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5,030자)
발신인
벽에 만든 도서관 · 정이한
2030년 12월 19일에 나에게 소포가 왔다.
게시판에 번호가 붙었다. 2438이었다.
나는 그 앞에 서서 그 네 자리를 세 번 읽었다.
십팔 년 동안 그 게시판에서 내 번호를 본 적이 없다. 접견 명단에도 없었고 영치금 입금 명단에도 없었다.
“임경식 씨.”
윤재호가 나를 불렀다.
“…예.”
“도서 반입 신청이 들어왔습니다.”
“…누구한테서요?”
그가 서류를 봤다.
“임서윤 씨입니다.”
나는 그 이름을 십사 년 만에 들었다.
내 딸이다.
내가 들어올 때 스물세 살이었다. 지금 마흔하나다.
“…”
“아십니까?”
“…딸입니다.”
윤재호가 서류에서 눈을 들었다.
그 사람은 팔 년 동안 나를 봤다. 내 접견 기록이 없다는 것도 안다. 편지가 정상우 것 하나뿐이라는 것도 안다.
“…예.”
그는 그것만 말했다.
책은 두 권이었다.
교무과에서 상자를 열었다. 나는 옆에 서 있었다.
두 권 다 새 책이었다. 지금까지 들어온 백서른 권은 다 폐기 도서였다. 표지가 떨어지거나 밑줄이 있거나 물에 젖었다 마른 것들이었다.
새 책은 처음이었다.
새 책은 소리가 다르다. 넘기면 「사」에 가깝다.
“임경식 씨.”
“예.”
“이건 반입이 어렵습니다.”
“…내용에 문제가 있습니까?”
“아닙니다.”
“그럼요?”
윤재호가 서류를 짚었다.
“기증자 관계 확인이 안 됩니다.”
“…딸입니다.”
“가족 관계는 접견 기록으로 확인합니다.”
“…”
“접견 기록이 없습니다.”
십사 년 동안 그 사람이 안 왔다.
안 온 것이 여기서는 관계가 없다는 뜻이 된다.
“다른 방법이 있습니까?”
“가족관계증명서를 받으시면 됩니다.”
“얼마나 걸립니까?”
“신청하고 발급받고 우편으로 오면… 한 달쯤이요.”
“그럼 한 달 뒤에 됩니까?”
윤재호가 잠깐 있다가 말했다.
“…한 달 뒤에 다시 심의합니다.”
“심의는 얼마나 걸립니까?”
“지금은 기준이 있어서 빠릅니다.”
나는 그 말에 웃을 뻔했다.
그 기준을 만든 것이 나다.
내가 만든 기준으로도 내 딸이 보낸 책은 못 들어온다.
그날 밤에 나는 그 기준을 다시 생각했다.
1. 시설 보안에 관한 내용 2. 범죄 수법을 구체적으로 기술한 내용 3. 특정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내용
세 줄 다 내용에 관한 것이다.
책 자체는 아무 문제가 없다.
걸린 것은 보낸 사람이었다.
나는 십오 년 동안 무엇이 들어오는지만 봤다. 누가 보내는지는 안 봤다.
이틀 뒤에 윤재호가 나를 불렀다.
“임경식 씨.”
“예.”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기증자를 개인 대 개인으로 하지 마십시오.”
“…”
“열람실 앞으로 하면 됩니다.”
나는 그 말을 잠깐 생각했다.
“…그러면 제 것이 아니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
“열람실 도서가 됩니다. 누구나 빌려 갑니다.”
“…”
“임경식 씨도 빌려서 보셔야 합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오래 서 있었다.
십사 년 만에 딸이 보낸 책이다.
그것을 내 것으로 하려면 한 달을 기다려야 하고, 열람실 것으로 하면 오늘 들어온다.
그리고 열람실 것이 되면 그것은 내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정말입니까?”
“예.”
“왜요?”
“…제가 두 달 뒤에 나갑니다.”
“…”
“한 달 기다려서 제 것으로 받으면, 제가 나갈 때 갖고 나갑니다.”
“그건 가능합니다.”
“그러면 여기 한 권이 줍니다.”
윤재호가 나를 봤다.
“…임경식 씨.”
