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004자)

입회

벽에 만든 도서관 · 정이한

일곱 번째 신청서는 2017년 1월 9일에 냈다.

그 서류가 제일 잘 만든 서류였다.

첨부가 다섯이었다. 소화기 위치도, 청소 당번안, 실측도, 기증 계획, 그리고 근거 조항 사본. 근거 조항 사본은 내가 손으로 옮겨 적은 것이다. 복사기를 못 쓰니까 옮겨 적고 「원문 대조 요망」이라고 적어 두었다.

문장도 짧게 고쳤다. 처음 신청서는 문장이 길었다. 길게 쓰면 공들인 것처럼 보이는데 실제로는 반대다. 긴 문장은 걸릴 자리가 많다.

3. 사용 목적: 도서 열람 4. 사용 기간: 승인일부터 6개월(시범) 5. 관리 방법: 근무 직원 1인 입회 하에 신청인이 대출·반납·정리를 수행합니다.

세 줄이다.

나는 그 세 줄을 내면서 이번에는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한 것이 잘못이었다.

3월에 사동 대항 축구가 있었다.

봄에 한 번, 가을에 한 번 한다. 사동마다 열한 명을 낸다. 우리 사동은 매년 진다. 십오 년째 진다고 했다.

지는 이유가 있다. 우리 사동은 평균 나이가 제일 많다.

“임씨도 나가.” 조태호가 말했다.

“저는 마흔둘입니다.”

“우리 팀 평균이 마흔여섯이야.”

“…그럼 저는 어린 축입니까?”

“임씨가 미드필더야.”

나는 이십 년 만에 공을 찼다.

전반 십 분 만에 숨이 찼다. 십오 분에 나는 걷고 있었다. 걸으면서 나는 상대 팀 선수들이 몇 살쯤인지 세고 있었다. 세는 버릇은 그런 데서도 나온다.

이십 분에 정상우가 나에게 공을 줬다.

나는 그 공을 앞으로 찼다. 아무도 없는 쪽으로 찼다.

“형님! 왜 거기로 차세요!”

“…사람이 없는 데로 차라고 하셨잖습니까?”

“우리 편이 있는 쪽으로요!”

우리 사동은 그날 사 대 영으로 졌다. 십육 년째다.

경기가 끝나고 운동장 구석에 앉아 있는데 박두식이 옆에 왔다. 그 사람은 경기를 안 보고 벽에 기대 앉아 있었다.

“졌지.”

“졌습니다.”

“매년 져.”

“왜 하십니까?”

“일 년에 두 번은 운동장 전체를 쓰잖아.”

나는 운동장을 봤다. 평소에는 사동별로 시간을 나눠 쓴다. 한 번에 다 나오는 것은 일 년에 두 번뿐이다.

“그래서 다들 나오는 거예요?”

“그래.”

“이기려고 나오는 게 아니고요.”

“이기려고 나오는 놈도 있지.” 박두식이 턱으로 저쪽을 가리켰다. “저기 이십 대들.”

“그 친구들은 이겨 봤습니까?”

“아니.”

“그럼요?”

“내년에는 이길 거라고 생각하지.”

회신은 4월 27일에 왔다. 열다섯 주다. 제일 오래 걸린 축이다.

건 명: 유휴 공간 활용 신청(도서 열람실) 결 과: 반려 사 유: 근무 편성상 곤란

나는 그 종이를 복도에서 읽고 방으로 갔다. 방에 가서 관물대를 열고 틈에 넣었다.

일곱 장이다.

그리고 나는 여덟 달 동안 아무것도 안 썼다.

그 여덟 달을 나는 나중에 여러 번 생각했다.

무언가를 그만두는 데는 결심이 필요 없다. 결심이 필요한 것은 시작할 때다. 그만두는 것은 그냥 안 하면 된다. 하루 안 하고, 그다음 날 안 하고, 그러면 한 주가 가고 한 달이 간다.

여덟 달째에 나는 신청서 양식이 어떻게 생겼는지 잊었다.

여섯 칸인 것은 기억했다. 다섯 번째 칸이 무엇이었는지 생각이 안 났다.

그 여덟 달 동안 나는 배식 동선을 바꿨다.

