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037자)
값이 들지 않습니다
벽에 만든 도서관 · 정이한
예산을 지우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돈이 드는 자리를 전부 없앤다.
도서관에 돈이 드는 자리는 셋이다.
1. 책 2. 서가 3. 사람
셋 다 없애면 도서관이 아니게 된다. 그래서 없애는 것이 아니라 옮겨야 한다. 그쪽 예산에서 이쪽으로.
책은 기증이다. 서가는 여기서 만든다. 사람은 나다.
이 세 줄을 만드는 데 한 해가 걸렸다.
서가부터가 막혔다.
작업장에서는 나무가 나온다. 우리 작업장은 봉투를 접는 데지만, 옆 작업장은 목공이다. 목공에서는 파레트를 뜯는다. 파레트는 물건 밑에 까는 나무판인데, 부서진 것은 뜯어서 폐기한다.
폐기하는 나무는 값이 없다. 값이 없는 것은 예산에 안 잡힌다.
나는 목공 반장을 찾아갔다.
최기범이다. 나보다 네 살 위고 여기 아홉 해째다. 목공에서 반장을 하면 안에서는 꽤 높은 자리다. 연장을 만지는 자리는 아무나 안 준다.
“파레트 뜯은 나무 좀 얻을 수 있습니까?”
최기범이 대패를 놓고 나를 봤다.
“뭐 하시게요?”
“서가 만들려고요.”
“어디에.”
“복도 끝 창고에요.”
그가 웃지도 않고 나를 봤다. 웃지 않는 것이 웃는 것보다 나쁘다.
“임 씨.”
“예.”
“여기서 나무 갖고 나가면 그게 뭐가 되는지 아세요?”
“…목재입니다.”
“아니요.”
그가 대패를 다시 잡았다.
“몽둥이가 됩니다.”
나는 대패밥을 밟고 있었다.
“나무를 왜 세는 줄 아세요? 들어온 만큼 나가야 하거든요. 하나가 비면 그날 작업장 전체가 섭니다. 전에 한 번 그랬어요. 팔 센티미터짜리 각목 하나 때문에 사흘 동안 목공 전체가 못 돌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할 일은 아니고요.” 그가 손을 멈췄다. “안 되는 일입니다.”
나는 그날 그 사람이 나를 막았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사람은 나에게 세 번째 반려 사유를 미리 알려 준 것이다. 서류가 알려 주기 전에 사람이 먼저 알려 줬는데 내가 못 알아들었다.
책은 더 어려웠다.
기증을 받으려면 기증할 사람이 있어야 한다. 여기서 바깥과 닿는 자리는 셋이다. 편지, 접견, 영치금.
편지는 내가 쓸 수 있다. 그런데 누구에게 쓰는지가 문제다. 나는 밖에 아는 사람이 없다.
정확히 말하면 있는데, 편지를 안 받는다.
접견실 앞에는 아침마다 명단이 붙는다. 나는 그 앞을 매일 지나갔다. 2438은 없다. 열두 해 동안 없었다.
없는 것을 매일 확인하러 가는 사람이 나뿐은 아니다. 다들 간다. 자기 번호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면 그날 하루가 시작된다.
2월 어느 날 정상우의 번호가 있었다.
“정 씨.”
“예.”
“접견 오시는 분이 어머니십니까?”
“예. 두 달에 한 번 오세요.”
“…부탁 하나만 드려도 되겠습니까?”
정상우가 나를 봤다.
“책이요?”
“어떻게 아셨습니까?”
“형님 요즘 그 얘기밖에 안 하시잖아요.”
그가 웃었다. 그러고는 말했다.
“말씀드려 볼게요. 근데 우리 엄마 책 안 읽어요.”
“읽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럼요?”
“가져다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정상우는 그다음 주에 접견을 갔다.
돌아왔을 때 얼굴이 이상했다.
“어떻게 됐습니까?”
“가져오셨어요.”
“…정말요?”
“두 권요.”
나는 손을 놓았다. 두 권이다. 첫 두 권이다.
“그런데요.”
정상우가 앉았다.
“못 넣었어요.”
“왜요?”
“도서 반입은 사전 승인이 있어야 된대요.”