“예.”
“그 두 권 안 보셨죠.”
“…예.”
“보고 정하십시오.”
나는 그날 오후에 그 두 권을 봤다.
교무과에서 봤다. 반입 전이라 만지기만 하고 가져가지는 못한다.
첫 번째 책은 요리책이었다.
두꺼웠다. 사진이 많았다. 내가 여기서 열여덟 해 동안 본 요리책 아홉 권 중에 이만한 것이 없었다.
나는 그것을 넘기다가 손을 멈췄다.
속표지에 글씨가 있었다.
도서 열람실 귀중 임서윤
두 줄이었다.
내 이름은 없었다.
나는 그 두 줄을 오래 봤다.
그 사람은 이미 알고 있었다.
내 앞으로 보내면 안 들어온다는 것을, 아니면 내 앞으로 보내고 싶지 않았다는 것을.
어느 쪽인지 나는 지금도 모른다.
글씨는 반듯했다. 획을 끝까지 긋는 글씨다. 어렸을 때 그 애는 글씨를 흘려 썼다. 내가 그것을 여러 번 지적했다.
십사 년 만에 본 글씨는 안 흘려 있었다.
두 번째 책을 폈다.
소설이었다. 그것도 새 책이었다.
나는 그것을 뒤에서부터 폈다.
인쇄소를 스무 해 하면 책을 뒤에서 편다. 판권면을 먼저 본다. 어디서 찍었는지, 몇 쇄인지, 종이가 무엇인지.
판권면에 인쇄소 이름이 있었다.
경일인쇄.
내 인쇄소다.
나는 그 세 글자를 보고 손을 놓았다. 책이 책상에 떨어졌다.
“…임경식 씨?”
“…”
“괜찮으십니까?”
나는 그 책을 다시 들었다.
발행 연도가 2009년이었다.
이십일 년 전이다. 내가 들어오기 삼 년 전이다.
그해에 나는 그 책을 찍었다. 몇 부를 찍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초판 이천 부쯤이었을 것이다.
그 책이 지금 새 책으로 여기 있다.
이십일 년 동안 안 팔린 책이다. 어느 창고에 있다가 나왔을 것이다.
딸이 그것을 어디서 구했는지 나는 모른다.
찾았을 것이다.
찾으려고 하지 않으면 못 찾는다. 이십일 년 된 초판을 새 책으로 구하려면 헌책방을 여러 곳 돌아야 한다.
“임경식 씨.”
“…예.”
“정하셨습니까?”
나는 두 권을 나란히 놓았다.
“…열람실 앞으로 해 주십시오.”
“두 권 다요?”
“예.”
“…한 권은 개인으로 하셔도 됩니다. 한 달 기다리시면요.”
“두 권 다 열람실로 하겠습니다.”
윤재호가 서류에 적었다.
적으면서 물었다.
“…나가실 때 안 갖고 가셔도 되겠습니까?”
“예.”
“왜요?”
나는 그 책 판권면을 손끝으로 만졌다.
“제가 찍은 겁니다.”
“…예?”
“이 책 제 인쇄소에서 찍었습니다.”
윤재호가 볼펜을 놓았다.
“…”
“이십일 년 전에 이천 부를 찍어서 다 내보냈습니다.”
“…”
“한 권도 안 갖고 있었습니다.”
그 두 권은 12월 22일에 등록됐다.
번호는 131번과 132번이다.
목록 담당인 안세중이 그것을 적었다.
131 / 요리 / 기증: 임서윤 / 2030.12.22 132 / 소설 / 기증: 임서윤 / 2030.12.22
“임 선생님.”
“예.”
“이 이름 여기 두 번 적혔는데요.”
“…예.”
“같은 분이세요?”
“예.”
그가 잠깐 나를 봤다.
“…성이 같으신데요.”
나는 대답을 안 했다.
안세중도 더 안 물었다.
여덟 해 동안 가르치면서 나는 그 사람에게 여러 가지를 가르쳤다.
더 안 묻는 것은 안 가르쳤다.
그것은 여기서 저절로 배운다.
그날 밤에 나는 편지를 썼다.
