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5,022자)
스무 번째
벽에 만든 도서관 · 정이한
2030년 9월에 나는 안세중에게 건의서를 넘겼다.
넘겼다는 말은 정확하지 않다. 원래부터 건의자 칸에는 그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열세 번째부터 열아홉 번째까지 일곱 장이 다 그렇다.
그런데 그 일곱 장을 쓴 것은 나다.
이름만 그의 것이고 문장은 내 것이었다.
“스무 번째는 직접 쓰십시오.”
작업장 쉬는 시간이었다.
“…제가요?”
“예.”
“임 선생님이 쓰시는 게 낫지 않아요?”
“지금은 그렇습니다.”
“…”
“다섯 달 뒤에는 아닙니다.”
안세중이 사포를 놓았다.
내 출소는 이듬해 3월 2일이다. 그때까지 다섯 달 남았다.
“무슨 내용으로 쓸까요?”
“그것도 정하십시오.”
“…”
“무엇이 필요한지는 여기 계신 분이 압니다.”
그는 사흘 동안 아무 말도 안 했다.
나흘째에 종이를 들고 왔다.
건의 내용 열람실 이용 시간을 저녁에도 열어 주시기 바랍니다.
건의 사유 지금은 오후 두 시부터 다섯 시까지입니다. 그 시간은 작업 시간입니다. 작업하는 사람은 못 옵니다. 작업 면제자와 소지만 올 수 있습니다.
건의자 안세중
나는 그 종이를 읽었다.
세 번 읽었다.
첫 번째에 나는 그것이 좋은 건의라고 생각했다. 사실 그렇다. 열람 시간이 작업 시간과 겹친다는 것은 삼 년째 문제였다. 내가 못 본 것이 아니라 손을 못 댄 것이다.
두 번째에 나는 그것이 반려될 것을 알았다.
세 번째에 나는 어디를 고쳐야 하는지 다 찾았다.
「저녁에도」 — 몇 시부터 몇 시인지가 없다. 시간을 안 적으면 근무 편성을 못 짠다. 「작업하는 사람은 못 옵니다」 — 저쪽 잘못을 말하는 문장이다. 감정적이라고 걸린다. 「작업 면제자와 소지만 올 수 있습니다」 — 지금 오는 사람을 특혜받는 사람으로 만든다.
세 군데였다.
나는 볼펜을 들었다.
들고 있다가 놓았다.
“임 선생님?”
“…예.”
“어때요?”
나는 십오 초쯤 대답을 안 했다.
그 십오 초 동안 나는 두 가지를 생각했다.
하나. 고쳐 주면 이번 것은 통과한다. 저녁 열람이 생기고, 백 명쯤이 더 올 수 있게 된다. 그 백 명은 오늘부터 그 방을 못 쓰고 있는 사람들이다.
둘. 고쳐 주면 이 사람은 스무 번째도 내 문장으로 낸다.
내가 나가는 것은 다섯 달 뒤다.
“…내십시오.”
“이대로요?”
“예.”
그가 나를 봤다.
“고칠 데 없어요?”
“…”
“없어요?”
나는 그 질문에 거짓말을 했다.
“제가 보기에는 없습니다.”
스무 번째 건의서는 10월 4일에 냈다.
회신은 십일월 초에 왔다.
건의번호 2030-020 결 과: 반려 사 유: 시행 시간 불명확. 근무 편성 검토 불가.
안세중이 그 종이를 들고 작업장에 왔다.
그의 얼굴을 나는 그날 처음 봤다. 팔 년을 알았는데 그 얼굴은 처음이었다.
“반려됐습니다.”
“…예.”
“시간을 안 적어서요.”
“예.”
그가 종이를 봤다.
“임 선생님.”
“예.”
“이거 아셨죠.”
나는 대답을 안 했다.
“아셨잖아요.”
“…예.”
“왜 안 알려 주셨어요?”
작업장이 시끄러웠다. 그런데 우리 쪽만 조용했다.
“…”
“백 명이에요.”
“…”
“저녁에 열면 백 명이 올 수 있어요. 제가 세어 봤어요.”
“압니다.”
“그 사람들이 지금 못 오는데요.”