사동 복도는 여든두 걸음이고 끝에 창고가 있다. 배식차는 끝까지 밀고 갔다가 돌아온다. 끝까지 안 가면 마지막 두 방이 밥을 못 받는다.

그래서 나는 끝까지 갔다.

가는데 마지막 열 걸음에서 고개를 왼쪽으로 돌렸다.

왼쪽에는 벽밖에 없다. 아무것도 없는 벽을 보면서 열 걸음을 걸었다. 돌아올 때도 그렇게 했다. 하루 세 번, 여덟 달이면 칠백스무 번이다.

한 번도 안 봤다.

그것을 정상우가 알아챘다.

“형님, 요즘 왜 왼쪽 보고 걸으세요?”

“…그런 적 없습니다.”

“매번 그러세요.”

“습관인가 봅니다.”

정상우는 더 안 물었다.

안 물었는데 세고 있었다.

그것을 나는 여덟 달이 다 지나고 알았다.

정상우가 나가기 전날 밤에 말했다.

“형님, 백열아홉 번이요.”

“…무슨 말씀이십니까?”

“왼쪽 보고 걸으신 거요.”

나는 그를 봤다.

“…세셨습니까?”

“매일은 못 세고요, 제가 볼 수 있는 날만요.”

“…”

“작업장 가는 길에 복도 끝이 보여요. 형님이 마지막 열 걸음에서 고개 돌리시는 거요.”

“…”

“백열아홉 번 봤어요.”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형님.”

“예.”

“그거 안 보시는 거 아니잖아요.”

“…”

“안 보려고 하시는 거잖아요.”

여덟 달 동안 나는 아무한테도 그 이야기를 안 했다. 안 쓴다고도 안 했고 그만둔다고도 안 했다.

그냥 안 썼다.

그것을 정상우가 세고 있었다.

“정 씨.”

“예.”

“왜 세셨습니까?”

“…안 세면 없어지잖아요.”

그해 가을에 봉투 물량이 한 번 몰렸다.

추석 앞이라 그랬다. 하루 여섯 시간 하던 것을 여덟 시간 했다. 시간당 삼백 장이 삼백오십 장이 됐다.

손이 빨라진 것이 아니라 안 쉬어서 늘었다.

나흘째에 엄지 밑이 부었다.

봉투 접는 손은 엄지로 누른다. 하루 이천사백 번을 누르면 그 자리가 굳는다. 굳은 자리가 갈라지면 피가 난다.

작업장에서 밴드를 준다. 하루에 하나씩이다.

나는 그것을 안 받았다.

받으면 왜 다쳤는지를 적어야 하고, 적으면 작업량이 기록에 남는다. 기록에 남으면 물량을 줄인다. 물량을 줄이면 그 주에 접을 것이 옆 사람에게 간다.

사흘 참았다.

사흘째에 정상우가 봤다.

“형님, 손 왜 그래요?”

“…괜찮습니다.”

그가 자기 밴드를 줬다.

“이거 오늘 거예요.”

“그건 정 씨 겁니다.”

“저는 스물아홉이에요.”

“…그게 왜요?”

“스물아홉은 안 갈라져요.”

나는 그 밴드를 받았다.

받아서 그날 저녁에 붙였다.

붙이면서 나는 그것이 여덟 달 만에 처음으로 누구한테 받은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여덟 달 동안 나는 아무것도 안 쓰고 아무것도 안 받았다.

둘이 같은 일이라는 것을 그날 알았다.

안 쓰면 안 받게 된다.

작업장에서는 봉투를 접었다.

여덟 달 동안 나는 봉투를 사십이만 장쯤 접었다. 세어 봐서 아는 것이 아니라 계산해서 안다. 하루 여섯 시간, 시간당 삼백 장, 한 달에 스무 이틀.

계산을 해 놓고 나는 그 숫자가 싫었다.

사십이만이라는 숫자에는 아무것도 안 들어 있다. 봉투 사십이만 장은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 어느 회사가 그것에 뭘 넣어서 어디로 보냈는지 나는 모르고 알 방법도 없다.

전에는 그것이 괜찮았다. 여덟 달째부터 안 괜찮았다.

10월에 박두식이 물었다.

“임씨.”

“예.”

“요즘 안 세지.”

“…예?”

“전에는 뭘 자꾸 셌잖아.”

나는 손을 봤다. 손가락을 안 접고 있었다.