십팔 년 동안 나는 편지를 한 통도 안 썼다. 정상우가 여덟 번 부쳤는데 답장을 한 번도 안 했다.
안 한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나중에는 안 한 것이 이유가 됐다. 오래 안 하면 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봉투는 열람실 종이 조각으로 만들 수 없다. 편지지는 구매품이다.
나는 커피 두 개를 냈다.
십팔 년 동안 모은 커피가 그때 아홉 개였다.
첫 줄을 쓰는 데 두 시간이 걸렸다.
서윤에게
이 세 글자를 쓰고 나는 볼펜을 놓았다.
십사 년 동안 나는 그 애 이름을 소리 내어 부른 적이 없다.
두 번째 줄부터는 빨랐다.
책 두 권 받았다. 열람실 앞으로 등록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이 빌려 간다. 내 앞으로 받으면 나갈 때 갖고 나가야 하는데, 그러면 여기 두 권이 준다.
두 번째 책 판권면을 봤다. 네가 어디서 그걸 구했는지는 안 묻겠다.
아버지가
여섯 줄이었다.
쓰고 나서 나는 마지막 줄을 지웠다.
「아버지가」를 지우고 「임경식」이라고 썼다.
지우고 다시 「아버지가」라고 썼다.
세 번 그랬다.
세 번째에 나는 「아버지가」로 뒀다.
그 세 번을 지우고 쓰는 동안 나는 편지 여덟 통을 옆에 놓고 있었다.
정상우 것이다.
십이 년 동안 나에게 온 편지는 그 여덟 통과 조성희의 스물세 통이 전부다.
편지 쓰는 법을 나는 그 여덟 통에서 배웠다.
잘 계시죠. 저는 무엇을 합니다. 묻겠습니다.
세 줄이다.
앞의 두 줄은 짧고 마지막 줄이 물음이다.
나는 그대로 썼다.
책 두 권 받았다. 열람실 앞으로 등록했다. 네가 어디서 그걸 구했는지는 안 묻겠다.
세 번째 줄을 쓰고 나서 나는 한참 봤다.
정상우의 셋째 줄은 물음이었다. 내 셋째 줄은 안 묻겠다는 줄이다.
물으면 답이 온다. 안 묻겠다고 하면 안 와도 된다.
나는 십이 년 동안 안 와도 되는 쪽을 받기만 했다.
그것을 그날 처음으로 내가 주고 있었다.
주고 나서 그 줄을 안 지웠다.
지우면 묻게 되고, 물으면 그 애가 답을 해야 한다.
답을 해야 하는 것은 무겁다.
그 무거운 것을 십사 년 동안 안 보낸 사람이 나다.
한 번 더 보낼 수는 없었다.
봉투를 봉하고 나서 나는 그 여덟 통을 제자리에 넣었다.
넣으면서 세 번째 편지를 한 번 더 봤다.
어머니 이야기가 없던 편지다.
그해에 그 사람은 어머니가 편찮으신 것을 안 썼다. 이듬해에 썼다.
일 년을 혼자 갖고 있었다는 뜻이다.
나는 그것을 그날 알았다.
없는 줄을 찾는 버릇이 그날은 한 해 늦게 맞았다.
봉투를 봉하기 전에 나는 한 줄을 더 넣었다.
여기 도서관 이름이 없다. 열람실이라고만 부른다. 이름 짓는 것은 규정에 없어서 안 했다.
네가 하나 지어 보내면, 규정에 없어도 벽에 붙여 두겠다.
이 줄을 쓰면서 나는 손이 좀 떨렸다.
십팔 년 동안 나는 규정에 있는 것만 했다. 없는 것은 만들어서 넣었다.
이 줄은 만들 수 없다.
답장은 안 올 수도 있다.
131번은 사흘 뒤에 처음 나갔다.
빌려 간 사람은 마흔둘이었다. 어머니 김치찌개를 두 번 빌린 그 사람이다.
그가 이틀 뒤에 돌아왔다.
“임 선생님.”
“예.”
“이 책 백서른일곱 쪽 보세요.”
나는 그 자리에서 폈다.
김치찌개였다.
“…”
“돼지고기를 나중에 넣으라고 되어 있어요.”
그가 웃었다.
“두 권 다 그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