“압니다.”
“그런데 왜요?”
나는 그때 준비된 대답이 없었다.
십오 년 동안 나는 서류에 쓸 문장을 준비하고 살았다. 사람에게 할 말은 준비를 안 했다.
“…제가 다섯 달 뒤에 나갑니다.”
“그건 아는데요.”
“나가면 제가 못 고칩니다.”
“…”
“그때 처음 틀리시면 그건 제가 못 봅니다.”
안세중이 아무 말도 안 했다.
“지금 틀리시면 제가 봅니다.”
그는 종이를 접었다.
세 번 접었다.
“…그럼 다시 쓸게요.”
“예.”
“근데 임 선생님.”
“예.”
“다음엔 그냥 말해 주세요.”
“…”
“틀렸다고요.”
“…”
“그러면 제가 고쳐요. 안 알려 주시면 저는 뭘 틀렸는지도 몰라요.”
나는 그 말을 듣고 한참 서 있었다.
그 사람 말이 맞았다.
가르치는 것은 틀리게 두는 것이 아니다. 틀린 자리를 알려 주고 고치게 한다.
내가 한 것은 가르친 것이 아니라 시험한 것이다.
“…죄송합니다.”
그가 웃었다.
“괜찮아요.”
“…”
“대신 이번엔 세 군데 다 알려 주세요.”
“어떻게 세 군데인 줄 아십니까?”
안세중이 종이를 폈다.
거기 연필로 표시가 되어 있었다. 세 군데였다.
「저녁에도」에 동그라미. 「못 옵니다」에 동그라미. 「만 올 수 있습니다」에 동그라미.
“…언제 하셨습니까?”
“어제요.”
“…”
“반려 사유는 하나만 적혀 있는데, 세 번 읽으니까 세 개가 보이더라고요.”
나는 그 종이를 받았다.
내가 사흘 전에 찾은 세 군데와 같은 자리였다.
스물한 번째는 그가 혼자 썼다.
건의 내용 열람실 이용 시간을 아래와 같이 조정할 것을 건의합니다. 현행: 14:00~17:00 (3시간) 건의: 14:00~16:00, 18:30~19:30 (총 3시간)
건의 사유 총 이용 시간은 늘지 않습니다. 근무 편성 시간도 늘지 않습니다. 현행 시간에 오지 못하는 이용자가 있습니다. 저녁 시간을 나누면 이용 인원이 늘어납니다.
※ 야간 점호(20:50) 전에 종료합니다.
건의자 안세중
나는 그것을 읽고 고칠 데를 찾았다.
없었다.
「총 이용 시간은 늘지 않습니다」
이 줄은 내가 못 쓴 줄이다.
나는 늘 늘려 달라고 썼다. 두 시간을 세 시간으로, 오십 권을 이백 권으로, 한 칸을 다섯 칸으로.
이 사람은 늘리지 않고 옮겼다.
“…이거 누가 알려 주셨습니까?”
“임 선생님이요.”
“저는 이런 거 안 알려 드렸습니다.”
“알려 주셨어요.”
“언제요?”
안세중이 사포판을 짚었다.
“분류 조정이요. 지도책 늘릴 때요.”
“…”
“줄이겠다고 하면 반대하고, 조정하겠다고 하면 아무도 반대 안 한다고 하셨잖아요.”
나는 그 말을 듣고 아무 대꾸도 못 했다.
내가 말한 것을 나는 기억 못 했다.
스물한 번째는 삼 주 만에 승인됐다.
결 과: 승인 ※ 총 근무 시간 변동 없음을 확인함.
저녁 열람은 2030년 12월 8일에 시작했다.
첫날 저녁에 온 사람이 열아홉 명이었다.
그날 나는 복도에 있었다. 소지는 저녁 시간에 복도를 돌 수 있다.
열람실 문이 열려 있었다.
안에 열아홉 명이 있었다. 의자는 둘뿐이다. 나머지는 바닥에 앉았다.
바닥은 녹색이다. 십오 년 전에 내가 삼십 분 동안 사각형 하나만큼 닦았던 그 바닥이다.
안세중이 문 앞에 서 있었다.
“임 선생님.”
“예.”
