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5,016자)

박두식의 자리

벽에 만든 도서관 · 정이한

박두식은 2031년 1월 11일에 갔다.

의무과에서 갔다. 사흘 전부터 거기 있었다. 폐렴이라고 했다.

여든한 살이었고 여기서 서른아홉 해를 났다.

무기수가 여기서 가면 절차가 있다. 연고자에게 연락하고, 연고자가 없으면 시설에서 처리한다.

박두식은 연고자가 없었다.

우리 방에서 그 사람 물건을 정리한 것은 나와 조태호였다.

방 사람이 정리하는 것은 규정에 없다. 담당 직원이 한다. 그날은 윤재호가 우리를 부르고 옆에 서 있었다.

“두 분이 하십시오. 저는 여기 있겠습니다.”

관물대를 열었다.

여기서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은 정해져 있다.

수건 두 장. 칫솔. 비누. 플라스틱 대야. 숟가락. 겨울 내복 한 벌. 여름 것 한 벌. 안경. 편지 묶음.

박두식은 편지가 없었다.

한 통도 없었다.

서른아홉 해 동안 한 통도 안 받았다.

“…형님.” 조태호가 말했다.

“예.”

“이거 보세요.”

관물대 안쪽 문짝이었다.

거기 눈금이 새겨져 있었다.

가로로 그은 선이 여러 개였다. 선마다 옆에 날짜가 새겨져 있었다. 숟가락으로 긁은 자국이라 얕고 삐뚤었다.

1994.3 1996.8 1999.1 2002.5 2006.11 2011.2 2015.7 2019.4 2024.9 2029.12

열 개였다.

선의 길이가 조금씩 달랐다.

제일 위의 것이 제일 길었다. 아래로 내려올수록 짧아졌다.

제일 아래 것은 손가락 두 마디쯤이었다.

“…이게 뭐예요?” 조태호가 물었다.

나는 그것을 손끝으로 만졌다.

만지면서 나는 알았다.

이십 년 전에 그 사람이 숟가락으로 깎은 자다. 눈금 서른 개짜리다. 성냥갑으로 오 센티를 재서 그었다고 했다.

“잴 게 있었어.”

내가 물었을 때 그 사람은 그렇게 말했다.

무엇을 재는지는 안 말했다.

나는 조태호에게 물었다.

“조 씨.”

“예.”

“저 벽에 서 보십시오.”

“…예?”

“맞은편 벽에요.”

조태호가 갔다. 방 폭은 세 걸음 반이다.

“이제 저를 보십시오.”

“봅니다.”

“제 얼굴이 보이십니까?”

“보이죠.”

“다 보이십니까?”

“…다 보이는데요.”

나는 손을 들어 내 얼굴 앞에 폈다. 손바닥으로 얼굴 가운데를 가렸다.

“이러면요.”

“…가운데가 안 보이죠.”

“가장자리는요.”

“보여요. 머리하고 어깨는요.”

나는 손을 내렸다.

“박 선생님은 그렇게 보셨습니다.”

조태호가 나를 봤다.

“…무슨 말씀이세요.”

“텔레비전 보실 때 비스듬히 보셨습니다.”

“…”

“정면으로 보면 가운데가 안 보이니까요.”

“임 선생님.” 윤재호가 말했다.

“예.”

“의무 기록 확인해 보겠습니다.”

기록은 이틀 뒤에 나왔다.

1993년에 처음 진단을 받았다. 눈 안쪽 가운데가 안 보이게 되는 병이다. 서른여덟 해 전이다.

기록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1993.11 진단. 양안. 진행성. 1994~2029 외부 진료 신청 없음.

외부 진료 신청이 없다.

여기서 눈은 외부 병원에 가야 본다. 신청서를 내고 승인이 나면 호송을 붙여 나간다.

서른여덟 해 동안 한 번도 안 냈다.

“왜 안 내셨을까요?” 조태호가 물었다.

밤에 그 답을 생각했다.

외부 진료를 나가려면 호송이 붙는다. 직원 둘이 하루를 쓴다. 무기수는 호송 등급이 높아서 셋이 붙을 수도 있다.

그리고 나가면 수갑을 찬다.