“접견실 창구에서 그랬대요. 미리 신청하고 심의를 거쳐야 한다고요. 그냥 들고 오시면 안 된대요.”
“…어머니는요.”
“가지고 돌아가셨어요.”
정상우가 손으로 무릎을 문질렀다.
“유리 너머로 들어 보이시더라고요.”
“…예?”
“이거 봐라, 하고요. 두 권 다 들어서 표지를 이쪽으로 돌려서요.”
그가 그 손짓을 해 보였다. 양손에 한 권씩 들고 표지를 앞으로 돌리는 손짓이다.
“무슨 책이었습니까?”
“몰라요. 안 보였어요.”
“…안 보였다고요.”
“유리가 좀 그래요. 글씨가 안 보여요.”
“형님.”
“예.”
“죄송해요.”
“정 씨가 죄송할 일이 아닙니다.”
“그게요.” 정상우가 고개를 숙였다. “우리 엄마가 버스 두 번 갈아타고 오세요.”
나는 그날 밤에 오래 못 잤다.
버스 두 번 갈아타고 온 사람이 책 두 권을 들고 유리 앞에 섰다가 그대로 들고 돌아갔다.
그 두 권이 무슨 책이었는지 나는 지금도 모른다. 열한 해가 지났는데 안 물어봤다. 물어보면 정상우가 다시 미안해할 것 같아서다.
한 가지는 안다.
그 두 권이 아직 그 집에 있다는 것이다.
정상우가 그다음 접견에서 물어봤다고 했다.
“엄마가 안 버리셨대요.”
“…예?”
“그 두 권이요. 안 버리셨대요.”
“…”
“절차 되면 다시 가져오신다고요.”
나는 그 말을 듣고 아무 말도 안 했다.
“형님, 그거 언제 돼요?”
“…사전 승인을 받으면 됩니다.”
“그거 얼마나 걸려요?”
“한 권에 넉 달이랍니다.”
“두 권이면요?”
“여덟 달입니다.”
정상우가 손가락을 꼽았다.
“그럼 내년이네요.”
“…그렇습니다.”
“그럼 내년에 가져오시라고 할게요.”
그해에 나는 도서 반입 신청서를 못 냈다.
기증자 자격은 됐다. 접견인 기증은 접견 기록이 있어야 하는데 정상우는 기록이 있다.
막힌 것은 다른 데였다.
※ 기증 도서는 수용자 개인이 아닌 시설 앞으로 접수함.
시설 앞으로 접수하려면 시설에 받을 자리가 있어야 한다.
받을 자리가 없었다.
교무과 서가 서른두 권짜리가 전부였고, 거기는 열람용 비치본이라 새로 못 넣는다고 했다.
받을 자리를 만들려고 나는 신청서를 쓰고 있었다.
책이 있으면 방을 달라고 할 수 있고, 방이 있으면 책을 받을 수 있다.
둘 중 하나가 먼저 있어야 하는데 둘 다 없었다.
나는 그것을 그해 가을에 알았다.
알고 나서 정상우에게는 말을 안 했다.
“내년에 가져오시라고 할게요.”
그 말에 나는 그러라고 했다.
그러라고 하면서 나는 그것이 내년에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여기서 안 되는 것을 안 된다고 말하지 않는 것은 흔한 일이다.
그런데 그날은 그 흔한 일이 하루 종일 마음에 남았다.
나는 그 뒤로 십일 년 동안 그 두 권을 여러 번 생각했다.
생각할 때마다 그 두 권은 조금씩 다른 책이 됐다.
무슨 책인지 모르니까 그럴 수 있었다.
무슨 책인지 모르니까 그럴 수 있었다는 말은, 알면 하나로 굳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나는 그 두 권을 하나로 굳히지 않았다.
사전 승인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그다음 주에 알아봤다.
교무과 창구는 오전에만 연다. 줄은 대개 넷이나 다섯이다. 앞사람들은 대부분 영치금 이야기를 한다. 영치금은 여기서 제일 자주 틀리는 숫자다.
내 차례가 왔다.
“도서 반입 절차를 알고 싶습니다.”
직원이 나를 봤다. 사십 대 여자 직원이었다. 그 사람은 여기 오래 있었고 말이 빨랐다.