“의자가 모자랍니다.”
“…예.”
“스물두 번째는 의자로 낼까요?”
나는 웃었다.
“예.”
“몇 개 신청할까요?”
“몇 개 필요하십니까?”
그가 안을 봤다. 세는 것 같았다.
“…열일곱 개요.”
“그럼 열 개로 쓰십시오.”
“왜요?”
“처음부터 열일곱을 달라고 하면 안 줍니다.”
안세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머지 일곱 개는요.”
“다음에 내십시오.”
“그거 언제요?”
“열 개가 다 찬 다음에요.”
그가 나를 봤다.
“그때 임 선생님 안 계시잖아요.”
“…예.”
“그럼 제가 정해야 되네요.”
“그렇습니다.”
안세중이 열람실 안을 봤다.
“…그거 어떻게 아세요? 다 찬 걸요.”
“앉을 자리가 없으면 압니다.”
“그건 지금도 없는데요.”
“그럼 지금 아시는 겁니다.”
그해 12월에 정상우의 여덟 번째 편지가 왔다.
십이 년에 여덟 통이다.
봉투가 두꺼웠다. 여태 온 것은 다 한 장이었다.
형님
어머니가 시월에 돌아가셨습니다. 여든둘이셨습니다. 오래 아프신 건 아니고 자다가 가셨습니다.
집을 정리하는데 안방 장롱 위에 종이봉투가 하나 있었습니다. 버스 회사에서 주는 봉투인데 손잡이 달린 거요.
그 안에 책이 두 권 있었습니다.
십오 년 전에 저 면회 오실 때 들고 오셨던 겁니다. 창구에서 안 된다고 해서 도로 들고 가셨던 그 두 권이요.
그거 십오 년 동안 거기 두셨습니다.
제가 펴 보지는 않았습니다. 펴 보면 제 책이 될 것 같아서요.
형님 나오시면 드리겠습니다. 내년 삼월이라고 전에 들었습니다.
몇 번째까지 갔습니까?
마지막 줄은 여덟 번 다 같았다.
나는 그 편지를 읽고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앉아서 세었다.
십오 년 전 5월에 그 사람 어머니가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왔다. 두 권을 들고 유리 앞에 섰다. 이쪽에서는 표지가 안 보였다.
유리 너머로 들어 보이시더라고요.
정상우가 그날 그렇게 말했다.
이거 봐라, 하고요. 두 권 다 들어서 표지를 이쪽으로 돌려서요.
그 손짓을 나는 십오 년 동안 기억하고 있었다.
그 두 권이 장롱 위에 십오 년 있었다.
그날 저녁에 나는 관물대를 열었다.
여덟 통을 다 꺼냈다.
2018.12 몇 번째까지 갔습니까 2020.09 몇 번째까지 갔습니까 2021.10 몇 번째까지 갔습니까 2022.08 몇 번째까지 갔습니까 2023.11 몇 번째까지 갔습니까 2025.06 몇 번째까지 갔습니까 2027.04 몇 번째까지 갔습니까 2030.12 몇 번째까지 갔습니까
여덟 번이다.
여덟 번 다 안 썼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그 여덟 통이 무엇인지 알았다.
내가 열한 번 냈을 때 저쪽에서 온 것은 반려 일곱 장과 검토 넉 장이다.
반려에는 사유가 있었다. 사유가 있어서 나는 갈 수 있었다.
검토에는 사유가 없었다. 사유 없는 넉 장을 받고 나는 네 해를 보냈다.
그 네 해가 제일 길었다.
정상우한테 나는 검토 중을 여덟 번 보낸 셈이다.
아니다.
검토 중도 안 보냈다.
아무것도 안 보냈다.
아무것도 안 오는 것을 십이 년 견딘 사람이 밖에 있었다.
나는 그것을 그날 알았고, 알고 나서도 답장을 안 썼다.
석 달 뒤에 만나기 때문이라고 그날 적어 뒀다.
적어 놓고 보니 그것도 까닭이 아니었다.
십이 년 동안 안 한 것을 석 달 더 안 하는 데는 까닭이 필요 없다.
석 달을 세면서 나는 그 여덟 통을 다시 접었다.