대답 대신 휴대전화를 꺼냈다⁠. 창고 구석에서 촬영팀이 조명을 세우는 동안⁠, 큐시트 석 장을 한 장씩 찍었다⁠. 태랑과의 대화방을 열었다⁠. 「⁠선배 저⁠」까지 쓰고⁠, 이번에는 지우지 않았다⁠. 「⁠선배 저 화면 전환이에요⁠. 22⁠:40이에요⁠.⁠」 사진 석 장을 붙여 보냈다⁠. 전송 표시가 떴다⁠.

*

사진 석 장은 비닐하우스에서 열렸다⁠. 태랑은 퇴비 포대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큐시트를 손가락으로 넓혔다⁠. 막내가 어깨 너머로 들여다보았다⁠. 할머니는 비닐하우스 입구에 플라스틱 의자를 놓고 앉아 고추 모종에 물을 주며 귀만 이쪽으로 열어 두었다⁠.

“⁠스물두 시 사십 분⁠, 방사⁠. 우두머리를 입구에 풀어놓고 헌터들이 들어가서 제압⁠.⁠” 태랑이 숫자를 짚었다⁠. “⁠우두머리가 혼자 입구에 있으면 안 돼⁠. 혼자면 다시 정해진 때에 쓰러뜨리는 그림이 돼⁠.⁠”

“⁠그럼 우리가 먼저 안에 있으면 됨⁠.⁠” 막내가 큐시트의 「⁠22⁠:40⁠」을 손톱으로 긁었다⁠. “⁠우두머리가 나올 때 뒤에 우리가 서 있으면⁠, 혼자 아님⁠.⁠”

“⁠입구는 협회가 막아⁠. 아래층 배수로는 굴착기에 무너졌고⁠.⁠”

“⁠흙 굴 있잖아⁠. 밭에서 내려가는 거⁠.⁠”

“⁠그것도 지도에 있어⁠. 모래주머니로 막았대⁠.⁠”

“⁠다시 파면 됨⁠. 고블린이 굴 파는 거 국룰⁠.⁠”

비닐하우스 입구에서 물뿌리개 소리가 멈췄다⁠.

“⁠내 밭에 구멍 내지 마⁠.⁠”

“⁠할머니⁠, 원래 있던 구멍이에요⁠.⁠”

“⁠원래 있던 구멍만 파⁠. 새 구멍은 안 돼⁠.⁠” 할머니가 물뿌리개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잔금⁠. 이천팔백⁠. 그날 밤 열두 시까지야⁠. 생방송이 열한 시에 끝난다며⁠. 한 시간 남네⁠.⁠”

태랑은 은행 앱을 열지 않았다⁠. 열어 봐야 같은 숫자였다⁠. 막내가 할머니 휴대전화를 들고 비닐하우스 한가운데로 걸어 나갔다⁠. 어린것들의 등은 찍지 않고⁠, 퇴비 포대 위의 빈자리를 다시 한 번 찍었다⁠. 그리고 녹화를 끄고 글자만 올렸다⁠.

「⁠5월 31일 밤 열 시 사십 분⁠. 다들 파주 봐⁠. 우두머리 혼자 안 둠⁠.⁠」

올린 지 일 분 만에 공유 숫자가 만을 넘었다⁠.

*

5월 21일 밤 열한 시⁠, 엄호석은 혼자 창고 3동에 갔다⁠. 경비 헌터에게 담배를 한 갑 쥐여 주고 문을 열게 했다⁠. 창고 안은 불이 꺼져 있었고⁠, 높은 창으로 들어온 가로등 빛이 쇠 우리 위에 줄무늬를 그렸다⁠. 호석은 우리 앞의 접이식 의자에 앉았다⁠. 무릎을 펴고 앉느라 한참이 걸렸다⁠.

우두머리는 빨대를 아직 물고 있었다⁠.

“⁠뭘 원해요⁠?⁠”

“⁠땅⁠.⁠”

“⁠생방송에서 얌전히 있어 주면⁠, 강원도 천 평⁠. 서명해 줄게요⁠. 이번엔 진짜로 지켜요⁠.⁠”

“⁠위의 밭⁠.⁠”

“⁠위의 밭은 봉인 날이 잔금 날이라면서요⁠. 길 PD가 그 돈 못 구해요⁠. 못 구하면 협회가 사요⁠. 초소 자리로⁠.⁠” 호석이 손을 무릎에 얹었다⁠. “⁠당신 무리가 살 데가 없어지는 거예요⁠.⁠”

우두머리가 빨대를 엄니 사이에서 뺐다⁠. 쇠창살 너머로 호석을 내려다보았다⁠. 가로등 빛의 줄무늬가 우두머리의 얼굴을 가로질렀다⁠.

“⁠엄호석은⁠, 가을마다 왔다⁠. 자⁠, 고블린 들어오세요⁠. 그리고⁠, 컷⁠. 엄호석은 두 말만 했다⁠.⁠” 우두머리가 낮게 말했다⁠. “⁠이번에는⁠, 우두머리에게 마이크를 달라⁠.⁠”

“⁠마이크는 헌터한테만 줘요⁠.⁠”

“⁠그러면⁠, 우두머리는 정해진 때에 쓰러지지 않는다⁠.⁠”

호석은 대답하지 않았다⁠. 의자에서 일어나려다 무릎이 꺾여 쇠창살을 붙잡았다⁠. 차가운 쇠가 손바닥의 흉터에 닿았다⁠. 우두머리가 쇠창살 너머로 손을 뻗어⁠, 미끄러지는 호석의 팔꿈치를 받쳤다⁠. 호석이 일어설 때까지 손을 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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