여든 살에 수갑을 차고 나가서, 안 고쳐지는 병을 확인받고 돌아온다.

그 사람은 그것을 서른여덟 번 안 했다.

대신 자를 만들었다.

이십 년 전에 숟가락으로 깎고 성냥갑으로 눈금을 그었다.

그리고 오 년에 한 번씩 관물대 문짝에 선을 그었다.

보이는 폭이다.

1994년에는 손 한 뼘 반이 보였다. 2029년에는 손가락 두 마디가 보였다.

서른다섯 해 동안 그만큼 좁아졌다.

열 개 가운데 하나가 눈에 걸렸다.

2015.7

나는 그 넉 자를 손끝으로 만졌다.

2015년 7월 4일에 나는 두 번째 신청서를 냈다. 소화기 위치도를 붙인 것이다.

그 사람이 그달에 자를 댔다.

앞의 여섯 개는 삼 년이나 사 년 만이었다. 1994년 3월에서 2011년 2월까지 여섯이다.

2011년 2월 다음이 2015년 7월이다. 네 해 다섯 달 만이다.

늦은 편도 아니고 이른 편도 아니다.

우연일 것이다.

나는 그렇게 적으려다가 안 적었다.

그해 3월에 나는 그 방을 처음 봤고, 그 사람은 밤에 어두운 데서 나에게 물었다.

종이 냄새 났지.

나도 났어.

한 오 년 전에 한 번 들어가 봤다고 했다.

그러고 넉 달 뒤에 그 사람은 자기 눈을 쟀다.

무엇을 재려고 만드셨느냐고 나는 다섯 해 뒤에 물었고, 그 사람은 잴 게 있었다고만 했다.

잴 것이 눈만은 아니었을 수도 있다.

앞으로 몇 해가 남았는지를 쟀을 수도 있다.

그 방이 생기는 것을 볼 수 있을 만큼 남았는지를.

나는 그 생각을 하고 조태호에게는 말 안 했다.

말하면 그것은 내 이야기가 된다.

그 사람 관물대 문짝에 있는 것은 그 사람 이야기다.

나는 그대로 두고 문을 닫았다.

닫고 나서 다시 열었다.

한 번 더 보려고 열었는데 열고 나서는 안 봤다.

눈금 열 개를 세는 일은 그 사람이 서른일곱 해 동안 혼자 한 일이다.

나까지 세면 열한 번째가 된다.

열한 번째로 센 사람은 그 눈금을 못 늘린다.

못 늘리는 것을 아는 사람이 세는 것이다.

그래서 세는 사람은 늘 늦게 온다.

“나는 안 읽어.”

2016년에 내가 청소 당번표를 내밀었을 때 그 사람은 그렇게 말했다.

“글을 모르십니까?”

“알아. 안 읽는 거야.”

그때 나는 그 말을 못 알아들었다.

읽을 줄 아는데 안 읽는다는 말을, 나는 고집으로 들었다.

글자는 정면으로 봐야 읽힌다.

옆으로 보면 얼굴은 보이고 화면은 보이는데 글자는 안 보인다.

그 사람은 못 읽는 것을 안 읽는다고 말했다.

서른아홉 해 동안 그렇게 말했다.

“임씨.”

2020년 겨울에 그 사람이 나에게 물은 것이 있다.

“그동안 뭐가 늘었어?”

내가 대답을 못 하니까 그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저쪽이 할 일이 늘었어.”

나는 그 말을 그 사람의 지혜로 알아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은 지혜가 아니었다.

그 사람은 그 방이 생기면 무엇이 늘어나는지를 봤다. 자기가 못 쓰는 것을 남이 쓰게 되는 것을 셌다.

그리고 서가를 짜 줬다.

못 없이 홈을 파는 법을 알려 줬다. 끌을 세우지 말고 눕히라고 했다. 열 번 긁으면 바닥이 평평해진다고 했다.

그것은 손으로 하는 일이다.

눈이 아니라 손으로 아는 일이다.

“나는 안 읽어. 그런데 만드는 건 해.”

그 말을 십일 년 만에 나는 다시 들었다.

박두식이 짠 칸은 셋이다.

서가 다섯 칸 중에 첫 시제품 한 칸과, 2022년에 늘린 세 칸 중 둘이 그 사람 손이 들어간 것이다.

