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1,921자)
열여덟 권
벽에 만든 도서관 · 정이한
기증 절차는 이렇다.
기증받을 데를 찾는 것도 일이었다.
먼저 인근 도서관 다섯 곳에 편지를 썼다. 답장은 한 곳에서 왔다.
폐기 예정 도서를 준다고 했다. 폐기 도서는 상태가 나쁘다. 표지가 떨어지거나 밑줄이 그어져 있다.
상관없다. 여기서는 표지 떨어진 책도 읽는다.
1. 기증 의사 접수 2. 도서 내용 검토 3. 반입 승인 4. 등록
이 중에 2번이 오래 걸린다. 책 한 권을 검토하는 데 평균 사 개월이라고 윤 교도관이 말했다.
“왜 그렇게 오래 걸립니까?”
“검토할 사람이 없어서요.”
“몇 분이십니까?”
“한 분이요.”
“몇 권을 보십니까?”
“일 년에 삼백 권쯤이요.”
삼백 권이면 하루에 한 권이다. 검토라기보다 훑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알고 나서 방법을 바꿨다.
검토가 오래 걸리는 것은 무엇을 봐야 할지 정해져 있지 않아서다.
도서 검토 기준(안)
다음에 해당하지 않으면 반입한다. 1. 시설 보안에 관한 내용 2. 범죄 수법을 구체적으로 기술한 내용 3. 특정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내용
※ 위 3항에 해당하지 않는 도서는 검토 없이 반입한다.
이것을 열여섯 번째 건의서로 냈다.
사 주 만에 회신이 왔다.
회신: 승인
이번에는 조건도 없었다.
승인 이유가 적혀 있었다.
※ 검토 업무 경감 효과 인정
나는 그 한 줄을 오래 봤다.
십일 년 동안 나는 이것이 필요하다고 썼다. 열여섯 번째에 처음으로 저쪽이 편해진다고 썼다.
그게 통했다.
책은 그다음부터 빨리 왔다.
책이 오면 나는 한 권씩 손에 들어 봤다.
인쇄소를 하면 종이를 만지는 버릇이 든다. 두께를 손끝으로 재고, 결을 본다.
폐기 도서는 종이가 삭아 있다. 십 년 넘은 책은 넘길 때 소리가 다르다.
그 소리를 나는 이십 년 만에 다시 들었다.
2026.03 — 4권 (기증: 인근 도서관 폐기 도서) 2026.05 — 7권 2026.07 — 3권 2026.09 — 6권
넉 달에 이십 권이다.
오십 권 한도를 넘었다.
“한도를 넘었는데요.” 내가 윤 교도관에게 말했다.
“그럼 스물두 권을 빼셔야죠.”
“빼면 어디 둡니까?”
“원래대로 창고에 두시면 되죠.”
나는 그 말을 듣고 열일곱 번째 건의서를 준비했다.
한도 상향이다.
건의번호 2026-017 건의 내용: 도서 한도 50권 → 200권 건의 사유: 현재 72권. 초과분 22권은 창고 보관 중. ※ 창고 보관은 열람이 불가하므로, 사실상 폐기와 같음.
윤 교도관이 그 초안을 봤다.
“마지막 줄 빼세요.”
“…왜요.”
“폐기라는 말이 들어가면 감정적이라고 반려됩니다.”
나는 그 줄을 지웠다. 대신 이렇게 썼다.
※ 초과분 22권은 열람 불가 상태로 보관 중.
윤 교도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통합니다.”
“차이가 뭡니까?”
“앞의 건 저쪽 잘못이고, 뒤의 건 그냥 상태입니다.”
나는 그 문장을 수첩에 적었다.
십일 년 동안 배운 것 중에 제일 쓸모 있는 것이었다.
열일곱 번째는 육 주 만에 승인됐다.
한도가 이백 권이 됐다.
그해 십이월에 책이 백열네 권이 됐다.
창고에 서가를 놓았다. 서가는 작업장에서 만들었다. 목공 작업이 승인 항목에 있어서 가능했다.
서가를 만드는 데 넉 달 걸렸다.
작업장은 하루에 두 시간이다. 나무를 자르고 사포질하고 조립한다.
못은 못 쓴다. 반입 금지 품목이다. 그래서 홈을 파서 끼웠다.
홈 파는 것을 나는 인쇄소에서 배웠다. 활자판을 짜는 것과 비슷하다.
서가는 다섯 칸이다.
칸마다 스물세 권쯤 들어간다.
나는 그 칸을 세는 버릇이 생겼다.
한 칸이면 스물세 권, 두 칸이면 마흔여섯 권.
십일 년 동안 나는 반려 사유를 셌다. 다섯 개에서 하나로 줄었다.
이제는 칸을 센다.
세는 것이 늘어나는 쪽으로 바뀐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