“기증하시려고요, 받으시려고요.”
“받으려고요.”
“신청서 내시고 심의 거치면 됩니다.”
“심의는 어디서 합니까?”
“교화 담당이 봅니다.”
“몇 분이십니까?”
그가 잠깐 말을 멈췄다.
“…한 분이요.”
“한 분이 일 년에 몇 권을 보십니까?”
“그건 왜 물으십니까?”
“기다리는 기간을 알고 싶어서요.”
그가 서류를 넘기다 말고 나를 봤다.
“한 권에 넉 달쯤 걸립니다.”
나는 그 숫자를 머리에 넣었다.
한 권에 넉 달이다. 열 권이면 사십 개월이다. 백 권이면 삼십삼 년이다.
나는 그 자리에서 셈을 하고 있었고, 셈이 끝나자 손끝이 좀 찼다.
“왜 그렇게 오래 걸립니까?”
“볼 사람이 없어서요.”
“기준이 없어서 아닙니까?”
직원이 고개를 들었다.
“…뭐라고요?”
“무엇을 보고 되고 안 되고를 정하는지가 없으면, 한 권을 볼 때마다 처음부터 생각해야 하니까요.”
그가 나를 삼 초쯤 봤다.
“다음 분.”
나는 물러났다. 그날은 거기까지였다.
그런데 그 삼 초를 나는 기억해 뒀다. 여기서 직원이 수용자를 삼 초 보면 그것은 무언가가 들어갔다.
열 해 뒤에 나는 그 자리에 검토 기준을 만들어 내게 된다. 그때 그 직원은 이미 다른 데로 갔다.
다섯 번째 신청서는 4월 11일에 냈다.
3. 사용 목적: 도서 열람 5. 관리 방법: 신청인이 대출·반납·정리를 맡습니다. ※ 도서는 접견인 기증 및 외부 기관 기증으로 확보하며, 도서 구입 예산은 소요되지 않습니다. ※ 서가는 시설 내 폐자재를 활용하며, 자재 반출입은 작업장 관리 절차를 따릅니다. ※ 도서 반입은 사전 승인 절차를 따르며, 승인 전 반입은 하지 않습니다.
세 번째 별표는 정상우 어머니 때문에 넣었다.
그 일이 없었으면 나는 그 절차가 있는 줄도 몰랐을 것이다. 서류는 그런 식으로 는다. 누가 한 번 막히면 그 자리에 한 줄이 생긴다.
회신은 6월 30일에 왔다. 열한 주다.
건 명: 유휴 공간 활용 신청(도서 열람실) 결 과: 반려 사 유: 관리 인력 부재
나는 그 다섯 글자를 오래 봤다.
관리 인력 부재.
돈은 안 든다고 했더니 사람이 없다고 한다.
나는 종이를 들고 방으로 갔다. 다섯 장째다. 관물대 문짝 틈에 넣기 전에 나는 다섯 장을 다 꺼내 나란히 놓았다.
1. 화재 위험 2. 위생 3. 공간 용도 미지정 4. 예산 5. 관리 인력 부재
“형님.” 정상우가 뒤에서 봤다. “이번엔 사람이 없대요?”
“예.”
“형님 있잖아요.”
나는 그를 봤다.
“…예?”
“형님이 관리하신다면서요.”
“예.”
“그럼 사람 있잖아요.”
나는 그 말을 듣고 한참 대답을 못 했다.
정상우는 그것을 아주 쉽게 말했다. 여기 있는 사람은 그 말을 쉽게 못 한다. 우리는 사람으로 안 세어지는 데 익숙해서, 우리가 사람이라는 말을 우리 입으로 잘 안 한다.
“정 씨.”
“예.”
“그 말 그대로 쓰겠습니다.”
“무슨 말이요.”
“제가 관리 인력이라고요.”
정상우가 웃었다.
“그거 당연한 거 아니에요?”
“여기서는 아닐 겁니다.”
여섯 번째 신청서에 나는 이렇게 썼다.
5. 관리 방법: 신청인이 관리 인력입니다.
그 문장을 쓰는 데 십 분이 걸렸다. 열 자밖에 안 되는데 십 분이 걸렸다.
그리고 그 문장 때문에 여섯 번째가 반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