나는 2031년 1월 집계를 봤다.

칸별 대출 건수를 안세중이 세어 뒀다.

1칸(요리·생활) 41 2칸(지도·여행) 34 3칸(소설) 29 4칸(역사·기타) 18 5칸(종교) 11

1칸과 2칸이 박두식이 짠 칸이다.

일흔다섯 건이다. 전체의 절반이 넘는다.

우연이다. 분류를 정할 때 아무도 그것을 생각 안 했다.

그런데 나는 그 표를 보고 한참 앉아 있었다.

안 읽는 사람이 만든 칸에서 제일 많이 나갔다.

그 사람이 의무과에 있던 사흘 동안 나는 두 번 갔다.

의무과는 면회가 안 된다. 같은 사동 사람이 가는 것은 원칙적으로 안 되는데, 윤재호가 두 번 열어 줬다.

첫날 그 사람은 자고 있었다.

둘째 날에 깨어 있었다.

“임씨.”

“예.”

“왔어?”

“왔습니다.”

그 사람은 나를 정면으로 안 봤다. 늘 그랬다. 나는 그것을 서른 해 습관인 줄 알았다.

“열람실은.”

“잘 돌아갑니다.”

“몇 권이야?”

“백서른두 권입니다.”

“…많네.”

“예.”

그가 한참 아무 말도 안 했다.

“임씨.”

“예.”

“나 하나만 물어봐도 돼?”

“말씀하십시오.”

“거기 앉으면 어때.”

나는 그 질문을 못 알아들었다.

“…열람실에요?”

“응.”

“…조용합니다.”

“그리고.”

“…창이 하나 있습니다. 오후 두 시에 빛이 들어옵니다.”

“어디로 들어와.”

“위쪽 창에서 비스듬히 들어옵니다.”

“바닥에 뭐가 생겨?”

“…사각형이 하나 생깁니다.”

박두식이 눈을 감았다.

“그거 좋네.”

나는 그 자리에서 한참 아무 말도 못 했다.

“박 선생님.”

“응.”

“한 번도 안 오셨습니다.”

“…”

“오 년 동안 한 번도 안 오셨습니다.”

그가 눈을 뜨지 않고 말했다.

“임씨.”

“예.”

“내가 거기 앉아 있으면 자리 하나가 없어져.”

“의자가 둘이잖아.”

“…예.”

“나는 읽지도 못하는데 둘 중 하나를 쓰면 안 되지.”

“…”

“그건 아까워.”

그날 나는 그 사람에게 아무 대답도 못 하고 나왔다.

지금은 대답이 있다.

앉아 있기만 하는 것도 이용이다.

그 방에 처음 온 사람이 두 시간 동안 창만 봤다. 그 사람도 안 읽었다. 나는 그것을 이용이라고 정광호에게 말했다.

박두식에게는 못 했다.

정리를 마치고 나는 그 자를 챙겼다.

“임경식 씨.”

윤재호가 말했다.

“예.”

“그건 유류품입니다.”

“…압니다.”

“연고자가 없으면 폐기합니다.”

나는 그것을 손에 들고 있었다.

길이가 한 뼘 반쯤이고 한쪽 면에 눈금이 서른 개 있다. 숟가락으로 깎은 것이라 표면이 고르지 않다.

“선생님.”

“예.”

“이거 열람실에 기증하면 안 됩니까?”

윤재호가 나를 봤다.

“…자를요?”

“예.”

“도서가 아닌데요.”

“압니다.”

“…”

“열람실 비품으로 하면 됩니다.”

그는 한참 아무 말도 안 했다.

“…뭐에 쓰십니까?”

“책 잴 때 씁니다.”

“책을 왜 잽니까?”

“서가에 몇 권 들어가는지 알아야 합니다.”

윤재호가 서류를 폈다.

“…비품 등록 신청서를 쓰십시오.”

그 자는 지금 열람실 대출 창구에 있다.

거기 종이 조각 상자 옆에 놓여 있다.

아무도 안 쓴다.

목록 담당이 바뀔 때마다 인계 문서에 한 줄이 들어간다.

비품 1: 나무 자 1개. 용도 — 도서 계측. 제작자 박두식.

28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