“그러네요.”

“왜 안 세.”

“셀 게 없어서요.”

박두식은 그 말에 아무 대꾸도 안 했다. 대신 사흘 뒤에 사과 자르는 차례를 나에게 넘겼다.

“오늘은 임씨가 잘라.”

“저는 자를 줄 모릅니다.”

“그러니까 세.”

나는 그날 사과 세 알을 여섯으로 나누면서 오랜만에 무언가를 셌다.

11월에 정상우의 출소일이 나왔다.

이듬해 9월이라고 했다. 열 달 남은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방이 조용해졌다가 곧 시끄러워졌다. 여기서 출소일이 나오는 것은 좋은 일인데, 좋은 일이 나오면 방이 잠깐 조용해진다. 남는 사람들이 있다.

“형님.”

그날 밤에 정상우가 말했다.

“저 나가면요.”

“예.”

“그거 계속 쓰실 거예요?”

“…모르겠습니다.”

“쓰세요.”

“왜요?”

“제가 나가서 물어볼 데가 있어야죠.”

“무슨 말씀이십니까?”

“몇 번째까지 갔냐고요.”

나는 대답을 안 했다.

“형님.”

12월 어느 날 정상우가 물었다.

“요즘 그거 안 쓰세요?”

“…예.”

“왜요?”

“쓸 게 없어서요.”

“일곱 개 지우셨잖아요.”

“일곱 개 나왔지 지운 건 여섯 개입니다.”

“그럼 하나 남았네요.”

“그 하나가 제가 못 지우는 겁니다.”

근무 편성은 내가 손댈 수 없다. 사람을 하루 두 시간 빼는 일이다. 그것은 위에서 정한다. 위에서 정하는 것을 수용자가 바꾸는 방법은 없다.

“그럼 끝이에요?”

나는 대답을 안 했다.

정상우는 그 뒤로 안 물었다. 그 사람은 물어야 할 때와 안 물어야 할 때를 아는 사람이다. 스물아홉인데 그렇다.

2018년 1월 4일이었다.

야간 점호가 끝나고 소등 직전이었다. 소등 직전 십 분은 복도에 나갈 수 있다. 세면장에 가는 시간이다.

세면장에서 나오는데 복도 끝에 윤재호가 서 있었다.

창고 문 앞이었다.

“2438.”

“예.”

“요즘 안 내십니까?”

나는 그 앞에 섰다. 복도 등이 절반만 켜져 있어서 얼굴이 반쯤 어두웠다.

“…예.”

“왜요?”

“근무 편성은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요.”

윤재호가 창고 문에 걸린 자물쇠를 봤다. 삼 년 전보다 먼지가 더 앉아 있었다.

“임경식 씨.”

이름을 불렀다. 그때까지 그 사람은 나를 번호로 불렀다.

“예.”

“서류 쓰는 법을 잘못 배우셨습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가 나를 봤다.

“지금까지 낸 게 전부 신청서죠.”

“예.”

“신청은 반려하면 끝납니다.”

“…예.”

“건의로 쓰세요.”

“건의서요?”

“예.”

“그게 다릅니까?”

“다릅니다.”

윤재호가 복도 저쪽을 한 번 봤다. 아무도 없었다.

“요청은 반려하면 됩니다. 건의는 검토해야 됩니다.”

“…”

“검토는 안 된다는 말을 못 씁니다. 검토 중이라고 써야 합니다.”

나는 서류를 접지 않았다.

“검토 중은 끝난 게 아닙니다.”

소등 예고등이 한 번 깜박였다. 삼 분 남았다.

“선생님.”

“예.”

“왜 알려 주십니까?”

윤재호는 대답을 안 했다.

그 사람은 그 뒤로 팔 년 동안 그 질문에 대답을 안 한다. 대답은 열두 해 뒤 출소 전날 밤에 온다.

그날 밤에 나는 관물대에서 종이 일곱 장을 다 꺼냈다.

여덟 달 만이었다.

일곱 장을 펴서 바닥에 늘어놓고 나는 그 위에 손을 얹었다. 어두워서 글씨는 안 보였다. 글씨가 안 보이는데도 어느 장이 어느 사유인지 나는 다 알았다.

여덟 번째부터 나는 신청서를 안 쓴다.

건의서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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